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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이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연출했다는 소식은 우선 한국인의 입장에서 큰 박수를 보낼 쾌소식임에 의믄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필자는 아직 한강의 노벨상 수상작품을 일키는 커녕 입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그러나 한강이라는 작가에 관해서는 2017년 그녀가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으로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의 글을 보고 난 후의 감상문을 써서 《조갑제 닷컴》을 통해 발표한 일이 있다. 이번에 노벨상 수상 소식에 즈음해서 그때 필자가 썼던 글의 분위기가 이번에는 좀 달라졌을까 하는 반신반의의 상념을 느끼면서 그때의 글을 여기에 재록(再錄)한다. 유지들의 편달을 감히 청한다. 2024년 10월 10일 새벽 1시 李東馥 謹書]
이동복
2017.10.16
작가 한강의 젖내 나는 NYT 기고문을 반박한다
어느 분이 뉴욕타임즈 10월7일자에 게재된 소설가 한강의 기고문을 복사하여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제목을 보니 “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다. 번역하면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하면 남한은 전율을 느낀다”가 될 것 같다. 인터넷 ‘다음’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한강은 1970년생이니까 금년 나이로 만 46세, 공자(孔子)의 말씀에 의하면 ‘불혹(不惑)’의 연대(年代)를 살고 있는 여성 작가다.
그가 2007년 간행한 소설 “채식주의자”가 “The Vegetarian”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2016년 국제적으로 저명한 출판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국제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하여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맨부커국제상”의 수상 대상은 국문본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영문 번역본 “The Vegetarian”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문 원본과 영문 번역본의 ‘문학성’이 질적으로 과연 동일한 것이냐의 여부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필자의 경우 ‘완독(完讀)’은 하지 못 하고 지극히 제한된 분량만을 발췌 형태로 본 것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영문 번역본’에서는 적지 않은 번역 에러(Error)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한강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두세 번 정독(精讀)해 본 소감은 ‘구상유취(口尙乳臭)’라는 한자 성어(成語)가 금방 머리에 떠오른다. 기고문 필자의 젖 냄새가 짙게 묻어나는 글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남북한의 ‘한민족(韓民族)’이 다 같이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그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전쟁의 참화’라 하더라도 38선 이남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경험한 ‘전쟁의 참화’와 그 이북의 북한 동포들이 겪은 ‘전쟁의 참화’는 본질적으로 엄청나게 다른 것이었다. 또한, 나이의 문제 때문에, ‘6.25전쟁’을 직접 체험한 한국인과 체험하지 못하고 전문(傳聞)에 의존하여 ‘6.25전쟁’을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는 전후세대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전쟁의 참화’ 역시 동일할 수 없다. 더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는 이념적으로 좌경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지어 북한의 거짓 선전과 선동에 현혹된 결과로, ‘6.25전쟁’에 관하여 대한민국의 시각(視角)이 아니라 북한의 시각에 입각하여 인식하고 있는, 그 결과 왜곡된 인식의 포로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보면 필자 한강은 이 같은 차이를 인식할 정도의 지적(知的) 성숙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북한의 시각을 좇는 ‘종북(從北)’ 성향에 경도(傾倒)된 상태에서 ‘전쟁의 참화’를 관조(觀照)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강은 그의 글에서, ‘6.25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기피하고 굳이 ‘한국전쟁’이라고 호칭하는 이 전쟁의 성격을 “인접 국가들이 한반도에서 연출한 ‘대리전쟁(Proxy War)’”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한국전쟁’은 한강의 주장처럼 “인접 국가들이 한반도에서 연출한 대리전쟁”이 결코 아니었다.
