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나야기 ;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투쟁으로 전쟁 전 창가학회가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언제쯤입니까?
쓰지 ; 1943년 경이겠지요. 이 해의 5월 2일 전전 마지막 총회에서는 회원수가 3,000명이라고 발표되어 있습니다.
이즈미 ; 1941년 12월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됩니다. 당연히 당국의 탄압도 거세졌습니다. 어둡고 음험한 권력이 준동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끔찍합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기관지 <가치창조>도 폐간되었습니다. - 1942년 5월. 이후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체포 투옥(1943년 7월)으로 박해가 나날이 심해졌습니다.
이즈미 ; 그 무렵 종문은 1941년 8월 어서의 ‘발간금지’를 결정. 게다가 다음 9월에 당치도 않게 어서의 어문 중 14곳을 삭제하였습니다. 모두가 국가권력에 영합, 아니 굴복한 것입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종문은 “니치렌은 일염부제의 제일의 성인이로다.”라는 어문까지 삭제하였습니다. 대성인이 말법의 어본불이라는 것을 선언하신 금언입니다. 대서인을 부정하는 행위이니다. 이 사실은 영원히 지울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 사죄해야 합니다!
이즈미 ; 이 얼간이 중들이여! 질투에 미친 종문의 가련함이여! 근본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성인을 부정하였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미치광이의 종문이었던가.
사토 ; 그 하나로서 ‘권력영합’의 결정적인 사건이 저 ‘신찰문제’이군요.
쓰지 ; 그렇습니다. 1943년 6월 종문은 신찰을 받기로 정하고 대석사 대방서원에 신찰을 모셨습니다.
아키야 ; 총본산은 전대미문의 대방법. ‘여기서 보았다!’이군요.
이즈미 ; 그 뿐만 아니라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을 본산에 불러 당시의 법주 닛쿄으 입회 아래 학회도 신찰을 받도록 명령했습니다. 이 때 마키구치 선생님이 “승낙할 수 없습니다. 신찰은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고 엄연히 거절하신 것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아키야 ; 그것에 대해서는 최근 새로운 사실(史實)이 판명되었습니다. 일단 하산하신 마키구치 선생님은 그 직후 재차 본산에 가셨습니다. 거듭하여 엄하게 종문을 규탄하기 위해서입니다. 체포되기 불과 일주일 전의 일입니다.
쓰지 ; 그러나 종문은 그 마키구치 선생님을 ‘등산 정지’ ‘신도 제명’ 처분을 내렸습니다. 보신을 우해 적성(赤誠)의 신도를 잘라버렸습니다. 종문의 무자비한 잔악함을 지금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아키야 ;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정말 무서운 종문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질투 덩어리
이즈미 ; 애당초 마키구치 선생님도 도다 선생님도 종문을 전혀 신용하지 않았습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늘 “승려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이즈미 ; 체포 후, 검사의 심문에도 마키구치 선생님은 “나는 승적을 갖는 일은 싫습니다.” “창가교육학회는 하나의 훌륭한 재가 신앙단체.” 등이라고 명쾌하게 선언하시고 계십니다.
쓰지 : 그래도 학회는 전후에도 거액의 공양을 하여 외호해 왔습니다. 필연적으로 학회라고 하는 화합승단이 대성인에 직결하여 독립해 가는 것은 이 당시의 경과를 보아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식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도다 선생님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절복도 하지 않으면서 절복하는 신자를 트집잡는 주은 더러운 중이다.” “존경받을 자격도 없는 주제에 대성인의 소맷자락에 숨어 존경받고 싶어하는 중은 여우같은 중이다.” “보시만 탐내는 중은 거지중이다.” 그야말로 엄하셨습니다.
쓰지 ; 도다 선생님은 저 닛켄 등을 가장 싫어하고 신용하지 않았습니다. “중의 근성, 중의 근성”이라고 엄하게 질택하였습니다.
이즈미 ; 그렇지요. 학회는 정의 때문에 중들로부터 수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 점을 대단히 고심하시어 승속화합의 모범이 되는 대도를 지켜가려고 늘 괴로워하셨습니다. 최대한 승려를 소중히 하는 방향으로 하셨습니다. 그 증거로서 학회의 회관은 짓지 않아도 전부 종문이 말하는 대로 몇 백 개의 절을 지었습니다. 이 사실은 유명하며 하나의 증거입니다.
아키야 ; 참으로 닛타쓰 법주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종문도 흥륭하였습니다. 이제는 광선유포의 모습이 이루어졌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쓰지 ; 이케다 선생님이 얼마나 종문을 철저히 지켜왔는가. 중들의 지나친 횡포에 우리들이 참는 것도 한계에 달했을 때도 선생님은 단 한 사람 학회원을 위해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참으로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아키야 ;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닛켄이 법주가 되었을 때도 가장 닛켄을 지킨 사람은 이케다 선생님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여하튼 어본존은 틀림이 없으며 우리들은 도다 선생님의 외호정신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시며 지키고 지켰습니다. 당시 몇 사람의 측근의 중은 “이 은혜는 일생 잊지 않겠습니다.”고 말한 것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닛켄은 질투덩어리로 자기가 최우선입니다. 자비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며 세간의 상식도 모릅니다. 참으로 바보 위에 바고가 달라붙는 것처럼 약아빠진 자입니다.
