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다.
수업을 하다 잠시 유리창 너머로 보면 각 교실 뱡향에 따라
시내 한복판에 봉황이 오똑 내려 앉아있는 모습의 봉의산이,
물안개가 아스라이 낀 “소양강 처녀”의 소양강 정경이,
내 꿈의 나래를 펼치는 아홉 구비의 요염한 구봉산이,
병풍처럼 휘둘러 용이 승천하는 듯한 우람한 대룡산이,
앞 반에서는 물오리가 잔잔한 호수에서 유영을 즐기는 듯한 넒은 저수지가,
야간자율 학습 감독을 하는 밤에는 초롱초롱한 별빛과 더불어 무지개 아치형 소양강
다리에서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나를 감상에 젖게 한다.
어느 날 수업을 하던 도중 잠시 왼쪽으로 펼쳐진 구봉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주 큰 새가 구봉산 산봉우리를 누비다 훨훨 날라 더 높은 대룡산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큰 독수리 같기도 하고, 큰 황새 같기도 하고....
그러나 자세히 보니 새는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패러 낙하산이었다.
보통 낙하산은 서서히 떨어지는데 이것은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한 30분 이상을
하늘에서 체공하는 것이었다. 오! 바로 저것이다!
수업을 마친 후 내 애마 오토바이를 타고 구봉산으로 갔다. 10분도 안 되는 거리다.
젊고 패기에 넘친 청년들이 모여 있고 일부는 낙하산으로 지상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우람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니 그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맞이했고
나는 그들에게 낙하산을 배울 수 없느냐고 물어봤다. 그중에 팀장인 젊은 대원이
아저씨 나이가 얼마냐고 물었다. 나이를 말해 줬더니 글쎄요.
이건 순발력을 요구하는 것이라 위험해서 어떨지..... 하며 회의적으로 말했다.
스릴과 스피드 있는 운동은 대부분 다 해봤다 라며 내 이력을 간단히 이야기하니
아! 그러세요 일단 자질은 있어 보이니 그럼 한번 배워 보시지요.
그러나 사고 나는 것은 책임 안집니다. 죽거나 큰 부상을 입어도 클럽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각서를 쓰고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전직 국가 대표 레슬링 선수인 제자 체육 선생을 꼬드겨서 같이 배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겨울 방학 내내 출근을 하다시피하면서 기초부터 배웠다.
나이도, 학벌도, 현재 위치도 필요 없었고 군대처럼 들어온 고참 순서대로
위계질서가 있었다. 나이를 떠나서 그들을 선배로 깍듯이 모시면서 주변 청소도 하고
뒤치다꺼리도 하면서 그들에게 기술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지금은 패러 낙하산이 보편화 되었고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문호가 개방되어있지만
90년대 초는 미개척 시대라서 낙하산도 안전도가 떨어졌고 가르치고 배우는 여건도
좋지 않았다. 오토바이 살 때처럼 안방마님 허락 없이
거금을 들여 낙하산과 각종 보조 기구를 몰래 샀다.
배운지 2주 후에 화천 오옴리 활공장에서 처녀비행을 했다. 어떻게 비행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발이 공중에서 붕 떴을 때의 그 짜릿한 전율은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이었다. 아! 비로써 이제 그 꿈을 이루었도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이카루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왕의 노여움 사 감옥에 갇히자
날개 모양의 비행도구를 만들어 탈출했으나 기쁜 나머지 태양 끝까지 올라가다 신의
노여움을 사 밀랍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음) 가 꿈꾸던 무한한 자유를 향해
바람을 벗 삼아 창공을 가르니 그 무엇에 비교하랴?
그날 밤은 흥분되어 잠을 도통 이룰 수가 없었다.
이렇게 멋지고 스릴있는 운동을 왜 진작 몰랐을까?
이 운동이야 말로 진정 멋진 운동이고 내 적성에 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李箱의 날개가 떠오른다. 그는 억압된 자유와 암울한 시대를 떨쳐 버리기 위해 외친다.
날개여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수도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고참들의 허락 없이 그들의 기술을 연마하다 새파랗게 젊은 선배한테 핀잔도
억수 들으며 열심히 배웠고 이륙, 착륙이 능숙하지 못해 작은 상처와 멍을
온 몸에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집에 와서는 내색도 할 수 없었고 식구들 몰래 침도 맞고 다니기도 했다.
때로는 허락도 없이 고참의 장거리 비행을 따라하다 고도가 낮아 산속에 추락한 적도 많았다.
나중에는 큰 나무에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도 일부러 뜸을 들이고 구조를 안 해 줄때도 있었다.
나이 먹은 훈장이 선배 말도 잘 안 듣고 제멋대로 비행한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고참으로 날카롭게 생긴 젊은 대원은 대 놓고 핍박하고 날 미워한다.
선생님! “우리 말 안 들으려면 더 이상 타지 마세요”. 선생님! “참 말 안 듣는군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잘못되면 우리도 골치 아파요”.
뒷이야기지만 유독 나에게 꼬장꼬장하게 굴고 날 미워했던 그 젊은 대원은
내가 주례를 서줘서 결혼했고 태어난 애들 이름도 내가 정성껏 예쁘게 지어줬다.
이놈들아! 언젠가는 내가 너희들을 훨씬 능가하는 고수 파이로트가 되겠다. 두고 봐라!
하여튼 사고뭉치의 못 말리는 꼰대로 이름을 날렸다.
그래도 과감한 기술을 구사하면서 그들을 따라 잡으려 애썼고,
시작한지 1년 만에 대부분의 모든 기술을 다 배웠고 선배 도움 없이도 혼자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고
기술은 날로 늘어났지만 그에 맞춰 달갑지 않은 부상도 많이 입었다.
