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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10:47양승태 이재용 무죄 선고에 대한 말장난 답변
싸늘하고 썰렁한 한동훈 답변
지난 2월7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나왔다. 그는 자신이 서울중앙지검 차장으로 주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수사의 1심 재판에서 검찰이 66-0으로 참패한 것에 대하여 인정이나 사과 대신 싸늘하고 썰렁한 입장을 내어놓았다.
*김경태 MBC 저널리즘책무실 국장: "양승태 대법원장 47개 혐의 다 무죄로 나왔고, 이재용 19개 혐의 통 무죄로 나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동훈: "재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시는 게 맞을 것 같구요. 이 두 가지 사안이 굉장히 큰 사안이었고 ‘여러 가지 의견들이 많은 사안이었다’는 것은 제가 인정하는데요, 아직 1심 단계이기 때문에 ‘제가 잘 지켜보겠다’ 이 정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국장: "검찰에서 제출한 증거에 대해, 압수수색에 문제가 있어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수사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한동훈: "한겨레에서 굉장히 응원하는 보도를 당시 해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웃음), 법적인 판단에 대한 기준이라든가 근거는 굉장히 법리적인 문제입니다. 추후 잘 지켜보시면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국장: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서 대법원의 수사의뢰로 진행된 사건이라고 표현하셨는데?"
*한동훈: "사실상의 수사의뢰로서 관련 자료를 공개적으로 넘겨 받았었죠."
*김 국장: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세요."
*한동훈: "이미 있었던 이야기이고 많이 보도하셔서 아시겠습니다만, 당시 대법원에서 대법원의 내부자료를, 검색해서 추출한 자료를, 문제 있는 자료들을 수사당국에 제출했던 사안이었고 그걸로 촉발된 사안이다 라고 말씀드렸고, 말씀드린 것처럼 굉장히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다, 재판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개입, 어느 정도의 개입을 어디까지 단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그리고 그게 전례가 없었던 사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견과 평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이우탁 연합뉴스 선임기자):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에서 무죄선고가 나왔는데 당시 수사 책임을 맡았던 이복현 금감원장의 책임을 묻는 플로어 질문이 많다. 또 양승태 무죄 판결에 대해서 검찰이 항소했는데, 항소 포기를 건의할 생각은 없었는지."
*한동훈: "여당대표가 항소포기를 건의하는 건 대단히 부적절할 것 같구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는 사안이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치만, 그 당시에 수사하는 과정에서 제가 그 사안들을 다 관여한 건 아닌데요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평가가 굉장히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은 제가 잘 알고 있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평가가 더 정확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방헌법으로 '이중위험 금지' 원칙을 정해 놓은 미국에서라면 검사는 1심 무죄에 대하여 항소를 할 수 없으니 한동훈 위원장은 저렇게 빠져나갈 수가 없다. 피의자보다 검사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한국 형사법의 뒷받침을 받아 한 위원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 때까지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다"고 밀고 나갈 모양이다. 무죄를 받은 사람이 사법부의 수장과 한국 최대기업의 총수라도 책임 당사자가 특수부 검사 출신이니까 이렇게 버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확산되면 머지않아 종북 운동권과 함께 특수부 검사들은 정치를 못하게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지 모른다. 일본에선 검사 판사 언론사 간부는 정치를 안 하는 것이 불문률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사 재판 보도를 했다는 불신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직업윤리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역사적 최후진술
사법부 수장으로 있다가 물러나자 마자 구속까지 당했던 70대 노인 양승태(梁承泰) 전 대법원장은 재판을 받던 중 폐암 수술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은 네 명이나 구속되었지만 전 대법원장 구속은 처음이었다. 온화한 성품의 그는 작년 가을 최후진술에서 신병(身病) 이야기는 빼고 인생의 덧없음을 이렇게 실토했다(벌률신문에 실린 全文에서 뽑음).
<저는 법관의 직을 천직으로 삼고 4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다른 데 눈을 돌림이 없이 거의 全인생을 사법부에 바쳤습니다. 사실 대법원장이라는 직책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고, 행여 지명이 될까 봐 일부러 국외 출국까지 하며 이를 피하고자 했으나 결국 소명을 거절하지 못하고 맡게 된 것입니다. 저는 법관에게는 모든 면에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살아온 생애의 막바지에 참으로 기가 막힐 일로 신병구속까지 겪어가며 치욕 속에 이렇게 법정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고명한 승려이자 시인인 무산스님의 '아지랑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끝내 삶도 죽음도 내 던져야 할 이 절벽에 /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 우습다 /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지금의 내 마음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증거관계와 법리를 따지고 변론하는 것 자체가 참 부질없고 구차스러운 느낌마저 듭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보다는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의 본질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데 최후진술의 대부분을 할애하였다. 잘 쓴 논문 같고, 운동권 인사들이 감동적 최후진술을 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 할 때 쓰던 글을 연상시킨다.
양(梁) 전 대법원장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치세력에 의한 사법부 공격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처럼 노골적이고 대규모적이며 끔찍한 공격은 일찍이 없었습니다>고 했다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무고한 법관들이 검찰에 마구 불려가 치욕과 수모를 당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법관들이 상처를 입고 법원을 떠나야 했습니까? 고스란히 검찰로 넘어간 법원의 내밀한 자료, 특히 법관의 신상 자료가 얼마나 많으며 무엇보다, 왜곡과 가짜뉴스로 인해 사법신뢰는 그 얼마나 훼손되었습니까? 이렇게 사법부를 초토화해 놓고 그 모두를 법관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논고하고 있으니 참 어안이 벙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