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잖아. 뭐 ……. ? 됐다. 됐네요. 검사 월급 명세서 뵈줄까? 절대 전혀. 잘 나가지 않거든요. (계속 웃으며) 됐다. 끊는다.
하품을 길게 하고 기지개를 켜는 철중.
맞은편에서 거의 시체처럼 졸면서 오는 석신.
철중: 압수 수색 영장!
손에 든 영장을 들어 흔들어 보이는 석신.
그렇게 든 손에 하이파이브 하듯 손을 맞부딪치는 철중.
그 때, 철중의 앞 쪽, 다른 방 문 열리고 나오는 차장 검사 박차장. 인심 좋고 후하게 생긴 얼굴.
박차장: 강 검사, 내가 급행으로 영장 오케이 했다.
철중: (꾸벅 인사하며) 감사합니다.
박차장: 감사하긴. 열심히 뛰어. 팍팍 밀어줄 테니까. 김 부장이 발목 잡으면 나한테 일러!
철중: (웃으며) 예, 차장님.
씬 17. 김신일 집무실 (저녁)
서류에 눈길 준 채로 뭔가를 계속 쓰며 이야기하는 신일.
김신일: 작전 수행 공간에서 일반인에 대한 안전장치나, 경고등의 사전 조치 없이 밀어붙인 검사의 폭주로 인해 부상자 12명, 파손 집기 약 420만원 어치 …….
눈 들어 철중 보는 김신일
김신일: 형사들한텐 총질하라고 사주하구, 검사는 손으로 칼날 잡고 ……. 수사관두 싫으면 스턴트맨 자리 알아봐 줄까?
철중: 일석 삼십조 ……. 했는데 …….
김신일: (수북이 쌓인 서류철을 툭툭 내리치며) 그래서 검사의 폭행, 과도한 진압 행위에 대한 고소장도 삼십 개다.
철중: 부장님
김신일: 법 왜 배웠어?
철중: ……. 식사 안하세요? 제가 사겠습니다.
김신일: 검사가 수사관 밥그릇에 숟가락 담그는 게 재미냐?
철중: 소주도 살게요.
김신일: 강철중. 너 내가 만날 그냥 하는 소린 줄 알지?
잠시 멀뚱히 보는 철중.
철중: (머리 벅벅 긁으며) 시말서 써오겠습니다.
돌아서는 철중.
문고리 잡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김신일: 껍데기 집 ……. ?
씩 웃으며 돌아보는 철중.
씬 18. 껍데기집 (저녁)
지글지글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는 돼지고기.
김신일: (E) 이건 이거구, 진짜 좀 어떻게 해야 돼 너. 알어?
화면 넓어지면 마주 앉아 식사 중인 철중과 김신일.
철중: (아무 자극 안 된다는 얼굴로 고기를 뒤집으며) 추가해요?
김신일: (빈 술병 들어 보이며) 이것두 500년 전부터 비었다.
철중: (고개 돌리며) 아줌마, 여기 백세주요.
다시 테이블로 고개 돌리면 철중 앞에 놓여있는 새 핸드폰 하나.
집어 들고 이게 뭐냐는 듯 신일 보는 철중.
신일: (고기 먹으며) 그걸루 써. 24시간 켜놓구.
철중: (감격했지만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웃음 참으며) 선물 ……. 이예요?
신일: (입 안에 고기 잔뜩 넣은 채로) 그거 갖구 있으면 니 위치 다 추적되거든. 내 핸드폰으루. (자기 핸드폰 꺼내 보여주며) 봐라, 자 이거.
빈정 상해서 표정 일그러지는 철중.
하다가 멈칫하더니 텔레비전을 보는 철중.
신일: (철중 툭툭 치며) 잘 보라고. 이거 강력부 비품으루 산거니까, 이거 꺼놓거나 잃어버리면 국가 재산 유실이다. 알았어?
그래도 계속 텔레비전 보는 철중.
그제야 철중의 시선을 따라 텔레비전을 보는 신일.
가게 한 구석의 텔레비전 수상기에 승우의 장학증서 전달식이 보도되고 있다.
아나운서: (E) 명선 학원의 조승우 이사장이 취임 1년, 재단의 거의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글로벌 인재 육성에 전념하겠다는 행보에 교육계는 물론 사회 각층에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김신일: 알어?
철중: (쓴 웃음 지으며) 은인이요.
김신일: 은인?
철중: 고등학교 동창인데 …….저 새끼 돈 많았거든요, 전 돈 없고. 저 새낀 쌈 잘했고.
김신일: 너두 쌈 잘하잖아.
철중: (웃으며) 저 새끼 땜에 그렇게 된 거구, 그 땐 호구였어요. 저 새끼 집안 빵빵하구, 우리 집 뭐.
김신일: (피식 웃으며) 또 있네.
철중: 뭐요?
신일: (화면 보며) 잘 생겼네.
어이씨 ……. 하는 느낌으로 김신일을 보는 철중.
철중: 아무튼 뭐 …….저 새끼 땜에 검사 하겠단 생각 먹었으니까 은인은 은인이죠.
김신일: (젓가락 탁 내려놓으며) 야 ……. 네가 그런 불순한 의도로 검사 질을 하니까 사고가 끊이지를 않는 거야. 신성한 검사직을.
철중: 부장님, 공무원 윤리 헌장하구 검사 윤리 강령하구 공무원 윤리 헌장 실천 강령, 검찰 민원 행정 서비스 헌장, 공무원의 신조 5개항 ……. 외워요?
김신일: (어안 벙벙) 뭐?
철중: 그거 다 합쳐서 숫자 빼고, 마침표 빼고, 쉼표 빼고, 괄호 빼고 글자만 따지면 2881자거든요. 저 그거 다 외워요. 저 서울지검에서 제일 윤리적인 검사에요.
할 말을 잃고 잠시 보는 김신일
신일: (다시 젓가락 잡으며) 집요한 새끼 …….
씬 19. 종합 병원 외경/밤.
정문에 멈추는 최고급 승용차.
수위가 달려 나오고, 지나가던 몇 몇 의사도 발길을 멈춘다.
차에서 내리는 승우.
수위와 의사들, 깍듯이 인사하고.
가볍게 목례하며 들어가는 승우.
씬 20. 병실/밤.
넓은 공간과 원목의 가구로된 응접실.
한쪽 벽면이 유리로 돼서 병실이 보이고 유리벽 이쪽은 응접실로 돼있다.
병실 침대에는 승우의 형 승준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의식불명인 채 누워있다.
응접실에 앉아있는 것은 60대의 신사. (이하 효준) 단정하고 고집스러운 외모다.
문이 열리고 승우가 들어온다.
잠시 돌아본 효준.
승우도 효준을 볼 뿐, 인사도 없다.
승우가 병실로 다가가자 일어서는 효준.
병실로 들어가려는 승우의 길을 슬쩍 막는 모습이다.
