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들과 더 늙은 엄마/ 문성식 작가의 연필 드로잉
이 그림은 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늙은 엄마라도 오래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 떠난 내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젊은 작가 문성식은 한국 화단을 이끌어갈 유망주로 꼽힌다. 다양한 화풍을 자랑하지만 이 연필 드로잉에 나는 오래 눈길이 간다.
그림만 보고 아들은 75살, 엄마를 95살로 가정해 보자. 둘 다 주름진 얼굴에는 시름이 가득하다.
이 시름이 늙은 엄마를 돌보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어쩌다 그 곱던 엄마가 이렇게 늙어버렸을까에 닿기 때문이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기저귀 갈아 입히며 키운 아들이 어느 세월에 이렇게 할아버지가 되었을까를 한탄하는 것이다.
억척스럽던 엄마는 점점 작아져 아기가 되어간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그랬다지. "우리 여행의 종착점은 출발 장소에 도착했을 때다."
맞다. 우리는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산다. 따뜻함과 애틋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런 작품을 젊은 작가가 그려낸다는 것이 놀랍다.
이 그림에 부합될 만한 시가 있어 옮긴다.
문득 세월이 잿더미 속에서 - 박영근
온몸 골골이 바람든 노파가
오늘은 묵은 허리를 펴고
미역국물에 밥 한술
동치미 국물에 밥 한술
간신히 떠 흘려넣는
중늙은 사내의 떨리는 손을 바라본다
돌아보면
옛집 마당가엔 지금인 듯 싸락눈이 붐벼
개오동나무는 하얗게 머리를 풀고,
애비의 대궁밥을 기다리던 소년이
애써 고개를 들어
아잇적 어머니 얼굴을 더듬는다
문득 세월이 잿더미 속에 묻어둔 불씨를 찾아
엄동에 새벽밥을 짓고,
집강아지 한 마리
정짓간 환한 아궁이 불 곁에서
잠이 든다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 창비/ 2002
이 시를 쓴 박영근 시인도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20년 전에 나온 시지만 필사를 해놓고 틈틈히 읽는다.
이런 시를 60이 안 된 사람이 과연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마당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엄동에 새벽밥 짓는 아궁이 불빛에 물든 어머니 얼굴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 시에는 손을 심하게 떠는 아들이 병석에 누운 늙은 엄마에게 음식을 떠먹이는 장면이다.
그림이든 시든 내 마음대로 해석하자면 아들은 65세쯤, 어머니는 90세쯤 되겠다.
온몸 골골이 바람든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은 중풍이라도 겪었는지 손이 심하게 떨린다. 생각만 해도 이 얼마나 슬픈 모습인가.
아들은 늙은 어머니 얼굴에서 옛 추억을 떠올린다.
아랫목에 이불로 묻어둔 된장찌개와 뚜껑 덮은 고봉밥은 식어가는데 캄캄해도록 아버지는 돌아올 줄 모른다.
아버지가 몇 숟가락 남겨주는 대궁밥을 먹고 싶은 소년은 빨리 안 오는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애가 타고 입이 말랐을 것인가.
그런 세월 훌쩍 건너서 음식 받아 먹는 어머니는 아들의 떨리는 손이 안쓰럽고 아들은 점점 야위어가는 어머니 얼굴이 안타깝다.
장수사회가 되면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는 더할 것이다. 이 시에처럼 집에서 병자를 돌보는 일은 아주 드물어졌다.
문득 예전에 읽은 책이 생각난다. 장수 국가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 문제점을 겪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서 취재한 기사를 묶은 <간병 살인>이라는 책은 병든 가족을 돌보다 지친 나머지 병자를 죽이는 가족 이야기다.
책에 나온 기록을 보면 정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할까.
50년 넘게 함께 산 남편이 치매 아내를 살해하고,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들을 40년 넘게 돌보다가 지쳐 끝내 살해한 엄마,
중증 질환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어머니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자식도 있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장마철에 그림에 젖고 시에 젖는다. 이렇게 마음이 젖어 축축한 날은 어떤 음악이 어울리려나.
