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타이거”라는 소설에서 저자는 “아름다움을 모르는 삶이야말로 노예의 삶”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존재로써의 인간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원을 마시고 소화시키고 흡수하여 그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활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삶을 이 소설의 저자는 이와 같은 문장을 통하여 노예의 삶이라고 단정합니다. 아무리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지라도 혹은 갈등이나 고통이 없는 편안한 삶을 누릴지라도 어떤 것에 대한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삶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겠지요. 결국은 저자는 감동이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삶이라고 역설하고픈 것이리라 추측됩니다.
이우환 작가의 “점으로부터”라는 작품 앞에서 아름다움이나 감동이란 것에 대하여 한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떠한 장면이나 사건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크든 작든 간에 처음에는 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점은 점점 사라져가고 마침내는 여운만이 남겠지요. 시간이 더 지나가면 그 여운마저 소멸되어 버릴 것입니다. 인간의 제한된 기억 저장 용량상 우리가 느낀 충격이나 감동은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림에서의 점들이 점점점 사라져가는 것처럼…
그렇다고 그 사라짐이 허무함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소멸되었다고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한 순간의 감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달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을 보고 어떤 어머니가 궁휼의 마음이 샘솟아 소중한 물건을 아낌없이 주었다면 그 광경을 지켜본 아이는 그 어머니로부터 감동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도 있습니다. 슈바이처처럼 인류애를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게 거대하지는 않더라도 이웃을 사랑하며 양보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 어머니가 가난한 사람에게 받은 한 순간의 감정은 잠시 동안 크게 다가왔다가 점차적으로 작아져서 마침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갈지라도 그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전해져서 더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우환의 그림은 사라짐이 영원한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보이고 느껴지지 않지만 기하적으로 확대될 수 있고 다른 형태의 감동으로 변형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함의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에너지 보전의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에너지의 형태는 변해도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이 말이 진리이겠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감동이 없는 삶은 산술적인 결과만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먹은 대로 에너지가 생성되고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힘을 내어 일을 하고 그 일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다시 에너지원을 사서 먹는 단순한 순환 반복적인 삶!!!. 그것이 바로 화이트 타이거의 저자가 말하는 노예의 삶이 아닐는지….그러나 감동할 줄 아는 삶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퍼져나가서 더 크거나 새로운 감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인간에게만 허용된 아름다운 권리가 아닐까요?
첫댓글 감동이네요~글도 그림도..
좋은 글 올려주시니 잘 읽습니다.^^*
쓰시는 글마다 감탄을하게되는것같아요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0^
좋은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이우환의 작품에서 "점"의 의미를 저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 참 좋습니다.
사라지는 듯 다시 살아나는 점의 의미는 참 다양하고 깊은 것이었네요.
"無는 無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有의 창조이다. "
이야…체리언니의 깊은 생각 ~잘 읽고 갑니다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