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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문 : 제2계명이 금지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답 : 제2계명에 금하는 것은 모양이나 그림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하지 아니한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제 52문 : 제2계명을 지키라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답 : 제2계명을 지키라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가 되시며,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홀로 자기에게만 경배하는 것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성구 : 행 17:29
우리는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10계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이니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으니까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오셨는가? 한국 사람으로 오셨는가?의 문제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랍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오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한국 사람으로 한국 땅에 오셨다면 어떻게 되셨을까요? 한국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믿고 섬겼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과 똑같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이 싫어하실 수밖에 없는 말씀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느 나라에 어느 사람으로 오셨는가?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론은 어느 나라에 오셨다고 해도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오신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십자가에 죽인 것처럼 세상사람 모두가 예수님을 미워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아시면 됩니다.
계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께 계명을 받았지만 그 계명을 잘 지켰을까요 지키지 못했을까요? 예,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내리신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계명을 받은 이스라엘은 복을 받아야 할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미움을 받고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일까요? 계명을 지키지 못했으니 당연히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말고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켰을까요 지키지 못했을까요? 지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계명들은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지킬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명을 누구에게 주셨는가?’의 문제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음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래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1계명에서 우리가 예배하고 섬겨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만 신으로 섬기고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도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위해 삽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1계명도 지키지 못한다고 해야 하겠죠?
그러면 2계명은 어떨까요? 2계명은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거기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마음대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고, 또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형상을 만들어 절하고 섬기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예배당을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으로 생각하고, 집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보다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예배당이 하나님이 미워하는 형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장소와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에 주일에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복을 받고 천국 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복을 받게 되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함께 모여서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은혜를 찬송하는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는 예배당에 모여서 드리는 것만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를 잊어버리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당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장난 치고 떠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배 시간에 장난치고 떠들면 다른 친구의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되겠죠?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이라는 날을 정해서 신자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을 중요한 신앙생활로 여겨야 합니다.
질문 : 1.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누구도 지킬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예배는 무엇입니까?
4. 신자가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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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3문 : 제3계명은 무엇인가요?
답 : 제3계명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를 심판하시리라 하신 것입니다.
제 54문 : 제3계명에 명령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답 : 제3계명에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호칭과 속성과 규칙과 말씀과 행사를 거룩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라 하는 것입니다.
성구 신 28:58,59
공부할 내용
하나님은 세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십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배웠을 것이에요. 혹시 아빠 엄마 이름을 막 부르는 어린이가 있습니까?
자식이 부모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없죠? 만약 다른 사람에게 부모님의 이름을 말해야 하는 경우에는 ‘○ ○자○자 되십니다’라고 하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습니다. 어른들끼리도 서로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않는답니다. 어른도 아주 친한 친구끼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친구도 아닌데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아주 불쾌하게 생각한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 이처럼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뜻일까요? 실제로 유대인들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어린 사람이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라고 말할 때도 우리처럼 또박또박 ‘여호와’라고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여흐~’라는 식으로 발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기록할 때도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면 손을 씻고 기록을 했다고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주 공경하는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선생님이 읽을테니까 따라 하세요.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을 구해 내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너를 보낸 분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 할까요’라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이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이름 하면 ‘하나님’ 또는 ‘여호와’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르쳐주신 이름은 아주 길죠. 또 이름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라는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의 이름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아마 세상 어느 나라에도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에요. 이처럼 사람에게 이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사람에게 이름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기죠? 선생님이 여러분을 부를 수가 없게 되고, 여러분도 서로를 부를 수가 없게 되겠죠? 여러분께 이름이 없다고 하고 한번 서로를 불러 보세요. ‘야’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을 때‘야’라고 하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다 돌아보게 될거에요.