‘6.25전쟁’은 일요일인 1950년6월25일 새벽 4시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金日成)의 명령에 따라 남한군보다 3배 이상 강력했던 북한군이 “무력 적화 통일”을 목적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남북한을 갈라놓았던 북위 38도선 전역을 일제히 돌파하여 감행한 전면 남침으로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이다. 1990년 구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측이 대한민국에 넘겨 준 ‘크레믈린 비밀문서’들이 충격적인 역사의 진실을 밝혀놓았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단독으로 도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기록들에 의하여, 김일성은 무려 도합 48회에 걸쳐 그의 상전 나라인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Joseph Stalin)에게 “남침 전쟁 도발에 대한 허가”를 간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처음에는 미국을 의식하여 동의를 꺼렸던 스탈린이 결국 탱크와 야포 및 전투기 등 대량의 무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구 소련군 장교들을 평양으로 보내서 작전 계획 수립까지 지도하여 일으킨 전쟁이 ‘6.25전쟁’이었다. 이 기록들은 1950년6월25일 새벽 김일성이 야비하게 선전포고도 없이 ‘6.25전쟁’을 일으킨 행위 그 자체는 스탈린의 지시 하에 이루어진 ‘대리전쟁’ 행위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6.25전쟁’의 성격을 분명하게 조명해 주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의 내용들은 앞으로도 작가 한강의 작품 세계 속에서 명멸(明滅)할 기회들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필자는 한강에게 미국 워싱턴 시 소재 ‘우드로 윌슨 연구소’(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에서 여러 해에 걸친 ‘크레믈린 비밀문서’ 내용 분석을 통하여 “6.25전쟁의 기원(起源)”에 대한 연구에 독보적 경지를 개척한 캐드린 웨더스비(Kathryn Weathersby) 교수의 “한국전쟁에서의 소련의 역할”(The Soviet Role in the Korean War, The State of Historical Knowledge)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반드시 읽어 보기를 권고하고 싶다. 이 논문은 2004년 미국 켄터키대학교 출판사(Unitersity of Kentucky Press)가 윌리엄 스티크(William Stuek) 편저(編著)로 발간한 “세계사에서의 한국전쟁”(The Korean War in World History) 61∼92쪽에 수록되어 있다.
‘낙동강 교두보(Naktong Perimeter)’까지 밀려야 했던 개전(開戰) 초기의 전쟁 상황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군사적으로 열세(劣勢)였고 북한군의 공격이 얼마나 계획적이고 기습적이었는지를 웅변해 준다. 그러나,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대한민국을 국제사회가 모른 체 하지 않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 북한의 무력 공격을 ‘침략행위’로 낙인찍으면서 이의 격퇴를 위한 집단안보 조치에 나섰다. 이에 따라 군사적으로 막강한 미국을 선두로 16개 유엔 회원국이 파견한 군대로 편성된 유엔군이 역사적인 9월15일의 인천상륙작전을 고비로 한국군과 함께 전세(戰勢)를 역전(逆轉)시켰고 유엔은 총회에서 유엔군의 북진(北進)을 통하여 대한민국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통일의 달성을 유엔군의 작전 목표로 설정하는 결의를 채택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 이번에는 빈사(瀕死)의 북한을 구조하기 위하여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이 단행되어 전세를 재역전시킨 끝에 한반도의 중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전선(戰線)이 형성되어 2년 넘게 시산혈하(屍山血河)를 이루는 진지전(陣地戰)이 지속된 끝에 1953년7월27일 군사정전협정 체결로 교전상태(交戰狀態)는 종식되었지만 아직 평화도 아니고 전쟁도 아닌 휴전체제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비단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침략자’로 단죄(斷罪)하는 결의를 채택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특기(特記)해 놓을 필요를 느낀다. 이 같은 ‘6.25전쟁’의 전말(顚末)은 북한에 의한 이 전쟁의 도발이 소련을 위한 ‘대리전쟁’ 행위였음이 분명하지만 유엔군의 참전은 ‘침략자’ 북한군과 중국군을 격퇴하여 나라를 지키려는 대한민국을 지원할 목적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통하여 이루어진 유엔헌장 제42조에 의거한 ‘집단 안전보장 조치’이기 때문에 ‘6.25전쟁’의 성격을 통 털어 ‘대리전쟁’으로 단정하는 작가 한강의 인식은 역사를 크게 왜곡할 뿐 아니라 메추리알과 달걀을 혼동하는 무지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6.25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와 재산 파괴는 실제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무자비한 3년간의 전쟁 기간 중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도살되었고 ‘이전의 국토(Former National Territory)’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한강이 기술한 대목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그가 말하는 ‘이전의 국토’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남북한 사이의 중립지대에 서서 대한민국과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이 같은 표현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된 것이다. 전쟁 기간 중 발생한 인명 피해와 재산 파괴를 기술함에 있어서 시비를 가림이 없이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이 피해에 관해서는 원천적으로 김일성의 북한이 전쟁을 도발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책임 규명의 차원에서 먼저 지적하고 인과(因果) 관계의 차원에서 전모(全貌)를 기술해야 마땅하다.