‘거짓 상승’으로 법주 자리를 찬탈
사토 ; 닛켄은 대어본존 부정문제로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당치도 않게 본산의 대어본존을 ‘가짜’라고 단언하였습니다. 더욱이 닛켄에게는 ‘상승이 없었다.’는 의혹이 종문 내에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그 결정적인 증거가 ‘가와베 메모’입니다.
이즈미 ; 그렇습니다. 이번 발각된 가와베 메모에는 1978년 2월 닛켄이 닛타쓰 법주를 철저하게 비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G(예하, 즉 닛타쓰 법주를 가리킴)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인재 등용, 질서 회복 등 앞으로 종문의 모든 일은 G로서는 불가능하다.” 등의 발언이 명확히 남아 있습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닛타쓰 법주를 발길질한 자입니다. 닛타쓰 법주가 닛켄에게 상승할 리가 없습니다. 이유도 없습니다.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종문의 중들은 닛켄이 무서워 겉으로는 잘 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대혼란입니다.
사토 ; 게다가 닛켄이 ‘상승을 받았다.’고 하는 1개월 후에도 닛타쓰 법주를 입이 더러울 정도로 욕을 했다고 합니다. 본산을 떠난 개혁동맹승려들의 진실한 증언입니다. 도저히 닛타쓰 법주로부터 상승을 받은 차기 법주의 태도도 아니고 행동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즈미 ; 종문은 뭐라고 말하면 상승, 상승이라고 금과옥조처럼 말해 왔지만,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컨대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분명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완전히 적당주의입니다.
쓰지 ; 신자를 속이는 ‘상승’이지요. 무게가 있는 것처럼 신비적인 기교입니다. 야마자키 마사모토 등이 어디선가 그렇게 말했었지요.
상승 없는 가짜 법주
아키야 ; 원래 상승이 있었다면 곧바로 총대든가, 신도대표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단체든 상식입니다.
이즈미 ; 니치준 상인이 닛타쓰 법주에게 상승할 때도 그랬습니다. 상승이 이루어진 1959년 11월 16일 오전. 그 날 오후 니치준 상인은 급거 도쿄 오타 구의 요양지에 이케다 선생님을 초청했습니다. 거기서 “이번에 상재사(닛타쓰 법주)에 뒷일을 부탁하였스으모 잘......”이라고 전했습니다.
스지 ; 니치준 상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 덕분에, 창가학회 덕분에 대법(大法)은 청정하게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본종(本宗)은 도다 선생님, 창가학회의 대은(大恩)을 영구히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호소이(닛타쓰 법주)에게 말해 두었습니다.”
다니가와 :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닛타쓰 법주가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이 또한 ‘닛켄에게는 상승이 없었다.’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증거입니다.
사토 ; 누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체로 닛켄은 “상승을 받았다, 받았다.”고 자신만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닛켄은 처음부터 “자신의 일기에 씌어있다.” 등을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일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닛켄은 “보여주겠다. 보여주겠다.”고 말해왔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아니 또 ‘자필일기’입니까?
사토 ; 너무나 어설픕니다. 그 자는 최근에도 시애틀 재판에서 ‘매춘을 하지 않은 결정적인 증거’로서 ‘자필 수첩’ 등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과학적인 감정 결과 ‘증거’라고 하는 부분은 나중에 가필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다니가와 ; ‘자필일기, 자필수첩’ 거짓말쟁이 닛켄이 궁지에 몰리면 꼭 나오는 ‘거짓 특기’입니다. 야마자키와 똑같습니다. 야마자키와 아주 닮았습니다.
이즈미 ; 지금까지 닛켄은 중이나 법화강에게 자신을 ‘대어본존과 불이의 존체’라고 말하도록 해왔습니다.
아키야 ; 닛켄에 의하면 ‘대어본존은 가짜’ 그 대어본존과 불이라면 당연히 ‘자신도 가짜’라는 것이 됩니다. (폭소)
쓰지 ; 그렇습니다. 자신은 가짜 법주라고 자신을 인정한 것과 같습니다.
‘돈에 사로잡힌 자’와 ‘돈에 미친 뱀’
다니가와 ; 그렇다 치더라고 ‘닛켄에게 상승이 없었다.’고 맨 처음 말한 것은 야마자키 마사모토였지요.
이즈미 ; 그렇습니다.
아키야 ; 당치도 않게 당시 야마자키는 주간지에서 닛켄을 심하게 헐뜯었습니다. “아베 닛켄은 상전(相傳)을 받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닛켄은 종문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방탕아.” “독재자” “참으로 신앙심이 얕은 공리주의의 화신.” “법주에 어울리지 않는 야심가이며 타락한 생활” “유흥에 빠져 돈 쓰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모른다.” 등등 비난 중상 비판에 이르기까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이즈미 ; 그런데 닛켄은 지금 이토록 자신을 바보 취급한 ‘불적’이라고 해야할 야마자키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놈입니다.