이것을 보면 사람에게 이름이 있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자기들 방식대로 이름을 지어서 사람과 사람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분이시죠?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또 다른 하나님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하나님과 같은 신이 아주 많다면 신을 구별하기 위해서 ‘하나님’또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겠지만 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은 신을 구별하여 부르기 위한 호칭으로 주어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많이 어렵죠?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고생을 하지 않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내시는 것이지 편안하고 잘 살게 해주시려는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함께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르면 ‘우리가 애굽에서 고생하지 않고 잘 살게 해주세요’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천국에 가게 하기 위함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잘 믿고 천국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것도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잘 믿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서 공부 잘하고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는데, 우리는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부른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고 욕되게 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멋대로 부르면서 욕되게 하실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3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너희는 모두 나를 욕되게 하는 자들이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명을 통해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질문 : 1.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은 무엇입니까?
2.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4.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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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5문 : 제3계명에 금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답 : 제3계명에 금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 것을 더럽히거나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 56문 : 제3계명을 지키라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답 : 제3계명을 지키라 하신 이유는 이 계명을 범하는 자가 비록 사람에게는 형벌을 피할지라도 주 우리 하나님은 저희로 하여금 그 의로우신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구 : 말2: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공부할 내용
사도행전 4:12절을 찾아서 같이 읽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지금 읽은 구절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었던 베드로 사도께서 한 말인데, 베드로 사도가 강조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할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 보내셨고, 예수님 말고 또 다른 존재를 구원자로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 한곳 더 찾아볼까요? 로마서 10:13을 찾아서 같이 읽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는 누가 쓴 성경일까요? 사도 바울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자로 보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방금 읽은 성경 말씀처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하겠죠? 이것만 생각하면 구원은 정말 쉽습니다. 주의 이름만 부르면 되니까 교회 나올 필요도 없고, 귀찮게 예배드려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 나오지 않고 집에서 ‘예수님’ 또는 ‘주여’라고 소리쳐도 구원 받는데 교회까지 다녀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 그러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선생님이 ○○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입을 벌려서 ‘주여’ ‘예수님’라고 부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되는 것일까요?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면 말한 대로 귀찮게 교회 나와서 예배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꼭 교회에 나와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든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교회에 나올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든 예수님 이름을 부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입을 열어서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다 아시죠? 아는 대로 다 말해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세상에는 누구도 여러분 죄 때문에 죽어주지 않습니다. 예수님만이 그 일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구원 외에 또 다른 일도 해주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자 되게 해주기 위해 오셨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틀린 말이죠.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전교 1등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오셨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당연히 틀린 말입니다. 세상에 보면 예수님을 믿어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많고, 예수님을 믿어도 공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생각할 때 구원 말고 부자 되게 하시고, 성공하도록 도와주시는 그런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구원도 주시고 거기에 덤으로 세상의 복도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덤이 뭔지 알죠? 만원에 10개주는 빵을 사는데 주인이 하나를 더 얹어 주는 것을 덤이라고 말합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 외에 또 다른 덤을 주기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 가난하게 살고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더 잘 믿고 성경도 더 많이 알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아는 것은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우리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자로 살게 해 주세요’라고 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마음 두지 않고 예수님에게만 마음 두고 예수님만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이처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일하실까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구원하실까요? 그것도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실까요? 우리가 예뻐서 그러실까요?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는 전혀 예쁘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죄만 짓고 사는데 예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부르고, 우리를 지옥 보내지 않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찬송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예수님의 은혜와 구원에 감사하면서 예수님을 부르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돈도 많이 주시고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다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의 돈을 다 가져서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구원이죠. 우리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죄가 용서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것으로 안 되는 일이 예수님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신자는 예수님이 하신 일만 생각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죠.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성공을 위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세요. 부자 되는 것보다 구원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자연히 예수님을 귀한 분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질문 : 1. 예수님은 어떤 일을 위해 오셨습니까?
2.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성경을 알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3.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4.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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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문 : 제4계명이 무엇인가요?
