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멋모르고 할머니가 가리켜준 화장실이라는 곳을 들어간 순간 모두들 대경실색.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화장실. 안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데서 일을 봐야하는 데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판자 위에 균형을 잡고 앉아 용무를 본다는 게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두 손으로 코를 꼭 쥐고 두 눈은 질끈 감은 채 용무에만 신경을 쓰려해도 일이 잘 되질 않는다. 비위 약한 손자들은 훌쩍훌쩍 칭얼대고 그런대로 비위 강한 손자들은 이것도 농촌 체험이다 생각하며 용기를 내지만 자칫하면 빠질 것 같은 곳에서의 용무는 쉽지가 않다. 그런데다 이놈의 화장실이라는 데가 똑똑 노크하는 문짝도 없이 다 떨어진 포장 등으로 앞만 살짝 가려 있으니 안심하고 일보기도 힘들 판이다. 저녁시간 전등불이라도 훤하게 켜 있으면 그나마 다행. 할머니는 어떻게 매일같이 일을 보시는지. 당당히도 손자들 손에 손전등을 쥐어주며 급한 모양이라며 얼른 갔다 오란다. 급할 것으로 말하면 그 무엇에 대겠는가. 낮 동안 내내 참다 더 이상 한계점에 이른 상황, 두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다. 화장실 한 번 가기위해 잠자는 엄마 아빠 누나 모두 깨우고, 화장실 가는 일로 온 집안이 들썩인다. 할머니 집 재래식 화장실로 곤혹을 치른 손자들은 그래서 다시 오길 꺼려한단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부모가 자녀를 차량에 탑승시켜 읍에 가서 일을 보게 하는 것이다. 계곡 황죽 마을은 전 세대가 재래식 화장실이다. 하수도 시설이 돼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가끔씩 찾아오는 손자들이 너무 불편해해 살짝 수세식 변기로 교체하고 싶은 유혹이 일지만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이 오염된다는 주민들 나름의 약속 때문에 너도나도 불편함을 감수한다. 이 마을 재래식 화장실들은 헛간 구석진 곳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판자를 살짝 올려놓는 곳이 대부분이다. 문짝은 포장. 조금 신경 쓴 집은 헛간 옆에 따로 건물을 둬 바닥을 시멘으로 처리했다. 전 세대가 재래식 화장실이고 노년층이 대부분인 관계로 방마다 요강이 있는 것도 이 마을의 특징이다. 불도 들어오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화장실이니 요강이 가장 요긴하게 쓰인다고. 해남 유일한 재래식 변소 마을인 황죽리 화장실 풍경은 올 말이면 사라지게 된다. 현재 하수도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이다. 산 아래 첫 동네인 황죽리는 강진군과 경계에 있는 오지 중 오지 마을이다. 이 작은 동네는 요즘 마을 노인대학을 해남에서 첫 개강하는 등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