다니가와 ; 어차피 닛켄은 야마자키한테서 이런 수법 저런 수법으로 협박받고 있을 것입니다.
사토 ; 그렇게 생각합니다. 야마자키가 1993년 경에 닛켄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주간지에 쓴 내용은 조사로 판명된 사실의 4할에 불과하다.” “닛켄이 부정해도 나머지 6할의 자료로 엄한 반론을 할 수 있다.” 등이라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과연. 야마자키가 어떤 자인가. 이것으로 엄청난 돈을 갈취하지 않았을까요?
사토 ; 틀림없겠지요. ‘돈에 사로잡힌 자’ 야마자키가 결탁하는 것은 똑같이 ‘돈에 사로잡힌 자’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어서에 “비유컨대 시방세계의 오역의 자를 한 곳에 모은 것과 같으니라.”의 가르침대로 추한 모습입니다.
다니가와 ; 그렇다 해도 거짓말쟁이 야마자키와 거짓말쟁이 닛켄. 즉 여우와 너구리가 설 홀리는 격입니다.
사토 ; 아니 ‘돈에 미친 자’와 ‘돈에 미친 뱀’이 서로 홀리는 격입니다.
1943년 7월 6일의 체포
센자키 ; 그런데 전전(戰前)의 학회에 대한 탄압은 점차로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에게 직접 미치고 있었던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1943년 7월 6일. 마키구치 선생님이 체포되었습니다. 죄명은 치안유지법위반과 불경죄. 기이하게도 대성인이 유배되었던 이즈의 시모다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데라시마 ; 그 때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이즈미 ; 마치구치 선생님이 체포된 것은 6일 아침입니다. 일본 옷에 하카마를 입으신 선생님은 오히려 고등경찰을 뒤에 따르게 하는 듯한 모습으로 시모다 경찰서까지 약 4.7킬로미터의 거리를 늙으신 몸인데도 건강하게 걸어가셨다고 합니다.
센자키 ; 존귀한 모습입니다. 바로 “다만 생애 본래부터 각오했던바 지금에 와서 번의하지 않으며 게다가 또한 유한(遺恨)도 없느니라. - 어서 962”는 금언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십니다.
이즈미 ; 마키구치 선생님은 시모다 경찰서에 하룻밤 유치되고 다음날 7일, 도쿄로 호송되었습니다. 동행한 분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은 “도다군에게 안부 잘 전해 주게.”라는 한 마디였다고 들었습니다.
쓰지 ; 그랬었지요. 하지만 그 도다 선생님도 같은 날 아침, 도쿄 시로가네다이에 있는 자택에서 체포되셨습니다.
아키야 ; 그 때의 상황은 도다 선생님의 소설 <인간혁명>에 상세하게 씌어있지요. 그 내용에 따르면 아침 6시 경에 갑자기 경찰이 밀어닥쳐 선생님이 계신 2층 다다미방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센자키 ; 경찰은 몇 명 정도였습니까?
쓰지 ; 5명이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삼엄하여 도다 선생님은 “지나치게 야단법석을 떨며 체포하는구나.”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고 술회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 후, 아침식사를 다 드시고 창제를 하셨으며 수호어본존을 몸에 지니고 집을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아키야 ;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마키구치 선생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소설에는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마키구치 선생님이 계신 곳에도 형사가 간 것이 아닐까.”라는 소름끼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지요.
권력을 두려워하여 신도를 잘라버리다.
사토 ; 다른 간부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즈미 ; 그 날 체포된 것은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 이외에 이사가 한 명, 그 후 7월 20일에 학회본부와 마키구치 선생님의 자택, 그리고 시습학관을 급습하였고 부이사장을 포함한 최고 간부 6명이 검거되었습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나서 이사가 3명, 지부장이 2명, 이렇게 간부가 잇달아 검거, 구속되어 합계 21명이 체포되었습니다. 현 별로된 내역에는 도쿄 14명, 가나가와 4명, 후쿠오카 3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학회는 문자 그대로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데라시마 ; 당시, 학회 이외에 어떤 종교 단체가 탄압을 받았습니까?
이즈미 ; 예를 들면, 대본교에서는 987명이 불경죄로 검거되었고 해산당했습니다.
쓰지 ; 천리본도도 238명이 기소되어 해산 처분. 또 ‘홀리네스 교회’ ‘쎄븐쓰데이 어드벤티스트’ 등이 탄압받았습니다.
아키야 ; 그런데 종문에서는 누구 한 사람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창가학회의 원조(元祖)이어야 할 종문에서 누구도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이즈미 ; 어째서인지 단 한 명의 중이 체포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종문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나고 연좌를 두려워하여 이 중의 승적을 박탈하고 추방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쓰지 ; 정말 비겁하고 겁많고 신용할 수 없는 종문이군요.
