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前 8호선 복정역 부근 所在, 동서울대학內 웨딩홀에서 올려진 우리 勞高指 同門會 事務總長 겸 山岳會長댁 婚事에 다녀 오다가 카톡으로 받은 저를 울릴 뻔했던 글이오니 바쁘셔도 '화장실이나 전철안에서'라도 꼭 읽으셔유.
'별 것 아닌 內容'이라고 느끼신 분은 꼭 전화주셔유. 010.5281.1425
♡ 제가 모셔서 확! 풀어드릴테니.
■ 먼저 오늘 하나님 祝福 받으시며 따님 結婚시켜 사위 맞이하신 총장님 내외분께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따님을 며느리로 맞이하신 댁에도 하나님 축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 지 도 자
스웨덴이란 나라가 있죠.
그들은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무려 5만달러가 넘을 뿐더러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알려졌을뿐만아니라 전 세계에서 국민 행복지수와 반부패지수 (국가청렴도 지수)가 최상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대유.
이들이 조상대대로 이렇게 부러운 형편이냐면
불과 80여년 前만 해도 이 나라가 가난, 실업, 빈부 격차, 좌우 갈등, 극심한 노사 분쟁 등으로 그야말로 절망의 나라에다, 특히 노동손실 일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노사 분규가 가장 극심한 나라였다네.
그런데 누가 무얼 어떻게 했기에 지금은 이처럼 全 세계 인류가부러워하는 스웨덴을 일구어냈단말인가?
모두가 꿈꾸는 최상의 복지국가로 변모되었는가? 그 내력을 들어 봅시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정치 지도자 즉 첫째 공로는 역시 그 나라의 인물였네요. 바로 '타게 엘란데르'라는 정치가랍니다.
● 우리나라 정치인들 떠 올리거나 거론하지 마셔유.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제가 태어났던즉 일제 壓政에서 해방됐던 다음 해 1946년에 이미 그의 나이 45살.
그때부터 무려 23년간을 총리직에 있던 '타게 엘란르' (1901~1985)는 재임 중,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율로 재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났답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죠. 민주주의 국가에서 20여 년의 장기 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1. 대화와 타협의 정치/우리현실,작태를 떠올리지 마셔유.
타게 엘란데르는 청년시절 급진주의 활동을 한 좌파 정치인이라서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왕과 국민들은 많은 걱정을 했고, 특히 노사분규로 힘들어 하던 경영자들의 거부감이 대단했겠죠.
그런데 취임 후 그의 행보는 전혀 달랐으니, 야당인사를 내각에 참여시키고, 경영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화를 한 후 노조 대표와 함께 3자회의로 노사 문제를 해결했다니 축복받은 나라죠.
그의 대화정치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목요회의' 라는 대화의 광장을 펼쳐논 결단였다네요.
매주 목요일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총리 별장에 政·財界, 勞組人事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며 기탄없는 대화를 털어놓게 했으며 그外 국회의원, 지방의원, 경총, 노총대표 등 나라의 청지기 ㆍ머슴으로 자처하는 일꾼들 중에 총리별장에 펼쳐진 '목요회의'에 안 가본 사람,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답니다.
'목요회의' 가 성공한 것은 보여주기式의 대화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 때문에 가능했답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복지제도도 이런 대화정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죠.
2. 그리고 그의 검소한 삶이 작용한거랍니다.
스톡홀름 남쪽 린셰핑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네유. 그곳에 '타게 엘란데르'의 아들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의 아들은 대학총장을 역임한 후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책으로 발간했더랍니다. 아들 부부가 들려주는 부모님의 이야기는 동화속의 이야기처럼 감동의 연속인 것은 바로 아버지 '엘란데르'는 최고 권력자이었지만 아주검소하게 살았으니 총리시절에도 이십 년이 넘은 외투를 입고 구두도 밑창을 갈아가며 오래도록 신었다고 기록되었다는군요. 검소함은 어머니인 총리부인도 똑같았답니다. 집권 23년 동안 국회개원식 참석하기 위해 입던 옷은 단 한벌 뿐이었다고 합니다. 아들 부부는 "부모님은 '국민을 생각하는 것'을 첫째 중요한 덕목으로 알고 실천해야된다고 말씀하셨다"며 검소함은 "두 분의 삶의 전부"라고 자랑스러워 했답니다.
3. 여기에 총리의 '특권 없는 삶'이 국민들에게 빛을 發하도록 자극한거랍니다.
“부모님은 총리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습니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습니다.”
임대 주택은 자신의 재임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였답니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답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랍니다. '타게 엘란데르' 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이라는 한적 한 시골 마을에다 집을 마련해 주었더니 총리 부부는 마을 호수옆에 있는 이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총리 시절 공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총리댁을 찾아왔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평소 지지자들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4. 마지막은 그의 정직한 삶이랍니다.
아들 부부가 또 다른 일화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어머니 '아이나 안데르손'에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는 고등학교 화학교사로 남편이 총리를 하고 있던 시절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삶을 살았던 시절 일화입니다. '엘란데르' 가 퇴임한 후 어느날, 부인이 정부부처 장관댁을 찾아갑니다. 그녀의 손에는 한 뭉치의 볼펜 자루가 들려 있었습니다. 장관이 반갑게 인사하며 방문 이유를 묻자 볼펜 자루를 건넷습니다. 볼펜에는 ‘정부부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총리시절 쓰던 볼펜인데, 총리를 그만 두었으니 이제는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들 부부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타게 엘란데르'는 떠났지만 23년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잡았고, 스웨덴을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政治人 이런 國民의 어머니가, 우리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지도자가 반드시 출현해서 G-2로 가는데 "길잡이"가 되고 "국민들의 자랑"이 될 것을 기대하고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우리도 전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주야장천 혈안인 그런 후임자를 선택한 나라가 아니라, 전임자의 죄를 가려서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후임자를 선택한 나라, 임기만료 후 형무소에 들어 갈 죄를 짓지 않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며 특히 나에게 축복받아 부러움 안고 사는 스웨덴의 현실을 알리는 좋은 글을보내주신 분과 오늘 따님 결혼시키셔 든든한 사위를 맞이하신 곽종열 총장님 댁은 물론 착하고 아름다운 귀수를 택하시어 며느님 맞이하신 사돈댁에도 和睦의 祝福 사랑ㆍ칭찬의 祝福을 祈願하며 하나님 攝理로 夫婦가 되어 百年偕老할 신랑 신부에게는 신부 칭찬ㆍ자랑, 신랑 士氣充電시키는 和睦製造器가 되어주기를 거듭 祈禱합니다.
오전 예배 후 교회에서오찬 후 결혼식 후 또 먹고 歸家 後 가족만찬
(가족이라야 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