전쟁 기간 중 소위 ‘보도연맹’ 소속 인원들에 대한 학살 등 용서할 수 없는 부당 행위들이 대한민국의 군경(軍警)에 의하여 저질러진 부분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사실 규명과 신원(伸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불상사들의 상당수는 아무런 사전 대비 없이 전쟁을 치르게 된 대한민국의 공안기관들이 천붕지함(天崩地陷)의 경황없는 상황 속에서 정신없이 저지른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일들이었다는 측면이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보도연맹’ 소속 인원에 대한 학살 행위의 부당성을 고발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더욱 잔인하게 북한에 의하여 자행된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학살과 납치 등 잔학 행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넘어 가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잘못이다. 한강이 그의 글에서 고발한 ‘노근리 사건’도 유감스러운 사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사건 또한 와 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없이 한국 전선에 긴급 투입되어서 개전(開戰) 초기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의 공격 앞에서 혼비백산(魂飛魄散)한 미군 사이에 만연된 “‘흰 옷’으로 위장한 북한군 편의대(便衣隊)”의 존재에 대한 공포 심리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강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에 관류하고 있는 중심 화두는 ‘평화’인 것 같다. ‘전쟁’에 대한 ‘공포’를 자극, 조장하여 ‘평화만능주의’를 구가(歐歌)하여, 엉뚱하게도, 대한민국과 미국을 물 먹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부지부식 중에 그렇게 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우나, 작가 한강이 ‘평화’에는 ‘좋은 평화’가 있지만 ‘나쁜 평화’도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했다는 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평화’라고 해서 어떤 ‘평화’든지 모두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평화’가 있고 ‘나쁜 평화’가 있는 것이다. 지난 72년간 지속된 한반도의 분단사(分斷史)는 대한민국이 희구한 ‘좋은 평화’와 북한이 집요하게 추구한 ‘나쁜 평화’ 사이에 끊임없이 전개된 갈등의 역사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희구하는 ‘좋은 평화’는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할 수 있었던 국민 모두의 번영 및 자유와 함께 보다 낳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중요한 ‘가치’들과 ‘경쟁력’을 훼손함이 없이 온전하게 지켜내는 ‘평화’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가치’와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담보가 자유민주주의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이 그 동안 체험을 통하여 입증된 진리다. 그와는 달리, 북한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나쁜 평화’는 ‘민족’과 ‘자주’라는 미명(美名)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전체주의적 구호 아래 모든 주민들이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전근대적인 세습 ‘수령’에게 헌납한 채, 주는 대로 먹고 입고, 시키는 대로 일하고 놀며, 주입시키는 대로 획일적으로 사고(思考)하는 노예생활을 강요당하는 ‘평화’다.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체(主体)’라는 이름의 사이비 이념으로 분식, 포장한 북한 특유의 공산주의 계급독재와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가 북한 땅에 오웰(George Orwell)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놓은 “동물농장”(Animal Farm)을 재현(再顯)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과거 동서 냉전 시대에 서방 세계는 공산주의자들과 ‘평화’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절감하게 되었었다. 미국과 중공(中共·당시 중국의 호칭) 사이에 ‘바르샤바 대사회담’이라는 것이 수십년 간혈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언론은 “담벼락과의 대화”(Talking to the Walls)라는 신문 용어를 만들어 냈고 필자가 참가했던 1970년대 초기 남북대화 진행 과정을 취재하던 영어권 외신기자들은 “귀머거리들의 대화”(Dialogue of the Deafs)라는 또 하나의 신문 용어를 통용시켰었다. 특히, 북한공산주의자들과 ‘평화’를 논하는 것의 어려움에 관해서는 미 해군 제7함대 사령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하는 과정에서 1951년부터 1953년까지 계속된 판문점 휴전회담의 전반부에 유엔군측 수석대표였던 조이(C. Turner Joy) 해군 소장(少將)이 예편 후인 1954년 그가 체험했던 협상의 경과와 이에 대한 그의 감상을 엮어서 출판한 “(북한)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라는 제목의 책을 반드시 읽어 볼 것을 작가 한강에게 권고하고 싶다. 이 책의 결론 부분의 다음에 인용하는 구절에 등장하는 조이 제독의 소회(所懷)와 경고(警告)는 1970년대 초 남북대화에 참가하는 필자에게 특히 교육적이었다.