보는 승우,
효준: 세상만사가 다 니 뜻대로 될 줄 알지. 할아버지 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쌓아올린 재단 재산 다 팔아서 니 배 불리겠다는 작정.
승우: (말 자르며) 뉴스 안 보십니까?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는 겁니다. PGA 정복하려면 PGA 시합이 열리는 골프장에서 쳐 봐야죠. 국내에서 발버둥 쳐 봐야 개구리 수 십 마리 키우는 겁니다.
효준: (비웃으며)세상 사람이 다 속아주고 장단 쳐주니까 내 눈도 가릴 수 있을 줄 알았냐? 네가 인재를 키워? 다 팔아치운 돈 해외로 빼돌려 니 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서 살 작정인 거 내가 모를 것 같아?!
승우: 안 이사님 …….
효준: 명선 학원 재산이 무슨 돈인데! 이 나라에서 부모들이, 자기 자식 잘 키워 달라고, 안 먹고 안 입고 낸 등록금 모인 거다. 이사장님이 평생 비싼 옷 한 벌 안 해 입으신 이유가 뭔지 넌 모르지. 알 수 없지. 가진 거 없는 나라, 다음 세대 잘 키워야 되는데, 그거 하라고 모인 돈은 돈이 아니라 소망이야 …….그걸 돈으로 보는 놈은 명선을 맡을 자격이 없어.
승우: 안 이사님. 저 명선 이사장입니다.
효준: 이사장 대행이지! 승준이 깨어나면.
승우: (웃으며) 깨어나면요 ……. 깨어나면 ……. 그렇죠. 그러면 형이 이사장이죠.
효준: 승준이가 못하면 내가 한다. ……. 썩을 대로 썩은 네 놈이 무슨 짓 했는지 다 밝혀서! 지은 죄만큼 죄 값 받게 하고 명선 이름 살려놓는다. 그래야 죽어서라도 이사장님 뵐 면목이 서지 ……. (분노와 슬픔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이사장님이 네놈이랑 단 둘이 여행가신다고 할 때부터 ……. 말렸어야 됐는데 …….
승우: 아버님 심장 발작도 제 책임입니까?
효준: 이사장님 돌아가시고 2주 만에 승준이 쓰러진 게 죄다 우연이고 사고냐?!
후 ……. 한숨 쉬며 빙긋이 웃는 승우.
승준의 병실 쪽으로 걸음 옮기려는데 막아서는 효준.
효준을 보는 승우.
조용히 웃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고 돌아본다.
승우: 안 이사님 ……. 건강하세요.
나가는 승우.
씬 21. 병원 복도.
천천히 걸어 나오는 승우의 얼굴이 무섭도록 굳어져있다.
씬 22. 거리 (새벽)
가로수에 가려 가로등 불빛도 어두운 한적한 거리.
오가는 차는 보이지도 않고 인적도 없다.
그 한 쪽에 주차된 승우의 차.
차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들고 나온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승우.
승우: 방법은 알아서 해.
전화를 끊은 승우.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가 그대로 전화기를 가로등에 던져 악살을 낸다.
그리고 담배를 던져 버리고 차에 올라탄다.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는 승우.
그 때, 창문을 두드리는 그림자.
돌아보는 승우.
창 밖에는 60대의 늙은 환경미화원이 서서 창 내려 보라는 손짓을 한다.
창을 내리는 승우.
미화원: (승우가 버린 꽁초를 손에 들고 보이며) 이렇게 좋은 차타고 다니시면서 이러시면 보기 안 좋아요. 하 …….
오늘 참 여러 가지네 ……. 하는 느낌이 되는 승우.
미화원: (미소하며) 꽁초 버려서 쓰레기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낙엽에 불붙으면, 큰 불도 되거든요. 앞으로 좀 주의해 주세요.
대답 없이 차를 출발시키는 승우.
등 뒤에서 미화원이 소리치는 것이 들린다.
미화원: (E) 자식 같은 젊은이라서 말한 거니까 언짢아하지 마요.
승우의 한 쪽 입 꼬리가 비틀려 올라간다.
차를 유턴시키는 승우.
라이트를 끈다.
앞 유리창을 통해 저만치 앞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미화원이 보인다.
서서히 액셀을 밟는 승우의 발.
급하게 올라가는 계기판의 RPM.
무심히 돌아보는 미화원.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퉁- 차에 받히는 미화원의 몸뚱이.
백미러로 도로에 널브러진 미화원을 확인하는 승우,
승우: 천하게 살아도 목숨 귀한 줄은 알아야지, 영감. 분수를 모르니까 이렇게 되잖아.
차를 출발시키려다가 멈칫하는 승우.
앞에서부터 놀란 얼굴로 비틀비틀 다가오는 할머니 한 명이 보인다. 공공 근로자용 조끼를 입고 있다.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다가오며 영감 ……. 영감 ……. 라고 말하는 듯하다.
쫓아오던 할머니, 어느 순간 놀란다.
그리고 급하게 뒤 돌아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급격하게 가까워지더니 화면을 덮어오며 쿵- 엄청난 충격음.
그대로 할머니의 몸뚱이는 사라져 버리고 텅 빈 도로 멀리로 사라지는 차 소리가 들린다.
화면 넓어지면 미화원과 할머니의 시체가 뒹구는 도로가 보인다.
씬 23. 서울지검 입구 (아침)
출근하는 철중.
입구를 지키는 경찰들의 경례에 인사하면서도 골이 울리지 않게 조심하는 자세가 다소 우스꽝스럽다.
고개 숙이다 멈칫하는 철중.
그의 시선 속으로 민원실 앞 의자에 앉아있는 효준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꼿꼿하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시선을 가리며 불쑥 끼어드는 얼굴, 강석신 수사관.
강석신: 뭐하십니까?
철중: (고개 휙 들며) 어?!
그러다가 골이 크게 흔들려 찡그리는 철중.
강석신, 오토바이 헬멧을 옆구리에 끼며 점잖게
강석신: 왜 아직도 절 보면 아침마다 놀라시는 겁니까?
철중: (머리 꾹꾹 누르며) 목소리랑 오토바이 헬맷이랑 ……. 결정적으로 니 나이가 스물다섯 이란 거랑 ……. 도무지 조화가 안 되거든.
석신: 검사님이 검사님이라는 거랑, (손들어 보이며 철중 흉내 내고) 하이- 만큼 부조화 스럽습니까?
이 자식이 ……. 하는 느낌으로 보는 철중.
씩 웃으며 보는 석신.
그 때, 두 사람 앞으로 다다다다- 뛰어나오는 젊은 조 검사.
조 검사, 철중 미처 보지 못하고 달려가며 양복상의 단추를 채워 입는다.
조 검사: 선생님.
조 검사를 따라 시선 돌리는 철중.
보면, 효준에게 달려가 인사드리는 조 검사.
