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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20절: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이런 의인 요셉의 마음을 하나님이 왜 모르시겠습니까? ‘요셉아, 그건 죄악의 씨가 아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곧, 너의 백성을 구할 메시아다. 마리아는 너의 아내니 데리고 오너라!’
만약에 의인 요셉이 이런 처녀를 볼 줄 몰라서 버렸다면? 메시아를 버리고도 요셉이 진정 의인이 될 수 있었을까? 도덕적으로 바로 하는 의인도 좋지만 사람의 속에 무슨 영이 들어서 활동을 하는지 그것을 볼 줄 아는 것이 더 좋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다’ 온 세상이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다’ 전문적인 인간의 생리를 연구하는 박사들이 ‘마리아는 처녀가 아니라’ 해도 하나님은 ‘요셉아, 마리아는 처녀다!’
이것이 무슨 싸움입니까? 지식싸움입니다. 어느 지식을 따를 것이냐? 처녀가 아기를 배었는데 물어보면 다 처녀가 아니라고 그러지 누가 처녀로 알아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처녀라고 합니다. 영적 신앙사상의 세계에서는 처녀가 성령으로 아기를 배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전무후무한 단 한 번밖에 없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를 전제한 그 속에는 우리가 복합적인 계시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기본구원의 사역을 볼 수 있고.
둘째, 성화구원의 사역을 볼 수 있고.
성령잉태는 인간의 수단 방법이 아닌 잉태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어서 예정 계획하신대로 하신 것이지만 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는 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구원의 사역은 하나님의 독권적인 사역이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입니다.(엡 2:1-5)
성화구원 면으로 볼 때 세상으로 향한 소원 목적이 가득한 세상에다 신앙정조를 파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정조를 지키는 자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 신앙사상의 세계입니다. 신앙정조를 지키는 자에게는 진리지식이 들어 있고, 진리이치를 알게 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신앙정조를 버린 창녀의 신앙사상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모두 창녀신앙으로 나갈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나, 교회의 신앙이나 모두 진리 본질이면 성령이 임재한 교회지만 반대로 한 사람의 신앙이나, 교회의 신앙이나 모두 세상적이면 이는 음녀요 666입니다.
성령으로 아기를 밴 처녀 마리아가 평소에 무엇을 꾸미고 살았을까? 육모냐, 심모냐, 영모냐? 이세벨과 그의 딸 아달랴는 무엇을 꾸미고 살았느냐? 영모냐, 심모냐, 육모냐? 불신세상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꾸미고 다듬고 살고 있느냐? 영모냐, 심모냐, 육모냐? 어느 미모성이 영원히 가는 것이며 천국에서 알아주는 미모인가? 영모냐, 심모냐, 육모냐? 영모, 심모, 육모 중 어느 모양을 다듬고 사는 자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고 있겠느냐?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주의 백성이 있고, 주의 백성이 아닌 자가 있고. 그러나 주의 백성이 아닌 자를 단순히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주의 백성이 된 자는 죄에서 구원이 된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이냐? 선악과 따먹은 후에 불신세상에서 행해지는 일반 도덕성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그 죄를 말씀하심이냐?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죄가 무엇이냐? 주의 백성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 앞에서 죄를 찾으면 안 되지요. 세상은 선악과 따먹은 후 정죄 받은 세상인데 세상에서 주의 백성이 죄를 찾을만한 기준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합이 두 정탐꾼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군인들 앞에 거짓말을 하여 그들을 살렸습니다. 라합이 누구의 기준에서 보아야 바로 된 것입니까? 선악과 따먹은 저주받은 기준에서 그 사건을 보게 되면 보는 그 사람은 자기의 구원은 없습니다. 자기의 구원을 죽이게 되는 셈입니다.
자기 백성에게 ‘죄가 아니다’ 라고 선언하신 분은 주 하나님이십니다. 자기가 주의 백성이라고 인정이 된다면 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찾고 고쳐야 주의 백성입니다.
주의 백성의 죄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것이 죄입니다. 인간 자기를 만드신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알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생명과 안 따먹은 것, 말씀 불순종이 죄입니다. 영은 즉시 죽었고 이성과 몸은 점차적으로 죽어가고 있고 필연적으로 죽습니다. 말하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 행동하는 인간인 우리는 점차적으로 죽어갑니다. 주님은 이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라!
오셔서 하실 일은 기본구원을 완성시키는 일입니다. 기본구원을 이룰 자격자로서, 십자가를 지는 자격자로서 기본구원이 얼마나 힘듭니까? 인간 상상으로는 안 됩니다.