“어느 누구도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할 때 무력 사용 포기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전쟁을 회피하기를 희망한다면 우리는 전쟁의 모험을 감내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서방측과의 사이에 제기되는 현안 문제가 협상을 통하여 해결되지 아니 하면 자신들의 안전이 심각하고도 임박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고 믿게 될 때라야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에 진지하게 호응한다. 그들은 결코 상대방의 허세(虛勢)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상대로 하는 협상을 성공시키려면 우리는 실제로 무력을 사용할 태세를 갖추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 할 때는, 우리의 목표를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과 협상할 때 우리는 항상 전쟁의 위험에 실제로 대비해야 한다. 그 이유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전쟁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전쟁은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서를 통하여 역사는 ‘좋은 평화’ 세력이 ‘나쁜 평화’ 세력의 도전에 결연하게 대응한 많은 사례들을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1939년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은 ‘좋은 평화’ 세력이 ‘나쁜 평화’ 세력이 도발한 전쟁에 전쟁으로 감연히 대응하여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면서 승리함으로써 ‘좋은 평화’를 수호한 대표적인 사례다. 제2차 세계대전의 큰 틀 속에서 1941년12월7일 일본제국(日本帝國)의 ‘연합함대’가 감행한 ‘진주만(Pearl Harbor)’ 기습을 당한 미국은 건국 이래 고수했던 ‘몬로주의’(Monroe Doctrine)이라는 이름의 ‘고립주의’로부터 단호하게 탈피하여 “진주만의 치욕을 잊지 말자”(Remember Pearl Harbor!)는 구호 아래 단시일 안에 국가를 전시체제로 전환시켜 제국일본을 패퇴시킴으로써 35년 동안 일본에 의한 강점에 시달리던 한민족에게도 해방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역사는 ‘좋은 평화’ 세력이 저항을 포기하고 ‘나쁜 평화’ 세력에게 비굴하게 굴복하는 ‘유화주의’(宥和主義·Appeasement)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 준 사례도 무수하게 기록하고 있다. 1938년 영국 수상 챔벌린(Neville Chamberlain)이 독일 땅 뮌헨에서 제3국인 체코슬로바키아 국토의 1/3에 해당하는 주데텐란트(Sudetenland)를 독일에게 할양해 주는 것을 대가로 하여 나치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로부터 얻어낸 ‘거짓 평화’ 약속을 가지고 귀국하여 “우리 시대의 평화를 이룩했다”는 자화자찬(自畵自讚)으로 영국 의회와 교회 및 언론으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이끌어냈지만 이 같은 ‘거짓 평화’의 환영(幻影)은 1년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챔벌린의 ‘유화정책’은 오히려 히틀러의 간(肝)을 키워주어서 다음 해인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로 몰아넣었다. “뮌헨 밀약(密約)ㄹ은 전쟁을 방지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전쟁 발발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라는 처칠(Winston Churchill)의 경고는 1년도 안 되어 적중(的中)했다. 영국에서는 챔벌린의 ‘유화’ 정권이 퇴진하고 처칠이 수상으로 발탁되어 “피와 인고(忍苦) 그리고 눈물과 땀”(Blood, Toil, Tears and Sweat)으로 전쟁 수행을 주도함으로써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좋은 평화’가 ‘나쁜 평화’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불상사를 가로막은 위대한 승전보(勝戰譜)의 주역이 되었다.
처칠이 수상 취임 후 영국 의회에서 행한 첫 연설 가운데 다음에 인용하는 한 토막은 1950년대 초 “6.25전쟁” 기간 중 중학생으로 피난지의 ‘임시 천막 교사’를 전전(輾轉)하고 있던 필자의 심장을 감동으로 뛰게 만들었던 대목이다.
