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현풍(玄風)은 대구광역시 달성군(達城郡) 현풍면 일대의 옛 행정구역이다. 신라 때에는 추량화현(推良火縣) 또는 삼량화현(三良火縣)이라 하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이 현효현(玄驍縣)으로 고쳐서 화왕군(火旺郡: 昌寧)에 속하게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현풍현(玄風縣: 玄豊縣)으로 개칭하여 밀성군(密城郡: 密陽)의 관할로 두었다가, 1390년(공양왕 2) 밀성군의 구지산부곡(仇知山部曲)을 분할받아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다.
조선시대에도 현풍현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현풍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북도 현풍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현풍면으로 분할 축소되어 대구부로 통합되면서 현풍군은 폐지되었다. 1941년 대구부가 대구시로 개편된 이래 1995년 대구광역시에 통합되었고, 2005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이 되었다.
성씨의 역사
현풍곽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한 곽경(郭鏡)이라고 전한다. 1930년 곽경의 묘지에서 출토된 지석(誌石)에 의하면, 곽경은 중국 관서(關西)의 홍농인(弘農人)으로서 고려에 귀화한 후 1138년(인종 16)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포산군(苞山君: 포산은 현풍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이후 곽경의 후손들이 본관을 포산(苞山)으로 하여 세거(世居)하였다. 현풍곽씨는 고려조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특히 곽원진(郭元振)의 후대에서 가장 번성하였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조선 전기에 곽기정(郭基正)의 후손들은 경기도(京畿道), 전라도(全羅道), 평안도(平安道) 지역으로 세거지(世居地)를 확대해 나갔으며 곽한정(郭漢正)의 후손들은 관향지(貫鄕地)인 현풍(玄風)을 중심으로 영남일대에 세거지를 넓혀감으로써, 현풍곽씨는 기호계(畿湖系)와 영남계(嶺南系)로 나뉘게 되었다.
《현풍곽씨세보(玄風郭氏世譜)》에 의하면 현풍곽씨는 선산(善山), 해미(海美), 강릉(江陵), 봉산(鳳山) 등의 별관을 사용하였으나 그들 족보의 첫 머리에 모두 시조를 곽경으로 하는 현풍곽씨의 후손이라고 했으므로 1976년 병진대동보(丙辰大同譜) 편찬 때 대종회 의결로 현풍으로 명칭을 통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선산곽씨는 분관조 곽우현(郭佑賢)을 곽경의 6대손으로 연계하면 연대가 맞지 않는다 하여 1979년에 별도로 족보를 편간하였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현풍곽씨는 43,626가구 총 140,28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