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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선 우 휘
내가 신문사를 들러서 X서를 찾아간 것은 아홉시가 조금 못 된 이른 시간이었다.
도어를 열고 방으로 들어서자 마침 자리에 앉았던 김주임은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키더니,
“왔소.”
하면서 넓적한 손을 내밀어 덥석 내 손을 쥐었다. 나는 다짜고짜로 물었다.
“K관 화재의 원인은 뭐죠?”
“글쎄 지금 조사중인데 실화 같소. 거지애들이 던진 깡통불이 경유를 담은 도라무깡에 인화한 모양이오. 필경 그 아경엔 무슨 불귀신이라두 붙어 있나 봐.”
“영감님두 원 불귀신은 또 뭐요.”
“글쎄 그렇잖소. 열흘간에 두 차례나 불이 났으니 K관만 남기구 그 아경 판잣집 일대가 타버린 것이 바로 일주일도 못 되는데, 아 고것마저 타버리고 말았으니 말이오.”
나는 담뱃갑을 꺼내 한 대 붙여 물고 크게 한모금을 빨아 어떤 안도의 긴 한숨과 함께 후욱 연기를 내어 뿜었다.
그것은 K관 화재의 얘기를 들었을 때 얼핏 내 머릿속에 친구 한 사람의 어두운 얼굴이 스쳐 갔던 때문이었다.
어떻든 실화란 고마운 일이었다. 물론 조사중이기에 말썽 많던 K관 화재인만큼 이 뒤에 또 어떤 색다른 원인이 판명될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우선은 안심이 가는 것이다.
나는 김주임이 알려 주는 화재가 발생한 시간과 소화된 시간, 그리고 추산 손해액의 숫자를 적었다. 문지기 영감이 한 명 중상을 입은 외에 별다른 인적 피해는 없었다. 나는 X서를 나서자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참담했다. 아직도 타다 남은 기둥 조각에서 여러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때마침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너울거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경찰관들의 지휘에 따라 일꾼들이 분주히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모여든 인군(人群)의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신음 같은 울음 소리가 나의 주의를 끌었다.
신도(信徒)인 부인네들이 모여 서서 넋두리를 펴놓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 멀거니 힘없는 눈을 하고 서성거리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옮겨 그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 신도들이 둘러선 한 가운데 아무렇게나 오버를 걸친 육십이 가까워 보이는 늙은이와 사십이 갓 넘은 듯한 중년 한 사람이 꼼짝도 않고 서서 화재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띄었다.
나는 직감으로 늙은 편이 관장(館長)인 김씨며 좀 젊은 편이 기도사(祈禱師)인 명가(明哥)임을 알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으나 나는 얘기를 붙여 볼 용기를 잃었다.
그토록 두 사람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만할 정도로 늠름하고 성자같이 엄숙하던 기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만 초라하기만 한 것이 한편 가엾기도 했다.
나는 그 두 사람의 그러한 모습을 그대로 그리면 되었다.
발걸을 돌리려던 나는 그 인군의 뒤 조금 떨어진 곳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자색 잠바의 한 젊은이를 발견하고 흠놀랐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놀랄 것이 없는 일이었으나 나는 그를 발견한 순간 등을 스쳐가는 어떤 오한에 떨었던 것이다. 못 볼 것을 본 느낌이었다.
그는 바로 관장의 아들이며 내 친구인 면이었다.
가까이 가서 악수를 나누자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깐 나를 응시하더니 눈을 깔며 마치 땅 속에서 스며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몇 단짜리 기사가 되나?”
다시 눈을 들어 화재터를 쳐다보는 그의 눈에 이상한 빛깔이 번득였다.
그 빛깔은 내 가슴속에 불안과 의혹의 거먹물을 부어 넣었다.
‘이 화재가 단순한 실화였을까?’