다니가와 ; 이 무슨 일입니까! 본래대로라면 제일 먼저 국가에 간효하고 가장 탄압을 받아야 할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권력을 두려워하여 신도를 잘라버리고 어려움에 처한 동문(同門)의 승려조차 못 본 체했습니다. 이 비열함! 이 냉혈함! 축생만도 못한 소행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원수를 갚겠다는 정의의 분노
아키야 ; 전후, 도다 선생님은 마키구치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법난에 놀라 선생님을 욕한 중들이여, 법을 버리고 선생님을 버린 무기력한 자들이여, 참회멸죄하고자 원한다면 ‘우리들의 모임’에 와서 선생님의 유풍(遺風)을 우러러보고 부처의 가르침에만 순종해야 할 것이다.”
쓰지 ; 마키구치 선생님의 순난(殉難)에 대해서 말할 때, 도다 선생님은 격노하셨습니다. 저 강직한 도다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며 격노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사토 ; ‘정의의 사람’을 말살한 권력의 포악함! 중들의 겁먹은 모습, 비열함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기필코 ‘원수’를 갚겠습니다. 이 ‘정의의 분노’에 학회정신의 진수가 있습니다.
미노부 이산(離山)을 전적으로 부정
다니가와 ; 종문의 타락, 대방법으로서 최근에는 미노부와 ‘야합’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맞아요. 근대, 수년 간 대석사에는 미노부의 중이 많이 왕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창가학회가 없어져 서로 일하기가 쉬워졌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즈미 ; 1995년 6월 6일에는 미노부의 현재 관장까지도 대석사를 방문했습니다. 능화(중생을 교화시키는 사람)이고 ‘방탕한 형제’인 다카노 닛카이가 일부러 승복 차림으로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다니가와 ; 닛켄종의 중도 미노부의 절에 자주 갑니다. 스가노지운과 고마이 센도라는 일당이 법화강의 ‘투어’를 편성하여 사원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사토 ; 이런 바보 같은 중들이! 닛코 상인은 “일견(一見)이라 칭하고 방법을 저리를 악귀난입의 사사(寺社)에 참예해야 하겠느뇨. - 어서 1617”라고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개산(開山) 상인의 이러한 훈계에 완전히 위배되는 대방법입니다.
다니가와 ; 중들만이 아닙니다. 닛켄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법화강의 야나기사와도 1995년 8월 20일, 미노부산에 부랴부랴 참배하러 갔습니다.
아키야 ; 아무것도 모르는 법화강원들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닛켄과 부모자식의 관계에 있는 야나기사와는 엄한 불법에서 보면 틀림없이 대방법입니다. 지금 종문은 승속이 다 함께 닛코 상인의 ‘미노부 이산’의 정신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정말로 방법의 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닛켄의 미노부 콤플렉스
사토 ; 그런데다가 닛켄종과 미노부가 ‘야합’하고 이쓴 그 뒤에 있는 것도 바로 야마자키였습니다.
다니가와 ; 그래요. 그렇습니다. 미노부의 관장이 대석사에 간 당일에도 야마자키는 닛켄과 본산에서 밀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야마자키 스스로 명료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토 ; 닛켄에게 꾀를 일러준 것은 야마자키입니다. 틀림 없습니다. 그 한 예로서, 닛켄에게 보낸 편지에 ‘타종(他宗)에도 행동을 일으켜야 하기에 사전교섭 공작 중입니다.’ 등으로 씌어 있는 것으로도 명백합니다.
쓰지 ; 옳습니다. 거기에 사토 준에이라는 미노부의 중이 대석사 이사인 오가와 시도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야마자키는 닛켄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닛켄과 ‘바로 연결’되는 사람이다.”고. 닛켄과 야마자키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만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토 ; 겁쟁이 닛켄입니다. 학회를 잘랐지만 내심으로는 종교계에서 고립되는 것이 무섭고 무서워 어쩔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겁내는’ 틈을 야마자키에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죠. ‘물에 빠진 닛켄, 미노부라도 잡는’ 듯한 모습입니다.
다니가와 ; 야마자키가 노리는 바는 돈입니다. 야마자키는 닛켄종과 미노부를 합류시켜 닛켄한테 5억에서 10억 엔 정도 받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 소문도 종문내에서 나돌고 있었습니다.
이즈미 ; 종문내에는 “닛켄은 미노부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대어본존을 부정한 문제도 미노부의 영향이 아닌가.”하는 소문이 있지요.
쓰지 ; 이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닛켄이 아버지인 닛카이가 서툰 문장으로 ‘미노부 파절’이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미노부로부터 철저하게 반격을 받아 숨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키야 ; 그랬었지요. 그래서 ‘미노부에는 당하지 못한다.’며 기가 죽어 꽁무니를 뺐습니다.
이즈미 ; 그래, 그래요. 닛켄이 ‘미노부 콤플렉스’는 ‘싸움에 져서 기가 죽어 꽁무니를 빼는 개’와도 같은 아버지 닛카이에게 물려받은 것이지요.
