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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왕 72:12~17
12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15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16 산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로다
17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하나님 이름을 영원히 찬송하라 72:18~20
18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19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20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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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귀한 것을 그에게 드리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찬송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영원하고, 모든 사람이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입니다.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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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왕 72:12~17
백성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왕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의로운 왕은 궁핍한 백성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들의 연약함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며, 그들이 부르짖을 때 위기에서 건져 냅니다. 의로운 왕은 부당한 권력과 불의에 약자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합니다. 이런 왕은 모든 백성을 풀과 같이 왕성하게 자라나게 하기에, 백성은 의로운 왕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의로운 왕의 이름은 후대에도 칭송을 받습니다. 그는 모든 민족이 부러워하는 건실한 나라를 만듭니다. 그래서 의로운 왕은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성도는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복의 통로가 되도록 기도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의로운 왕은 궁핍한 백성을 어떻게 돌보나요?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약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국민에게 복의 통로가 되도록 기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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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이름을 영원히 찬송하라 72:18~20
150편으로 이루어진 시편은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되며, 각 권은 송영으로 마무리됩니다. 본문은 제2권(42~72편) 마무리 부분의 송영입니다. 시편 기자는 홀로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받으실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우리가 찬송하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하나님을 닮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성도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공동체를 참된 행복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실천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가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떻게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미약한 제 삶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은혜의 단비로 풍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제 삶의 도움으로 삼고, 기도와 찬송을 이어 가는 일상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 성품을 닮아 세상에 감동을 주고, 하나님 복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어 당신만을 의지하면서, 당신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을 섬기고, 당신께서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나의 뜻과 계획,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구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우리에게 맡겨 주신 영혼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들을 끝까지 감당해 나가고, 그러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담대히 주님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자
내가 부여받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사명, 증인의 사명을 항상 가슴 깊이 새기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자
하나님의 집도 이 시를 기록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집도 산꼭대기의 땅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다윗의 집은 우리나라 도봉산과 비슷한 높이의 산꼭대기에 있었고, 하나님의 집은 그보다 더 높은 산꼭대기 위의 산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사실 산꼭대기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문제는 물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대가 너무 높은 탓에 강물을 끌어 올 수 없어서 애굽 나일강변의 그런 풍작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땅은 세상 애굽 땅과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신11:10)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살게 하시는 땅은 이와 같은 산꼭대기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샘물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꼭대기의 땅을 천수 곧 비를 의지한다고 하여 천수답이라고 부르고, 순우리말로는 천둥지기 또는 하늘바라기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하늘바라기에 성전과 우리의 처소를 두신 걸까요? 땅에서는 멀어지고 하늘에는 가까워지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오직 거기가 세상 땅의 일은 잊어버리고, 항상 깨끗한 샘물과 정결한 이슬과 은혜로운 이른 비와 자비로운 늦은 비로 돌보아 주시는 우리 하늘 아버지와 가까워지는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성전도 두시고 우리의 처소도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11:11~12)
참으로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항상 돌보시니 우리가 거주하는 산꼭대기 땅에서도 풍성하고 왕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시72:16)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8-20절 찬양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정이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공의를 이루실 수 있지만,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함께 일한 자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감탄하고 하나님의 높고 엄위하신 모습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가 기억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기도
공동체-주님의 통치를 받는 저희를 통해 오늘 우리 사회에 주님의 자비로운 통치가 널리 실현되게 하소서.
시편 72:12~19 하나님의 공의는 예외가 없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공의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 (암5:24)
말씀하신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이 기억난다.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아멘, 아멘.(19)하고 시편 72편으로서
5권의 시편 중에서 2권이 끝난다.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18)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18)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찌어다(19)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아멘 아멘(19)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이 감격스럽기도하고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선포하는 그 울림이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도 이런 선포를 날마다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진다.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내가 살고있는 산본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우리 가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나의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나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나의 인생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찌어다.
참으로 아름다운 지도자와 백성의 모습을 본문에서 본다.
먼저 지도자는
궁핍한 자(12)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12)도 건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13)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13)의 생명을 구원한다.
