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
2020년 3월 5일 사순 제 1주간 목요일
-조창현 신부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
저는 사제 생활하면서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사제직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사람에 대한 배신이 그렇게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지만, 더 힘들어지고 더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 순간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너는 나에게 온전히 올 수 없는가?” “왜, 너는 나에게 온전히 올 수 없는가?”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월요일 쉬는 날에, 도시락 하나 준비해 어느 공소든지 가서 온종일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1년 정도 월요일이 되면서, 도시락을 싸서 온종일 십자가의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그 느낌, 그 기쁨, 그 행복은 나에게 주어진 사제 직무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주어지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고, 하느님의 자애였습니다. “이제 너는 나에게 온전히 왔다.” 아멘.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를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청하는 것, 찾는 것, 두드리는 것은 고운님들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받고, 얻고, 열리게 하는 것은 하느님이 일입니다. 그 하느님의 일은 고운님들을 받고, 얻고, 열리도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보면 야고보 사도가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보지만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개 중의 1개를 바치라는 ‘십일조의 정신(재물, 기도, 봉사 등등)’은 “고운님들의 변함없는 믿음으로 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이들을 모른 척하고 눈 딱 감고 자기 배만 불리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십일조의 정신’을 가지고 변함없는 믿음을 지닌 고운님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오늘 아무리 바빠도 조용한 시간에 우리 고운님들은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나서보는 시간을 만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애타시기 때문입니다. 은총을 못 받는 고운님들도 답답하지만, 은총을 주어도 받지 못하는 고운님들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은 더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운님들에게 더 좋은 것을 채워 주시려고 합니다. 하느님은 고운님들에게 무엇인 필요한지를 먼저 알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입니다.
이제 고운님들이 말씀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에서 나오는 그 느낌, 그 기쁨, 그 행복을 언제나 맛볼 수 있도록 영적 일기를 하루도 빼지 않고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고운님들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았을 때 얻어지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 즉 그 느낌에, 그 기쁨에, 그 행복에, 그리고 영적으로 목말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운님들에게는 이미 약속된 복된 은총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11절)”
오늘도 저 두레박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를 느끼면서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이 아픈 님들과 간호하는 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 일기를 마무리하면서…. 고운님들의 영적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 줄 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 살면서도 변함없이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모시는 십일조의 정신으로 살아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가 충만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광주대교구 조창현 클레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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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단단해지게 하는 시편(427)
♧♧ 시편 76편 10절…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모두 구하시려 하느님께서 심판하러 일어나실 때." 셀라.
*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모두 구하시려... ‘가난한 이’는 곤경을 당하면서도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함 없이 겸손하게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가는 이를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계약(시편 37편 11절, 149편 4절. 참조)에 진실하신 분이심을 나타내 줍니다. 아삽은 하느님이 유다 백성을 아시리아의 침략에서부터 구원해 주신 사실(열왕기 상권 19장 35-37절. 참조)에 입각해 그 같은 하느님의 진실하심과 주님께 충실한 모든 이들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 심판하러 일어나실 때... ‘일어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쿰’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강력한 권능의 역사, 섭리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이사야서 14장 22절. 참조) 이 구절은...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 중 한 사람도 잃지 않으시고 다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을 미루시고 계시지만, 마침내 때가 되면 더 이상 지체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하시어 의인은 영원한 생명을, 악인은 영원히 멸망할 것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베드로 2서 3장 9절. 참조)
* 셀라... 이것은 시편에 자주 나오는 음악 용어로서 노래를 부를 때 소리를 높이라는 지시어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 시편 76편 11절… "사람의 분노마저 당신을 찬송하고 그 분노의 나머지로 당신께서는 띠 두르십니다."
* 사람의 분노마저 당신을 찬송하고... ‘사람의 분노’란 하느님과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행하는 악을 말합니다. 악인들의 세력이 비록 아무리 강할지라도 저들은 마침내 하느님께 굴복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그 같은 광경을 바라보는 자들이 하느님의 강하고 위대하심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입니다.
* 그 분노의 나머지로 당신께서는 띠 두르십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 구절은 ‘주님의 적대자들이 아직 펴지 못한 분노를 주님께 살펴보시어 다시는 분노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예루살렘에 쳐들어온 아시리아 군대가 하느님의 진노의 손길에 빠져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 외의 다른 적대자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하지만, 결국 그들도 하느님의 심판 날에 아시리아 군대와 같은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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