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설정50주년--설악산소풍
2024. 09. 29. 주일. 설악산-십이선녀탕
주제 : 우리가 생각할 소풍
세상에서 힘들게 살았으면서도, 세상에서 지낸 시간을 소풍이라고 노래한 우리나라의 시인이 있습니다. 그분이 쓴 시를 읽겠습니다.
'귀천' ............<시인,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쓰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가,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고문 후유증과 음주생활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살아야 할 만큼 힘든 삶을 지냈다고 합니다. |
<<**동백림사건: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320명을 붙잡아,1명 사형(死刑). 유럽에 한국이 인권후진국이라는 인식을 준 사건>>: 1970년 모두 석방!! |
오늘 이 시간을 설명하는 일과 같은 표현인 소풍(消風)이라는 표현은, 그가 쓴 시의 끝에 한 번 나오지만, 오늘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드러낼 모습도 잘 생각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힘들게 지냈을 시인(詩人)이 쓴 ‘소풍’이라는 낱말의 의미와 우리가 아는 소풍의 의미는 다를 것입니다. 국어사전이 설명하는 ‘소풍’이라는 표현은 ‘세상에서 만나는 일의 복잡함을 줄이기 위하여, 자연으로 나와서 그 자연을 돌아보거나 자연을 구경하는 일’이라고 설명하는데, 자기의 인생의 여러 가지 일을 소풍의 소재로 생각한 시인이 쓴 표현의 의미와는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인생은 정말로 소풍일까요? 인생은 소풍이라고 생각할 만큼 즐겁고도 또 즐거운 일일까요? 인생을 소풍이라고 하려면,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이곳, 십이선녀탕까지 찾아온 일이 소풍이면 좋겠습니다. 면목동 성당이 자리를 세상에 자리를 잡은 지, 50년이 된 일을 기념하여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니, 좋은 일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십이선녀탕이 말하는 얘기를 아십니까? 이 일에 관한 소설이나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애썼는데,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어서 몹시 아쉬웠습니다. 어째서 우리 민족의 사람들은 외국에 비교하면, 멋있고도 아름다운 소재로 그럴듯한 얘기를 만들지 못할까 하고 질문하지만, 마음에 흡족할 재밌는 얘기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아는 간단한 이야기에는, 십이선녀탕은 인제군 북면에 있는, 용봉폭포의 아래에 있는 8개의 소(沼)에 밤마다 옥황상제를 모시던 선녀들이 내려와서 목욕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라고 하기도 하고, 장가를 가지 못했던 한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감춰서 그녀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는데, 어느 날 나무꾼이 그렇게 감춘 선녀의 옷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선녀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더라는 얘기가 있는 곳이 이곳이라는 전설도 있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전설은 말 그대로 얘기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뜻에서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9월의 하순에, 이곳에 온 일은 아직은 단풍철이 되기 전의 소풍입니다. 지금부터 설악산의 단풍이 시작하는 때라고 합니다만, 소풍은 이루어야 하겠다는 특별한 목적이 없이 노는 것을 말하는 표현일까요? 시인의 말과 시처럼,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소풍이라고 표현한다면 우리는 삶에서 만들거나 이룰 일이 아무것도 없을까요?
여러분은 인생을 소풍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으실까요? 우리가 삶에서 소풍을 처음 만나는 시간은 초등학교 때였을 것입니다. 도시락에 얹은 계란프라이에, 음료수 한 병과, 과자 몇 개를 가방에 싸서, 학교나 동네에서 가까운 산으로 갔던 기억을 가리켜 소풍이라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곳에 온 일을 소풍이라고 생각할까요?
처음에는 이곳 십이선녀탕에 올 날짜를 시월의 중순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강원도에서 시월에 여러 가지 축제가 겹친다는 소리에 우리가 오늘 오게 됐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삶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지는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익히고 내가 협조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신앙공동체를 위하여 또 나 자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남기고 만드는 즐거운 일이 우리의 인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맞이하게 될 삶의 끝에 우리는 진짜 행복을 말하며 하느님께로 다가가서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축복을 얻는 일로 만든다면 좋겠습니다. 나무꾼과 살게 된 선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무꾼과 결혼한 선녀의 후손이 우리 곁의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삶을 참 행복을 누리는 소풍의 시간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날, 내가 이 세상에서 지낸 시간이 참으로 소풍이었노라고 말할 아름다운 시간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