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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안 본 사이에 좀 살찐 것 같은데, 성장기라는 핑계로 과식하고 있는거 아냐?
그게 아니면 천사님께서 가져다 주시는 조공을 너무 많이 드셨거나."
혜은은 크크큭, 하고 경박하게 웃으며 소녀가 누워있는 침대에 아무렇게나 걸터 앉아 침대 옆 탁상에 놓인 먹다 남은
초콜렛을 입으로 가져간다. 평소 같았으면 기독교의 숭배 대상이자 정점에 서 있는 자신을 조롱하는 일개 악마따위가
다시는 망언을 하지 못하도록 폐포를 침식시켜 버렸겠지만, 오늘은 왠일인지 크리스트의 표정이 묘하다.
"...무슨 일이야. 또 소란 피운다고 간호사한테 중추안정제라도 맞은 거야? 왠지 넋이 나가 보이는데.."
"그런게 아닙니다! 누가 소란을 피운다는 겁니까. 저는 단지 세간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런 수용소에 입원해 있는 것이지
정말로 정신질환이 있다거나 하는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순간 화를 내는가 싶더니 다시 크리스트는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혜은의 시선을 피한다.
"실은.. 전에 감시를 부탁드렸던 천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천사의 숙주가 누구인지 파악했습니다."
뭐야, 그런 이야기인가. 하고 남은 초콜렛을 입으로 털어 넣고 침대에서 일어나 휴지통쪽으로 걸어간다.
그 옆에 붉은 꽃다발이 놓여져 있다.
"숙주가 누구든 난 크리스트 너의 명령에 따라 천사를 사냥하고, 그 천사로부터 널 지키기 위한 창이다.
상대가 누구든 우리의 계획에 방해가 된다면 배제할 뿐이야. 그래서 숙주는?"
"지금은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미안해요. 현재 3번째 천사의 탐색 및 토벌의 권한 및 우선권을
엘비오에게 위임해 놨습니다. 혜은씨는 이대로 대기해 주시겠어요? 변동사항이 있으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크리스트의 얼굴에서 막연한 불안감이 비춰진다.
보통 악연이라도 4년 가까이 사귀어 오면 그 표정이나 세심한 몸짓에서 심리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고 들었는데
설마 이것이 그런 것일까.
"뭐, 분명 네가 하는 일이니까 내가 의심할 여지도 필요도 없겠지만, 만약 사사로운 감정에 의한 배려라면 그만둬.
나 역시 엘비오와 같은 숙주로써 필요에 따라서는 감정을 억제한 채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니까. 알고 있잖아,
상대가 아직 숙주로써 자각하지 못한 여자나 어린아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아, 아니에요. 단지 이번 사건의 적임은 엘비오일 것 같아서 위임한 것 뿐입니다. 게다가 혜은씨는 지금 마리사에게서 맡은
일도 겸하지 않으면 안되니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지금은 전 가브리엘 숙주의 관리에 신경 써 주세요."
"넌 지금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 있겠지, 크리스트?"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말을 계속했다.
"혹시 시스터 마리사가 세르네를 내게 맡긴 것과 파크다알의 강림은 관계가 있는거야?"
콘크리트로 막혀 있는 창문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쪽을 돌아보여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에요."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어 발을 대기실로 들여 놓는다.
병실쪽의 내문을 잠궈달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낡은 쇠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철제문은 공간을 두곳으로 격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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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서자 마자 낯익은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도 시스터 마리사로부터의 연락이라고 생각하며, 통화버튼을 누르자 역시나 시스터 마리사의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가,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요. 급한 용무가 생각나서 그러는데 지금 교회로 와 줄 수 있나요?」
「그렇게하죠. 세르네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기도 하고, 어제밤 말씀드렸던 일로 잠깐 들르려고 했으니까요.」
이질적인 목소리의 주인이 적어도 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한번에 눈치챈 자신의 감별능력에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아, 그랬었죠. 그렇게 중요한 일을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요. 네, 그럼 예배당에서 기다리도록 할게요.」
마지막으로 확증을 가지기 위해 재확인하자.
「그러고보니 물건은 미토에게 맡겨놨는데, 제가 도착할 때까지 준비가 가능할까요.. 아무래도 내일쯤 들르는게 좋을 것 같군요.」
「아,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오늘 아침에 미리 찾아뒀으니까, 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거에요.」
결국 이런 전개인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수화기 너머에 있는 타인에게 슬슬 자작극의 전말을 가르쳐 줘야한다.