학회 공격을 부채질
다니가와 ; 야마자키는 닛켄을 더욱 부추길 뿐이고 미노부측에도 빈틈없이 학회 공격을 부채질해 왔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야마자키는 1997년 9월 16일, 미노부산에서 강연했습니다. 또 각지에 이쓴 미노부파의 절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야마자키는 하필이면 ‘대어본존 위조론’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진지해져라 등으로 마구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요컨대 학회와 본격적으로 논쟁하게 되면 일련정종의 교의까지 부정하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좋으니까 해 버려라.”고 선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쓰지 ; 분명 그 자는 종문에 ‘복귀’했을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대어본존을 공격하라’고 하다니 놀랐습니다. 완전히 지리멸렬한 미치광이 같은 짓입니다.
이즈미 ; 원래 그 자는 신심 따위는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요는 얼마나 학회 공격을 부채질하여 돈을 벌까. 머리 속에는 오직 그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 교활한 속임수로 상대를 구슬립니다. 이것이 야마자키 특유의 사기 수법입니다.
종문은 천하의 웃음거리
다니가와 ; 결국 이 미노부와 야합작전은 닛켄과 야마자키의 의도적인 계획과 책략의 구도가 드러남으로써 어이없이 실패. 닛켄은 야마자키에게 속은 나머지 또 큰 창피를 당했습니다.
사토 ; 야마자키는 전부터 “중놈들은 바보들뿐이다. 단지 몸만 있을 뿐이다. 이쪽 방식으로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며 큰소리쳐 왔습니다. 세상물정에 어둡고 배우지 못한 닛켄이나 미노부의 중들은 야마자키에게는 둘도 없는 ‘봉’이지요.
이즈미 ; 그렇다 치더라도 왜 종문은 미노부 같은 곳과 연합하려 했을까요? 저명한 지식인이 웃고 있었지요. 종문은 왜 가장 위대학 정의로운 학회와 함께 하지 않는지. 정신이라도 이상해진 것인가 하며.
아키야 ; 정말 그렇습니다. 닛켄은 이 하나만으로도 ‘천하의 웃음거리’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6) 보신의 종문은 전쟁에 협력
다니가와 ; 옥중에 계신 마키구치 선생님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쓰고 계십니다. “재난이라고 해도 대성인에 비하면 구우(九牛)의 일모(一毛)입니다. 사도의 고생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즈미 ; 권력의 박해에 대해 일보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자왕의 마음을 발휘해서”라는 금언대로 늠름한 모습이셨습니다.
사토 ; 그에 비하여 종문은 권력영합, 전쟁협력이라는 지옥의 비탈길로 곤두박질 하였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1944년이 되자 종문은 결국 이대법요의 하나인 ‘충불법요’도 중지. 그 대신에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창제회까지 열었습니다.
사토 ; 그 모습은 당시의 <시즈오카신문>에도 “대석사의 국도회 산 속에 묻혀 일주일 간의 고행”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종문 역사에서 중들이 이처럼 필사적으로 제목을 부른 적은 없다.”고 (폭소)
이즈미 ;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의 체포에 놀란 종문은 1943년 8월 전국의 말사에 신찰을 모시도록 지시를 내립니다. 대서인에 대한 대모독, 대방법입니다.
다니가와 ; 이것은 전쟁 협력 정도가 아닙니다. ‘전쟁수행자’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평화주의에 정반대입니다.
쓰지 ; 마치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은 차가운 감옥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셨습니다. 그 사이에도 자기들은 권력에 아첨하여 대방법을 저질로 ‘보신’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축생보다도 못한 중들입니다.
아키야 ; ‘광선유포’도 하지 않는다. 교의(敎義)도 변경한다. 마침내는 전쟁에 가담한다. 불의불칙의 창가학회의 출현이 아니면 대성인의 불법은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즈미 ; 그렇습니다. 창가학회가 불법상 얼마나 중대한 의의를 가진 단체인가. 전쟁 전 이런 학회와 중문의 차이에서도 명명백백합니다.
사토 ; 지금도 어리석은 종문은 야마자키라는 지옥의 심부름꾼과 결탁하였기에 완전히 미치고 말았습니다.
다니가와 ; 앞으로 21세기의 무대를 정비하고 만들기 위해서도 종문의 지난날 저지른 음험한 악폐를 또 반역자의 악폐를 낱낱이 끄집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일흉을 금하고 일흉을 멸하여 그 역사를 명확히 남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즈미 ; 야마자키가 SGI회장에 대하여 거짓투성이의 비판, 중상을 해 온 것은 SGI회장이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그 재능, 행동, 인격, 지식 등등이 자신보다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은 그 이상이다’고 뽐내고 싶어합니다. 그 망상과 질투의 불꽃이 되어 미친 듯이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토 ; 쥐새끼 같은 야마자키가 거물인양 SGI회장을 비난하고 있는 것도 결국 전부 질투에서 나온 불꽃입니다. 자신은 공갈과 거짓된 문장으로 돈을 벌어 온 하찮은 인물이다. SGI회장이 세계를 위해, 평화를 위해, 정의를 위해 행동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 칭찬받고 있는 것이 분해서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야마자키가 질투에 미쳐 비난하면 할수록 그 자신의 비열함과 추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이 자주 읽으신 <사도어서>의 가르침처럼 “까치가 난봉을 비웃음과 같으니라.”입니다.