그 눈빛을 보았을 때 나의 직업적인 육감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후각은 어떤 범죄의 냄새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시가 좀 지나 잉크 냄새가 풍기는 석간을 펴들었을 때 나는 ‘원인은 실화인 듯 계속 조사중’의 서브 타이틀을 보면서 이 기사의 뒤에는 반드시 꼬리를 끄는 좀더 중대한 문제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 예감에서 나는 나대로의 하나의 엄청난 단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단정에 이끄는 의혹의 몇 갈래 갈피를 찾아 그 실마리를 더듬어 올라갔다가 다시 단정에 귀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내 머릿속에 친구 면의 그늘진 얼굴이 떠올랐다.
우선 닷새 전 Y다방 한구석에서 만났던 때의 그를 생각해 보아야했다.
그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침울해 보였다. 말없이 꿍꿍 안으로 감아들기만 하는 것이 그의 특성이었으나 그날은 유독 그러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며칠 전 A동 화재에 K관이 모면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자네두…… 타버렸어야 할 것은 바루 그 K관이네.”
나는 마음속으로 아차 하고 뉘우치면서 무슨 실수를 한 것 같은 허젓한 것을 느꼈다.
한참 말없이 차를 훑어 마시던 그는 잔을 놓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것만을 남겨 두다니…….”
“누가 지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지.”
그리고 푹 고개를 숙이는 그의 넓은 이마에 몇 가닥의 머리칼이 흘러내렸 다.
전축에서 홀러나오던 흐느끼는 듯한 유행가가 그치고 갑자기 냅다 두드리는 숨가쁜 맘보 가락이 튀어나오자 그는 훔칠하고 얼굴을 들었다.
“글쎄 생각해 보게. 하필 판잣집들만 타고 K관만은 멀쩡하니 말이야, 더 법석이거든. 영험이 있었다는 거야. 도대체 피난민들 집만을 불사르는 영험이란 무언가?”
나는 그의 타는 듯한 두 눈을 보며 얼른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만 어째서 면은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자기 마음을 괴롭혀야 하는지 딱한 생각이 들기만 했다.
나는 면이 항상 나에게 그런 거북한 얘기를 건넸을 때 그러했듯이 일상적인 얘기에 화제를 돌려서 집안의 안부를 물었다.
“누이동생은 잘 다니고 있나?”
“음, 벌써 석 달이 넘지. 여간이 아닌 모양이야.”
“열아흡이면 아직 어리지 않나.”
“저녁에 돌아오면 찬물에 발을 담그곤 하지, 하루 종일 버티고 서 있어서 다리가 붓는다는 거야.”
“아부님은?”
다시 그의 얼굴이 흐려졌다.
“부탁이니 아버지 얘기는 말게.”
나는 또 아차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그 아버지의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그의 마음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멋쩍어진 나는 마침 날라온 엽차를 마시면서 다시 화제를 딴 데로 돌려서 흐지부지 넘겨 버렸다. 그리고 둘은 헤어졌다. 그것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아무렇게나 들어 넘긴 그의 얘기를 나는 다시 한 번 되씹어 보는 것이다.
‘누가 지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지.’
잠시 면의 그늘진 얼굴이 내 뇌리에 떠오르면서 그것이 가까이 다가오고 또 벌어지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뉘우치고 보면 그때의 그 얘기만을 가지고 그가 불을 지른 것이라는 단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경솔의 폐단이 있었고 또 그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는 그에 대한 의혹을 풀 수는 없었다. 다른 또 한 가지의 일이 내 머리에 되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때보다 이 주일이나 더 앞선 어느 날, 면이 신문사에 있는 나를 밖으로 불러낸 일이 있었다.
겨우 일단짜리나 될 기사를 아무렇게나 끼적거려 놓고 났을 때 꾀죄죄한 구두닦이 애가 들어와 나를 찾더니 조그만 종이쪽지를 전하고 갔다. 면이 신문사 밑 지하실 다방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선뜻 일어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제 석간에 K관에서 일어난 시체유기 사건과 함께 대대적인 K관 내부의 폭로 기사가 났던 때문이었다.
망설이던 끝에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떠서 다방을 찾아들었을 때 저편 한구석에 자리잡고 앉은 그는, 눈을 꾹 감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자리를 찾던 손님들도 비어 있는 그의 앞자리에 앉으려 들지 않을 그런 기이한 몸가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불러낸 것을 사과하고 나서 나에게 차를 권했다. 말없이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눈치를 떠보는 듯한 시간이 흘렀다. 그가 애써 자기의 괴로움을 숨기려 하고 성큼 말문을 열지 못하는 티가 나로 하여금 먼저 입을 떼게 했다.
