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南山) 산행기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산행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싸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집을 나섰다. 6시 20분 출발이 예정되어 있는데 어느덧 해가 짧아져 깜깜한 시각이었다.
어제 진도 출장을 다녀와 밤늦은 심야에 도착한터라 잠시 눈을 부치고 나서는 길이다. 친구가 사는 섬이 가고 싶은 섬에 선정되었는데, 주민 의견을 담은 구상안을 작성하기 위해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그 친구가 하루 밤이라도 묵고 가라는 것을 억지로 뿌리치고 올라왔다. 친구 부인이 차려준 밥을 급히 먹고 나오려니 미안했다.
부회장으로 수고했던 마산의 신종복 건축사가 지난 상반기 6월 10일 예산 덕숭산 대회 때 올린 산행기 댓글에 “어울림의 정겨운 사진과 스케치 세세하게 묘사하신 산행기 ~~ 항상 건강관리 잘 하시면서 하반기 경주남산에서 뵙겠습니다.......^^ ” 라고 해서 “안녕히 가셨는지요? 이렇게 행사 때마다 건강한 모습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의미 있는 경주 남산, 꼭 가겠습니다.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 라고 약속을 했었다.
그동안 이런 행사에서 산행으로 만나 친분을 갖게 된 건축사회원님들도 많아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행사 때면 처음 월악산에 서울 회원들을 초청해 즐거운 산행을 함께 했던 충북의 오긍균, 최동철, 이진희, 김성진 건축사님을 비롯하여, 경남의 신종복, 황팔수, 김진수, 조성복, 이철식 건축사님, 포천 백운산을 같이 갔던 인천지역 회원님들, 낙동정맥 단독종주때 전화로 길을 묻기도 했던 이경태 건축사님, 늘 부인과 단란한 모습으로 전국 명산을 다니시는 이춘식 건축사님, 한라산 돈네코 코스 산행때 동행해주신 제주의 김경복 건축사님과 제주회원님들 등, 아는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기대를 갖게 된다.
서울을 출발해 오산을 지나갈 때 좌측 차창 밖으로 검게 보이는 산능성이가 밝으스레 물들고 있었다. 곧 어둠을 사르고 아침 해가 솟아오를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피곤하게 여겨지다가도 하루가 시작되는 여명을 대할 때는 우주에 대한 경외감을 늘 새로이 느끼게 된다.
10시 10분 출발지인 경주 서남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각인데도 너른 주차장에 많은 차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모두가 파란 하늘이 보이는 맑은 가을날 늦가을 정취를 즐기려고 여기저기서 찾아든 것 같았다. 회원들은 오후에 하산하는 용주골에 뒤풀이 모임장소로 모이기로 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도로를 건너 산길로 들어서자 남산 지도가 그려진 입구 표지판 앞에서 문화해설사들이 관광객들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탐방지원센터에서 남산 관광 지도를 한 장 받고 들어섰다. 좌측 사과 과수원 입구에 거기서 수확한 사과들을 바구니에 담아 길가에 늘어놓은 모습이 보였다. 안쪽에서는 주인아주머니가 사과를 따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 우측 소나무 숲속에 있는 삼릉을 돌아보았다.
사적 제219호 배리 삼릉(拜里 三稜) 이곳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154~184), 제53대 신덕왕(912~918)과 그의 아들 제 54대 경명왕(917~924)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삼릉이라 부르는데 지름이 54~61m이고 높이는 4.5~5.8m이다. 왕의 무덤이지만 장식이 없이 큰 봉토분으로 되어 있는데 주변의 큰 소나무들이 마치 능을 수호하듯이 큰 가지를 늘어뜨리며 감싸고 있는 것이 운치가 배어난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가 즐겨 소재로 삼는 곳으로도 유명한 그 소나무 숲은 자연스레 휘어지고 뒤틀리며 자라난 소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특유의 조형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숲속에 놓인 배리 삼릉은 그 소나무와 커다란 원형 봉분의 조형 요소가 조화를 이룬다.
스케치를 하고 조금 오르다 보니 답사 객들이 머리 부분이 없는 불상 앞에서 일행이 모여 문화해설사의 예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여기저기 불교유물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도 전에 몇 차례 이곳으로 유적 답사를 와서 돌아본 곳들이었다.