가난한 자, 궁핍한 자가 2절에 5번이나 반복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통령이 선출되어지길 기도해 본다.
두번째 백성들은
1. 금을 저에게 드리며(15)
2. 저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15)
3. 종일 찬송한다(15)
내가 국가 지도자들을 위하여 배워야 할 것 들이다.
비난하기 좋아하고 욕하기 좋아하고
속된말로 술 안주 삼기는 좋아했지만
감사해서 금을 갖다 드리기는 커녕 기도도 잘 하지 않고
잘 했다 칭찬하는 것은 정말 드문일이 였음을 회개한다.
국가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하자.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법원, 검찰, 경찰의 리더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정치, 경제, 사외, 문화, 교육등등등의 각 분야의 최고 책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이렇게하면 좋은 결과들이 있다.
1. 풍성해 진다.(16)
2. 왕성해 진다.(16)
3. 열방이 다 복을 받는다.(17)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이 바른 지도자[왕]이 되기를 바라며
드려진 이 기도가 궁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완성되어
내가 그의 복된 다스림을 받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중의 복인지 마음 깊은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며
내가 그의 복을 받아 누리는 자로써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백성 된 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천국백성의 헌장으로써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할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더불어 그의 통치가 의와 공평과 정의에 기초하는 것처럼
나도 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그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처럼
나도 그가 보여주신 사랑을 따라서
이 사랑의 실천자로 살아야할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오늘의 말씀요약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귀한 것을 그에게 드리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찬송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영원하고, 모든 사람이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입니다.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연약한 자들이 회복되는 나라 (72:12~15)
이 땅에서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존귀하게 여겨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합니다.
회복된 백성은 왕께 헌신하며 그의 이름을 종일토록 찬송합니다.
왕이신 메시아의 통치는 연약한 자들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작은 자조차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왕을 통해 실현될 때 이 세상은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로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회복시키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성도는 가장 연약한 자들에게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가난하고 부족한 자를 존귀하게 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야 합니다.
- 왕이신 메시아가 가장 먼저 회복하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내가 섬겨야 할 연약한 이들은 누구인가요?
메시아의 권세로 회복되는 창조 질서 (72:16~20)
성도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권세로 세상을 통치하며 그분으로 인해 복을 누립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창조 질서를 회복해 황폐한 땅이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내고,
모든 생명체가 온전함을 회복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며
그분의 권세가 높아질 때 모든 민족과 열방은 그분을 통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메시아의 오심을 간절히 바라며,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메시아 통치에 대한 갈망은 성도의 삶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죄악으로 인해 무너진 창조 질서를 그리스도의 권세로써 회복해야 합니다.
- 메시아의 통치가 회복될 때 이 땅의 회복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회복되어야 할 영역은 어디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가 연약할 때마다 도우시고 일으켜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낮은 곳에서 소외된 자와 연약한 자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동참하게 하시고,
주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질 날을 사모하며, 찬양과 감사가 제 입술에서 끊이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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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궁핍하고 가난한 자를 구원하시는 왕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복을 받고 영원히 그 왕을 찬양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그 심령이 가난하고 궁핍한 성도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여 내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그것을 의지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위로받기 원하는 성도의 믿음 때문이다.
그들은 그 믿음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받지만, 성도의 왕이 되시는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영혼들을 영원히 그 사랑으로 위로해 주신다.
이 세상에서 왕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그 영원하신 왕으로부터 복을 받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왕이신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고 그가 하시는 일은 영화롭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왕, 홀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왕의 통치를 외면하고 세상의 영광을 따라가는 자들은 그 즐거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그 영광과 그곳에서 찬송하는 승리의 기쁨이 보이게 마련이다.
보이는 세상의 영광과 그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잠시 세상의 썩어질 영광으로 웃다가 영원히 이를 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궁핍한 성도가 되면, 그 심령을 가난하게 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만이 성도의 만족과 영원한 기쁨이 될 수 있기에, 오늘도 그 마음에 주님을 모실 수 있도록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그 영광을 사모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잠 14:26)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마 13:55-5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세상 왕의 악한 통치를 경험해본 사람은 의롭고 사랑이 많은 왕을 모시는 행복을 알 것입니다.