“...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에서도 늘어나는 자신감과 늘어나는 역량으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여하한 대가를 지불하더라고 우리의 섬나라를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海邊)에서 싸울 것이고 상륙 지점에서 싸울 것이며 들판에서 싸울 것이고 거리에서 싸울 것이며 고지(高地) 위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어진 의무를 완수함으로써 앞으로 대영제국(大英帝國)과 영연방의 역사가 앞으로 1천년이 지난 뒤에 돌이켜 보아도, ‘그때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때였다’라고 회상할 수 있도록 합시다....”
‘조선 왕조’의 썩은 조정(朝庭)이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내준 뒤에도 한민족 가운데 애국지사들이 일제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하고 대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저항의 힘은 미약했다. 그 결과 한민족은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 대열에 합류하는 데 실패하여 전후처리의 주주(株主) 국가 반열에 참가할 수 없었다. 결국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 더불어 처칠이 갈파한 ‘철의 장막’(Iron Curtain)에 의하여 남북으로 양분되었고 1948년에는 38선의 남쪽에는 유엔이 산모(産母)가 되어 유엔 감시 하의 총선거를 통하여 수립하고 정통성을 공인한 대한민국이, 그리고 그 북쪽에는 구 소련에 의하여 비합법적으로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기 등장하는 분단국가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남북의 정치적 분단은 상호 상반된 이념과 체제의 선택을 수반했다. 남의 대한민국이 선택한 체제는 경쟁과 개방 그리고 국제화를 내용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였고 반면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선택은 명령과 폐쇄 및 고립화를 내용으로 하는 공산주의 일당독재와 사회주의 계획경제였다. 그로부터 70여년이 경과한 지금 이 체제 경쟁의 승자는 당연히 대한민국이다. 분단 당시 남북의 경제는 전기를 포함한 주요 천연 자원과 공업기반을 거의 독점한 북이 남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이 북우·남열(北優·南劣)이었던 남북한의 경제력 비교는 역전되어 이제는 상호 비교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고)하고 해방 당시 세계 최빈국(最貧國)으로부터 세계 10위권의 선진국(先進國)으로 비상(飛翔)한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지금 GDP 기준으로 45대1이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의 비율로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 같은 경제적 약진이 가능했던 것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박정희(朴正熙) 중심의 군부 세력의 주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군부 세력이 동원한 비결(祕訣)이 “압축 성장”이었다. “압축 성장”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산업화(産業化)에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비정상적으로 동원된 ‘강제적 수단’들은 시민사회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의 연쇄반응을 유발했고 또한 그 과정에서 ‘인권 유린’과 ‘빈부 격차’ 등 성장통(成長痛) 논란이 증폭되고 민주주의 제도의 피로화(疲勞化)가 심화되는 가운데 폭력을 수반하는 ‘민주화’의 진통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라는 불청객(不請客)의 존재가 설상가상(雪上加霜)의 두통거리였다. 1953년의 휴전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전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북한의 전략은 여전히, 한편으로는 ‘혁명의 만조기(滿潮期)’에 편승한 ‘무력적화통일’ 시도를 위한 군비 증강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레닌의 유물(遺物)인 ‘통일전선’ 전략에 기초한 ‘남조선혁명 이론에 기초한 평화통일’이라는 이름의 2단계 ‘평화통일’ 전략의 첫 단계로 ‘남조선혁명’이라고 일컫는 폭력혁명의 방법으로 대한민국을 내부로부터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북한의 지하 공작원을 남파하거나 아니면 대한민국의 반정부 내비 정부 비판 세력 안에서 ‘동조세력’(Fellow Travellers)을 확보하고 그 세력을 키우는 것은 대한민국의 내부로부터의 전복을 추구하는 북한의 ‘간조기(干潮期)’ 전술의 중요한 포석(布石)들이었다. 여기서 이른바 ‘종북(從北)’ 세력이 등장했다. 북한이 심어 놓은 ‘종북’ 세력은 과거의 ‘통일혁명당’이나 최근의 ‘통진당’의 경우처럼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대한민국의 기존 정치세력 안에 침투하여 기숙(寄宿)함으로써 기존 정치세력을 ‘숙주(宿主)’로 하는 ‘좀비’ 형태를 차용(借用)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종북’ 세력의 ‘좀비’화가 가능한 이유는 대한민국 제도권의 일부 야권(野圈) 정치세력이 이미 스스로 ‘좀비’화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어처구니없게도 제도권의 야당이 선거 때마다 ‘종북’ 세력의 도움으로 지지표 득표를 모색하는 정신 나간 작태를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 와서 대한민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완패한 것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초조감에 사로잡힌 북한은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절대병기(絶對兵器)이면서도 가지고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저주 받은 무기’(Doomsday