그 깍듯함이 눈에 뜨일 만큼 정중하고, 인사를 받는 효준의 당당함도 인상적이다.
cut to
"그냥 시켜 먹지. 뭘 굳이 나가 하루에 한 번은 콧김을 쐬야죠. 뭐 먹지? 등등 떠들면서 현관으로 나오는 철중, 강석신, 박 계장 등 철중네 방 사람들.
그러다가 멈칫하는 철중.
효준이 아침과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고집스럽고 화가 난 모습이다.
cut to
퇴근하는 모습으로 나오는 철중.
그 때 로비 저쪽에서 다소 크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억누르려 하지만 뭔가 삐져나오는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효준: (V. O) 내가 아닌 걸 그렇다고 말할 사람인가! 내가 자네한테 그렇게 밖에 안 뵈는 게야?!
돌아보는 철중.
젊은 조 검사가 민망한 듯한 표정으로 서있고 효준은 노기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씬 24. 조 검사 집무실/밤.
피곤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는 앞 신의 젊은 조 검사.
일 하다가 신경질이 나는 듯 볼펜을 탁 내려놓는데 들어오는 철중.
철중: (음료 캔 하나를 책상에 내려놓으며)뒤 골 땡길 땐 파 보든가, 완전히 접어버리든 가 해야지. 볼펜한테 신경질 낸다고 해결이 되나
조 검사: 예 ……. ?
빤히 보는 철중.
알아들은 듯한 조 검사.
조 검사: 보셨어요?
철중: 누군데? 아버님 친구 분? 당숙?
조 검사: 아뇨 …….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요 ……. 선생님이 이사로 계시는 재단 ……. 이사장이 1년 전에 교통사고 당해서 혼수상탠데 그걸 재조사 해달라구요.
철중: 교통사고?
조 검사: ……. 오토바이랑 엮인 뺑소니 사고였는데 ……. 포인트는 그게 아니구 그 동생이 지금 이 사장 대행을 하는데, 선생님 주장은 그 동생이 조작한 사고였을 거라는 거죠.
철중: 그렇게 생각하실 이유가 있나?
조 검사: 젊은 이사장 하는 사업이 맘에 안 드시니까 ……. 거기 요새 급진 개혁하는 데거든요. 아무려면 친형인데 학교 이사장 자리 놓고 그렇게까지 했겠어요? 근데 왜요?
철중: (슥 일어서며) 아니 뭐 그냥.
조 검사: (일어서며) 그냥이 어딨어요, 그냥이. 선배님 또 뭐 꺼리 있나 싶어서 오셨죠. (철중 팔을 잡으며) 가세요. 밥이나 사주세요.
철중: (팔을 빼며) 밥을 내가 왜 사?
조 검사: 왜긴요. 기분 꿀꿀한 후배한테 딱 걸리신 거죠.
철중: 됐어.
조 검사 손을 피해서 문으로 나가는 철중.
에이 ……. 하는 느낌이 되는 조 검사.
철중: (멈칫 돌아보며) 조 검사 고등학교.
조 검사: 명선 나왔죠.
철중: (잠시 보다가) 밥 먹자.
조 검사, 의아한 얼굴.
씬 25. 고급 한정식 식당 앞/밤.
유리문 안으로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있는 조 검사가 보이고 조 검사, 억울한 표정으로 문 밖을 힐끔 거린다.
문 앞에서 담배 피우며 전화하고 있는 철중이 보인다.
철중: 난데 ……. 그 동창회 ……. 오피니언 리더스 클럽 ……. 모임이 언제라구?
씬 26. 호텔 로비/밤.
정장을 입은 철중이 단단히 마음의 결심을 한 표정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리지만 행사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나가는 호텔 직원에게 묻는 철중.
호텔 직원이 웃으며 한 방향을 가리킨다.
씬 27. 호텔 풀 사이드/밤.
화려한 조명이 밝혀진 실외수영장.
수영장 가장자리로 차려진 테이블에는 화려한 음식이 가득하고.
와인 잔을 들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들과 모델로 보이는 여자들이 어울려있다.
은은한 탱고곡이 흐르고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몇 쌍이 탱고를 추고 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건물에서 풀 사이드로 나오는 철중.
이 이국적이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자리가 낯선 듯 바라본다.
그의 시선으로 보이는 춤추는 커플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승우 커플이다.
곡이 끝나고 구경하던 사람들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딱히 뭐라 꼬집을 수 없지만 못마땅한 느낌이 드는 표정이 되는 철중.
칵테일 바로 가서 술을 한 잔 받는 철중.
그리고 돌아보면 승우의 주변으로 동창들 대부분이 모여들어있다.
철중이 한 입에 술을 털어 넣고 다시 술잔을 받으려 돌아서는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회장: (E) 왔구나!
돌아보면 대머리에 배까지 나온 동창 하나가 반가운 얼굴로 서있다.
회장: (철중 어깨를 툭 치며) 야, 확실히 검찰청 밥이 무섭구나. 물 만 밥 철중이 어깨 에 힘 팍 실리고 말이야.
철중: 갑자기 뭔 춤이냐?
회장: 요새 사업 하려면 골프는 기본, 댄스는 옵션이야. (철중 표정 살피며) 그래도 우리 동기 중에 검사는 너 하나다. 너 서울지검에 있단 얘기 듣구는 꼭 클럽 멤버로 초대하라구 난리여서 ……. 아, 승우 못 봤지? (손 끌고 가며) 난 명목상 회장이고, 이 클럽은 사실 승우가 만든 거야.
동창들에게 둘러싸인 승우에게 다가가기 위해 몇 명을 밀치며 철중을 끌고 들어가는 회장.
그 때, 승우 주변에 모여 있는 동창들과 승우의 대화가 들린다.
동창1: 한서뱅크 도움 크게 받았다, 전화 한통으로 ……. 정말 놀랐다. 신세 어떻게 갚나?
동창2: 우리랑 승우가 갔냐. 우리야 파일 바리바리 싸들구 들어가서 하루구 이틀이구 기 다려야 만나는 사람들, 승우는 전화 한 통으루 다 되지. 지난번에 니그로네 회사 인허가두, 6개월 끌다가 도산 직전에 승우가 살려줬잖아.
동창3: 그 때 죽다 살았다, 죽다가.
동창4: 여기 다 죽다 산 놈들이네. 클럽 이름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 조승우와 구사일생?!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데 과장되게 와하하하- 웃으며 동의를 표하는 동창들.
회장: 아 좀 비켜 봐라, 아저씨들. 아 좀 승우가 초대한 뉴 멤버다.
그러자 좌우로 갈라서며 길을 터주는 동창들.
회장: (주변을 보며) 됐어, 자식들아. 경계할 거 없다. 지금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영감 님, 강철중이야.
승우: (미소하며 악수 청하고) 반갑다. 많이 변했네.
회장: (승우의 마지막 말과 동시에) 하나두 안 변했지?
상반된 두 말이 동시에 나오자 뻘쭘한 회장과 승우.
회장이 눈치를 주자 주변으로 흩어지는 동창들.