「누구냐.」
「네..?」
「누구냐고 묻고 있다.」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넌 시스터 마리사가 아냐. 그저 날 교회로 끌여들이고 싶어 안달난 가짜에 불과하지. 목적은 모르겠다만」
「무슨 증거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거죠?」
「내 이름을 한번도 말하지 않더군.」
「단지 말 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에요. 이름이라면 알고 있어요. '성혜은' 맞죠?」
「바보같군. 네가 날 알고 있는 녀석들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자기 입으로 말하다니. 게다가 예배당의 전화기는 번호가 저장이 안되니
사전에 내 번호까지 입수해 놨을 가능성도 크고, 하지만 패인은 시간 착오였겠지, 네 계산으로는 이번 교회역시 다른 교회와 다르지
않게 전멸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10분 남짓으로 생각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교회의 주인은 단죄의성왕이었다. 그리고 너는 네 계획과는
조금 차질이 생겨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내게 전화를 했고, 막상 전화하고 나서 지리멸렬한 대화를 늘어놓아 나를 교회로 유인하려 했지.
하지만, 이 가설이 맞다면.. 쓰러뜨린거냐, 단죄의성왕을.」
「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훌륭해요, 겨우 1분 정도의 통화로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정말 못당하겠네요.
하지만 전 굳이 저의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고, 도망칠 필요도 없어요. 왜냐하면 제 목적은 당신과 만나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오늘은 안되겠네요, 이렇게 들켜버려서는 모처럼의 깜짝파티가 엉망이 되버렸어요. 그 대신 선배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줄게요. 지금 병원의 현관 앞이죠? 그대로 오른쪽을 돌아 보세요.」
돌아본 그곳에는 이질적인 모습의 남자가 숨을 크게 몰아쉬며 비대한 육체를 이끌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양 손에는 거대한 푸주칼이 들려져 있는 그야말로 괴기한 형상.
「네 녀석은 도대체..!!」
「누구냐고 묻고 싶은건가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제 입으로 말하길 바라는 건지,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목소리군요.
그렇게 바란다면 말해줄게요. 세간에서는 교회 파괴자로 불리는 세번째 천사. 기적의 파편이자, 전능한 유일신의 대리자.
잔혹한 철퇴의 천사 파크다알입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내뱉는 그 차가운 단어들의 나열은 이미 숙주의 의지를 집어삼킨 괴물의 괴성이었다.
「필사적이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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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양단할 기세로 내려찍혀진 두자루의 칼날을 안으로 파고들며 상쇄시킨 후 팔을 뻗어 남자의 머리를 있는 힘껏 보도로 내려 찍는다.
퍼억, 하고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후두부가 심하게 함몰되어 더 이상 살아있을 수 없지만 남자는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난다.
아무래도 리빙데드류의 주술에 걸린 일반인 혹은 슬레이브식 개조를 받은 능력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기묘한 자세로
휘둘러대는 두 팔을 피해 병원 현관의 대리석 기둥 옆으로 숨어든다.
다행히 이곳이 인적드문 외지에 세워진 정신질환자격리병동이다. 행인이 지나갈 일도 없고 이 시간대면은 병원 내에서도 직원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으니 민간인에게 들킬 염려도 없다. 그렇다면, 창을 개방시켜도 되지만 크리스트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창을 개방시켰다가는 미카엘 토벌 때 처럼 서로의 의식이 섞일 위험이 있다.
"빌어먹을.."
남자의 팔은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며 채찍처럼 휘둘러진다. 그리고 그 끝에 달린 푸주칼 때문에 그 리치거리는 상당히 길어져 있다.
아까처럼 두 팔이 동시에 내려쳐지는 공격은 하지 않을 생각인지 두 팔이 교차해가며 정확하게 몸통을 노린다.
아무래도 체험교정형의 슬레이브식 능력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하며, 이럴 때 세르네처럼 간단하게 사람의 몸을 절단해낼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다시 한번만 더 빈틈이 생긴다면 칼을 뺏어보기라도 하겠지만, 아까의 부주의한 일격 덕분에 녀석은 대폭주 상태.
즉 지금 상황을 타파할 방법은..
도주다.
이런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적과 대치했을 때는 일단 도망간 후, 대책을 세우는 것이 병법의 기본.
게다가 녀석을 조종하고 있는 마스터를 찾는다면 사건의 해결은 더욱 빠르겠지.
이쪽에서 도망갈 낌세를 보이자 녀석도 순간 전투 태세를 풀며 이쪽을 순순히 놓아줄 의향을 보여온다.
1-끝
엄청난 공백기간 끝에 1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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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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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1.2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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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아... 엄청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랫만에 봐요 =ㅂ=~ 파크다알이 슬슬...
거의 한달 가까이 글을 안썼으니 으음. 리플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