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정 고무신의 추억 🌟
초등학교 시절의 최고 보물은 검정 고무신이 아니었을까요?
가히 국민 신발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검정 고무신은
전 국민의 신발이었습니다.
타이어표, 말표, 기차표, 왕자표, 만월표 등 수많은 상품이 난무하
기도 했고요.
그 중 타이어표가 질기면서 부드러운 최고의 상품이 아니었나 하
는 생각이 듭니다. 검정 고무신 계의 신화 같은 존재였습니다.
검정 고무신은 발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지만, 우리에겐 만능 장난
감이었습니다.
고무신 뒤축을 앞축에 구겨 놓고 입으로 효과음까지 불어 가면서
'붕 ~ 붕 ~'거리면 승용차가 되었습니다.
모래성을 쌓는 놀이를 할 때는 모래를 퍼 나르는 트럭이 되었고,
냇가에서 송사리를 잡으면 송사리 집이 되기도 했습니다.
웅덩이에 가면 개구리 새끼인 올챙이들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흐르는 개울에 앉아 둥실둥실 띄우면 나룻배가 되기도 했습니다.
꽃 속의 벌을 고무신으로 낚아채 빙빙 돌려 벌을 잡기도 했으니
곤충 채집기 역할도 했네요.
기차놀이, 신발 던지기 등 모든 놀이의 시작과 끝은 검정 고무신
하나로 해결했으니 어릴 적 고무신은 최고의 장난감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곤궁하니까 고무신을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았죠.
그래서 고무신이 찢어지면 실로 꿰매서 신기도 하고, 이도 감당
이 안 되면 때워서 신었습니다.
고무신 땜쟁이가 직업이었을 정도로 땜질은 다반사 였습니다.
고무신은 사람의 무게를 견디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 여러
번 찢기고 땜질을 당하는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꿰매이고, 땜질을 당하다 닳고, 낡고, 마지막엔 엿장수에게 엿
으로 바뀌어 우리에게 달콤함을 선사하면서 고무신의 일생은
장렬하게 마감을 합니다.
검정 고무신의 삶은 우리에게 끝없는 헌신이고 희생이었습니다.
이런 질곡의 과정을 거친 후 어렵게 마련된 새신을 신으면 세상
이 날듯 기뻤지요.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신기도 아까워 양쪽 손에 들고 다니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검정 고무신은 교실이나 교회 등 실내에 들어갈 때 벗어 놓으면
색깔이나 모양이 모두 같아서 잃어버리기 일쑤였고, 잃고 나서
맨발로 오면 제 물건 간수도 못하는 숙맥이라고 부모님께 엄청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신발주머니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불에 달군
못으로 고무신 앞코에 구멍을 뚫거나 실로 X표시를 하는 등 자
기만의 표식을 하면서 소중하게 다루었던 우리시절의 보물 1호
였습니다.
공을 차다 헛발질을 하면 공보다 고무신이 더 멀리 나가 우리를
웃게 하고, 땀에 찬 고무신을 벗으면 발 냄새가 왜간장 냄새처럼
묘하게 진동을 했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
우리에 삶의 애환을 이보다 더 진하게 공유한 물건이 있을까요?
신발장에 신발이 넘쳐나고 닳아서라기 보다는 싫증 나서 버리는
요즘 세상에 이젠 유물이 되어버린 닳고 헤진 검정 고무신의 숱
한 기억들이 시간의 벽을 허물고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가오네요.
우리들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
~~ 옮겨온 글 ~~
첫댓글 추억의 검정 고무신.
'검정 고무신'이라는
작품도 생각나네요!
그 당시 검정 고무신은
마루밑에 놓여 누구든 신으면 임자였지요~
감사드려요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 명절 보내십시오~
저는 많이는 안 신었고,
듣기는 많이 했습니다.
예, 넉넉한 한가위 되십시요.
마져요 정겨운고향풍경 검정고무신 추억입니다
예전에는 검정고무신을 많이 신었다고 들었습니다.
내고향 충북괴산 칠성면 외사리 어릴적에 많이 신었지요
아 ~ 그러셨군요! 고향풍경이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