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삼거리의 가판 대 아줌마는
햇살 빤히 받고 졸고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몇몇뿐
건물이라야 가판 대 건너
주차장 넓은 걸쭉한 순댓국 집 한 채
버스가 서서 두어 명의 손님을 토해 내고 떠나면
힁허케 먼지를 쓸어 가는 바람만 이리 저리 맴돌던
그 삼거리 웃음 쭈삣한 가판 대 아줌마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헛기침소리에 놀라
두 눈 멀뚱이 떠
물끄러미 건네 주던 햇볕 뜨신 신문 한 부
단잠 아쉬운 입맛 다셔가며
이내 실눈 가늘게 떠 내리던
그 삼거리 가판 대 아줌마는
얼룩무늬 군복 담배 한 개피 값에
파르르 떨리던 손 기억이나 하는지
지금은 모두 떠나고
삼거리 가판 대 주위를
서성거릴 이유야 없지만
가을햇볕 유난히 맑게 떨어져
낙엽 위를 뒹굴 때
단잠에 못이긴 한숨 손바닥에 괴고 앉아
새초롬이 졸고 있는 아줌마가 떠오른다
" 그녀도 가판 대 아줌마만큼 주름진 웃음 웃고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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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풍경
1.
미화원을 기다리는
쓰레기 봉투들이
초행길 떠날 채비를 마치고
망부석처럼 서있다.
그 옆으로
한 그릇의 밥이 되어줄
신문 뭉치와 종이 상자들이
재기의 날을 꿈꾸며
절버덕 주저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2.
줄 맞춰 보도블록은
골목 안을 가득 늘어서 있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보도블록을 밟으며
양편에 사는 사람들과
이유 있어 지나는 사람들이
정확히 몇 번인지는 모르지만
밟고 지나간 사이 사이로
이름 알리 없는 잡초와
정자나무로 자랄 어린 느티나무가
발길을 피해 용케도
보도블록보다는 조금 높게 솟구쳐
기지개를 펴고 있는
여기는 골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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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살얼음 핀 저녁 강에 나서면
까치발 딛고선 그리움이
물살보다 빠르게 달려온다.
어릴 적 잃어버린 누이의 웃음
외조부 지엄 같은 불호령이 숲을 둘러치고
뜨겁게 피를 쏟아 놓으며
붉게 흐르는 강
강이 흐르고 있다.
부서진 그리움의 결을 따라
어머니 순결한 처녀막을 터트리고
나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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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지칠 법도 하건만
멈춰야할 이유도 없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바람을 만든다.
온 하늘 산천을 달려 가려하나
잔 속의 폭풍
바람은 창살을 뚫지 못한다.
거푸 돌아 지구의 반
역류하지 않는 시각의 초침
타이머의 축을 거 머 쥐고
바람이 죽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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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꿈
외로운 별 하나
눈물 꽃으로 피어나면
길 떠날 채비 서두른 나는 간다.
한때는 별이 되고 싶어 눈물이 되고
한때는 별이 되어 나는 울었다.
제 목숨처럼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한
가여운 영혼이
오늘도 사막 한가운데 기도로 피어 오르고
태양도 빛을 사윈 하얀 밤
별들은 소리없이 죽어 갔다.
바다를 낚으러 지구 끝을 걸어간
한 사내의 염원이 하늘 끝에 이르러
다시 별이 되는 날
사윈 태양을 집어 삼킨 어둠이
천천히 바다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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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기다리며
아이들은
별을 주우러 개천을 달린다.
와르르 쏟아지는 별빛에
허기를 채우고
가난한 영혼을 구제한다는
신을 기다렸다.
거뭇한 산 그림자 호령하며 달려든다.
하얗게 떼지어 달려드는 별빛
땟국물 누더기진 낡은 옷소매에
한아름 별을 안고 달음질을 친다.
머리 위로
사뿐히 이고온 푸른 달빛이
잠 든 머리맡을 비추면
가난한 굴뚝 낡은 지붕에
한옹큼 별이 솟아올랐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기다리는 신은 오지 않고
오늘도, 가난을 채우러
밤하늘 가득 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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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옥상
잠자리 한 마리 날아 왔다.
빨랫줄에 널린
봉선화 꽃물 땡땡이 원피스
마누라의 악다구니가 그네놀음 저편으로
외롭게 밀려 간다.
비릿한 생선 내 쾌쾌이 스며있는
아이스 박스 안 넉넉히 채워진 흙 밭에는
게으른 주인 한껏 조롱하는
베어내지 못한 부추 긴 꽃대 야무지게 올리고
보기 좋게 꽃망울이라도 터트릴 참이다.
게슴츠레 한눈 치켜뜨고 한참을 살펴보니
한낮의 어질 한 아지랑이 시들하게 피어나
벌러덩
앉아 있던 평상 위에 큰 대자를 긋는다.