회장: (재빨리 수습하며) 하긴 뭐, 안 변해봐야 나이 속이냐? 벌써 20년이나 흘렀는데.
철중: (승우를 살피듯 보며, 약간의 냉소와 더불어) 승우 전하는 안 변했는데, 뭘.
승우: (웃으며) 어, 야 너 어떻게 그 별명을 기억 하냐? 역시 검사들 머리는 다르네. 하 긴 학교 다닐 때부터 성적 좋았지.
회장 주춤.
철중의 눈치를 살피고, 승우의 눈치를 살피고.
철중: 성적 좋았던 적 한 번도 없는데.
회장: (조금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하하하, 얘가 그.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사시 준 비한다구. 학교 공부 잘 안하구 ……. 머리는 진짜 좋은데 성적은 그냥 그랬지 ……. 야, 승우 너두 너무 오래 전이라 그런가부다.
승우: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미안하다. 솔직히 같은 반 아니었던 동창들은 잘 기억 못하는데, 기억 못 한다 그러면 서운할 것 같아서 …….
회장: (민망해서 아예 자리를 뜨며) 아, 이 자식들은 진짜 올 거면 시간 맞춰 오든가.
철중: (피식 웃으며)1학년 3반, 2학년 7반, 3학년1반. (당황하는 승우를 보며) 1학년 때 난 54번 넌 57번, 2학년 땐 55번 56번, 3학년 땐 52번 59번.
잠시 철중을 보다가 큰 소리로 웃는 승우.
승우: (웃음을 수습하며) 미안, 진짜 미안하다. 강력부 검사란 말 듣구 좀 잘 보이구 싶어서 ……. 아, 미안. 민망하네. (악수 청하며) 어쨌든 반갑다.
철중: (잠시 보다가 악수를 받으며) 형님이 교통사고 당하였었다면서?
잠시의 사이.
두 사람, 서로를 날카롭게 관찰하는 시선이 오간다.
승우: (천천히 손 놓으며) 1년도 넘은 일인데 …….
철중: 1년이건 10년이건 범인은 ……. 잡아야지. 난 그거 부탁하고 싶어서 나 초대한 줄 알았는데.
대답 안하고 과일 하나를 집어 먹는 승우. 급격하게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는 얼굴이다.
그런 승우를 잠시 보는 철중.
철중: 재단 이사가 그렇게 간곡하게 수사 해달라고 할 정도면 …….가족은 눈 뒤집혀 있어야 정상 아닌가?
승우: (고개 천천히 끄덕이며) 안 효준 이사님 ……. 우리한텐 가족 이상인 분이니까 ……. (미소하며 친근한 듯 철중의 어깨를 툭 치고) 어쨌든 잘 부탁한다.
그러십니까 ……. ? 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철중.
천천히 술을 마시는 승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고 있다.
씬 28. 부장검사 김신일의 방/낮.
부장 검사 신일과 철중, 조 검사 외 몇 명의 검사가 둘러앉아있다.
검사1: 이종명이 입만 열면 됩니다.
신일: 지난 주 회의 때도 같은 말 한 거 알지?
검사1: 죄송합니다.
신일: 이종명이 애인 찾아봤어?
검사1: 잠수 탔습니다.
신일: 그쪽 찾아내는 게 빠를 테니까 집중하고. (철중 보며) PDA 파는?
철중: 기획인데요.
신일: 그래, PDA파, 기획해서 끌구 왔잖아.
철중: 명선이라구 들어보셨죠?
조 검사: 선배님!
의아한 듯 두 사람을 보는 신일.
씬 29. 껍데기집/밤.
신일과 철중이 마주 앉아있다.
신일: 조 검사가 알아볼 만큼 알아 봤다면서.
철중: 예.
신일: 근데?
철중: (혼자의 생각에 빠져서) ……. 오십년 전통 사학 재단을 ……. 다 팔아치워서 ……. 이사들이랑 ……. 불현 듯 발생한 사고랑 ……. 조 검사 말처럼요.
신일: (익숙한 일인 듯 혼자 고기 집어 먹으며 건성으로 추임새를 넣고) 그럼 ……. 그렇지 ……. 그래 …….
철중: (불현 듯 고개 들고 신일을 보며) 하게 해주십시오.
신일: 그러니까 결론은 그냥 니 느낌이 땡겨서 기획수사를 해보고 싶다는 거지?
철중: (한참 보다가) 예.
신일: 그러면 나는 니 느낌 위에다가 또 소설루 정황이랑 기획의도 같은 거 만들어 붙여 서 기안 작성해야 되는 거지.
철중: 예.
어이구 ……. 이걸 ……. 하는 느낌으로 보는 신일.
씨익- 연습한 그 미소를 짓는 철중.
신일: (고개 끄덕이며) 그래, 좋아. 뭐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 하나만 묻자. 명선 이사장 이 너 학창 시절에 꼴리게 굴던 놈 아니었더라도 이 수사 했겠냐?
눈 껌벅거리며 보는 철중. 미소가 서서히 사라진다.
그다지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듯 무심히 고기 먹는 신일.
그러다가 계속 생각에 잠겨있는 철중을 보고 멈칫.
신일: 야! 너 ……. 임마, 그럴 때는 그냥 아니었더라두 수사 했을 겁니다. 수사에 개인감정 싣지 않습니다 …….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수사합니다 ……. 이렇게 대답하구 그러는 거잖아. 그걸 그렇게 오래 생각하면 어떻게 하냐, 자식아.
철중: 아뇨 ……. 그 놈을 아는데 ……. 그놈이라면 앞에서 모범생하고 뒤에서 양아루 살고 얼마든 지 그럴 수 있는 놈이라는 거 알아서 시작하는 건데. 부장님한테 거짓말은 못 하죠.
신일: 너를 보면서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 너를 향한 내 정서가 좀 통일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줘라, 응?
씨익 웃는 철중.
그리고 신일 밥그릇에 고기 한 점을 올려놓는다. 정겨운 모습이다.
씩 웃고 먹는 신일.
신일: (금방 뱉어내며) 야, 이거 덜 익었잖아!
씬 30. 강력부 철중 집무실/낮.
철중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계장들과 수사관들.
철중: 전직 현직 이사장의 가족 사항,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가족들 소재지, 재산 보유 현황 철저히 파악해 주고.
수사관1: 예.
철중: 명선 재단 운영 자금 흐름 파악해 주시는데, 필요하면 금감원에 협조 요청 하시구요.
박 계장: 예.
철중: 안 효준 이사는?
강석신: 여행 가셨답니다.
철중: 행선지는? 휴대폰 연락 안 되나?
석신: 마음 복잡할 때 훌쩍 나가면 며칠씩 소식 끊으신답니다.
철중: 매일 체크해서 확인되는 대로 빨리 나 만나게 해주고. (가볍게 박수 치며) 자, 나중엔 시간 싸움 될 수 있으니까 초반이라고 느슨히 움직이지 마시고.
