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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꾸어온 꿈. 오늘도 이루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꿈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성취하고픈, 마음 깊숙한 소원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신이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상상하고 바라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집에 대해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거나 그 사람이 타는 차를 보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경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라캉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아이는 엄마와 서로 반응하면서 사회생활의 원리를 배워나간다. 아이가 웃을 때 엄마가 좋아하면 아이는 자꾸 웃는다. 아이가 한 발짝 걸음을 떼었을 때 엄마가 박수를 치면 아이는 자꾸 걸으려고 한다. 아이의 한두 마디 말에 가족이 환호하면 아이는 자꾸 말을 하려고 한다. 아이는 나이를 먹으면서 대상을 엄마에서 친구, 선생님, 친인척, 사회로 바꿔가면서 자신의 행동을 사회적으로 정립해 나간다. 이렇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사회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구분되는 때가 온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부모가 원하는 것인지, 선생님이나 이웃이 칭찬해 주니까 하고 싶은 건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분별 능력이 계발되지 않은 상태로 혹은 그러한 분별력을 싹수가 노랗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사회의 억압 때문에 욕망을 누른 채로 성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가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학생들은 대학 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하고 졸업 후에 취업을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서른 살을 넘기고 마흔 살을 넘기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돌이키기에 너무 멀리 왔다는 깨달음 앞에서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타인의 욕망을 거부감 없이 자신의 욕망인 양 착각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가치나 선택을 사회적 잣대에 맞추고 보편적인 욕망으로 포장된 타인의 욕망에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사는 게 덕목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이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유교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건 슬픈 일이다. 열심히 살기는 살았는데 허무하고, 넉넉히 채운다고 채웠는데 허전하고, 많은 걸 성취한 것 같은데 텅 빈 가슴만 남았다고 뒤늦게 씁쓸해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보다 타인의 욕망에 더 불타오르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자는 말은 본능적, 동물적 욕구를 채우자는 말이 아님은 다 알 것이다. 크리스천은 누구나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원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과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서로 배치된다면서, 인간적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배워온 것이 문제이다. 욕망을 좀 더 멋진 말로 바꾸면 비전과 꿈이 된다. 이는 하느님이 주신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원하지 않는 의사나 판검사의 길을 강요받는다면, 그건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재능이라는 달란트는 바로 욕망의 씨앗이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늦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이 눌러 놓았던 자신의 욕망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자. 타인이 규정해 놓은 행복의 척도에 자신을 맞추느라 인생을 소모하지 말자.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치를 보자. 따뜻하게 우리를 지켜보시는 그분의 눈을 보자.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를 이런저런 이유로 계발하지 못했다면 지금 시작해 보자.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를 계발해서 행복해진다면 남은 인생이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 그 아름다운 달란트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하느님은 골방이나 교회에서만 우리와 긴밀한 교제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자. 몸이 떠날 수 없다면 상상의 날개라도 펴보자. 일상이 짜증스럽고 공동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타인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을 누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욕망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자. 봉사하고 선교하는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누르고 있던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한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손짓하고 계신다. 골방에서 나오라고... |
첫댓글 아멘...
높이만 추구하던 경쟁의 세상에서
넓이로 얻는 행복한 세상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골방에서 나오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