아키야 ; 닛켄도 마찬가지지요. 닛켄이 볼 때, SGI회장은 신도이면서 세계적인 명성이 있고 수 많은 훈장을 받고 수없이 많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있다. 그런데 자신은 누구한테도 존경받지 못한다. 세계적으로도 도외시하고 있다. 그래서 울화통이 터져 진짜 미치고 말았습니다.
쓰지 ;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야마자키와 동일범입니다.
이즈미 ; 모두 야마자키와 결탁하면 반드시 못쓰게 되고 맙니다. 비참한 말로를 찾아갑니다. 그 현증은 두려운 것입니다. 야마자키는 마성 그 자체의 생명입니다. 제바달다이기에 당연한 것입니다.
다니가와 ; 그의 대학 후배로 학창시절부터 야마자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노자키 부회장은 “그토록 비열하고 악랄한 놈은 없다.”고 자주 분개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호조 전(前) 회장도 “참으로 두려운 놈이다. 말하는 것도 하는 짓도 전부 거짓. 치가 떨릴 정도로 마성의 정체를 속속들이 드러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과거에 야마자키의 동료였던 야히로 변호사도 말하고 있습니다. “야마자키의 공갈재판의 판결문에는 ‘거짓’이라는 취지의 단어가 무려 40군데나 있다. 일본의 재판사상 이렇게 엄하게 단죄 받은 거짓말쟁이는 없을 것이다. 숱한 범죄자를 보아 왔지만, 저렇게 악랄하고 천성적인 사기꾼은 없다.”
이즈미 ; 중대한 판결문이군요. 후세에 남겨야 할 명확한 판결문입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야마자키가 자신의 친척에게 가해 온 못된 짓도 악역비도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스지 ; 그렇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야마자키의 친동생 고조씨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그렇습니다. 고조씨의 증언을 예로 들면 야마자키는 시호스 사건에서 45억 엔이란 거액의 부채를 지고 대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야마자키는 그 부채를 부모형제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겼습니다. 그 액수는 2억 3천만 엔. 야마자키의 어머니는 너무나 기가막혀 망연자실하여 허둥지둥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알면 알수록 야마자키의 수법을 악랄합니다. 야마자키는 어머니한테 달려가 “빨리 땅을 팔아 돈을 만들어라!” “이미 도장을 찍었다. 팔아라! 팔 수밖에 없다!”고 고함을 지른 끝에 강제로 땅을 팔게 했습니다.
사토 ; 마치 노상강도와 똑같군요. 그렇다 해도 2억 3천만 엔을 채우지 못하여 동생 고조씨가 필사적으로 돈을 구하여 겨우 지불하였다고 합니다.
다니가와 ; 고조씨는 2년 전인 1997년 6월, 당시의 진상을 고발하는 수기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빚더미 지옥으로 떨어뜨린 장본인 야마자키는 뻔뻔하게 “그것은 어머니의 재산분배.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몫으로 빚을 갚았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토 ; 이 거짓말쟁이가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어머니의 유산’이라고! 야마자키의 어머니는 지금도 건재하지 않은가! 죽지도 않은 사람한테서 ‘유산분배’라니 놀랄 뿐입니다. 농담도 정도가 있는 것이지요.
아키야 ; 악랄하기 그지없습니다. 야마자키의 마귀와 짐승 같은 악행. 여래 형태의 거짓말에 친척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형수인 쓰루미 가쓰코씨도 야마자키의 고발 수기에서 “이런 거짓말을 잘도 꾸며 냈다.”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게다가 시호스 사건의 피해자는 친척뿐만이 아닙니다. 1980년 4월 도산 때 거액의 피해자를 들면 후지은행이 6억, 산와은행이 2억, (주)이치비루가 12억, 히바라 히로시씨가 8억의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밖에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은 1백 개 이상, 부채총액은 3억엔 이상에 이릅니다.
사토 ; 게다가 그 중소업자의 대부분이 외상거래, 물물교환, 어음의 남발 등으로 야마자키가 저지른 경제사범의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즈미 ; 참으로 악랄한 놈입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과 만나왔지만, 이렇게 비열한 악당은 본 적이 없습니다.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 자의 나쁜 짓으로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입고 괴로워하며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졌던가.
사토 ; 이전에 야마자키의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던 사원이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야마자키의 소행은 도저히 피를 나눈 형제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렇게까지 잔학할 수 있는 것인가. 불가사의할 뿐입니다.”고.
쓰지 ;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원한과 증오를 가지고 있는 듯한 그의 출생에 대해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니가와 ; 여하튼 야마자키는 몹시 심하게 부모형제들을 괴롭히 끝에 공갈 사건으로 징역 3년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변호사 자격도 상실했습니다.
아키야 ; 불법은 엄합니다. ‘환착어본인’입니다. 타인에게 뒤집어씌운 불행은 반드시 그 일체가 자신의 몸에 되돌아온다. 누구도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야마자키도 이제는 가면이 벗겨져 그 추한 본모습이 완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7) 정사(正邪)의 엄한 결과
아키야 ; 불법을 호지한 우리들의 싸움은 영원히 정사(正邪)를 분명히 구분하여 사(邪)를 쳐부수는 싸움입니다. 불법의 방정식에서 보면 석존의 시대는 제바달다, 대성인의 시대는 산미보, 닛코 상인의 시대는 오노승 등등, 정법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반역자가 나옵니다.
