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약밥으로 제사상 차려 보기>/구연식
제사상 차림은 고인(故人)이 평소에 즐겨 드시던 음식을 올려드려 명복(冥福)을 빌며, 불효함을 사죄하고 자손의 위안을 가져보는 자리이다. 모든 종교는 현실의 고된 삶을 보듬어 주고 미래의 세상을 여는 교리(敎理)로 일관하고 있다. 미래 세계는 현실의 인간보다는 영혼들의 영생 적 삶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제사(祭祀)는 원시 고대인들이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과 변화 즉, 경이로운 천재지변에 안식과 안락을 기원하는 동기에서부터 제사 의식이 시작되었다.
가정의례로 제사 문화가 정착되었을 무렵, 우리나라 고대국가에서는 서민들의 의식주 차이는 천차만별의 시대였다. 서민들의 삶은 헐벗고 굶주리면서 열악한 오두막에서 한 평생을 살았을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래서 조정(朝廷)에서는 한평생 괄시받으며 서럽게 살았을 서민의 삶을 치유해 줄 혼례식에는, 누더기로 찌들었던 새 삶의 출발인 혼례식 때 만 큼은 신분상승의 격으로 서민이지만, 신랑은 벼슬아치들의 관복인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신부에게는 공주의 옷차림인 족두리 비녀 그리고 활옷 착용을 허락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제반 상례의식(喪禮儀式)은 서민 각자의 살림에 맞게 치렀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자손은 부모님의 수의(壽衣) 한 벌은 꼭 새 옷으로 장만해 드렸다. 그리고 봉분(封墳) 작업도 유족들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이 합심해서 정성스럽게 마무리해준다.
제사상에는 서민들은 상상도 못 했던 수라상에만 올려 드렸던, 삼실과(三實果) 오채(五菜) 삼탕(三湯) 어적(魚炙) 육적(肉炙) 및 각종 전(煎)을 그리고 부잣집의 상징인 쌀밥과 고깃국을 올려드려, 생전에는 한 번도 못 해 드렸던 음식으로 속죄하면서 경건히 올려드린다. 아무리 가난하여 다른 것은 생략해도 제사상 밥은 잡곡이 섞이지 않은 하얀 쌀밥 외는 절대 금기사항이다. 그런데 새로운 현대 문화가 도래하면서 제사의식(祭祀儀式)과 제수(祭需) 품목도 산업사회에 알맞게 간소화 쪽으로 변천되어 가고 있다.
집안에 젊은 동생이 있다. 그 아우는 숙모님 제삿날에 하얀 쌀밥 대신 약밥을 지어서 올려드렸다고 한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서 “동생? 제삿밥은 하얀 쌀밥 외는 안 되는데…”하면서 의아한 말투로 반문했다. “아니 형님 어머니 생전에 쌀밥은 많이 드셔서 약밥으로 올려드렸는데요?”라고 애교 섞인 말투로 대꾸한다. 그러면서 음복(飮福) 할 때 자손이 먹을 음식이라면 적(炙)으로 올리는 닭과 돼지고기도 통닭과 족발을 올려드려, 조상님들도 맛있게 드시고 자손도 맛있는 음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실용주의적이고 나보다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티 없고 거리낌 없이 사는 동생이 조금은 부러웠다. 나는 천성이 소심하고 각본대로 살지 않으면 금방 머뭇거리는 나의 행동과 비교할 때 자유 분망한 동생이 그저 좋아 보였다.
그 옛날 제삿날이면 어른들은 아침부터 집안 안팎을 청소부터 한다. 장보기에서도 가장 싱싱하고 예쁜 것만 골랐다. 음식 장만 그리고 제수 진설까지 제사는 정성이라면서 음주가무는 물론, 경거망동도 일절 금지하며 온종일 추모 적 분위기로 숙연했다.
고리타분한 나의 꼰대 의식이 젊은 세대에 얼마나 뒤처져 있음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지금은 수의(壽衣)도 기성복으로 나와서 자손이 형편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입혀드린다.
묘지도 화장문화(火葬文化)가 보편화되면서 평장(平葬) 수목장(樹木葬) 그리고 영묘원(靈廟院) 등으로 간편화되고 사설업체가 대행하고 있다.
제사 음식도 주문업체가 등장하여 메뉴와 양만 정하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배달되고 있다.
제사도 자손들이 믿는 종교에 따라 종교시설에 위임하여 간소화되거나 생략하고 있다. 나는 집안의 종손(宗孫)이어서 지금도 제사와 차례(茶禮)는 물론이고 조상님께 시제(時祭)도 봉사(奉祀)하며 삭망(朔望) 성묘도 빼놓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석기시대의 사고로 사물을 보고 인간관계를 행동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최첨단 우주 시대에 조율시이(棗栗枾梨) 좌포우혜(左脯右醯)를 고집하고 제사 의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조해야 하나, 여러 가지가 망설여진다. 지금까지 나는 남을 위한 체면 유지의 의식구조였나, 꼭 그렇게 해야만 직성(直星)이 풀렸나 나 자신을 곱씹어 본다.
이 모든 제사 의식은 나의 세대에서 끝내고, 신세대에 알맞은 제사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제사(祭祀)는 손에 든 제수(祭需)가 아니고 가슴에 간직한 정성이라고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떠난다. 라고 했다. 결단의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며 진퇴양난의 장벽이 나를 가두어 놓는다. 가장 현명한 지혜의 결집이 필요하다.
(2024.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