기술 걸고 내리다 잘못되어 발뒤꿈치 골절로 2년 이상을 편안하게 쪼그리고 앉을 수가
없었고 머리 감을 때, 특히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
와류에 휩쓸려 7-8미터 상공에서 폭 떨어지면서 골반 뼈를 다치는 바람에
또 2년 가까이 어기적거리며 다녔고 똑바로 들어 눕기도 힘들었고
의자에 앉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을 정도의 아픔도 겪었다.
집 식구들한테 들키지 않으려 아픈 내색도 못하고 병원도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았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은 부상으로도 쳐주지 않는 풍토였고,
주말에는 또 어김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활공장으로 향하는,
아무도 못 말리는 낙하산 중독이 서서히 되어 가고 있었다.
동료가 다쳐서 앰블런스에 실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또 비행하려 산을 타는 그들,
동료가 고압 전선줄에 낙하산이 걸려서 대롱대롱 매달리고, 한전에서 비상구급차가 와도 올라가는 그들,
한쪽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불편한 몸으로 어기적거리며 산을 올라가는 그들은
정녕 이 시대의 소영웅인가? 남자다움인가? 그렇지 않으면 또라인가?
젊은 놈들도 비로써 나를 인정하고 원정 비행에도 동참시켜줬다.
각 종 대회에도 선수로 뽑아주었고 주요멤버로써 인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10년 이상을 낙하산에 빠져 지냈고 멀리는 단양, 평창, 영월, 양평, 양구,
가까이는 홍천, 가평, 화천, 오옴리 등 전국유명 활공장을 내 세상 만난 것처럼
신바람 나게 휘졌고 다녔다. 세월도, 나이도, 가정도 잊고 그렇게 빠져 들어갔다.
바람만 살랑 살랑 불어오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집 사람의 뜨거운 눈총에도,
마음은 콩밭이라고 벌써 구봉산 활공장으로 내 달려간다.
초기에는 배울 욕심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이륙장 산을 하루에도 서 너 번씩 낙하산을 짊어지고 올라갔다.
바람이 없고 상승 기류가 없을 때는 3-4분이면 바로 내려왔는데
소위 쫄쫄이라 하며 너무 아쉽고 혹시나 해서 낙하산, 각종 장비를 포함해
20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들고 또 올라간다.
여름철에 그렇게 몇 번 정상에 올라가면 입에서는 단내가, 머리는 현기증이 나고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그러나 바람이 있거나 상승기류를 잡으면 능력에 따라 1-3 시간씩 비행을
한다. 고도도 잘 잡으면 2000 미터 쯤 구름 가까이 올라갈 수 있고
거리도 40킬로 이상을 비행할 수 있다. 어릴 적 꿈을 실현한 것이다.
인간은 잠재의식으로 꿈속에서 조차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꾼다.
꿈속에서 누구엔가 쫒길 때, 높은 데서 뛰어 내릴 때도 팔을 힘차게 흔들어대면
서서히 올라가고 내려가는 꿈을 자주 꾼다. 나만 그런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내 맘대로 더 멀리, 더 높이, 더 오래도록
비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멋진 인생이냐?
오래 전에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책으로, 영화로도 봤는데, 주인공은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갈매긴데
그는 다른 갈매기와 전혀 다른 갈매기였다.
다른 갈매기들은 해변 가에서 하루 종일 먹이만 찾아 헤 메며 살고 배부르면 놀고 자고,
배고프면 먹이를 찾아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였는데 조나단 갈매기는 잘 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다. 결국 조나단 갈매기는 “허무맹랑한 갈매기”라는 죄목을 쓰고
갈매기 사회에서 추방되었다. 쫓겨난 그는 외로움 때문에 울지 않았다.
동료 갈매기들이 능력이 있으면서도 날지 않고 가능성이 있는 데도 하늘로 오르지 않고
땅만 보고 사는 것이 안타까워서 슬퍼하며 울었다.
쫓겨난 조나단 갈매기는 갈매기들에게 <너희들도 이렇게 멋지게 나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불철주야 멋지게 하늘을 치솟으며 나르는 훈련을 하였다.
그야 말로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은빛 날개를 가진 두 마리 갈매기를 정신없이 따라 갔다.
그 곳에 가보니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갈매기 무리들이 있었다.
그 곳에서 그는 노숙한 늙은 갈매기로부터 하늘을 치솟아 나르는 기술을 더욱 더 확실히
배웠다. 이제 그는 능숙하고 멋진 비행술을 터득하였다. 나는 이제 완벽하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멋지게 더 쉽게 나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노숙한 늙은 갈매기는 조나단 갈매기에게 비행술을 가르쳐 주면서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라>
이 말에 감동을 받은 조나단 갈매기는 자기를 내쫓은 갈매기들에게 그 말을 실천하러
돌아가던 중 자기처럼 쫓겨난 어떤 갈매기를 만나 높게 날라 멀리 보는 시각을
가르쳐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높이 나는 자가 가장 멀리 본다> <높이 올라 멀리 보라>
첫댓글 뭔가 한가지에 푹 빠지면 안되는 일이 없군요. 열심히 하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꿈은 이루어지는군요~! 집념이 대단하시군요~! 그동안 사모님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타셨을까? ㅋㅋㅋ 참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참 멋지십니다~! ^^**
역쉬 스피드맨이십니다. 누구나 꿈은있지만 실천못하는 우리네, 만능스타 스피드맨님 의 멋진인생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삶에 진수를 보아 기쁩니다. 다음은 마라톤에 얽힌사연 제 3부작 기대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보람된날 되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