답 :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한 날로 지키라 엿새 동안에 네 모든 일을 힘써 하고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니 너나 네 자녀나 네 노비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 6일 동안에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제 칠일에 쉬셨으니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삼고 복을 주셨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제 58문 : 제4계명에 명령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답 : 제4계명에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 명하신 일정한 때를 그의 앞에 거룩히 지키는 것이니 특별히 칠일 중에 하루를 종일토록 하나님께 거룩한 안식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구 : 사 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공부할 내용
오늘은 안식일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한 날로 지키라’는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제4계명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으로 일을 하지 말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는 누구도 일을 하면 안 되었는데, 자녀나 종도 일 하면 안 되고 심지어는 가축이나 집에 찾아와 머물고 있는 손님도 일을 하면 안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안식일에 일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아주 미워하셨답니다. 과연 안식일이 무슨 날이기에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이렇게 철저하게 금하신 것일까요?
지금은 일주일에 5일 일하고 토요일과 우리가 주일이라고 부르는 일요일은 쉬는 날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토요일과 일요일은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토요일도 일을 하고 학교에도 갔습니다. 대신 오전에만 일을 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좀 더 푹 쉬면 일에 능률이 오른다고 해서 나라에서 이틀을 쉬게 한 것입니다.
물론 형편에 따라서 토요일도 일요일도 일하는 회사가 있겠지만, 사람이 쉬지 않고 계속 일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몸이 견디지를 못하고 병이 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정하신 것을 6일 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을 쉬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계속 일만 하면 몸이 피곤해지고 병이 나니까 안식일 계명을 세워서 쉬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안식일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시작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연관이 있습니다. 창 2:2-3절을 찾아보세요.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은 세상을 육일 동안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여섯째 날에 가축과 짐승과 땅에 기는 것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셨다고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여섯째의 다음 날인 일곱째 날에는 만드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창2장 말씀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만물을 만드신 것은 여섯째 날에 모두 끝났으니까 ‘여섯째 날에 마치셨다’고 하는 것이 맞는데, 일곱째 날에 마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면 일곱째 날에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다는 뜻이 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쉬셨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느라고 피곤해서 쉬신 것일까요?
하나님께는 우리와 같은 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처럼 몸이 있으시고,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 우리가 일하는 것처럼 몸으로 일하셨다면 피곤해서 쉬셨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몸이 없는 영이시기 때문에 피곤하신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피곤해서 쉬셨다는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하나님 마음에 꼭 들어서 기뻐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만드신 세상을 보면서 기뻐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하나님의 안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드신 세상이 하나님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에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육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이 포함 된 일곱째 날에 마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곱째 날을 복주셨다고 하는데, 그것은 세상이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의 모습 그대로 존재해서 하나님의 안식이 계속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상을 보시면서 안식하지 못하신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이 진흙으로 멋있게 사람을 만들고, 동물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여러분 마음에 꼭 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만든 것을 보면서 아주 좋아할 것 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만든 것을 누가 손을 대서 흠집을 냈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뻐했던 것이 사라지고 화를 내겠죠?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그렇게 망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누가 망가뜨렸을까요? 마귀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세상을 망가뜨렸죠? 하와를 유혹해서 그 마음에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욕심을 집어넣어 선악과를 먹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만드셨을 때는, 사람에게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없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계속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것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 다시 말해서 안식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내시고 평생 땀 흘리며 고생하고 일을 해야 먹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안식과 연관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고 쉬라는 것은 일을 많이 하면 몸이 피곤하니까 쉬라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하나님의 기쁨을 잊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으로 먹고 살고 있음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안식일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쉬지 않고 일을 계속 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일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욕심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일까요? 우리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잘 산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믿는 것이고, 천국도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잘 믿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가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질문 : 1.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칠일 째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2. 하나님이 칠일 째에 안식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안식은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4. 안식일에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까?
5. 어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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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문 : 하나님께서 칠일 중에 어느 날을 안식일로 명하셨는가요?
답 :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시기까지는 하나님이 7일 중에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명하셨고, 그 후로부터 세상 끝날에 이르기까지는 이레 중에 매주의 첫날을 명하셨으니 곧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입니다.
제60문 : 어떻게 하여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까?
