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돼지프로젝트! 난민, 과부와 고아들의 삶을 응원한다.
라열라시마라고 불리는 데칸고원의 광야를 자주 순회하였다. 불볕 더위에 바위와 가시덤불이 숨을 멈추면 광야는 공동묘지처럼 적적하였다. 나그네 눈에 나무가 없는 마을은 꽃과 쉴만한 그늘이 없어서 도시의 빈민가처럼 거칠고 황량하였다. 땡볕아래서 흙투성이가 되어 노는 아이들에게 그늘과 꿈을 주고 싶었다. 먼 훗날 향수에 잠겨 고향을 생각할 때 꽃피는 산골이라는 아름다운 기억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0여년 동안 부단히 나무심기를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무들이 물 부족으로 말라 죽었다. 사람이 마실 식수가 부족한 땅에서 그래도 앞날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나무에게 물을 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가 고스란히 무너진 것이다.
고민과 연구 끝에 나무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나무를 잘 키우는 집에 염소를 선물로 주기로 하였다. 이 염소 선물프로젝트는 예상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고무된 우리는 염소 프로젝트를 확대하여 동북인도 마니푸르에서도 실시하고자 하였다. 처음 그 지역을 방문하였을 때는 산도 많고 강과 하천도 좋고 들판이 넓어서 모두들 양식 걱정없이 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곳 또한 여느 곳과 다름없이 끼니가 힘든 가난한 집, 고아와 과부들, 독거노인들이 있었다. 기금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그곳에서 우연히 어느 20대 과부를 만난 뒤 바로 염소프로젝트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곳은 데칸고원과 식문화가 달랐다. 그들은 염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여 양계로 바꿀까하였는데 그 지역은 아직 닭장을 지어 양계하는 개념이 없고 닭을 풀어 놓고 먹이는데 개나 고양이와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권장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소나눔을 할 수도 없고해서 돼지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돼지프로젝트는 시작한 이래 14년 동안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유행기간에도 멈추지 않았고 마니푸르 폭동기간에도 지속되었다. 우리는 1년 1회에 걸쳐 25마리 정도의 중 돼지를 공급하였다.
수혜는 우리가 정한 대상 외에도 그런 세대들을 지원하는 기관과 단체까지 염두에 두었다. 수혜를 받는 대상은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사무실에 보고하고 1마리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약속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우리 비전아시아는 지금까지 350여 마리를 직접 지원하였으나 수혜자들이 약속을 잘 지킨 까닭에 간접 지원까지 합하면 이천에 가까운 사람들이 복돼지 프로젝트 수혜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그 지역을 방문할 때 마다 수혜자 가정을 방문하여 경청하였다. 그리고 성공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집을 지은 사례와 끼니 걱정에서 놓임 받은 것과 자녀 교육에 보탬이 되었다는 사례가 많았다.
작년 5월 3일, 메조리티인 메이테이족의 공격으로 시작된 마니푸르의 폭동으로 피해자가 된 소수부족민들을 위하는 복돼지프로젝트가 주춤거렸다. 그러나 우리는 후원을 중단하지 않고 수혜자들이 키우는 돼지를 사서 어린이들과 난민들, 노약자들 그리고 시민방위군에게 육식을 제공하였다.
