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즌드 기록의 사나이 양신 양준혁
2010년 대구시민 운동장에서 벌어진
롯데와 삼성과의 경기
9회말1사 후 주자가 나간 후 그 때 팽팽한 접전 끝에
갑자기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찬스때 마다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파란피의 사나이 양준혁 위풍당당
쳤었니다, 그 날 이것은 끝냬끼 안타이자, 양신의
대기록이 세워진 날이었다.
이제 그의 시작부터 보아야 할 일이다.
그는 남도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그의 집안은 야구집안이엇다
삼촌도 사촌형도........
그는 왼손잡이 였고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한 편이 못 되었기에
글러브를 갖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삼촌인가 왼손 글러브를 갖게 해 줘서
그는어릴떄부터 주목받는 선수로서의 촉이 텄다
그리고 대구상고를 지나 대학도 포기하고 어릴 적붙어 소원인
고향 대구의 삼성 푸른 피의 옷을 입는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미완의 대기였고 모두가 탐이 났지만 삼성에서는
아직도 쟁쟁한 선수가 많았기에 -------- 대학 진학을 한다.
대학때도 국가대표 시절에도 그의 공수주가 다른 선수와는 비교도
안 딜 만큼 뛰어났다.
그리고 삼성의 푸른 피를 입고 싶었으나 삼성에서는 투수를 골랐고
또 한번 군대까지 마친 후에 삽성의 푸른 피를 입게 된다.
여러가지로 끌꺼러운 운명적인 일이 있었다.
데뷰 첫 경기 ----- 그느 놀라운 방망이의 불꽃 그 전조를 보이며
괴물 타자라는 닉네임으로 대기록과 함께 그야말로 기록의 사나이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항상 1루로 전력질주하는 모습 그것은 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한
양신의 모습이었다. 어릴적부터 입고 싶었던 푸른 피를 삼성의 구단측에서는
방출 시킨것이다 ---------^^
그는 기자회견을 하며 휴식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하고 트레이드의 거부의사를
표현 했으나 김응룡 감독의 전화 한통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결국 해태의 옷을 입으며 더 진보된 모습으로 이적의 설움을 달랬다
그리고 LG 와의 트레이드 김성근 감독이 말했다 준혁이는 효자다 효자치고
그렇게 하는 사람없며 말했고 직접적인 원인은 선수협 사건의 말미라고
보면 되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삼성의 푸른 피를 입게 되지만, 슬럼프가 찾아 왔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루를 지날 때 마다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10연년간의 타법을 버리고
만세타법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의 피뱆친 노력의 결과로 무수한 기록들을 남기지만,
최다 사사구를 제일 중요시하는 양신................
왜냐하면 투수에게 공을 많이 던지게하고 또 다음 타자가 나오면
흔들리는 투수가 많기 때문에 어떤 대기록 보다도 최다사사구-----
그의 놀라운 프레이는 팬들의 모습에 각인 시켰고
아버지 아제 저 은퇴 할렵니다. 지가 다 정해놓고 내 참내 쯪쯪.....
김응룡 감족이 있을 때 또 이만 할 때 은퇴를 하는 것이 양신의 생각이었다.
1루로 열심히 뛰는 선수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팀을 우승 못 시키는
선수는 일꾼이 아니다 그건 맞다.
은퇴경기가 있는 날 양신의 부친이 시구를 하고 양신이 치고
참으로 양신은 효자다.
그래 그것이 양신의 기록이 아날까
화려한 은퇴식 영구결번호 등번호 10번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입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빗속에서 그는 울먹였다
그것이 가장 양신의 인간적이고 순박한 모습이었다
푸른 피의 사나이 기록의 사나이 레즌드
양 준 혁
영원히 우리 가슴에 새겨져 이 세상이 다 할때까지
1루로 전력질주하는 그 모습을 보며 배우고 싶다.
레즌드 기록의 사나이 양신-----------
양 준 혁
용필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