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16회
수한 엄마는 그래도 설마 했다고 한다. 그저 노름빚 받으러 왔나? 싶었고 만일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내가
모르는 일이니 남편에게 가서 받으라고 할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데
“아! 네, 집 좀 보려고요,”
한 사내가 뜬금없이 집 구경을 왔다 하는 것이었다.
“집 구경이라니요.”
그녀는 마루를 내려서서 고무신을 신으며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르세요? 이 집 팔린 것을”
그녀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으며 주저앉으려는 다리에 힘을
주고 두 남자를 째려본다.
“아! 박씨가 아직 아주머니에게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네요. 지난주에 이 집을 이 사람이 샀어요.”
그 남자는 곁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는 한 달 내에 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하고는 그녀의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돌아서서 나가버리는
것이다. 수한이 아버지는 그 남자들이 돌아간 얼마 후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노름판에서 기웃거리다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보자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감추지를 못하고, 부엌으로 쫓아 들어가 눈에 뜨이는 데로
사기그릇을 들고 나와 남편의 발아래 온 힘을 다해 팽개쳤던 것이다.
“나가! 나가!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어!”
그녀의 목소리에 반 이상 울음이 담겨 있었다. 그러곤 마당에 퍼질러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대책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암담하게 만들었고 당장 한 달 안에 이사를 가라는 그 남자의 목소
리가 귀에서 맴돌아 몸을 추수 릴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수한이 아버지는 어느 날 아침
누구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집을 나가 버렸다. 후에 들리는 소문에 수한이 아버지는 노름판에서 꽁지
돈이나 얻어 쓰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봉화 어느 마을에서 과부와 눈이 맞아 그곳에 정착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눈으로 본 사람은 없으니 사실인지는 확인 할 수 없었다. 다만 수한이 엄마에게 자식들이
라는 무거운 짐만 지워졌을 뿐이다. 하긴 수한이 아버지가 있을 때에도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편이라는 그늘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한결 나았을 텐데, 수한이 어머니는 그 후로 마을의
빈 방 하나를 세 들어 살면서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품을 팔러 다녔고, 비가 와서 일을
하지 못하는 날에는 강에 가서 다슬기를 건져서 읍내에 팔기도 했고, 한 겨울에는 땔감을 해서 팔아 생활에
보태기도 했던 것이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수한네 형편을 봐서 그녀의 나뭇짐이 조금 모자라도 모르는
채 제 가격을 주고 사주었고 읍내 식당에서도 그녀의 다슬기는 조금 더 가격을 쳐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 이남 일녀를 기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결국 수찬이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동네 어른의 소개로 서울 근교 신내동이라는 동네의 양계장으로 취직을 했고 수정이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곧 서울 구로의 염직 공장으로 취직을 해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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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무너지려고 그랬는지 수찬이가 중 이학년이고 수정이가 국민학교 6학년, 그러니까 수한이는 고등
학교 일 학년 여름에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 해 여름, 수한이가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그러고 보니 수한이 어머니는 수한이
만큼은 꼭 서울의 대학교에 보내겠다고 이를 악물었고, 맏이만큼은 제대로 키워 나중에라도 제 아비 앞
에서 큰 소리 칠 뿐 아니라(수한이 어머니는 늘 그래도 조강지처이므로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오리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맏이가 잘 돼서 제 동생들의 앞길을 책임져 주기를 바라는 소망도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우선하는 것이 수한이의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