답 :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날 종일을 거룩하게 쉬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날에 합당한 여러 가지 세상일과 오락까지 그치고 그 시간을 개인적으로 또한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는데 사용할 것이요, 그 외에는 부득이한 일과 구제에 관한 일에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구 : 느 13:15-17
공부할 내용
일주일은 칠일입니다.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칠일이 일주일인데, 하나님은 맨 마지막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법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십계명 중의 제 사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이 있는데 무엇일까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육일 동안은 힘써 일하고 안식일인 칠일에는 본인은 물론이고 종이나 가축, 집에 유하고 있는 손님, 자녀까지 아무도 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칠일에 안식하셨으니까 너희도 일하지 말고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58:13절에 보면 안식일은 거룩한 성일이니까 오락을 행하지 말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고 쉬라고 하셨을까요? 쉬지 않고 일만 하면 몸이 피곤해지고 병이 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쉬라고 하신 걸까요,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사람이 쉬지 않고 일만 하면 병이 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건강을 걱정해서 안식일에 쉬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돈을 많이 벌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따라서 육일 일한 것보다 칠일 일하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도 돈을 많이 벌려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돈 벌려는 욕심 때문에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게 되면 말한 대로 몸에 병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안식일에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신 이유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욕심입니다. 돈을 많이 벌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하루를 쉬면 그만큼 돈을 벌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에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 저희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는 믿음이 아닌 것이 됩니다.
안식일 계명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식일 계명을 주신 이유입니다. 때문에 비록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안식일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없고 안식일을 지켰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오락도, 사사로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안식일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시고 먹을 것, 마실 것을 주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 되게 하셔서 천국에 갈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에 자기 즐거움을 위한 오락과 사사로운 말을 삼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돈을 많이 벌어서 지금보다 잘 살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우리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의 마음도 없게 됩니다. 대신 ‘하나님 왜 저는 저 아이가 갖고 있이 없어요?’라는 불만만 있습니다.
마치 부모님이 여러분을 잘 보살펴주고 키워주면서 매일 굶지 않게 먹을 것을 주시고, 공부도 하게 해주시는데 친구가 가지고 있는 좋은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친구 아빠가 내 아빠였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요? 가장 먼저 숨을 쉬기 위해서 공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물도 필요하고, 햇빛도 필요합니다. 만약 햇빛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식물이 자라지 못하면 우리 몸에 필요한 채소를 먹을 수가 없게 되겠죠? 이처럼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되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셨고 공짜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짜로 받는 것이 미안하니까 하나님께 돈을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제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이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안식일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고 쉬라고 하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육일 동안 힘써 일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일 동안 일할 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고야’라는 마음으로 일하다가 안식일 하루 쉬었다고 해서 그것을 안식일 계명을 지킨 것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다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생활할 때 무엇을 먹고 살았습니까? 만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배가 고프니까 ‘우리를 애굽에서 살도록 그냥 놔두지 왜 광야로 인도해서 굶어 죽게 합니까?’라고 원망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게 하겠다’고 하시고 주신 것이 만나입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면서 먹을 만큼만 거두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나를 아침까지 남겨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아침까지 만나를 남겨두었을까요? 만나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나를 남겨 두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수중에 돈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침까지 남겨둔 만나를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게 해서 먹을 수 없게 하십니다. 왜 남겨둔 만나를 먹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만나를 먹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만나를 주신 하나님이 자신들을 살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나를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게 하십니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에는 만나를 먹지 못하고 굶었을까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안식일에 먹을 것 까지 두 배로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때 거둔 것은 안식일에까지 남겨두어도 벌레가 생기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안식일에 혹시 만나가 있나 해서 만나를 거두러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에 만나를 주지 않으신 것은 만나에 욕심 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 덕분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질문 : 1. 안식일에 일하지 말고 쉬게 하신 것은 무엇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까?
2.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이스라엘에게 주신 만나를 아침까지 남겨두면 먹을 수 없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왜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을까요?
5.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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