그 33년의 삶의 표준, 삶의 기준, 삶의 척도, 삶의 잣대는 오직 하나님 말씀순종입니다. 하나님 최고자의 지공법에 만족을 이루어 드리는 삶입니다. 이것은 기본구원에 속한 것입니다.
둘째, 성화구원의 이치를 넣은 삶이어야 합니다.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삼킨바 되어 영생으로 살아나는 것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주의 백성이 기본구원을 얻은 후에 영적 기능과 지능 면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도덕성과 하나님의 지혜지식성과 하나님의 능력성이 자라나고 성장하는 구원도리가 들어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것도 죄에서 구원에 속합니다.
주의 백성이 이 이룰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기본구원은 얻어서 지옥에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하나 기본구원을 얻은 후의 모든 삶은 세상적 목적적 육의 생각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두 사망성공이 됩니다. 이것은 심판이 됩니다.
이 삶을 살지 말라고 말씀도 성령도 사건도 보내주셔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삶 속에는 죄에서 구원하시는 복합적인 진리이치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하는 것은 말은 맞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를 배운다’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바로 배우지 못하면 자기 실력은 평생 자라지 못합니다.
깨달음의 실력은 자기의 영원한 존귀 영광과 직결이 됩니다.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예수 믿으면서 마귀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르면 이용당하고 심판 받을 짓만 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신앙은 감정이 아니고, 배짱이 아니고, 말로 ‘믿사오니’가 아니고 자기를 진리로 인격화시키는 것입니다. 먼저 바로 듣고, 바로 배우고, 이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게 되고 자기의 신앙 믿음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게 됩니다. 사람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완전히 눈이 감긴 소경이 됩니다.
‘죄에서 구원’ 이라는 말속에는 기본적인 사죄 칭의 새 생명이 들어 있고, 또 성화구원의 성장이 들어 있어서 자동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교훈 속에는 반드시 ‘죄에서 구원’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데 구원의 개념을 파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적 구원 - 구원을 받았다 - 기본구원.
현재적 구원 - 구원을 이루라 - 성화구원.
미래적 구원 - 구원을 얻으리라 - 사건에서. 천국입국 구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子)권은 기본구원에 속하고, 또 소유구원, 연관구원, 영광구원이 있는데 이것은 성화구원에 속합니다. 그래서 어느 성경구절을 가지고 어느 구원을 말하느냐? 만일 성경구절은 성화구원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기본구원으로 푼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성화구원의 구원도리를 가르치는데 일반개념으로 도덕성을 말한다면 그것도 큰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모두 천국 갈 사람들이요, 기본구원은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진리이치로 성장입니다. 그런데 자꾸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예수 믿으면 뭐든지 잘 된다’ 하며 간증이나 시키고, 무슨 행사나 하고, 교회에서 성경 들고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학술 문법적으로 서론 본론 결론이 잘 짜여져 있어도 하나님의 계시성이 없고, 하나님의 의사성이 없고, 하나님의 진리이치가 없다면 헛소리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가 이방종교와 같은 차원의 하나의 종교에 불과하게 되고, 신관은 이방종교적인 신관과 같은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으로 말한다면 거짓복음운동, 질적으로 말한다면 비 진리운동, 세상운동, 영적으로 말한다면 악령운동이 됩니다. 간판은 아무리 무슨 교회의 간판을 달았다고 해도 성경사상과 전혀 질이 다른 복음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영원 궁극적 구원역사가 아니면 그것은 기독교 복음의 본질적인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교회에게 일반 기준적인 개념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칠 수가 없고, 또 그렇게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요, 하나님 앞에서 잘 살고 못 살고 하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망한 것입니다. 방향 면에서도 망했고, 목적적으로도 망했고, 질적으로도 망했고, 인격적으로도 망한 것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고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인연관 관계적으로, 활동적으로, 사용적으로 전부는 정확하지를 못하고 죄 투성이입니다. 암만 법을 만들고 기준을 만들고 지키라 해도 안 됩니다. 왜 안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에서 선악과로 인해 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타락된 순서는 물질 다음에 인간을 놓고 인간 다음에 하나님을 놓고 사는 것입니다. 생명과를 안 먹은 것이 죄이고, 선악과를 먹은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성경을 가졌으니 성경으로 생명과인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인데 영은 중생은 되었지만 생명과는 먹지 않고 여전히 소원 목적 취미성은 세상적인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것이 죄입니다. 성경구절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 말씀을 축소시키면 십계명이요, 십계명을 축소시키면 ‘하나님 → 인간 → 물질’이 됩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 말씀이요, 하나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는 곧, 우리의 온전이요 완전이 되는 것입니다.(딤후 3:16, 17) 십계명을 풀거나, 하나님 말씀을 풀거나, ‘하나님, 인간, 물질’을 풀거나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의 지혜 지식성과 도덕성과 능력성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대신관계
하나님과 나,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의사가 아닌 내 의사와 뜻대로 한 것이 많고, 또 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에 적중이 아니고 빗나간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의사에 적중입니다.
