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침 동선은 사림동에서 도청 앞을 지나 대방동으로 빠져 나간다. 성주동주민자치센터에서 좌회전하여 창원터널로 오른다. 창원대로는 물론이고 터널입구까지 벚꽃이 만발한 때였다. 출근길은 마음이 바빠 창원거리 벚꽃을 완상해 볼 처지가 아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봄날 오후였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다섯 시 지날 무렵 맞은편 자리 카풀동료와 학교를 나섰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정 몇 그루 벚꽃도 화사하게 피었다. 학교 뒤편 가로의 벚나무도 마찬가지였다. 차창 밖 장유골짝 벚꽃도 꽃구름으로 뭉게뭉게 일어나고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다 운전석 동료와 마음이 서로 통했다. 진해까지 넘어갈 일 없이 창원거리 벚꽃을 둘러보자는데 의기투합했다. 평소 퇴근길 동선은 대방동 뒤 산허리 우회도로를 타서 시립테니스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이날 퇴근길에는 그냥 창원대로로 달렸다. 자동차가 정체되어 좀 천천히 지나도 괜찮지 싶었다. 대로변 피어난 벚꽃은 만개하여 절정이었다. 한두 꽃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정도였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는 찬바람 이겨내더니만 어느새 봄을 맞아 꽃구름이 일었다. 푸른 잎이라곤 하나 달지 않은 벚나무였다. 꽃향기는 없다만 어떻게 송이송이 한꺼번에 피어나는지 신기했다.
우리가 탄 차는 창원병원 지나 우회전하여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 방향으로 들었다. 찻길 자동차는 정지하다시피 진행이 더디었다. 창밖에는 젊은 연인이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인도에는 오가는 행인들이 넘쳤다. 길거리 포장마차에는 군밤이나 꼬지를 팔았다. 아마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 싶었다. 초중고가 여럿인 교육단지는 봄 한철 상춘객들로 시끌벅적했다.
5분도 걸리지 않아 빠져나올 교육단지 앞 찻길은 30분이 걸렸다. 그래도 업무를 보느라 시간 쫒기는 걸음이 아닌지라 우리는 느긋했다. 그사이 마음 조급해하지 않고 차창 밖 활할 피어난 벚꽃을 완상했다. 나는 남은 생에서 온전히 맑은 정신으로 꽃구경할 횟수가 몇 번이 남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안민고개 벚꽃도 진해 쪽은 만개했을 테고 창원 쪽은 더딜 거라 얘기 나누었다.
우리는 충혼탑 사거리에서 창원전문대학으로 넘어왔다. 대학 앞과 운동장 보조경기장 주변도 벚꽃이 화사했다. 카풀동료가 사는 럭키아파트에 닿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은 거리를 걷고 싶어 일부러 내렸다. 나는 반송시장으로 가서 이비인후과에 들렸다. 비염이 있어 콧물과 재채기로 고생해서 봄철 꽃가루가 날리면 더 심해질까 봐 미리 찾았다.
병원을 나와서는 반송시장을 구경했다. 재래시장을 둘러보면 계절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어둠이 내리는 골목이었다. 가게 안에는 밝은 전등이 환하고 노점에도 가로등 불빛이 비쳤다. 노점 진열대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가꾼 딸기나 토마토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미나리와 취나물은 신선했다. 밭둑에서 캐어온 쑥이나 달래도 보였다. 산에서 따온 두릅 순에 유난히 눈이 갔다.
재래시장을 둘러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형님이 생각났다. 형수님은 엊그제 도청에 근무하는 조카 편으로 머위 순과 상추를 보내주었다. 고향에서 가져온 푸성귀를 먹으면서 고향산천을 떠올렸다. 대봉감이 심겨진 밭둑으로 나가면 머위 순이 자랐다. 두릅나무도 자라고 있어 두릅나물도 맛보았다. 시래기나 씁쓰름한 머위 순 무침에 마음 내킴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표인가 보다.
반송시장을 둘렀다가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교통문화연수원 주변도 벚꽃이 만발했다. 우리 아파트단지 벚꽃은 절정을 지나 꽃잎이 제법 날리고 있었다. 오는 주말엔 발걸음을 고향으로 해 볼까나. 고추모종이 밭으로 나갈 때라면 일손을 좀 돕고 와야겠다. 모종 옮길 철이 이르다면 창원근교 산자락에 올라 볼까나. 인적 뜸한 숲으로 들어 묵언 잠행하면서 기를 모아야겠다. 10.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