이즈미 ;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질투, 비방중상, 음험한 모략이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변함없는 틀입니다.
센자키 ; 그런데 야마자키가 왜 악질의 공갈사건을 일으켰는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젊은 독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데라시마 ; 분명히 직접적인 계기는 자신이 경영했던 냉동식품회사 ‘시호스’의 실패이지요.
아키야 ;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야마자키는 1975면경 시즈오카의 묘지를 둘러싸고 소위 ‘토지전매’로 4억 5천만 엔이라는 검은돈을 거머쥐었습니다. 야마자키는 그 돈을 밑천으로 돈을 더 벌고자 꾀하였습니다. 거기서 시작한 것이 시호스입니다.
사토 ; 그렇군요. 그 놈은 제법 기업가인양 행세를 하면서 ‘내가 장사를 하면 모든 것이 잘 된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자의 실체는 단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바보입니다. 상술도 없고 경험도 없으며 사람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주제에 돈 씀씀이는 다른 사람 두 배로 헤픕니다. 이익도 나오지 않는데 밤마다 긴자, 아카사카를 돌며 날이 새는 줄 모르고 돈을 썼습니다. 당연히 돈다발이라도 풀지 않는 한, 저런 놈은 누구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도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이즈미 ; 그는 자업자득으로 회사가 막다른 길에 들어서자 완전히 착란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해도 건성으로, 사원도 손쓸 방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토 ; 게다가 도산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자가 저지른 사기만으로 한 권의 책을 쓸 정도입니다. 회사 서류의 위조 등 일상다반사. 돼지고기의 부정수입, 대금을 치르지 않고 물건만 챙기는 사기, 물물교환, 어음의 남발 등등 온갖 범죄행위를 저질러 왔습니다.
아키야 ; 당시 야마자키가 위조서류에 지문이 남는 것을 두려워하여 언제나 흰장갑을 끼고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다니가와 ; 남발한 어음은 수십억이라고 합니다. 그 남발을 위해 폭력단간부까지도 이용했습니다. 어음의 일부는 폭력단에게 흘러들어 갔습니다. 만약에 어음이 ‘부도’가 난다면 가만히 있을 상대가 아닙니다.
사토 ; 실제 목숨도 노리고 있었습니다. 전직 사원의 확실한 증언에 의하면 야마자키는 폭력단 사무소에 ‘감금’된 일도 있습니다. 신병을 인수하러 간 다른 사원의 말에 의하면 야마자키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받은 듯 공포에 질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발이 떨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넋이 나가 콧물과 침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니가와 ; 자신이 뿌린 씨앗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생지옥이었겠지요.
쓰지 ; 야마자키가 발버둥쳤지만 시호스는 단 3년 반만에 도산. 1980년 4월의 일입니다. 부채액은 당시의 금액으로 45억 엔. 도저히 야마자키가 정당한 방법으로는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닙니다.
아키야 ; 거기서 야마자키가 생각해 낸 것이 학회를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공갈사건의 진상입니다.
이즈미 ; 그 놈은 일찍부터 종문에 깊숙이 들어가 중들의 추한 실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놈은 학회가 승속화합을 바라면 종문을 지켜 온 것을 빌미로 중들을 구워삶아 학회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학회에 대한 공갈도 그 일련의 경위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다니가와 ; 그러나 너무나도 악질적인 야마자키의 공갈에 학회는 고소. 야마자키는 1981년 1월 24일에 체포되었습니다.
사토 ; 체포 전, 야마자키는 주간지에 자주 등장하여 허세를 부렸습니다.
다니가와 ; 그렇습니다. ‘주간문춘 - 1981년 1월 29일호)에서는 “잠자리와 나비같이 그렇게 간단하게 싱겁게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고 큰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아키야 ; 그런데 그 문춘의 잡지가 서점에서 팔리는 가운데 야마자키는 ‘간단히’ 체포되었기 때문에 손쉽게 끝났습니다.
쓰지 ; 게다가 체포되었을 때의 야마자키의 소심한 행동은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야마자키 체포’를 전한 아사히신문-1981년 1월 25일자-의 기사에 이렇게 실려 있습니다. “작은 체구의 야마자키 마사모토를 갑자기 3명의 남자가 둘러쌌다. ‘경시청 직원입니다. 긴급히 묻고 싶은 것이 있으므로 동행을 부탁합니다.’ 순간 멍하게 눈을 크게 뜨고 보더니 야마자키의 얼굴을 순식간에 빨갛게 되었다. ‘진짜 경찰관이겠지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도 쉰 듯.”
사토 ;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큰소리치며 허세를 부렸지만 막판에는 이런 꼴입니다. 이것이 그 자의 본성입니다. 아무리 거물인양 폼을 잡아도 그 가면을 벗겨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겁쟁이에 불과합니다.