구름 노니는 하늘 한복판
내 마음도 솜털 되어
이리 저리 구름 함께 장난을 치다
하늘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어느새, 나는
단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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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回想)
할머니가 오물오물 밤을 구우시지
화로 막대기 휘휘 저을 때
돋보기 안경 너머
손주놈 보다 더 개구진 눈
탁~
쩍 벌어지며 밤 익는 소리
타닥 불꽃이 튀고
꼬물꼬물
누빈 포대기 속엔 지린내 나는 발가락들
그깟 달걀귀신쯤은 문제없어
달빛 휘영청
동구 밖 느티나무엔 호랑이 구신이 씌었단다.
할머니 열어놓은 곶감 주머니에
질화로 속 재구덩이에서 밤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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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아이
저 구부린 용과 같은 바다의 후예
해를 먹는다.
뜨겁게 용솟음 치는 푸른 혈맥
해일로 일어서 굽이치고
소년은 꿈을 꾼다.
깊고 푸른 바다의 꿈
죽어
바다의 장수가 되리.
소년의 꿈이 자라는 섬마을
바다가 바위에 다투는 소리로 해가지고
뭍으로 흐르는 별들이 내려와
지껄이며 노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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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
1.
굴뚝 연기도 잠든
밤 찾아 들면
승냥이도 무서워 울음 우는
산 마을
마실 갔다 돌아온 어미
늘어 놓는 푸념 소리
"서울 가면 잘 살수 있다는데...."
아비가 듣고, 아이도 잠든 꿈결에 들었다
파리한 달 하나
문틈으로 숨어 듣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구름 속으로 달음 질 친다.
승냥이도 무서워 울음 우는, 산마을
밤은 깊은 잠에 빠졌다
2.
보리 꽃 피기는 이른
아직은 우수(雨 水)
뒤 곁 대밭
잔 바람에 이파리 울음 운다.
쌀독 긁는 바가지 소리
산허리 휘감아 되돌아 올 제
"그래 가자, 이래 사는 거나..."
초승달 같은
다랑이 잔 서리 내리던 날
빈 지게에 걸린 달 무거워
허리 곧추 세워도 일어서지 못했다.
3.
흰눈 소복한 논뚝 길을
달빛 손전등 삼아 길을 내며 가고 있다.
어미 손 꼭 잡은 사내 아이
선잠깬 걸음은 구름을 걷는다.
힘겨운 그림자 쉬어 가자 조르고
별들은 길 서두르는, 아직도 까만밤
눈 젖어 무거워진 발걸음 내딪는
아비의 등짐이 달빛에 황소만 하다.
고불 고불 길 돌아 기차역
동이 트려는지 먼 산에 붉은 기운이 돈다.
ㅡ 1968 년 ㅡ
*다랑이: (비탈진 산골짜기 같은 곳에 층 층으로 된) 좁고 작은 논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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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시계바늘은 잔업의 끝을 지나
한참을 간후에 멈췄다.
완장을 찬 비둘기와
둥지가 있는 비들기들이 숲으로 날아가고
광장에는 그들만이 남겨졌다.
현광등 불빛 잠시 흔들렸을까
몇몇은 공중전화부스로 향했고
또, 몇은 씻기를 포기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광장을 비추던 불빛이 잠에 든다.
ㅡ그날 오전 ㅡ
비명도 없다.
미싱바늘은 솝톱을 뚫고
심장까지 뚫고 나서야 멈췄다.
총기를 잃은 눈속에는 바늘이 없다.
미싱기름 한방울과 대일밴드 하나
미싱바늘은 손가락을 향해 다시 달려 왔다.
잠시 날개를 접었던 비둘기들의 날개짓이 분주 하다.
넓은 광장에는
쓰레기 하나 없다.
ㅡ 1980년 여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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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한쪽 손잡이를 잃어 버린 양은냄비는
벌써 몇밤을 말라 들러붙은 라면 건더기를 껴 안은 채
연탄가스 마저 죽은지 오래인
새마을 보일러 밑에서 잠을 잔다.
이쁜이 비누거품과 철수세미질 한번이면
은빛 광채를 자랑하며
맑은 세상으로 다시 태어날수 있을까
철지난 옷들이 점령해 버린
비키니 옷장속에는
곰팡이들의 음모는 시작 되었다.
벌건 핏물을 머금고 열림을 멈춘 자크이빨은
옷장속 음모를 몰랐을까
꿀따러 나간 일벌은
꽃향기에 취해 산속으로 들었는지
땡벌에 습격을 받았는지
가리봉 오거리 벌집에는 꿀통이 비어 있었다.
ㅡ 1980년 여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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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그루 나무가 되어
한그루 나무이고 싶다.
절반쯤 푸른 잎 털어 내고
절반은 노랑 잎이라도 좋다.
새벽녘 허연 찬서리
온몸에 내려앉아
하나도 남김없이 발가벗겨져도 좋다.
어디 바람 많은 강가에
잎도 없이 빈가지로 서 있어도 좋다.
