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6일 주일예배 설교 * 사순절 2 주
마가복음 12:1-12
경고선언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주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사건과 연결 지어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화과나무처럼 말라버리고 말 것이라는 예수님의 “성전폐쇄선언”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이 예수를 옭아매려고 <덫>을 놓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야생동물을 사냥이라도 하듯이 3차례에 걸쳐서 그들은 예수와 줄다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장로들이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라는 질문을 들고 찾아온 사건입니다. 예수는 이 질문이 성전정화 사건에 대한 날선 질문임을 알아채셨습니다. 만일 이 권한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하면 “신성모독”이라고 달려들 터이고, 만일 사람에게서 나온 권한이라고 하면, 당신이 누군데 감히 성전을 모독하였느냐고 하며 “성전모독”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질문에 질문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가?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인가?” 대답해 보라고 말입니다. 대답을 하면, 예수님도 대답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회사 채용공고를 보고 면접장에 나온 사람이라면, 이처럼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처럼 당당하게 반대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를 찾아온 사람들의 권세를 생각한다면, 지금 예수는 엄청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들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당당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결국 예수에게 덫을 씌우려고 찾아온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의 질문에 답도 못하고, 또 예수의 답도 듣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는 12장 13절부터 나오는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문제를 가지고 덫을 놓으려고 한 사건입니다. 이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찾아와서 예수께 질문합니다. 종종 그렇게 야비한 사람들을 보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일단 아부가 섞인 인사를 드립니다. “선생님은 진실한 분입니다. 아무에게도 매인 분이 아닙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가르치시는 분입니다.”(14절) 아주 멋진 미사여구 들어간 아부 인사입니다. 이런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그러면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라고 질문 할 때, 예수는 그들의 속임수를 알아 채셨습니다. 여기서 “옳습니까?”라고 번역한 단어의 원뜻은 “허락됩니까?” 또는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에 합당합니까?”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의 의도는 이런 것입니다. “당신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런 짓을 벌이고, 또 백성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율법에 비추어 보아도 합당한 일인지 말해보라!”하고 대드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부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바리새인”이 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합니다. 헤롯 당원은 당연히 로마와 헤롯의 정치적인 결탁관계를 추종하는 사람이지만, 바리새의 기원은 헬레니즘과 로마문화를 거부하고 유대교 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반로마의 입장에 서있는 것이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너무나 미운 나머지 그 무리에 동참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그 바리새파는 정치적인 집단에게 빌붙은 종교지도자가 된 셈입니다.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이란 로마제국이 속국의 백성으로부터 받는 조공인데, 피지배 속국의 관리들이 이를 대신 거두어들입니다. 이 조공에는 인두세, 토지세, 농산물세 등등이 포함되어, 황제가 식민지를 착취하는 방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만일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고 말하면, 그동안 쌓아온 백성들로부터의 인기가 곤두박질 칠 것이 분명하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당장 반란선동가로 고발당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주님이 하신 답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라는 지혜로운 말씀에 사람들은 경탄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 직전에 하신 말씀에 주목해봐야 합니다. 예수는 바리새파와 헤롯 당원에게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돈 주머니 속에 데나리온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치 일당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그 정도 돈을 지녔다는 것은 “넉넉한”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데나리온에 새겨진 얼굴이 황제의 초상이라는 것도 그들은 스스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니 유대교 신앙의 최고 경건한 사람으로 알려진 바리새파 사람이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은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 만천하에 폭로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은 우상숭배를 피하기 위하여 황제상이 새겨진 로마화폐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황제가 신의 아들이라는 문구도 적혀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예수의 대답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행동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황제에게 붙어사는 사람들은 황제의 소유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인줄 믿고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덫은 모세의 법 해석에 관한 논쟁입니다. 이번에는 사두개파가 등장합니다. 사두개는 귀족 정치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사후의 삶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후의 살이나 부활신앙이 생긴 것은 그리스제국의 황제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성전을 훼파하고 유대인들의 율법과 신앙을 짓밟을 때였다고 마카베오 상하 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두개파는 그리스 제국 시절부터 지배자에게 붙어사는 특권 귀족층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찾아와서 일곱 형제가 후손 없이 죽는 바람에 맨 맏형수를 계속 수혼(嫂婚)하였다는 예를 들면서, 부활 때에는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교묘한 덫을 놓았습니다. 이 덫은 예수의 성경관을 시험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형의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부활이 있다면 그 결과도 알아야하지 않겠느냐는 요구입니다.
예수의 대답은 질문의 의도와 범주를 뛰어 넘습니다. 부활을 믿지도 않는 사두개파가, 율법서에 기록되지도 않은 결론을 말해보라고 독촉할 때에 주님은 그들의 질문 자체를 일거에 일축해 버립니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법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라고 답변하며, 그들이 놓은 덫을 빠져나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포도원 소작인들이 소작료를 받으려고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들을 폭행하고, 심지어 주인의 아들을 죽여서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하였다는 비유는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의 덫 사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선언이며,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는 예언이라는 잘 알려진 해석을 좀 넘어서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 가지의 덫을 피해가시는 긴 대화 속에 이 비유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비유는 마치 예루살렘 성전 폐쇄를 선언하여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증오를 불러일으킨 것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파와 헤롯 당원들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예수를 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마가의 보고는 12절 말씀인데, “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아차리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는 성전정화사건을 일으키고도 태연하게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온 예수의 일행에게 따져 묻던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주었던 비유였고, 이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이 비유에 나오는 소작인들이 자기들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또 한 번 크게 분노하였던 것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그들이 어떤 소작인들인가 하면, 포도원을 빌린 대가로 합당하게 책정된 소작료를 내야하는데, 욕심에 눈이 멀어 소작료를 내기는커녕 주인이 보낸 하인들을 여러 차례 폭행하고, 심지어는 상속자인 아들이 오자 그를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한 아주 못되고 탐욕스러운 악한들이었습니다. 비유는 암시합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이고,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소작인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이 하나님의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차지하고, 지배하고, 거기서 나오는 소출을 자기 마음대로 편취하려는 못된 관리들이라고 예수는 비유로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다시 분개하면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 째 주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입성하신 주님께서도 이제 이틀째 활동하고 계십니다. 첫날 성전을 정화하는 일을 했더니, 둘째 날부터 예수는 계속 찾아오는 권력자들과 지도자들로부터 시험을 당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예수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니 덫을 놓아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잡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당당하게 권력자, 권세가들과 맞서는 예수의 모습이 멋지지 않습니까? 이런 예수님이라면, 우리가 스승으로 삼고, 구원자로 받아들일 만하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포도원 소작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직접 와서 소작인들을 벌주고,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포도원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과 교회라면, 우리는 이를 바르게 가꾸어야하는 품꾼들입니다. 주인의 뜻대로 세상과 교회를 가꾸어 가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순절 둘째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의 모습에 대한 깊은 묵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5년 3월 16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