우리의 왕은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분이 가시는 곳에는 구원과 감사와 평화가 깃듭니다.
그 백성인 우리가 가는 곳에 드러나야 할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통치할 때 왕과 백성은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왕은 긍휼과 정의의 재판장이 되어주며 백성은 그를 존중하고 위해서 기도합니다.
왕과 백성들의 이상적인 관계는 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기타 모든 면에서 풍요로움을 가져옵니다.
왕의 이름이 장구하리라는 약속과 그를 통해 온 민족이 복을 받는 것은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왕의 공의로운 통치(12-14)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긍휼히 여길 뿐 아니라 손을 내밀어 구해낸다는 뜻입니다.
또 약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의와 거짓과 악한 구조에 저항하여 그들의 생명도 나의 생명만큼 고귀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12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13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14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12-14) 왕의 영원하고 우주적인 통치를 기원한 시인은 다시 왕의 본연의 의무인 백성을 향한 공의로운 통치를 간구합니다.
12-14절에 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궁핍한 자, 도움을 못 받은 가난한 자, 압박과 강포를 당하는 자로서 2-4절에서 소개된 백성과 같은 상황에 있는 무리입니다. 실제 백성 중에는 선을 행하는 무리와 악을 행하는 무리가 있습니다(잠 29:13). 하나님의 관심은 그를 경외하는 진정한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에게 악을 끼친 자들이 있으면 그들을 심판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관심도 이런 자들을 신원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2-4절과 마찬가지로 왕은 공의의 재판과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함으로써 하나님 백성의 권리를 찾아줍니다. 이런 일에 있어 왕은 그들에 대한 긍휼과 그들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채우고 이유 없이 당하는 힘없는 자들은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며 그들의 생명을 구원해줍니다. 이처럼 왕은 자신이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인간 왕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이 돼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왕은 온 백성의 영적 지도자, 영적 대표가 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기에 앞서 그도 먼저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신 사항은 한 가지,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제사장들의 나라와 거룩한 민족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출 19:5-6). 하나님께서 완전하고 거룩한 분이므로 그가 택한 백성들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를 바라셨습니다(레 19:2). 이 점은 왕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17:14-20의 하나님이 규정하신 왕의 규례를 보면 왕이 해야 할 평생 의무는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필사하여 그의 평생 옆에 두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복을 누릴 수 있듯이, 왕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공의와 긍휼을 자신의 삶과 백성의 삶에 실천할 때 진정한 왕이 될 것이며 그의 왕국이 지속될 것입니다(왕상 9:4-9). 왕의 우주적 통치(15-17)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할 것이고, 그의 은혜를 입은 열방의 백성들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찬송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축복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백성은 그에게 복을 빌어주고, 그를 통해 백성이 복을 받는 이 아름다운 관계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뤄지길 기도해야 합니다. 15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16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17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15-19)
왕의 긍휼과 공의로운 다스림을 경험할 때 백성들은 그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하나님의 진정한 왕임을 알게 되므로 이에 마땅한 존경과 감사로 화답합니다. 이들의 마음은 왕에게 예물을 바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송축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온 세상을 지배하는 왕에게 다시스, 스바, 시바와 같은 먼 곳 왕들과 민족들이 진귀한 예물을 바치는 것은 그들이 왕에게 굴복하고 복종한다는 표현이며 강제성도 있지만(8-11),
자국 내에서 백성이 왕에게 진귀한 보배를 바치는 것은 그의 공의로운 통치에 대한 자발적인 존경과 감사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그 왕을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종일 그를 축복하는 말을 쉬지 않습니다(“찬송하리로다”로 번역됨). 이와 같은 공의로운 인간 왕과 백성의 관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와도 유사하여,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정의와 긍휼을 베풀고 백성은 자원하여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으로 화답합니다. 시인은 왕과 백성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늘어가는 것만 아니라 산과 들에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고 백성의 수가 늘어남으로써 경제, 사회 등 다방면으로 풍요와 평화를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이때 곡식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린다는(16) 표현은 들의 열매가 얼마나 풍성한지 레바논의 자랑인 백향목(사 6:13)을 비롯한 수목들이 흔들려 풍성한 소리를 내듯 한다는 의미입니다. 백성이 땅의 풀처럼 번성한다는 것은 그의 백성을 별처럼, 모래처럼 늘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상기시킵니다(창 22:17). 나라의 번영에 덧붙여 시인은 왕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될 것을 고대하며 간구합니다.
