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판 워크아웃 신청… 대우 부활 또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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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 입력 2010.04.08 17:33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인천
8일 대우자판,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워크아웃 신청
#지난달 22일 저녁 김우중 전 대우회장 등 옛 대우 관계자 500여명이 지금은 해체된 대우의 창립 43주년 기념식을 위해 속속 서울 남대문로 밀레니엄 힐튼호텔에 모였다. 김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대우 정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행사 후 이날 모인 옛 대우 인사들의 화제 중에 하나는 대우자판. 과거 계열사 중 유일하게 독자생존한 대우자판이 경영난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하나라도 버텨주어야 명예회복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텐데"라며 걱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우 부활의 꿈은 또 다시 좌절되는가? 옛 대우그룹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대우자판이 결국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절차를 신청했다. 이로서 김우중 전 회장의 분신이자, 대우의 마지막 적자로 불리던 이동호(52) 대우자판 사장도 또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다.
8일 대우자판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채권단은 오는 14일 채권단협의회를 열어 워크아웃을 의결할 예정이다. 대우자판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2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워크아웃과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는 시련을 맞게 됐다.
그동안 대우자판이 재계의 주목을 받아온 것은 단순히 외형(지난해 매출 2조6,000여억원) 때문만이 아니다. 99년 해체 당시 34개 계열사, 재계서열 2위였던 대우 계열사 중 유일하게 독자생존, 대우 부활의 희망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장이 김 전회장의 수행비서출신이었던 탓에 '김우중 복귀설'이 나올 때마다 주목을 받아왔다.
이 사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한 정통 KS 출신이다. 84년 대우에 입사할 때도 고교 선배인 김 전회장이 직접 비서로 발탁했다. 그 뒤 미국 미시건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돌아 온 곳이 대우차 영동지점. 박사출신 영업지점장이라는 주위의 눈총을 그는 최고의 영업실적으로 잠재웠다. 95년 대우의 최연소 상무가 되면서 그에게는 김 전회장의 판박이, 김 전회장의 DNA를 가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2000년 워크아웃 중이던 대우자판 사장에 취임한 이후 경영 행보는 김우중 신화를 재현하는 듯 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며 건설부문(브랜드명 이안)을 강화하고, 대구의 우리캐피탈을 인수,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남의 것(대우차)을 파는 것 만으로는 외형 확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때는 이런 공격경영에 힘입어 성공하는 듯도 했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어 세간의 주목을 받더니 2007년에는 인천 송도 프로젝트를 내놨다. 미 파라마운트사와 연계, 세계적 영화테마파크를 만들고 105층 규모 호텔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돌파구가 오히려 독이 됐다. 지난해 금융위기로 건설분문에서 미분양이 늘어나고 송도 프로젝트가 별 진전이 없자 경영부담이 가중됐다. 결정타는 지난달 GM대우의 계약해지 통보. GM대우가 시보레 브랜드를 도입하고 지역별 총판제를 도입,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사업부문을 다각화했지만 설마가 현실로 다가오는 데는 불과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 대우자판에서 자동차 판매가 차지하는 매출비중이 50%(1조2,825억원)가까이 됐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워크아웃 신청 직전까지 쌍용차 판매 등으로 탈출을 모색했지만 결국 막다른 길을 피하지 못했다. 이 사장은 곧 퇴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워크아웃에 들어가도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아 송도부지매각(1조2,000억원)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회생에 성공, 중동, 동유럽, 중앙아시아에서 아직 브랜드 파워가 있는 대우가 명맥을 유지하는 게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옛 대우계열사 중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 등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