일동: 예!
사람들 사이로 바람같이 빠져 나가는 철중.
강석신: (점잖게 고개 끄덕이며) 이거 큽니다.
박 계장: 뭐가?
강석신: 검사님 공직 생활 최대 사건이 될 듯합니다.
박 계장: 아니야. 명선 조승우 이사장, 여성잡지, 인터넷, 뉴스, 토크쇼 ……. 안 나오는 데 없는 인기인에 교육부에서 표창까지 받은 사람이야.
석신: (박계장을 슥 보며) 그러니까 크죠. 죄 지을 것 같은 놈들이 짓는 죄는 거기서 거깁니다. 근데 절대 아닌 것 같은 데서 터지는 게 크죠. 제 느낌입니다.
박 계장: (벌컥 화내며) 검사는 감으루 움직이구 수사관은 느낌으루 움직이구, 여기가 검찰청이야, 점집이야?
쾅 나가는 박 계장.
석신: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섬세하게 감이 좋은 검찰청 하면 되지 왜 화를 내구 그러지?
씬 31. 몽타주.
승우의 집안 족보를 슬라이드 화면으로 띄워놓고 브리핑하는 계장1.
승우가 병원에서 나오는 모습, 파티 장에서 중년들과 만나는 모습, 장학재단 사진 등 다양한 사진을 회의 테이블에 펼쳐 놓고 설명하고 듣는 철중과 강력부 식구들.
굉장한 분량의 서류철을 쌓아 놓고 하나씩 검토하는 철중과 계장들.
씬 32. 서울지검 화장실 (저녁)
정신없이 세수를 하는 철중. 티셔츠 차림이다.
잠을 쫓는 세수인 듯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나가려는 철중.
그 때 들어오는 조 검사와 마주친다.
조 검사: 어? 선배님, 아직 그렇게 계세요? (시계 보며) 출발해야 되는데, 양복 갖다 놓은 거 있으세요?
철중: 뭐가?
조 검사: 홈커밍데이요.
눈만 껌벅이는 철중.
조 검사: 아, 왜 온갖 걸 다 기억하시면서 이런 모임 약속은 기억하시는 게 없어요, 도대체.
철중: 관심 없는 건 지워져. (나가며) 나 안 간다. 말씀.
조 검사: (잡으며) 안돼요. 부장님이 모시던 강력부 부장님들 오신다구, 해외 출장, 부모님 초상 외에는 전원 집합이랬어요.
철중: 나 지금 양복도 없는데.
씬 33. 고기 집/밤.
수십 명의 전 현직 검사들이 소박한 고기 집에 둘러앉아있다.
꽤 작은 양복을 억지로 껴입고 불편한 얼굴로 앉아있는 철중. 고기 하나를 집으려 해도 불편한 모습이다.
나이 든 전직 검사들이 인자한 표정으로 후배들에게 술잔을 권하는 분위기.
전직1: 여러 가지로 나아졌다고 하지만 결국 수사는 사람이 하는 거니까 힘 드는 건 마찬 가지겠지.
현직1: 예.
전직2: 사이버 수사대라는 거 도움은 좀 받나?
현직2: 그럼요.
전직3: 술을 좀 줄이면 괜찮은데 ……. 이게 또 한 달에 스무날 야근하면서 술 힘 안 빌리구 못 버티거든, 우리두 다 해봐서 알어.
현직3: 저희 술은 다 선배님들께 배웠습니다.
전직4: 마누라한테 잘해, 은퇴하는 순간부터. 밥 빌어먹는 게 큰일이야.
현직4: 변호사 사무실 개업하시면서 칙사 대접 받으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다가 신일에게 술 따라주는 나이 든 전직1.
전직1: (무심한 듯) 명선 ……. 재단이라고 아나?
신일: (술잔 받다가 멈칫) 예.
힐끗 철중 보는 신일.
동시에 철중도 신일을 돌아본다.
그 시선을 따라 전직1도 시선을 옮기고.
철중의 표정이 반사적으로 굳어지는데 푸근한 미소가 번지는 전직1의 얼굴.
전직1: (술병을 들어 보이며) 한 잔 받겠나?
술병 너머로 보이는 전직1의 얼굴이 음흉한 듯 인자한 듯 애매하다.
씬 34. 화장실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선 철중과 신일.
철중: 81년도 지진회 사건, 83년도 길성 나이트 난투 25인 전원 체포. 전설의 백검사 ……. 맞죠?
신일: 맞어.
뜨아한 표정이 되는 철중.
신일: (바지 추스르며 힐끗 보고 피식 웃음) 그래서? 쫄았냐?
철중: 제가요? 왜요?
신일: 허구헌 날 치즈- 하이- 하던 놈이 똥 씹은 얼굴을 풀지를 못해.
철중: 남의 돈 뺏은 놈, 남의 살에 연장 박은 놈 ……. 만날 그런 놈들만 보니까 멀쩡한 사람 들한테두 그런 놈들 대하듯 할까봐 연습한 거지. 누가 ……. 저런 …….
신일: 저런 뭐?
철중: 저런 …….
신일: (피식 피식 웃으며) 저런 위대한 선배님?
철중: 아, 몰라요. 암튼 내 살인 미소는 구린 놈들 앞에선 절대 안 나오니까.
신일: (살인 미소란 표현에 기가 막혀서) 아무리 바빠도 거울은 좀 봐라. (철중 어깨를 툭툭 짚으며) 이제 겨우 자료 모으기 시작한 사건인데 저 정도 거물이 일부러 아는 체 했다는 건 제대로 짚었다는 증거니까, 똥 그만 씹고 얼굴 풀어.
철중, 신일을 보고 씩 웃고.
신일도 씩 웃는다.
그리고 신일 먼저 나가는데 손을 씻다가 신일 손을 씻지 않은 것이 생각난 듯 소변기 한 번 보고 자기 어깨 보고 찝찝한 표정이 되는 철중.
씬 35. 서울지검 주차장/낮.
계단 올라가다가 바라바라 바라방- 요란한 크락션 소리에 돌아보는 철중.
석신이 엄청나게 화려한 오토바이를 폼 나게 몰고 들어와 멋지게 선다.
그냥 저절로 피식 웃는 철중.
석신: (오토바이에서 내리면서 점잖게) 부러운 시선에 머물지 마시고 과감하게 라이더의 세계로 들어오시죠.
철중: (웃으며) 안 효준 이사는?
석신: 지금 그 댁에서 오는 길인데, 아직 소식 없으시데요.
철중: 얼마 됐지?
석신: 일주일이요.
느낌이 좋지 않은 표정이 되는 철중.
씬 36. 검사 집무실/낮.
굳은 얼굴로 앉아 책상을 톡톡 두드리는 철중.
그 볼펜 아래 놓인 종이 보이면 명선
조승우- 안 효준- 조승준
교통사고- 재단 매각 ……. 일주일 연락 두절 …….
