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철 화천군수가 이달말 12년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3선에 성공하며 `산천어 군수'로 이름을 남기게 된 정갑철 군수의 12년을 돌아봤다.
산천어축제 연 600억 경제효과 6차산업 성장기반 탄탄히 다져 덩치 커진 지역경제 분배 과제
탄피 녹여 만든 평화의 종 설치 전세계 각국·NGO 열렬한 지지 전방지역을 평화의 성지 만들어
■인구 2만5,000명의 꿈, 100만명을 낚아 올리다=정갑철 군수의 지난 12년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화천 산천어축제다. 축제 개최 이전인 2002년까지 화천은 1차 산업 33%, 2차 산업 2%, 3차 산업 65%의 기형적 산업구조로 되어 있었다. 온갖 규제에 매여 있으면서 총 면적 909㎢ 가운데 산과 물이 91%를 차지할 정도로 산업기반은 미비했다.
“개발에 한계가 있다면 잘 보존된 자연에서 해답을 찾자!” 정갑철 군수가 취임 초기에 내건 슬로건이었다. 눈 덮인 산, 꽁꽁 언 계곡, 청정한 자연에만 사는 산천어가 선물처럼 화천에 찾아왔다. 한겨울 계곡 얼음판 위에서의 물고기 낚시를 주제로 한 산천어축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003년 제1회 산천어축제는 5만명만 와도 성공이라고 예상했지만, 무려 22만명이 방문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제2회 축제 50만명에 이어 제4회 축제때는 기어이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 얼음판 가득한 사람들의 광경은 해외 언론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2012년 역대 최대인 144만명에 이어 지난해에는 138만명이 화천을 찾아 `8년 연속 관광객 100만명 이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써내려 갔다. 정갑철 군수는 여기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하얼빈 빙등제'를 통째로 옮겨오는 등 발상의 전환으로 산천어축제를 단순한 얼음낚시 이벤트에서 겨울철 종합문화예술축제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위기를 넘어 도약으로=잘나가던 산천어축제는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이어진 구제역 사태로 치명타를 맞았다. 결국 정갑철 군수는 눈물을 흘리며 축제 취소를 결정했다. 축제를 위해 준비한 농산물 10억원, 산천어 계약물량 90여톤, 축제 준비비용 30억원을 비롯한 주민들의 땀과 노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화천군은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 작가를 통해 이틀간 2억원 상당의 특산물을 팔아치우기 시작해 각급 기관단체를 중심으로 13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미 확보한 산천어로는 루어낚시대회를 열고 산천어 돈가스와 소시지, 어묵 등을 만들어 팔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화천군은 축제를 열지 못했음에도 그해 정부로부터 4년 연속 최우수축제 지정을 받았고, 2011년 세계적인 여행 안내서인 `론리플래닛'에 겨울철 7대 불가사의로 선정돼 CNN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마침내 산천어축제는 올해 오랜 숙원이던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성장했다.
■덩치 커진 지역경제 … 이익의 지역환원은 과제=산천어축제의 성공은 지역경제의 규모화를 불러왔다. 매년 축제 종료 후 발간되는 강원발전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직접 경제효과의 경우 2003년 23억원, 2004년 94억원, 2005년 361억원, 2006년 421억원, 2007년 549억원을 기록한 이후 매년 500억~6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투입비용은 지역농산물 수매 10억원, 산천어 계약물량 10억원, 축제준비 설비비용 30억원 등 약 50억원 남짓이다. 하지만 이 중 30억원이 입장료 수입으로 들어오고 20억원가량은 지역상품권으로 소비돼 상인들에게 직접 현금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말 도가 발표한 2011년 시·군별 지역내총생산(GRDP) 분석 결과에 따르면 화천은 도내 1인당 GRDP 순위에서 카지노가 있는 정선과 접경지 인제에 이어 3,046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다. 산천어축제 이전 연평균 6%이던 GRDP 성장률은 축제 이후 15%에 육박하고 있다. 연간 30억원에 달하는 지역상품권 규모는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화천의 축제산업은 이제 `1차+2차+3차 산업' 개념인 6차 산업을 잉태하고 있다.
화천경제는 파이는 커졌지만, 필연적인 분배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천군이 민간에 지원하는 1인당 사회보장기금, 1인당 교육기금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꼬집었다. 지역의 경제계 일각에서도 커진 규모에 비해 손에 쥐는 것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지역경제의 막힌 혈관을 뚫어 재화의 피드백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는 이제 민선 6기 집행부의 몫으로 넘겨졌다.
■전쟁의 상징에서 평화의 성지로=지난 시절 화천은 평화보다는 전쟁의 아픔, 생명보다는 전사자와 죽음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2005년부터 정갑철 군수는 다소 엉뚱(?)하게 전 세계 분쟁지역 탄피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29개국 분쟁현장 탄피와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던 탄피를 녹여 너비 2.7m, 높이 4.7m, 무게 37.5톤에 달하는 `세계평화의 종'을 탄생시켰다. 이 종에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발포했던 탄피를 비롯해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분쟁 현장의 탄피, 필리핀에서 온 권총 탄피 등 다양한 사연이 담긴 탄피가 녹아들었다. 이들 국가와 NGO들은 화천군의 참신한 발상에 기꺼이 아픈 과거의 편린을 내줬다. 고르바초프를 비롯해 아웅산 수치,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핸드프린팅도 이곳에 모였다.
지난 6일 화천에는 또 다른 종이 하나 들어섰다. 세계평화의 종에서 영감을 얻은 다그 함마르셸드(제2대 UN 사무총장,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사업재단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의 `노벨 평화의 종'을 화천에 기증했다. 더 이상 화천은 전쟁과 죽음의 땅으로 불리지 않는다. 평화를 상징하는 `성지'이자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평화의지를 표현하는 `이미지 마크'로 자리매김했다.
화천=김준동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