오늘이 오기를 1년을 기다렸다. 양귀비가 피어있을 때는 양귀비를 보러가야 할 일이고 산수유가 피어있을 때는 산수유를 보러가야 한다. 꽃은 산수유에서 시작하여 양귀비에 이르렀으니 어느덧 올해도 1학기 종강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겠다. 망설임 없이 30호 F 캔버스 두 장을 짝으로 붙여갖고 집을 나섰다.
원주의 용수골 양귀비 축제는 매년 서곡리 용수골에서 열렸었는데 올해에는 서곡저수지 쪽으로 장소를 바꿨노라 한다. 축제가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났으니 행여 꽃이 다 떨어졌으면 어찌할까 노심초사하여 직접 답사를 다녀오신 회장님 덕분에 시야가 탁 트이고 저수지 풍광까지 어울려진 양귀비꽃밭 벌판을 캔버스에 담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이미 일요화가회 카페에 올라온 답사 사진을 보고 진작 내가 자리 잡을 위치는 결정이 되어 있었다. 태양이 사정없이 내려 쬐이는 자리에 주저 없이 이젤을 세웠다. 오늘이 오기를 1년을 기다렸는데 그까짓 한 나절 햇볕인들 못 견디어낼 이유가 없다. 마음에 드는 구도의 장소라면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것이요, 태양이 쏟아지면 그 태양빛을 다 맞을 것이다. 또한 평소 일어서서 전 후로 왔다갔다 이동하며 그림을 그려야하는 내 버릇으로는 파라솔도 무용지물이다.
이런 때일수록 작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남들은 이를 일러 잔머리라 하겠지만...) 가능한 햇빛의 강도가 약한 오전에 얼마만치 다 그려놓도록 하자. 식사시간까지 아껴볼 요량으로 김밥 한 줄 사 갖고 갈 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오늘 식사 메뉴가 묵밥이라니 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시원하게 말아준 묵밥 한 그릇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필드에 다시 나가 붓을 잡았다. 먼 산 가까운 산을 원경에, 저수지와 하얀 햇빛 가리개 천막 그리고 또 다른 양귀비 밭을 중경에, 그리고 내 발밑에서부터 밀려나간 레드카펫을 근경으로 잡았다.
오후의 태양을 머리에 이고 한 시간 버티고 서있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또 거의 30호 캔버스도 메워진 마당이라 일찌감치 손을 털고 중경으로 바라보던 하얀 해 가리개 천막 밑으로 들어가 양귀비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구나! 모네의 뽀삐 필드가 연상되는 구도였다. 내년에는 여기서 그려보리라!
주홍색 양귀비꽃은 덧없는 사랑, 흰색 양귀비꽃은 망각, 적색 양귀비꽃은 몽상, 자주색 양귀비꽃은 환상이라 했던가. 꽃말은 그리도 슬프건만 여기서 바라보는 그 꽃들의 어울림은 화합이요, 사랑이요, 행복의 하모니로만 보이는 것은 어찌된 노릇인가?
2013. 6.16
첫댓글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것이요, 태양이 쏟아지면 그 태양빛을 다 맞을 것이란 말
나에겐 충격적입니다.
난 어떻게하면 비를 피해 그리지?어떻하면 그늘에서 좋은 구도를 찾지?를 고민하니까요.
양귀비를 그리면서 딱 내 스타일이다 했습니다
한 50호 양귀비 들판에 딱 세우고 붓으로 춤 추고 싶었는데
그 걸 승철씨가 하더라구요!
존경합니다아~~`
하루 종일 운동해도 지치지 않는 난 왜 일요 사생회만 갔다 오면 파김치가 되는지
지칠 정도로 땀 흘리며 운동해도 고파지지 않는 배가 왜 그림 그릴땐 거지처럼 배가 고파지는 걸까요?
몰입에 따른 에너지 총량의 손실 때문이 아닐까요?
그에 따른 파김치가 되는 상황과
그에 따른 시장기는
모두 행복에 이르는 경로 과정이니
그 역시 즐길 만 하지 않을까요?
참 부지런하고 에너지 넘치는 바람의 사나이 윈디박 -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에그~제 이름 지어주신 분이 콜롬보님 아니신가요?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댓글 안달아도....) 저도 잘 보구 있어유~
밥돌님~ 잘 알고 있답니다.
멋진 모습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