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자리
어제가 소만(小滿)이란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한다고 하는 입하와 망종 사이의 절기라는 말에 왠지 모를 더운 기운이 훅하고 목구멍을 스치는 기분이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해 주위에 감기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고, 한낮의 햇살은 따가운 느낌이 강하게 배여 있어 선뜻 나서기가 주저되는 시기인 듯하다.
봄 그 야릇한 느낌이 상존해 있던 옅은 나뭇잎들이 짙은 초록으로 변해 계절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도 신록이 우거져가는 여름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우리 동네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있다.
원래는 도로주변 단속을 하고 철거해온 불법 건축물이나 수거된 쓰레기를 모아두었다가 처리하는 장소였지만 주민들의 집단 반발로 인하여 그곳을 소공원으로 만들어 휴식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운동기구 몇 개와 벤치가 준비되어있고 군데군데 꽃들이 심어져 있어 봄날은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가 머물었고 지금은 길 가던 나그네나 동네 주민이 저녁밥을 먹고 나와 앉아 간단하게 담소를 나누는 곳이다.
처음 소공원을 만들었을 때는 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아 약간 불량스러운 아이들이 모여들어 음식이나 과자를 먹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온통 과자봉지 쓰레기가 날려 만든 목적과는 달리 잘 접근하지 않았지만 우리 아파트 노인회 할머니들이 돈들이여 지은 공원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한 후 확연하게 달라졌다.
할머니들은 교대로 두 분씩 아침 일찍 나가 깨끗하게 폐휴지나 과자봉지 쓰레기를 치우고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목적과 부합한 소공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온천천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가고 다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그 반대로 가로질러 집으로 되돌아가야하는 길목의 공원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밤기온이 운동하기에 적합한 요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아내와 둘이서 온천천을 걷으며 데이트도 즐기고 체력관리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온천천은 참 좋은 곳이다.
낙동강물을 끌어 올려 유량을 늘리고 주변 환경을 정화하여 현재는 물고기가 살고 왜가리 같은 새들이 살포시 날아들어 작은 물고기를 사냥하는 모습이 상존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발길을 멈추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여 드는 곳은 뭔지 모를 특별함이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 내어 다양한 형태의 놀이문화가 번성하고 인간의 이야기가 소곤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아내와 저녁 운동을 하고 소공원 벤치에 앉아 운동을 마무리하러 앉았다가 하늘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서
“여보 하늘을 봐요 저기 북두칠성이 있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별이 어디있어요” 하며 의아해하며 하늘을 올려다보곤
“진짜네요. 북두칠성이 어떻게 우리 머리맡에 있죠?” 하며 환하게 웃는다.
나이 들면서 하늘을 쳐다보는 일은 드물다.
어린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을 하늘을 쳐다보지만 어른들은 자꾸만 땅을 내려다보며 산다는 얘기가 현실에서 보면 맞는듯하다.
언젠가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은 하루에 몇 번쯤 하늘을 봐요?” 하고
누구나 거의 비슷한 대답을 한다. 그것은 한결같이 하늘 볼일이 없을 뿐 아니라 하늘을 왜 쳐다보냐며 의아해 한다.
허지만 우리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늘을 하루에도 몇 번씩은 쳐다봐야 하지 않을까싶다.
하늘에는 구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제외하드라도 나는 새도 있고 비행기도 있고 제트기가 지나고 만들어 놓은 하얀 흔적도 가끔씩 있다.
그뿐일까?
낯에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이 있고 밤에 달과 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연출하고 있는데도 굳이 땅만 바라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지가 궁금하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야할 곳 땅속이 사람들은 궁금해 머리 처박고 자꾸만 그쪽에 관심 갖는 일 아닐까 하는 엉뚱함이 있다.
어제처럼 오늘도 같은 작은 공원벤치에 머물고 하늘을 보면서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찾아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떨어진 별, 북극성이 어느 별이냐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연신 먼저 찾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곳이 됐다.
마음이 머무는 자리는 설렘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냥 아무렇게 내버려진 벤치에 사람의 생각이 머물고 쉬고 싶은 정다움이 멈출 때 사람들은 머물고 싶은 자리라고 말하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썰렁하게 내버려두었던 공간을 할머니들의 작은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하여 사람들이 머물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머무는 장소로 변모하여 이야기가 있어 참 좋다.
흩날리던 쓰레기가 싫어서 빠른 걸음으로 피하고 싶었던 장소에서 마음이 머물고 별자리를 찾고 이야기가 소담스럽게 흘러나오는 공간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마음이 참으로 삿된 것은 아닐까하고 쓴 웃음을 웃게 되지만 변화는 어느 순간에 오고 가는 세월 같다는 느낌이다.
깨끗한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나보다.
예전 그 자리 그대로인데 이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장소로 바뀌고 머물고 싶은 장소가 되어 마음이 머물고 있으니 참 좋다는 생각이다.
나는 나이든 할머니들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단순하게 많은 돈을 들여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으면 우리가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하지 않겠냐며 자발적으로 순번을 정해 청소를 솔선수범함으로써 인간의 양심에 불을 당겼고 모두는 깨끗하게 사용해야하는 의무감을 느껴 오늘처럼 마음이 머물고 싶은 장소로 변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는 얘기다.
흔히 늙은 사람은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취급하지만 경험만큼 중요한 지식은 없다는 말처럼 할머니들의 작은 지혜가 본래 만들 때의 취지에 맞게 작은 쉼터로 자리메김 되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한 귀퉁이 소담스럽게 주워 모은 휴지를 안은 쓰레기봉투가 있고 사람들은 이곳에 휴지를 버리면 안 된다고 일러주지 않아도 잘 정리된 모습에서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깨우치게 한다.
우리동네 작은 소공원 이곳은 마음이 머물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