등의 메모가 적혀있다.
노크 소리 들리고 들어오는 박 계장
철중: (일어서며) 명선 재단 수색 영장 나왔죠?
박 계장: (난감한 표정으로) 안 나왔습니다.
상의를 입으려다가 멈칫하는 철중.
박 계장 손에 들린 기각 영장을 뺏듯이 받아보는 철중.
씬 37. 검찰청 복도/낮.
거친 걸음으로 마구 걸어가는 철중.
그 때 맞은편에서 박차장이 걸어오고.
철중: 차장님.
박 차장: 어, 그래.
철중: 수색 영장.
박 차장: 어, 그거 내가 안 내줬지.
철중: 그거.
박 차장: 나쁜 놈들 잡어, 나쁜 놈들. 우리 강력부가 그렇게 한가한가? 이미 벌어진 강력 범죄 수사도 다 감당 못하는데도 뺑소니 교통사고에 검사가 매달려서. 이게 무슨 짓이야?
철중: 뺑소니 사고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닙니다.
박 차장: 그러면? 명선에 무슨 악감정 있어서 이러는 건가?
철중: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박 차장: 몰라 물어?
사람들 하나 둘 방에서 나오거나 모여들기 시작하고.
철중: 차장님이야 말로 이러시는 거 명선이랑 무슨 좋은 관계 시길래.
박 차장: 잘 한다 잘 한다 하니까 어디까지 기어올라?!
철중: 차장님!
신일: (v. o) 강철중 검사!
돌아보면 신일이 두 사람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걸어온다.
신일이 주변 사람들 돌아보자 흩어지는 구경꾼들.
신일: (박차장 보고) 죄송합니다, 차장님.
철중: 부장님.
신일: 방으로 돌아가지, 강 검사.
뭔가 한 마디 더 하려다가 돌아서서 가는 철중.
씬 38. 철중의 집무실/낮.
거칠게 들어와 털썩 앉는 철중.
씬 39. 박차장의 방(낮)
박차장이 들어오고 뒤따라 들어오는 신일.
박 차장: (소파로 앉으며) 어 ……. 정신없는 놈, 김 부장이 왜 저 놈 때문에 골치 썩는 지 이제 알겠네. 명색이 검사가 저렇게 천지분간을 못해서 어떻게 하나.
신일: (맞은편에 앉으며) 범죄다 싶은 데 꽂히면 좌우를 못 보니까 검사하는 겁니다.
박 차장: 뭐 ……. ?
신일: 제 돈으로 증인들, 참고인들 밥 사줘가면서, 차비 대줘가면서 수사하구, 나쁜 놈 잡는 일인데 목숨 걸라 그러면 …….그것도 내놓을 놈입니다. 그래서 골치 썩는 겁니다. 아까운 놈, 지 명줄 줄여가면서 검사질 할까봐.
박 차장: 자네 지금. 부장이 그 모양이니까 부서 검사가 저 꼴이지?! 평검사가 날뛰면 부장 이 잡아줘야 할 거 아닌가?!
신일: 부장은 ……. 평검사가 검찰 안팎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끼지 않도록, 앞만 보고 똑 바로 수사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본연의 임무이자 역할이라고 배웠습니다.
박 차장: 말 ……. 가려서 하는 건 안 배웠나?
신일: 사람 눈치 보고 말 가려서 하면 검사가 아니라 ……. 줄섰다가 정년퇴직하는 밥버러지 되는 거 아닙니까?
그 때, 여비서가 들어와 박차장과 신일에게 메모를 전달한다.
메모 펴 보는 박 차장. 의아한 얼굴.
씬 40. 서울지검 대강당 앞 복도/낮.
걸어오는 조 검사, 고개를 갸웃갸웃 거린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오는 다른 검사1을 만난다.
조 검사: 어, 무슨 일인데 이리로 나오라 그래? 사무실루 안 오구?
검사1: 무슨 소리야?
조 검사: 할 말 있다고 대강당으루 오라며? 메신저로.
그 때, 뒤에서 뛰어오는 검사2.
검사2: (겁먹은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박선배. 그거 사실이에요?
검사1: 뭐가?
검사2: 다 들통 났으니까 빨리 피해야 된다고.
검사1: 얜 또 뭐야?
그 때, 웅성거리며 대여섯 명의 검사들이 더 몰려온다.
대강당 입구에 서서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박차장과 신일.
그 때, 강당 안쪽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려온다.
철중: (E)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의아하게 보던 검사들 강당 문을 열면, 조명이 꺼진 강당 안, 전면 스크린에 뭔가가 투사되고 있다.
씬 41. 대강당 안
부장 급 몇 명을 포함, 수 십 명의 검사들이 앉아있는 가운데 들어와 앉는 박차장과 신일. 어색한 듯 조금 떨어진 자리를 잡는다.
전면에 명선의 사진이 뜨고 그 위로 정리된 사건일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무대 위로 나오는 철중.
철중: 명선의 전임 이사장 조 인국씨가 1년 전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한 후, 장남 조승준씨 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승계 후 2주 만에 사고를 당해 1년째 혼수상태입니다. 명선 재단은 차남 조승우씨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화면에 건물 사진이 떠오르고.
철중: 그 후 1년 간 50년 전통의 명선은 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기관을 차례로 매 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사립 유치원 7개, 사립 초등학교 다섯 개, 사립 중 고등학교 3개와 예술 대학 2개, 골프장 2개, 체육관 1개와 병원 1개입니다.
몇몇 중년들과 승우가 파티장이나 세미나 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스크린에 투사된다.
철중: 이렇게 형성된 거액의 자금은 해외에 골프 학교 건립을 위해 빠져 나갔는데, 현재 까지 해외로 유출된 금액은 확인된 것만 약 5천 억 원 입니다. 분명 개인이 해외로 내보낼 수 없는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조승우씨는 다양한 인맥을 활용하여 해외 골프 학교 건립이라는 명목으로 …….
그 때, 어두운 객석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지금 무슨 짓 하는 거야?! 강 철중, 너 지금 니가 표적 수사하고 있다고 광고 하냐?!”
객석 중간에 앉아있는 부장급 검사들.
어째야 하나 눈치보고 있는데.
신일: (철중을 쏘아보며) 저 정도 개 짖는 소리에 중단할 거면서 시작했나?!
보일 듯 말 듯 미소하는 철중.
철중: 골프 학교 건립을 위한 골프장 매입 가계약은, 확인 결과 조승우씨 개인 명의로 이뤄졌습니다. 조승우씨가 골프장을 학교 시설로 이용하지 않고 개인 사업 목적으로 이용한다 해도 아무런 법적 제한 장치가 없습니다.
불이 밝혀진다.
철중: 결국 명문 사학 재단의 재산이 개인 재산으로 둔갑되어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일에 교육계, 언론, 정계가 힘을 모아 도와준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명선이 있기까지 평생을 바쳐온 이사 한 사람이 이 문제를 수사해 달라고 검찰청에 찾아왔고 ……. 그 다음날 여행을 떠났다는데 오늘로 열흘 째 소식이 없습니다.
