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가을이면 추어탕이 으뜸이다.
황금물결 일렁이는 추수가 끝난 논에서 삽으로 구멍을 파서 미꾸리 잡는 재미는 참으로 쏠쏠하다.
물 고인 둠벙을 품어서 진흙 속에 숨어있는 토실하게 살이 붙은 고놈을 잡는 재미는 또 어떠한가.
물고기 주제에 3쌍의 수염을 가지고 있어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사는 이놈은
아주 약아빠져서 용오름하다 애기 밴 여자를 보면 결국 하늘을 오르지 못하고 다리 밑
이무기가 되고 하늘로 승천하면 온갖 재주를 다 부리는 용이 된다.
아마도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은 요놈을 두고 하는 말 일거다.
미꾸라지는 적응력이 아주 뛰어나다.
손도 없고 발도 없는데 물구덩이부터 땅속에서까지 생존이 가능하니 참으로 놀랍다.
여름날 빗물을 타고 구름 속을 나는 탁월한 재주도 있다.
하늘을 날다 기력이 모두 소진되어 물 없는 신작로에 어쩌다 떨어지지만 금방 빗물에 몸을 숨겨
강으로 다시 나아간다.
물에 사는 물고기가 거의 그렇듯이 물을 떠나면 금방 죽는데 비해 오염된 물에서도
요놈은 거뜬히 수일은 생명을 유지한다.
어찌 갑옷 입은 물고기를 부러워하랴. 땅속을 파고들기에는 비늘도 거추장스럽기
때문 일거다.
손으로 꼭 쥐어도 쏙쏙 빠져나가는 요놈은 요리조리 도망치기에는 천재적인 소질이 있다.
살아서는 그렇고 죽어서는 어떠한가.
여름내 지친 사람들의 기를 살리는 보양식으로는 그 맛 또한 가히 일미다.
톡톡여문 햇 양념을 죽어서도 아낌없이 먹는 그놈은 죽어서도 요술을 부린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놀라게 해 도망가게 했다 하든가.
아무튼 죽어서도 맛에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헌데 요즈음 우리 주위에는 족보도 없는 흙탕물에서 살던 이무기와 용들의 전쟁이
치열하다.
비도 아니 오는데 바람을 불러 구름을 일으키고. 한여름에 서리를 내리게 하고.
입에서는 꾸역꾸역 구정물 토하는 역한 냄새가 삼천리를 진동케 한다.
숨 쉬기 조차 힘든 오염된 개천에서 살아남아 요행히 비 오는 날 빗물 따라 하늘에 오른
수염이 닳아 없어진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리게 한다.
친환경 농법의 도입으로 약해진 농약의 효능으로 개채수가 늘어나 이리 시끄러운가.
화가 이중섭선생이 키우는 하얀 황소 한 마리 빌어다 둑을 치고 그물을 놓아 잡던지
펄펄 끓는 물을 구멍에다 부어 튀겨죽이든지 해야 좀 조용해 질려나.
아마도 입만 동동뜨는 미꾸라지는 해금을 시켜도 냄새가 역겨워 못 먹을 듯 하고.
독기품은 미꾸라지는 독기가 몸속에 앙금처럼 축적되어 암 덩어리가 되어
나에게 전이 될까 두렵고. 잡아도 먹지 못하니 아에 땅에 묻어버리면 좀
조용해 지려나.
오염된 개천에서 살다가 용이 되어 승천할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이무기가 된
미꾸리들이 오뉴월 고자리처럼 많아 들끓고 너무 시끄럽게 하니 참으로 문제다.
아마도 올 가을엔 걸죽한 추어탕 한 그릇 먹기엔 물 건너 간 듯하다.
돌아오는 내년 봄이면 맛을 볼 수 있을지 기대 해 본다.
첫댓글 예전엔 통채로 넣어 추어탕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