센자키 ; 야마자키가 경찰에 호송되는 장면도 TV로 전국에 보도되었습니다.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고 그 작은 몸을 구부려 좁은 차 안에서 오른쪽 왼쪽으로 쥐처럼 살금살금 도망다니고 있었습니다.
데라시마 ; 야마자키는 공갈사건 재판에서도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키야 ; 그렇지요. 그 자의 거짓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시호스의 실질적인 경영자는 학회였다. 나는 학회의 위임을 받아 학회를 위해 관리했을 뿐.’이라는 거짓입니다.
이즈미 ; 바보 같은 놈! 당시 선배들의 충고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서투른 사업에 손을 댄 야마자키였습니다.
쓰기 ; 재판 기록에도 엄연히 남아 있지만, 학회 간부도 ‘군대식 상술로는 절대 실패한다. 해서는 안 된다.’고 엄하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즈미 ; 예상대로 실패하자 당치도 않게 대은인인 학회를 공갈, 결국에는 궁핍한 나머지 ‘그 회사는 학회 것’이라고!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습니다.
아키야 ; 시호스는 야마자키가 멋대로 시작하여 자기가 망친 회사입니다. 학회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그에 관한 것은 공갈 사건의 판결문에서 “피고인 자신이 냉동 식품 사업에 진출할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서 이루어진 것.” “피고인이 학회의 위임을 받아 학회를 위해 관리한 것이 아니다.”고 명확하게 단언했습니다.
사토 ; 그런데 야마자키는 이런 거짓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법원이 믿게 하려고 거짓에 거짓으로 허위 증거를 날조하였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야마자키는 호조 이사장에게 ‘보고서’ 같은 것을 위조. 시호스가 마치 학회의 지시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습니다.
이즈미 ; 그런데 이 ‘보고서’는 원래 야마자키의 자필인데도 법원에 제출된 것은 어떤 이유인지 ‘원본’이 아닌 ‘본사’ 뿐이었다. 결국 법원으로부터 위조복사물이라고 판정되었습니다.
다니가와 ; 하나를 보면 만사를 아는 것처럼 야마자키가 ‘증거’로 제출한 것은 전부 거짓. 법원도 과연 질렸겠지요. ‘우연하게 가지고 있는 증거물을 이용하여 허구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 즉 주위에 있는 물건을 조금 고쳐서 닥치는 대로 거짓을 날조해 왔다고 엄하게 단죄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그밖에도 야마자키는 자신이 한 것은 ‘공갈이 아니다’고 빠져나가기 위해 학회 관계자를 협박한 날에는 ‘자신은 다른 인물과 만나고 있었다.’고 하는 거짓말을 해 왔습니다.
데라시마 ; 어떻게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아키야 ;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날 그는 통원하던 병원에서 인공투석을 받고 있는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인공투석 중에는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야마자키와 만날 리 없습니다. 이것으로 야마자키의 거짓이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이즈미 ; 그랬었지요. 게다가 야마자키는 이 거짓이 발각되자 뉘우침도 없이 “자신이 잘못 기억했다. 만난 것은 다른 인물이었다.”고 새로운 거짓을 날조해 왔습니다.
다니가와 ; 악랄한 놈입니다. 질려서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의 거짓을 꾸미기 위해서는 20개의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처럼 야마자키는 살아 있는 견본입니다.
아키야 ; 하지만 법원은 이미 야마자키의 책략 등을 전부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의 거짓도 재판과정에서 하나하나 무너져 갔습니다. 도쿄 지방법원의 판결문에는 ‘거짓말쟁이’를 의미하는 말이 무려 40군데나 있다고 합니다. 어느 고명한 변호사도 “이런 종류의 재판에서 이렇게 엄한 판결문은 없을 것이다.”고 놀랄 정도입니다.
사토 ; 그 판결문에는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부터 본 사건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재판에서는 수많은 거짓 변명을 늘어놓고 허위의 증거를 제출하는 등 전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결국 야마자키는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다니가와 ; 수많은 허구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전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야마자키가 얼마나 정도를 벗어난 사기꾼인가. 이 판결문 하나로 잘 알 수 있습니다.
아키야 ; 결국 1991년 1월 22일 대법원이 야마자키의 상고를 기각하여 유죄가 확정. 야마자키는 동년 2월 25일 오후 3시경 가쓰시카 구 고스게 도쿄구치소에 수감되어 동년 4월 도치기현 구로바네 교도소에 이감되었습니다.
이즈미 ; 야마자키는 폭력단 관계자에게도 많은 손해를 입힌 놈입니다. 학회가 고소하지 않았으면 그야말로 생명도 위험했을 것입니다.
사토 ; 그대로입니다. 야마자키가 체포되자 어느 신문기자가 “창가학회가 고소하지 않았다면 야마자키는 확실히 도쿄만의 바닥에 수장되었을 것이다. 그 많은 약속어음이 휴지조각이 된다면 매입한 폭력단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즈미 ; 그런 의미에서도 학회는 야마자키의 대은인이 아닙니까. 목숨마저 구제받은 주제에 반대로 학회에 원한을 품고 지금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비방 중상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도를 벗어난 어처구니 없는 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