시인은 왕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시에서 ‘해’나 ‘달’(17,5,7)은 자연 세계에서 변함없이 항상 존재하는 피조물로서 영속성, 지속성, 확실성을 내포합니다. 왕의 이름의 장구함은 두 가지 함축성이 있는데, 첫째로 하나님의 축복이 이 왕과 후손에게 임함을 나타냅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성품, 능력, 가능성 등을 함축하고 있어 그 사람을 대표하는 힘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영원한 이름’으로 소개하시며 자기의 성품과 능력이 변함없음을 선언하셨고(출 3:15)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높이고 찬양함으로 응대했습니다(삼하 7:26: 시 135:13). 사람의 경우는 이름의창대함을 약속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창 12:3; 삼하 7:9), 특히 아브라함에게는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3). 이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의 후손 다윗은 영원한 왕국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신실한 왕으로 알려졌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구속하심으로써 영원한 구세주와 만민의 축복이 되셨습니다.
둘째, 왕의 이름의 장구함은 그의 나라가 영원무궁할 것이라는 뜻을 함축합니다. 본 시와 시편에서 언급하는 영원한 나라는 다윗 왕국으로 시작하여 종말의 메시아 왕국에서 완성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언약을 맺으시며 그와 그 후손에게 하늘의 날과 같이 영원하고 견고한 왕국, 세계에서 으뜸가는 왕국을 맹세하셨습니다(삼하 7:13,16;23:5; 시 89:3-4,28-29).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 왕은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영원한 왕국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후손의 왕국을 버리지 않겠다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표현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우주의 왕으로 다시 보내셔서 만국을 통치하실 때 비로소 영원한 다윗 왕국이 완성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에 다윗의 왕국은 역대기 저자가 부르듯 ‘여호와의 왕국’으로서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대상 28:5; 대하 13:8;28:5;29:23: 벧후 1:11). 송영: 하나님의 통치 찬양(18-19) 찬양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이며, 그분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한 일을 과시하려는 마음이나 내 이름을 드러내려는 이들에겐 찬양은 공허한 울림일 뿐입니다.
하나님만 홀로 드러내는 순전한 찬양으로 영광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18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19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18-19) 18-19절의 하나님 송영의 내용은 원래 이 시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시편 제2권의 끝을 표시하는 편집적 기능으로 이해됩니다. 시편 제1-4권까지 각 권 맨 마지막 시편의 마지막 절에 이와 유사한 하나님 송영이 나와 각 권의 마지막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시 41:13;72:18-19;89:52; 106:48).
제5권의 경우는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나는 146-150편까지가 하나님 송영으로서 시편 전체의 끝을 장식합니다. 송영의 내용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찬송하다”(18,19)로 번역된 단어는 ‘축복하다’의 수동형으로서 하나님께 사용될 때는 보통 ‘송축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홀로 놀라운 일을 하시는 분”이란 칭호는 하나님만이 세상에서 참된 신이며 능력의 신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되어주신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므로 그의 이름과 영광도 영원하며 온 땅에 가득 찰 것입니다. 이름과 영광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나오는 “아멘 아멘”은 백성의 찬송이며 화답입니다. 맨 마지막 문장인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19c)는 72편 이후로 다윗의 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편의 수집과 편집 과정의 증거로 초기에 수집된 다윗 시선집의 끝을 알리는 기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홀로 놀라우신 일을 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이름과 자비로운 사랑의 통치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 영광을 온 땅에 가득 채워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져 그분 이름이 높임 받으실 수 있도록 힘써 주님과 함께 일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