검사들의 모습이 철중의 POV로 천천히 보인다.
철중: 그런데 ……. 이 수사에 대해 참 말이 많습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며) 전 이렇게 구린내 풀풀 풍기는 사건, (스크린에 떠있는 승우 사진을 힐끗 돌아보며) 이런 놈 수사 못한다면, 검사질도 계속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쪽팔려서요.
철중이 돌아보고 객석은 잠잠하다.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철중.
씬 42. 부장 검사실 (저녁)
문 열고 들어오는 신일.
소파에 앉아있는 철중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쩐지 긴장하고 있는 듯하다
신일: (걸어 들어가며) 그렇게 좌불안석할 거, 뭣 땜에 일을 크게 벌이냐? 왜, 소집하는 김에 총장님도 한 번 모시지? 쪽팔려? 너 때문에 내가.
하면서 앞으로 돌아 들어가면 철중, 앉아서 졸고 있다 ……. 기보다 아예 자고 있다.
하 ……. 어이없는 신일.
(시간 경과)
아예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철중.
담요도 덮여있다.
돌아눕다가 소파 등받이에 코가 막혀 숨을 쉬기 어려워진 철중. 그제야 깬다.
깨고 일어나 두리번거리면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신일.
신일: (서류에 눈 떼지 않은 채로) 죄 짓는 놈들은 돌아가면서 죄 짓고, 휴식하고 또 나오고 하지만 우리는 뺑이 치면서 30년이다. (철중 보고) 잠자는 거, 먹는 거, 싸는 거 무시하지 마라. 안 그러면 체포 영장 손에 쥔 채로 응급실 실려 가는 수 있으니까.
피식 웃는 철중.
신일: 웃기는 ……. (일어서며) 제대로 할 거야?
계속 웃으며 듣다가 멈칫하며 신일 돌아보는 철중.
신일: (소파로 와서 앉으며) 지검장님이 그러시더라. 일선 검사 쪽팔리게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씩 웃는 철중.
씬 43. 강력부 사무실/낮.
앞에 나왔던 골프장 매입자 김 사장이 불안한 시선을 이러 저리 굴리며 앉아있다.
조서를 꾸미던 강석신, 책상이 흔들려 글씨가 써지지를 않자 문득 고개 들어 본다.
김 사장이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다.
강석신: (웃으며) 사장님, 뭐 죄 짓구 오신 것두 아니구 그냥 참고인으루 오신 거니까 너 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김 사장: (억지로 웃으며) 긴장은요 ……. 뭐 ……. 제가 ……. 뭐 ……. 잘못한 게 있겠습니까 ……. 뭐 폭행당한 일 이 있겠습니까?
강석신: (예리하게) 폭행이요?
김 사장: (과장되게 웃으며) 하하하, 아니 뭐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죠.
옆 책상의 박 계장이 일어나 다가온다.
박 계장: 마지막으루 한 번 더 여쭙겠습니다. 골프장 매입하시면서 안 효준 이사와 조승우 이사장 간에 다툼이나 이견이 있었다거나 그런 인상이 없으셨다는 거죠?
김 사장: (역시 조금 과장된 반응으로) 아휴- 그럼요, 다 합법적으로 확인하구, 본인한테 도 장 받구, 모든 절차가 합법적이고 …….명선 이사장님이 아주 예의가 바르구. 뭐. 착하시 더
러져 있다.
성현이 들어와 거실 사이를 가로지르자 짐들 사이로 먼지가 조금 피어오른다.
이제 막 꺼내서 연결한 듯한 오디오(Bose CD player)로 다가가 "Secret Garden"의 CD를 꺼내 음악을 튼다.
후~ 하고 잠시 벽에 기대앉아 있는 성현. "Secret Garden"의 음악이 고요하게 흐른다.
멍하니 있다가 다시 일어나 쌓여진 박스들을 뒤지며 무엇인가를 찾는 성현, 박스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낸다.
다시 박스들의 안쪽을 여기저기 뒤지며 병따개를 찾지만 보이지 않자, 주변에 널려 있는 연장을 하나 집어 든다.
푹! 소리와 함께…….
C.U.되는 그린 색 병 속의 자줏빛 와인.
병 속으로 밀려들어온 병마개가 둥둥 떠 있다.
성현, 잠시 병 안을 바라보다가 병째로 와인을 마신다.
씬 4. INT. 녹음실 - 1999년 - DAY (5시경)
물 마시는 투명한 물병의 클로즈업 너머 보이는 은주의 모습이 물결친다.
물병을 내려놓는 은주.
부쓰 안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만화영화를 녹음하고 있는 성우들이 있다.
양쪽에 주인공 역을 맡은 듯한 성우1과 2가 오래된 습관인 듯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더빙을 시작한다. 그 외의 성우들은 뒤에 앉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다.
나머지 한 개의 마이크에는 대여섯 명의 성우들이 몰려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긴장된 표정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 뒤에 서 있는 은주. 기웃거리며 뒤꿈치를 들고 긴장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본다.
자신의 순서가 다가오자 마이크에 가까이 가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겨우 마이크 앞에 가는데 성공하지만 키 큰 사람이 맞춰놓은 듯 은주의 키에는 턱없이 높은 곳에 있다.
은주: 도망쳐!
어렵게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지만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추는 은주.
PD (O.S.마이크 소리): 컷!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르는 은주. 은주에게 눈총을 주는 다른 성우들. 죄송하다고 연거푸 인사를 하며 뒤로 물러나는 은주. 다른 사람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한다.
부쓰 바깥의 PD와 오퍼레이터의 시선이 곱지 앉다.
PD: (마이크소리, 딱딱한 목소리로) 다시 가겠습니다.
PD가 싸인을 하자 다시 긴장하여 기압을 넣는 폼으로 폴짝 뛰어서,
은주: 도망쳐!
씬 5. EXT. 공사현장 - 1997년 - EVENING
해질 녘 푸른 느낌의 황량한 흙 길.
끝없이 펼쳐진 길은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보이고 저 멀리 상판 공사 중인 서해대교가 서있다.
거대한 덤프트럭이 마후라의 뜨거운 열기를 분출하며 지나간 뒤로 성현의 모습이 보인다.
측량작업을 하는 성현.
작업이 끝난 듯 인부들이 안전모를 벗고 사무실 쪽으로 들어간다.
인부들이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며 한마디씩 던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인부1: (성현을 보며) 안 들어가요?
성현: (측량도구들을 점검하며) 예. 좀 있다가요.
인부1: 크리스마슨데 대충 정리하고 빨리 들어가요.
성현, 마치 몰랐던 사람처럼 조금 놀라다가,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한다.
인부2: 허허 거……. 젊은 사람이…….
인부들이 가자 썰렁하게 서있는 철골 구조물 사이, 성현이 혼자 서 있다.