우울 속에서 밝음과 희망을 찾는 것이 인생이라던가. 고로 늙은 아들과 더 늙은 엄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첫댓글 아무르 영화가 생각납니다
점점 치매심해지는 부인을 간병하던 남편이
결국 베게로 덮어 살해하거든요
침대에 눕혀 꽃잎을 뿌려두는데 아직도 선명해서요
자식은 한번씩 불쑥와서는 병원데려가라 등
마음만 긁어놓으니ㅠ
늙은 엄니한테 할매된 딸이 전화한통 해야겠네요
비에 노치원은 다녀오셨는지ㅠ.ㅠ
저도 그 영화를 아주 감명깊에 봤지요.
아내를 죽이고 집안의 모든 창문 틈을 테이프로 막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네요.
이런 영화 좋아하시는 걸 보니 영화 취향도 정아님과 저는 비슷한 것 같네요.
전화할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시니 얼마나 좋을까요.
정아님의 효성을 응원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군요.
베토벤 피아노 곡은 명곡이 많지요.
우울할 때 위로는 음악만 한 게 없지요. 함 들어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피아노와 빗소리가 닮은 데도 있습니다.
은근히 함박산 님 멋진 분이라는,,^^
왜 이러시나 함께 맥놓고 우울 모드로 가자는게요
47살 장가 못간 아들의 겉 늙는
꼴 지켜 보는 70 어미 심정을 아프게 하구랴
천하태평 부양 가족 👪 없음에
훨~훨 가쁜하게 사는 척 하지만
사람으로서 구실을 하는게 일가를 이뤄야 함인데 저 라고 마냥 좋진 않겠져 93세 70세 딱 우리 모자 나이요 우울로는 안되겠따 😢
비가 안 올 줄 알고 동무와 한강변 도보 나갔다가 비만 맞고 왔지요.
이른 저녁술 마시고 온 터에 어쩌다 보니 운선님을 우울 모드에 들게 했나봅니다.
요 위 함박산 님 댓글을 갖다 써먹을랍니다.
우울함을 씩씩함으로 이겨내는 것이 바로 우아한 인생이다.
힘 내세요 멋쟁이 운선님,,
사람 구실 못하는 저도 이렇게 우울함 떨치고 씩씩하게 사는데,,ㅎ
가슴 뭉클한 그림이네요
네, 저도 이 그림 접하고 홀딱 빠졌답니다.
자주 들여다 보게 만드는 그림이지요.
편안한 주말 밤 되세요.
딱 우리집입니다
75살아들과ㅠ102세 어머님.
돋보기쓰고 보면서 맞네 바로 나네 합니다.
오늘도 저녁 식사 잘 하시고 방에 들어가셨어요.
제가 봐도 저 그림 속 풍경이 딱 떠오릅니다.
저녁 진지 잘 드시고 맞네 나네 하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모쪼록 102세 어머님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착한 75살 아드님한테도 응원 보낼게요.ㅎ
태어나 잠시 스치다 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모습이네요
"싸락눈 내리고
엄동에 새벽밥 짓는
아궁이 불빛에 물든
어머니 얼굴"
이 부분은
못 견디게 그리운
울 엄마 얘기라
너무 잔인합니다
오늘만은
금주하려고 하려고 했는데
앞 집 누나가
가져다준 닭발 볶음에
어쩔 수 없이
한잔할 수밖에 없네요
아
너무 합니다
홑샘님의 댓글에서 서정적인 감성이 물씬 풍깁니다.
이런 감성을 가진 홑샘님은 이미 인생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계시네요.
닭발 가져다주는 앞집 누나까지 계시니 어떤 우울함도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겝니다.
술잔 속에 보이는 그리운 어머니 얼굴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앞으론 아주 흔한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 동반자님 74세
그 어머니 93세
아직도 아들이 집에 가면 뭘 해먹일려고 주방부터 가십니다
이것도 우리대에서 끝날듯 해요
요즘은 40이 다 되어 아이를 낳으니요
제 어머니와 큰누이가 딱 스무 살 차이가 났는데 시냇물 님 동반자와 비슷하네요.