조금 더 오르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표지를 따라 그 앞으로 갔다. 남산의 여러 불상 유적 가운데 드물게 두 개의 커다란 자연 바위에 석가삼존과 아미타 삼존, 여섯 분의 불상을 선으로만 새긴 것이지만 몸체인 바위의 형상에 의해 생생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 위쪽으로 계속해서 산길을 오르다 ‘경주 남산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과 상선암을 지나 바둑바위에 도착했다. 작은 암자로 이루어진 상선암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구경삼아 기웃거리기도 하고 주변 바위턱에 앉아 쉬기도 하여 북적거리는 분위기였다. 해를 마주보며 다가서는 동안 햇살이 늦가을 단풍에 반사되어 마지막으로 발하는 정취와 아쉬움을 자아냈다. 바둑바위에 이르니 경주 시내와 주변 벌판이 시원스레 트여 보였다. 그리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온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르며 한가히 예기를 나누기도 하고 오순도순 모여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주 남산은 이처럼 산 곳곳에 불교 유적들이 가득해서 성지처럼 인식되는 곳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곳의 불교 유적들은 조각 수법 등으로 보아 주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불교에 깊이 심취해 있었던가를 상상케 한다. 험한 바위 봉우리가 많은 지형상 큰 절이 들어설 만한 곳이 없는 이곳에는 천개의 석탑과 천개의 불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주로 이 인근 지역에 살던 백성들의 자연스런 종교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1시 26분 남산 정상(494)에 도착했다. 경주 남산은 북쪽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냥 금오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혁거세(朴赫居世) 탄생설화가 담긴 나정(蘿井)도 남산 기슭에 위치한다.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528년) 이후 남산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존숭되었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 남산에서 모임을 갖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온 많은 사람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기념사진을 찍고 정상석 뒤쪽으로 가니 각지에서 먼저 올라온 회원들이 여기저기 모여 자리를 펼치고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다 아는 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고향지역 회원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니 아래쪽에서 전남건축사회 박종묵 회장이 보고 반겨주었다. 그 쪽으로 가니 함께 있던 장세윤 건축사가 귀한 술이라며 술을 한잔 권했다. 서울 사는 형님이 담가준 술이라고 하는데 향기가 좋았다.
이 곳 주변에서 상징적인 풍광을 그리려고 두리번거리다 정상석 뒤쪽의 줄기가 용틀임하듯 휘어진 소나무 보며 스케치를 했다. 그 사이 서울에서 한 시간 늦게 출발한 2호차 일행이 도착해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부산 회원 일행이 지나가며 스케치한 모습을 보면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스케치를 마치고 용주골을 향해 걸었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에 임도가 나왔다. 관리를 위해 만든 길인데 햇살이 따갑고 순간적으로 삭막한 느낌이 들어 산행의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 길 끝 지점에서 다시 우측 숲으로 들어서 조금 가다 용장골 삼층석탑에 당도했다. 자연 암반 위에 쌓은 삼층 석탑인데 비례감과 섬세한 조형 솜씨가 느껴졌다. 앞쪽으로 시야가 시원스레 트인 곳이어서 석탑의 존재감이 더 부각되는 듯 했다. 거기서 멈춰 서서 스케치를 하다 보니 뒤에 오던 회원들이 지나가면 인사를 건넸다. 김숙희 건축사와 최효숙건축사는 바위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예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산행코스의 하산 길에 지나는 용장사지는 내남산에서도 매우 유명한 불교 유적이다. 남산에는 계곡과 등성이마다 유적이 산재해 있다. 남산은 크게 동남산과 서남산 지역으로 구분하는데 동남산과 서남산에는 각각 16개의 계곡이 있고, 남쪽의 2개와 합하여 모두 34개의 계곡이 있다. 그 중 동남산에는 왕정골(인용사지, 천관사지, 상서장-최치원의 집이 있던 곳), 절골, 부처바위골, 탑골(마애조상군, 석조여래입상과 삼층석탑) 미륵골, 천암골, 철와골, 국사골, 오산골, 대지암골, 쑥드듬골, 승소골, 천동골, 봉화골(칠불암, 신선암마애보살상, 봉수대) 등의 계곡이 있고 서남산에는 청룡골, 용장골, 바피골, 약수골, 삿갓골, 삼릉골, 선방골, 기암골, 유느리골, 장창골, 식혜골, 등의 계곡이 있다.
스케치를 마치고 조금 내려서다보니 용장사지 불상이 보였다. 경사가 급한 암릉 지대여서 평평한 절터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곳인데도 불전과 석탑, 불상 등을 단차를 두면서 빼어난 조형미를 갖춰 조성한 것이 놀랍게 느껴졌다.
용장사는 특히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으로 내려와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도 유명한데 금오신화는 최초의 한문 소설로 알려져 있다. 매월당은 그 후 무량사에서 입적했다. 용장사지를 지나 계곡 길로 내려왔다. 용주골을 나올 때까지 길이 조금 멀게 느껴지는 길을 여수 사는 조연준 건축사와 함께 걸으며 예기를 나누다 보니 지루하지 않게 지났다.
산길을 나와 마을 길 어귀를 돌아서니 행사 장소가 보였다. 천막을 친 무대 쪽 뒤 너른 공터에 각 지역별로 강당처럼 식탁과 의자가 열 지어 배치되어 있었다. 서울지역 회원이 앉은 자리를 찾아가니 각자 식사를 받아와야 된다고 했다. 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하는 동안 사회자가 진행을 했다. 회장과 내빈 인사말에 이어 추첨 행사에서 대전에서 온 한 회원 가족분이 프로처럼 관객을 사로잡는 열창을 하여 환호성이 터졌다.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행사를 마쳤다. 내년부터는 일 년에 두 번 하는 행사시기를 한 달씩 당기겠다고 했다.
다시 회원들이 전국 각지로 떠나갔다. 금세 행사장이 텅 비었지만 가을 햇살은 곱게 빛나고 있었다.
(2017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