사라져 가는 인부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성현.
눈이라도 내릴 것처럼 흐린 하늘에 어스름이 내려앉아 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건축자재들.
바람에 팔락거리는 붉은 끈(셀로판 접착테이프 류)을 바라보는 성현
성현, 철골 구조물을 한 번 쓱 올려다보더니, 붉은 끈으로 매듭을 짓기 시작.
썰렁한 철골 구조물에 묶어 보는 성현. 예쁜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다는 리본 같다.
뒤돌아 멀어져 가는 성현.
바람에 흔들리는 리본 끝자락 너머로 공사장의 불빛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눈발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한다.
씬 6. EXT. 거리 - 1997년 - EVENING (7시경)
운전을 하며 집으로 가고 있는 성현.
저녁 무렵 차창 밖으로 크리스마스 거리 모습이 보인다.
가로등과 거리의 카페에 장식된 트리 장식들.
어스름의 푸른빛과 대조되는 따뜻한 빛깔들이다.
바람이 찬 듯 옷깃을 여미며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구세군의 모습.
다소 차분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 주변의 차량들도 한적하다.
차 유리창에 눈발이 조금씩 흩날린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한다.
씬 7. EXT. 거리 -1999년 - EVENING(위 씬과 동일시간)
씬 6에서 이어져 점점 커지는 캐럴 송.
거리는 캐럴의 분위기처럼, 온통 트리와 크리스마스장식들로 가득하다.
함박눈이 내리고 있고 사람들이 눈을 뭉쳐 놀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흥겹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들뜬 모습으로 지나쳐 가는 흥겨운 분위기.
그 사이 상기된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걷고 있는 은주.
기분 좋게 눈발을 맞는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헤쳐 간다.
한 쪽에서 술 취한 듯 한 무리들이 "징글벨, 징글벨" 하며 고래고래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은주, 그 쪽을 돌아보며 싱긋 웃는다.
씬 8. EXT. 포엠 앞 -1997년 - NIGHT
완전히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멀리 한 두 개의 불빛들. 어렴풋이 보이는 포엠의 모습.
성현의 차가 집 앞에 선다. 눈은 이미 그쳐 있다.
차에서 내려 들어가려다가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드는 듯, 우체통을 열자 우편물이 들어있다.
봉투를 열어보면 예쁜 카드가 나온다. 카드를 보는 성현.
카메라는 서서히 전진해서 카드의 앞면을 꽉 채우면.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눈 덮인 산 속의 조그만 집 한 채.
그리고 전경의 눈썰매 산타의 모습.
산타의 옆에 있는 예쁜 별이 반짝하는 느낌이 있다.
씬 9. INT. POEM 거실 - 1997년 - NIGHT
예쁜 별이 반짝거린 위치에서 전등이 탈칵하고 켜지며, 성현이 들어온다.
불이 켜지면 그린 톤의 실내조명들이 포엠의 분위기를 확연히 드러낸다.
차가우면서도 가라앉은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밝혀진 실내조명으로 형성되고, 스탠드 불빛은 따뜻한 느낌도 있다.
많이 정리된 포엠의 실내. 아주 세련된 느낌의 공간이다.
건축 관련 포스터와 사진들, Secret Garden 공연 내한 공연 포스터 등등이 벽에 붙어 있다.
카드를 무심히 소파 위에 던지는 성현.
오디오로 다가가 ON 버튼을 눌러 Secret Garden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INSERT
카드의 표지.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복된 새해 맞으세요.'가 예쁜 글씨로 쓰여있다.
은주 소리>: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복된 새해 맞으세요.
편한 옷차림에 샤워라도 한 듯 머리가 살짝 젖은 성현이 나와 부엌으로 향한다.
거실의 차가운 느낌에 비해서는 따뜻하고 밝은 부엌 분위기.
은주소리>: 전 당신이 이사 오기 전 이 집에 살던 사람이에요.
냉장고 문을 여는 성현. 야채서랍에서 잘 씻은 싱싱한 샐러리를 하나 쓱~ 꺼낸다.
마요네즈를 마치 치약처럼 길게 뿌리고 아작아작 씹으며 싱크대 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무슨 요리를 할까 고민을 하는 듯…….
은주소리>: 사실은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남겨요.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는 성현.
양념 통, Fancy한 Olive Oil 병, 뒤집게, 그리고 접시를 마치 정렬하듯 가지런히 놓는다.
물건들을 정렬하면서 기분이 좋은 듯,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아 보는 성현.
프라이팬 기름 위에 계란을 떨어뜨려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은주소리>: 기다리고 있는 연락이 있거든요. 혹시라도 제 앞으로 편지가 오면 아래의 주소로 보내주시겠어요? 꼭 부탁드릴게요.
음~ 하고 음미하듯 눈을 감고 안마하는 듯 한 성현의 손놀림. 주무르듯 쌀을 씻는 성현의 손.
은주소리>: 1999년 12월 22일.
포엠에서의 행운을 기원하며 - 김은주.
눈을 살짝 뜨며 "99년?" 갸우뚱하더니 성현 특유의 표정.
소파 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밥솥스위치를 올리고…….
Secret Garden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면서 가스레인지 앞에 서있는 성현의 뒷모습.
리듬에 맞추듯 성현의 몸이 흔들거린다. 심하지 않게…….
순간 휙~ 하늘 높이 올라가는 계란 프라이.
팔을 뒤로 돌려 되받아내는 성현. 만족스러운 표정이 비친다.
씬 10. EXT. 포엠 앞 - 1997년 - NIGHT
은주소리>: (다시)1999년 12월 22일.
포엠에서의 행운을 기원하며 - 김은주.
추신, 현관 옆에 강아지발자국은 요…….
제가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건데요. 벼르다가 결국 못 지우고 떠나네요. 자꾸 보면 익숙해지긴 해요.
포엠의 현관 밖으로 나간 카메라. 현관 앞의 하얀 보도블록과 마당의 모습, 그리고 집 앞의 빨간 우편함이 보이는 포엠의 전경.
크리스마스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한 모습.
씬 11. INT. 은주집 - 1999년 - NIGHT
카메라 복도를 track - in 하여 전진하는 카메라.
카메라 다가감에 따라 전화벨 소리가 뚜렷이 들리기 시작한다.
시끄럽게 전화벨이 울리고 있는 은주집의 실내. 어두움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실내의 모습.
은주, 후다닥 문을 열고 들어와 손에 든 것들을 던지듯 바닥에 놓고 재빨리 전화기를 든다.
은주: 여보세요? (약간 실망한 듯한)
은주, 더듬더듬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전원을 켜면 비로소 환하게 밝아지는 실내.
전화의 주인공이 정숙이인 것을 알고 자세가 풀어져 버리면서, 손에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걸친 겉옷을 벗는다.
실내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조명 상태. 경찰: 행방불명된 사람 말이다.
광호: 집나가서 안 들어오는 사람은 한명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