2. 자아관계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전제하고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살았느냐? 옛 사람과 나, 새 사람과 나, 어느 나를 참 나로 알고, 어느 나를 고통을 주고 살았느냐?
성화구원, 이룰 구원의 측면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에 날마다 삼킨바 되는 삶이었고, 33년 동안 전부는 살린 것이지 죽을 것이 하나도 없는 분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우리처럼 생각한다면 예수께서도 놀고 먹기 좋아하고 유람이나 슬슬 다니면서 누릴 목적으로 살았다면 삼일만의 부활은 있을 수가 없고 택자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삶은 능동적으로 택자의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도 자타의 성화구원에 연관관계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대하여 책임 있는 삶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3. 인인관계(대인관계)
다른 사람, 남과의 관계인데 내가 무엇으로 기준하여 남과의 관계성을 가지느냐? 진리냐, 물질이냐, 자기의 명예 영광이냐? 또 부모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관계하여 무엇을 찾도록 권하고 있느냐? 진리냐, 물질이냐?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냐? 주님은 어떤 관계로 맺어 나가더냐?
4. 대사관계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일을 하라고 하느냐? 왜 일을 나에게 맡기느냐? 일에 대한 목적이 무엇이냐? 일 크게 잘 하여 잘 살고 잘 먹게 하기 위함인가? 일을 대하는 나의 사고방식이 어떤 태도인가? 어디다가 이해 타산 평가와 판단을 두느냐? 예수님께서는 어디다가 두었기에 성전도 부쉈느냐? 하나님은 징계를 하셨는가?
5. 대물관계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물질세상을 왜 만드셨습니까? 나에게 주신 물질을 어디다 쓰라고 주신 것입니까? 물질관계성을 어떻게 가질 것입니까?
① 인간구원을 위한 천국복음이냐?
② 자기 노후대책을 세우고 누릴 목적이냐?
A. 물질세상을 자키고 다스림에서.
B 자기에게 주어진 물질에 대해서 사회적 개인적 책임추궁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선악과 따먹은 불신세상은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성경을 기준해서 보면 ‘1. 물질→ 2. 인간’ 이런 순서로 되어 있고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불신세상이 이 순서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종교계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신앙, 불신세상까지 알아준다는 신앙사상을 보면 그 사상적 순서가 ‘1. 물질→ 2. 인간→ 3. 하나님’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밑에 가서 있느냐 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종으로 자기의 육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부려먹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말로는 하나님은 첫째요, 하나님이 제일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앙 같으나 사실은 인간의 뜻을 잘 이루어주는 그런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주격이 바뀐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 유전죄의 사함과,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의 영을 영원히 죽지 않을 영으로 살림과,(중생) 그 다음에는 진리지식과 성령의 영감을 가지고 인격적 신분적 위치적 순서적으로 ‘1. 하나님→ 2. 인간→ 3. 물질’ 이렇게 이해 타산 평가적으로 사고방식이 그렇게 되도록 교훈을 하시고 사건을 들어서 가르치시고 신앙이치가 인격적으로 진리 실상화 되도록 그렇게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33년의 삶도 그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살으라고!
이 진리이치를 진리신앙 지식적으로 알지 못하고 ‘무조건 믿사오니’ 하며 자기의 육신 생활에 관한 것, 인류 육신생활에 관한 것을 구하는 신앙으로 나가고, 자기의 감정과 흥분을 일으키고 무당 푸닥거리 식으로 나가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액면적 역사로만 가르치면 일반 도덕적인 신앙이 되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는 결국은 외식운동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본질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서 이탈된 기독교는 한 마디로 말하면 미신적이고 세상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그네로 잠깐 있는 동안에 기본구원 문제와 이룰 구원, 성화구원 문제만큼은 꼭 해결을 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