이 한몸 아낌없이 내어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겸허히 맞이하는 날들
안으로 안으로 굽어 드는 침묵에
수많은 이야기가 아름드리로 자라는
나는 한그루 나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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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에서
잔은 비워지고
조개가 익는다.
머언먼 바다의 꿈
비명으로 토해 놓고
고즈넉이 사위는 비애,
물빛 채워지는 잔 속에 달이 어린다.
별 하나
수억 광년을 달려
검은 바다로 떨어진다.
순간과 영원히 하얗게 부서지며
바다의 이야기가 된다.
날물을 따라 별이 흔들리고
날물을 따라 별은 부서지고
사람들의 소망이
종이 대포의 불꽃으로 피어오르는 밤
바다가 취하고
사람도 취하고
흔들거리며 올라가는
짧은 탄성이
술 취한 바다를 끌어안고 쏟아져 내렸다.
이 밤, 기울이는 한잔 술에
삼켜버린
달빛 안주 삼아
철망 위 익어 가는 조개에게도 꿈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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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선도로
싫증나 버린 털모자인줄 알았다.
널브러져 있는 주검
너른들 달리다, 이젠
전설이 되어 버린 슬픈 기억들
도로 위 질주하는 커다란 불빛, 이어
몸 위를 지나는 기계덩어리
줄지어 한참을 지난다.
목을 죄고 있던 방울 떨어져 구른다.
그리고 오랫동안
털 빠진 모자는 도로 위에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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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마셔라
빨간 주둥이로 연방
용암이 흘러내리듯
아침해가 녹아 나오면
파란 꼭지를 돌려야 한다.
뒤엉켜 한 몸 되어
도시로 가는 대로변에 납작 엎드려
일어서기를 멈춘
키 작은 그림자 와
때 자국으로 얼룩진
그들만의 성벽(城壁)을 허물어
낯짝을 씻겨라.
그래서, 그들이 남기고 간
정자나무 그늘 같은 어둠을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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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한번의 삽질로 숨통을 끊어
그들의 심장을 헤집고
허리를 잘라 살점과 뼈를 도려냈다.
드러난 허연 속살과 파헤쳐진
붉은 살점을 실은 영구차는
검은 피로 얼룩진 아스팔트를 움켜쥐며
끝 보이지 않는 검은 길을 달린다.
그들의 죽음을 모르는 행인과
흰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길가는 장님은
여섯 개의 다리마다 검은 피를 묻힌 채
힘차게 달리며 만든 바람을 타고
붉은 살점들이 흘리는 눈물을
그저, 먼지 인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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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태우는 일
가을을 태운다.
생솔가지 푸른 가을들판으로
허수아비 베어진 허물 너울대어
경운기 바퀴에 깔리는 황혼빛 짙고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워
지는 풍경소리에 씻어내는 윤회
태워도 태워도 사그러지지 않는
욕심의 부피에 불을 당긴다.
허허로이 벗어 던진 육신의 조각들
하늘 향했던 빈손짓 대지에 내리며
가을 걷이 끝낸 빈들에 홀로서서
가을은
낙엽을 태우며 다시 태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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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산
산이 내려 왔다.
누룩 노릇이 익어 단내 나는 마을
막걸리 한잔 바람 함께 걸치고
산이 취한다.
취한 산이 불타 올라
어느새 술도가에 가을 익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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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자지 마라 이른 날 초저녁잠이 달았다.
큰말 작은말 불빛 잠들기를 기다려
엄마는 암탉을 잡으셨다.
꼭꼭 닫아 걸은 부엌 문틈으로
가마솥 끓는 훈김 뜨겁고
달빛 쫓아 내려온 산 울음
장지문 흔들 때면
엄마는 풀어진 옷고름 바짝 조여 매고
가마솥을 열어
아이들의 잠 든 밤을 깨웠다.
아버지 헛기침에 닭 모가지 담은
국물 한 사발 물리고
달빛 피해 뒤꼍에 구덩이를 파시면
아이들 뉘인 앞이마 쓰다듬는
뜨겁던 엄마 손에 찬바람 스며와
찬찬히 옷깃 여미고 앉아 숨 고르는 소리 들렸다.
이번 시집 [아내 그리고 여자] 중 한 부분 입니다......앞으로 3번 더 올리겠습니다.......많이 부족한 글 .......송구 스럽습니다..시화전은 아니고....그저....출판 기념식 입니다...출판 기념식은 3월 20일로 계획 하고 있습니다.......좋은 하루 되셔요......
첫댓글 좋은 시에 오후의 나른함을 담아 보았습니다..님의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늘 청안하십시요...^^
출판~~ 개인시화전 인가요 한참 머물다 갑니다 좋은 밤되시길
선생님!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가시는 길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시집 [아내 그리고 여자] 중 한 부분 입니다......앞으로 3번 더 올리겠습니다.......많이 부족한 글 .......송구 스럽습니다..시화전은 아니고....그저....출판 기념식 입니다...출판 기념식은 3월 20일로 계획 하고 있습니다.......좋은 하루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