제가 일찍 고향을 떠났고 오랜 해외 생홯을 해서 자주 접하진 못했지만
큰누이와 어머니가 모녀라기 보다 자매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답니다.
처음엔 오손도손했다가 나중엔 티격태격,
꼭 닮은 모습으로 함깨 늙어가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시냇물 님과 동시대를 냇물처럼 공감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ㅎ
이그림을 보면서 지금 이시대에선 상상도 못할일이란게 안타까운 일이라고
나이들어 늙으면 현대판 고려장에 모셔놓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식들 처럼
나또한 그러했으니
지존 성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저도 팔자에 없는 해외 생활 한답시고 어머니 임종도 보지 못했답니다.
시대가 그러니 어쩌겠어요.
자식들에게 짐 지우는 것보다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은 받아 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를 위해 힘내세요.ㅎ
거듭 거듭 읽었습니다.
그림 속의 늙은 아들, 더 늙어버린 엄니...
극노인을 돌본다는 거 무척이나 힘이 들지요.
그래도 더 오래 사시도록 빌어야겠지요.
먾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 그림....
엄지 척! 합니다.
제 경우 ....
치매기 진행 중인 아흔살 넘은 엄니와 둘이서 살던 때가 마치 꿈인 것 같습니다.
만95살에 돌아가신 엄니를 회상합니다.
아흔 넘은 어머님을 돌보신 최윤환 님의 효성이 보이는 듯합니다.
보는 것보다 직접 겪어본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지요.
제 어미는 막내 아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88세에 돌아가셨는데
95살까지 함께 하신 최선생님 어머님은 편안히 가셨을 것으로 봅니다.
이래도 회한이 남고 저래도 후회가 되는 것이 인생이지 싶습니다.
모쪼록 건강하고 평화로운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제목:
우리집 팥쥐엄마
우리 팥쥐엄마의 뇌세포에 새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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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소중한 두 아들...
작은 딸은 나를 도와줘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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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나쁜 팥쥐엄마...
위로를 드려야 할지 아님 칭찬을 해드려야 할지 제가 다소 난감합니다.
나이가 드니 콩쥐와 팥쥐 중 어느 쪽이 계모인지부터가 헷갈리네요.
제 어머니도 큰형한테만 잘해서 누이와 저도 서운한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어쨌든 피케티 님이 어머니 마음을 녹이고 남을 좋은 딸이기를 바래봅니다.
@유현덕 😄
아닙니다~^*^
딸들이 위로를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여동생은 작은 엄마,
8촌 오빠네
가족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엄마가 여동생과
함께 살기를 강하게 원하니까
우리들은
엄마의 선택을 따라주는 것입니다.
여동생은
엄마의 소원을 외면하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여동생이 마지못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나만 건강하게 잘 살아주면
엄마와 여동생은
피게티에게 큰 절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시나브로 세월이 흐르고 흐르는가 싶더니 어느 새 제가 제 집안에서는 제일 어른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더라 구요.
그러다 보니 이제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모두 다 제 곁을 떠나셨으니 이제는 저 당사자의 문제이고 주제로 바뀌어 가슴으로 와 닿는 유현덕님의 글 추천하고 갑니다. ^^~
나이 들어가면서 별로 반갑지 않은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할 때가 있지요.
저도 머지 않아 그런 자리에 서게될 것 같습니다.
심성 고운 수피님은 좋은 큰어른으로 든든하게 자리잡을 것으로 봅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 속내이야기글
화폭의 설명 잘 읽고 감상.하고 갑니다
공감하는 것에는 지인님과 제가 같은 마음이네요.
흔히 부녀지간과 모자지간이 더 돈독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땅의 어머니들은 유독 아들 보는 눈길에 애틋함이 더하는가 봅니다.
비님이 남쪽으로 내려갔는지 서울은 잔뜩 흐리기만 하네요.
모쪼록 비 피해 없는 평온한 일요일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