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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Messenger
호세아서 1:1~5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성경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 사랑의 이야기’(The story of God’s love)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남녀를 만드시고 혼인제도를 만드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그 안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하고 나누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필두로 수많은 혼인 이야기가 구약에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혼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므로 신랑과 신부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이어지면서 영적 깊이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도 신랑되신 예수님과 그의 신부 된 그리스도인이 영원한 혼인잔치를 통하여 이루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성경의 매듭을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고, 그중에서는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경험하게 하여 이를 전하도록 한 사례도 종종 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우리가 함께 나눌 호세아서의 저자인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 호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NIV성경에는 “When the Lord began to speak through Hosea”라고 되어 있고, KJV에는 “The beginning of the word of the Lord by Hosea"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를 통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였다’와 ‘호세아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하기 시작하였다.’는 말씀은 같은 것 같으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의미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호세아에 의하여’하면 말씀을 전하는 전령의 수준에 머물지만 ‘호세아를 통하여’라고 하게 되면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로 미뤄보아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의 삶에 관여하셔서 그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향한 사랑이 어떠한지 알 수 있도록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기원전 700년경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있었는데 북쪽은 이스라엘이라 하였고, 남쪽은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호세아는 북 왕국인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남 왕국에서는 잘 알려진 이사야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했던 예언자 미가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호1:1을 보면 호세아는 50~60년간 활동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다짐한 청년 선지자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이름은 호세아, ‘구원’ 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는 경건한 가정을 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평온한 삶을 살기를 꿈꿨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음성은 축복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선지자로서의 명예와 남성으로서의 자존심을 모두 바닥에 내팽개쳐야 하는 충격적인 명령이었습니다. 호 1:2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명령입니다. 놀랍게도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고멜은 바람처럼 흔들리는 여인이었습니다. 정결한 선지자의 집안에 음란한 여인이 들어온 순간, 호세아의 삶은 이웃들의 수군거림과 비웃음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였던 고멜(Gomer)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복합적이고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호세아서 1장 3절에 ‘디블라임의 딸 고멜’로 소개된 그녀는 히브리어로 ‘완성되다’, ‘끝나다’라는 의미의 ‘가말(Gamar)’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죄악이 가득 차서 ‘멸망할 준비가 끝났다’ 혹은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부정적인 중의성을 내포합니다. 이 여인을 등장시키므로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타락했음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녀를 ‘음란한 여인’(호세아 1:2)으로 표현하므로 결혼 전부터 도덕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즐겼던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멜의 가장 두드러진 성향은 현재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는 결핍입니다. 그녀는 경건한 선지자인 호세아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 다른 남자(정부)들을 찾아 떠납니다.
거룩한 선지자가 음란한 여자와 결혼을 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파격적인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음란한 여자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과 결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백성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았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은 인간의 자격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크게 음란함으로 하나님을 떠난 고멜과 같은 자라도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호세아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을 전하게 하셨던 하나님도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어떤 식으로 인도하시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낮은 자리로 인도하시므로 사랑의 법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을 꿈꾸며 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름답고 지성을 갖추고 있는 자매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누렸던 젊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외모뿐 아니라 마음도 고와서 남편을 잘 따르고 집안 살림 역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꾸려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야외로 차를 몰고 나갔다가 마주 오던 대형트럭에 들이받혀 차는 박살이 났고, 이 여인은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척추와 뇌에 문제가 생겨 지능은 3살짜리처럼 되었고, 하반신 마비로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편 의사는 이런 아내를 돌보며 지냈습니다. 쉬는 날이면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꽃이 만발한 정원을 데리고 다니며 꽃 향기를 맡게 하였고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면 노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의사 남편이 고백한 것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나의 도움 없이는 전혀 살 수 없는 아내를 통하여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절대 은혜임을 아내를 돌보며 깨달음의 신비 중의 하나닙니다.”
이 분의 고백처럼 우리는 잠시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나의 생각과 모든 조직과 세포, 뼈마디마다 돌보아 주셔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낮은 자리에 있을 때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희생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을 아내로 취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성경학자들은 호세아 1장에 나타난 표현 방식에 의하여 첫째 아들만이 호세아의 친자식이고 둘째와 셋째는 고멜이 외도하여 낳은 자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합니다.
그 근거는 첫째 아들 이스르엘에 대하여 “고멜이 임신하여 그(호세아)에게 아들을 낳으매”(호세아 1:3)라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지만, 둘째와 셋째에 대하여는 단순히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6절),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라고만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호세아에게 낳아주었다’는 표현이 빠져 있이므로 두 아들과 딸은 결혼 후에도 밖에서 외도하여 낳은 자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호세아 1:2)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고멜이 결혼 생활 중에도 계속해서 음행을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낳은 아이들조차 호세아가 자기 자녀로 받아들여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겪었을 심리적 고통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배신감과 수치심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그들을 양육하며 ‘긍휼을 받지 못하는 자(로루하마)’, ‘내 백성이 아닌 자(로암미)’라고 불러야 했던 그의 매일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십자가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호세아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까요?
호세아의 고통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느끼시는 감정을 호세아의 몸에 이식(Transplant)하신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달려갈 때 느끼시는 하나님의 질투와 아픔을 호세아는 자신의 가정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묻기보다 ‘하나님도 나 때문에 이런 아픔을 느끼셨겠구나’라는 지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고통을 하나님의 고통과 연결하는 ‘거룩한 공감’이 진정한 섬김의 시작입니다.
호세아에게는 자신의 명예, 가문의 정통성, 부성애적 권리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나의 행복'과 '나의 권리'가 침해당할 때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곤 합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모습은 나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내 인생의 주권이 내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내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라고 반응하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섬김입니다.
호세아는 자녀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스라엘의 죄를 떠올려야 했지만, 결국 그 이름들을 '루하마(긍휼을 받는 자)', '암미(내 백성)'로 바꾸어 부르시는 하나님의 회복을 선포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가정을 지킨 그의 인내가 메시지의 완성입니다. 도저히 품을 수 없는 사람, 나에게 상처를 주는 공동체를 끝까지 인내하며 품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의 주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배입니다.
셋째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흔적을 보이라는 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고백한 “내 몸에 예수의 흔적(Stigma)을 지니고 있노라”는 선포는, 당시 문화적 배경과 바울의 삶을 이해할 때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흔적이란 뜻이 담긴 ‘스티그마(Stigma)’는 가축이나 노예의 몸에 불로 달군 도장을 찍어 누구의 소유인지를 표시하는 낙인을 의미했습니다.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 소유권의 증거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된 백성에게 성령의 인을 쳐 주십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알게 하시고, 성령으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면 내 안에서 예수님의 삶의 흔적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살면서 본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시는 분이시지만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종의 모습으로 섬기시는 낮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배반한 자들을 품으시고 자기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며 침을 뱉어 모욕하는 자들까지고 마음에 품으셨습니다. 죄인으로 도무지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사람의 죄를 당신의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이 내게서 나타날 때 당화스럽고 도망치고 싶지만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이것을 인내하며 거기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여진다면 그 아픔은 내게서 진주와 같이 빛나는 보석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나타났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으로 이 흔적이 새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프고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 같은 죄인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인정하게 되면 이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하고 이를 이웃에게 전하는 Messenger로 부르셨습니다. 생동감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므로 내 인생에게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드러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영광의 길이요, 영원한 축복의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