폭동이 장기화 되면서 임팔 수도로 가는 도로가 차단되고 물량 이동이 정지되면서 부족민들의 생활에 파고가 몰아닥쳤다. 의약품을 비롯한 건자재와 공산품의 가격은 폭등하고 농산품은 유통이 되지 않아서 가격이 폭락하였다. 대부분의 건축공사와 도로와 다리 공사들이 중단되어 대량실업이 유발되었다. 자재 부족으로 소기업들이 문을 닫고 농산물을 가격의 폭락으로 지주들이 농사를 기피하여 농촌의 실업이 심각해졌다. 또한 메이테이의 공격에 대비하여 최전선에서 방위를 서는 시민자위군으로 가야하는 가장들과 청년들로 인하여 가족 중심의 농사와 수공업이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복돼지프로젝트는 사막에 물 한 컵을 붓는 격이었다. 고통과 굶주림에 직면한 난민들과 과부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며 의미가 있겠는가를 물으며 낙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동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소수부족민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복돼지프로젝트 지원과 장학금과 기타 지원 난민들에게 겨울옷과 양식을 보내는 일 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금이 여의치 않아 지속하지 못하고 3월 이후로 멈추었다. 어떻게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할 것인가를 기도하며 장학금과 복돼지프로젝트 후원금을 신중하게 송금하였다. 그리고 많은 망설임 끝에 무식하고 용감하게 부족민들이 적의 본거지라고 부르는 임팔공항을 통과하는 추르찬드푸르 방문을 시도하였다. 우여곡절을 거쳐서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사람들이 폭동 이후로 임팔을 거쳐서 추르찬드푸르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나의 용기를 극찬하였다. 나는 용감하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이렇게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줄 알았으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꾸하였다.
어쨌든 나는 이틀째 되는 날에 그 지역 여신도회 대표들과 함께 복돼지 수혜를 받은 집들을 방문하였다.
가장이 시민방위군으로 나간 가정 한 집, 가장이 시민 방위군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두 집, 집과 재산을 폭도들에게 다 잃고 구사일생으로 도망나온 스물여덟 가정이 함께 거주하는 난민캠프, 여러가지 사정으로 난민캠프에 들어가지 못한 두 집, 폭동으로 아들이 희생당한 어르신의 집, 시민방위군으로 일하다가 오른손을 잃고 오른발이 마비된 분의 집과 과부들과 무의탁노인들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종일 비가 내려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져 진흙탕 길에서 차가 휘청거려도 우리는 쉬지 않고 나아갔다. 폭동으로 더욱 힘들고 외롭고 불안한 삶을 사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강행군을 한 것이다. 우리는 방문하는 곳곳에서 그분들의 아프고 슬픈 사연을 듣고 함께 울며 기도하였다. 서로 위로하였다.
돼지나눔이 폭동 상황에서 생색만 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나의 의구심을 수혜자분들이 깨주었다. 실업과 물가폭동으로 수입이 없는 자기들에게 돼지가 희망의 씨앗이라고 하였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폭동지역에 들어온 내가 자신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폭동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추르찬드푸르 지역의 여러 난민들을 섬기라는 주문을 계속 해오셨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눔, 언제 끝날 지모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눔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침묵하였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난민들의 울부짖음은 하늘에 사무치는데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눈을 감고말 것인가?
도대체 나처럼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무엇인가?
부대끼며 갈등한 끝에 두 손을 들었다. 지금까지 많은 기적을 목격하게 하신 하나님께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지혜와 영감을 구하며 연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대로 1,2회 시행하였던 복돼지 후원을 연 3,4회로 늘리면 되는 것이었다.
참으로 돼지 한 마리 12만원에 사랑을 담아 난민들과 과부들의 삶을 뜨겁게 응원하기로 하였다. 비록 시작은 미미하지만 하나님께서 고통에 시달리는 자녀들을 위하여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사랑이 사랑을 낳게 하실 것을 믿는다.
우리의 작은 소망이 평화의 소망을 낳게 하실 것을 믿는다.
나에게 폭동과 전쟁을 종식 시킬 능력이 없다.
그러나 난민과 과부와 고아들과 한 끼의 식사는 나눌 수 있다.
당장에 온 세상의 전쟁과 폭동을 끝내고 평화를 선포하고 싶은 마음이야 하늘 같지만 그것은 내 영역 밖에 있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여
복돼지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이다.
복돼지프로젝트!
작은 것으로 평화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목격할 것을 기대한다.
겨자씨가 나무로 자라는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볼 것이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2024년 8월 30일 금요일 새벽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