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는 철부지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 어언 9년, 어머니께서는 조그만 아파트에 홀로 계신다. 아흔을 넘기셨으니 걷는 것도 보행기 없이는 거실에서 부엌까지 가시는 것조차 힘들어하신다. 모든 것이 불편하셔도 자식들에게 부담될까 오라 가라 전화도 안 하신다. 한국 사람이 없는 노인 아파트에서 외로이 끼니를 챙겨 드시느라 고생하시는 것이 안쓰럽고 죄송스럽다. 늙으신 어머니의 안녕이 무척이나 걱정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마음뿐이다. 어머님을 보살피는 일은 언제나 형님들과 형수님들의 몫이었다. 장보기, 병원에 다녀오기. 교회에 함께 가고 교민 행사나 모임은 물론 모든 일을 번갈아서 하시고 나는 사는 거리도 멀고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고 언제나 열외이었다. 막둥이는 60이 넘어도 철부지 막둥이일 수밖에 없나 보다.
영어를 못 하시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씩 모임에 나가신다. 지하철을 타고 여덟 정거장을 가셔서 한인 타운에 있는 팀 호톤스 커피숍에 매주 만나는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임이 있다.
바퀴가 달린 보행기에 의지하여 밀고 한 걸음씩 천천히 이동하시는데 에스컬레이터에 보행기를 걸치고 타는 요령을 터득하셨다. 하지만 내리는 역에서는 계단 세 개에 올라서야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게 되어 있다. 무릎도 성치 않고 보행기를 들어 올릴 수 없어서 겨우 3개짜리 계단 앞에서 망연히 서 계신단다. 영어라도 할 줄 알면 도움이라도 청하겠지만 남에게 부탁하는 성격도 아니시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에는 눈치 빠른 친절한 귀인을 만나 보행기를 번쩍 들어 올려주기도 한단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한 정거장 전에 내리신 후 걸어서 가신단다. 지하철로 1분이면 가는 거리를 보행기를 밀면서 보도블럭의 턱을 피하며 오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아픈 다리를 쉬어가면서 30분이나 걸려 커피숍에 도착한다.

노인네들이 커피숍에 모여 앉아 오랜 시간 담소를 나누어도 매니저가 눈치를 주지 않는다 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아직 캐나다 토론토는 살만한 도시인가보다. 어이가 없는 일은 커피숍에서 몇 십 미터 되지 않는 곳에 번듯한 한인 노인회관 빌딩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회관은 회장과 회원들 간의 세력다툼 또는 감투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으로 한인 노인들이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해서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모처럼 어머니 집에서 스무날을 함께 지냈다. 항상 방문만 했지 이렇게 함께 먹고 자고 한 적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느린 동작으로 세끼 밥을 스스로 해 잡수시며 홀로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면 못난 자식이 된 내가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그래서 어머니 곁에서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었다. 마음만 그렇지 실은 어머니를 더 귀찮고 힘들게 하는 일이다. 어머니는 막둥이 왔다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구부정한 허리를 이끌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상을 차려주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하거나 물건이나 옮기는 자질구레한 일들뿐이다.
그래도 어머니 집에 와서 꼭 하고 싶었던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직접 요리를 해서 진지를 차려 드리는 일, 늦게 배운 솜씨로 해물 볶음요리를 만들어 대접했다. 그동안 엄마가 차려 준 밥상이 얼마였겠는가? 한 두번으로 보답할 리 만무하겠지만 어머니가 담담하게 하시는 한마디가 더 감사하다.
“오래 살다 보니 막둥이 요리도 먹어보게 되는구나!”
두 번째는 목욕하실 때 등을 밀어드린 것이다. 어릴 적에 고무 대야에 앉아서, 또는 수돗가에서, 그리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대중탕에 가서 박박 문질러 주셨는데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기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막둥아, 엄마 등 좀 밀어다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기회가 있을지...
어머니는 별 내색은 안 하시지만 다른 할머니들과 통화할 때면 막둥이가 와서 며칠 동안 봐주고 있다고 은근히 자랑삼아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는 그저 내가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흡족하신 것 같다.
노인 아파트에 머무르는 것은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인터넷이 없어서 답답하다. 데이터 플랜만으로 용량이 모자라 와이파이가 있는 15분 거리의 공공도서관을 자주 찾아가곤 했다. 어제는 장시간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있다가 어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혼났다.
“왜 이렇게 밤늦게 다니는 거냐?”
“겨우 8시밖에 안 되었는데...”
“그래도 밖이 춥고 깜깜해졌는데! 일찍 와야지!”
“엄마! 나도 이 도시에서 30년을 살았어. 그리고 나도 60이 넘은 어른이야!“
“그래도 밤늦게 다니면 위험해!”
“알았어. 엄마, 앞으로는 일찍 올게!”
구순의 어머니에게 60이 넘은 막둥이는 아직도 철부지다.
아무 꾸지람이라도 좋으니 오래오래 들었으면 좋겠다.
-막둥이
첫댓글 돌아가신 울엄마
보고싶다
살아계시면 올해 100살이신데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