Weapon)가 된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국제사회와 정면 대립하는 무모한 금기(禁忌)를 무릅쓰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 동안 원자탄은 물론 심지어 수소폭탄의 개발, 생산과 미국 본토에 도달 가능한 ICBM을 포함한 단/중/장거리 탄도탄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과 일본은 물론 대한민국에 대한 핵전쟁 도발을 위협하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도합 아홉 차례에 걸친 제재 결의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의 중단을 북한에게 요구했으나 북한은 일관되게 이의 수용을 거부하고 핵보유국(Nuclear State) 지위 확보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작가 한강은 그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금년 초 취임한 미국의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이 같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 행동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 능력 제거를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시비하고 있다. 우리는 트럼프의 최근 발언 가운데 한강이 시비한 대목인 “그들(북한)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이해한다”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강은, 아마도 비아냥을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트럼프의 문제 문구가 “정확한 표현이었다”고 추키면서 엉뚱한 자신의 말을 이어 붙이고 있다. “한국인들은 오직 한 가지만을 알고 이해한다. 우리는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에 의한 해결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도대체 ‘승리’라는 것은 공허한 구호일 뿐 아니라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는 또 하나의 대리전쟁을 절대적으로 원치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강의 기고문의 영어 원문: “It’s an accurate comment. Koreans really do understand only one thing. We understand that any solution that is not peace is meangingless and that ‘victory’ is just an empty slogan, absurd and impossible. People who absolutely do not want another proxy war are living, here and now, on the Korean peninsula.]
한강의 이 말에는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한국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북한’의 누구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트럼프의 말에 나오는 ‘they’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북한인들’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그가 복수 대명사를 사용했지만, 문맥(文脈)으로 보아서는 ‘김정은(金正恩)과 그 졸개들’을 지칭하는 것임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은 그의 기고문에서 자기 멋대로 ‘그들’을 ‘한국인들(Koreans)’로 치환(置換)했을 뿐 아니라 이어서 “우리들은...”이라는 복수 대명사로 다음 문장을 이어 감으로써 마치 트럼프가 사용한 ‘they’라는 복수 대명사가 “한강 자신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지칭한 것처럼 엉뚱하게 오역(誤譯)하면서 이에 기초하여 트럼프의 말을 시비하는 터무니없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이 트럼프가 사용한 ‘they’라는 복수 대명사를 이처럼 멋대로 오역한 것도 문제이지만 이 같은 오역에 입각하여 “우리(즉 ‘한국인들’)는 평화가 아닌 다른 어떠한 방법에 의한 해결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도대체 ‘승리’라는 것은 공허한 구호일 뿐 아니라 애매하고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는 ‘또 하나의 대리전쟁’을 절대적으로 원치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더구나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억지다. 이 같은 한강의 주장은, 소수의 ‘종북’적 사고를 소유한 한국인들이 그 같은 한강의 주장에 동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서글픈 사정이기는 하지만, 절대 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이 결코 수긍하지 않을 천부당만부당한 일방적 주장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초래될 지도 모르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최소화되어야 하겠지만,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의 무모한 핵도박은 기필코 저지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이를 위한 전쟁도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여론조사 결과들을 통하여 입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한강은 문제의 기고문에서 그의 유화주의적 주장을 합리화시키는 노력의 일환으로 ‘촛불 시위’를 거론했다. 그러나, 한강은 이 문제에 관하여 그가 왜곡하고 있는 진실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그것은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가 정면으로 서울에서 대결했을 때 ‘태극기 시위’의 규모가 ‘촛불 시위’를 압도했었다는 사실이다.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