“우리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나서 안됐네.”
내 얘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냐.”
하고 그는 내 얘기를 가로막았다.
“되레 때가 늦은 감이 있지.”
“…….”
“해괴망측한 짓거리는 끝나야 해. 말이 되나, 말이 안 되지, 자기들이 하는 짓거리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 줘야 해. 그렇지만…….”
그는 자기 손가락을 꺾어서 딱딱 소리를 내며 안타까운 듯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까딱도 않을 것이니 말야. 신문에 난다고 꼼짝도 않을 거거든, 되레 마귀에 들린 것들이 떠들어 댄다고 할 테니 말이지. 그 지경으로 미쳐 있거든.
얼마 전 우연히 어떤 식당에서 명가를 봤지. 햅버그 한 그릇을 거뜬히 치운 그 자는 가죽 지갑에서 천 환짜리를 꺼내 치르고 나서 꼬박꼬박 잔전까지 거슬러 가더군. 그 손을 씻은 물이 사람을 고친다는 거야. 그것으로 고쳐지는 병이란 또 뭔가. 밑천 안 드는 간악한 장사지, 차라리 장사치는 살려고 박박 기나 쓰고 다니지. 신도들의 얼굴이 볼 만하지. 거품을 먹고 돈을 치르는 주정뱅이나 매한가지니까.
글쎄, 아버지가 나나 동생을 보는 눈은 자식을 보는 그런 눈이 아니거든. 일 대 일이야, 일 대 일이란 말야. 그제의 일일세.”
그날 면의 누이동생은 일찍이 백화점을 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몇 가지 특별한 찬거리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아버지의 생일을 즐겁게 해드린다고 동생은 정성껏 만두를 빚었다. 면은 동생을 돕는다고 풍로에 숯불을 피우며 그러한 동생을 뜯어 보았다.
이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여대를 단념하고 집안일을 맡아 보다가 살림을 돕는다고 얼마 전 백화점에 일자리를 얻은 동생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그처럼 서럽게 울던 동생. 그것을 보았을 때 고갈된 면의 눈에서도 눈물이 솟았다. 그 눈물 속에서 면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동생의 앞날에만은 따뜻한 빛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마음속에서 여러 번 뇌어 보았던 것이다. 조용하고 착한 동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 곱게 만두를 빚고 있는 동생의 손등이 터 있었다. 이마와 콧등에는 잔 땀방울이 돋아 있었다.
면은 동생을 보면 항상 일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뒤이어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측은한 마음을 억제치 못하곤 했다.
“아버지가 오늘 저녁은 꼭 돌아오신다던?”
“점심 시간에 K관옐 들렀어요.”
“계시던.”
“안 계셨지만 문지기 영감님한테 꼭 말씀드려 달라구 얘기해 두었어요.”
“영감님은 잘 있던.”
“네, 이불을 시치고 계셔서 제가 꿰매 두리고 왔어오”
“그래.”
둘은 아버지를 기다렸다. 동생은 몇 번이나 시계를 올려다보면서 풍로에 숯을 더 놓고 냄비 속에 여러 번 물을 부었다.
때때로 유리창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만 들렸다.
무료히 책을 뒤적이던 면은 어느덧 괘종시계가 열시를 치는 소리를 들었다. 마음의 줄이 핑 소리를 내며 당겨지는 듯했다. 동생은 고단했던지 풍로 옆에 앉은 채 벽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그 발가락 끝이 파르르 잔가락으로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면은 가슴속에서 확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들었던 책을 방바닥에 동댕이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숙아!”
동생은 훔칠 놀라면서 눈을 떴다.
“틀렸어, 안 오셔.”
면은 보자기 위에 늘어놓은 만두를 사납게 그러모아 끓고 있는 냄비 속에 확 집어 넣었다. 뜨거운 국물 방울이 풍로에 뛰면서 칙칙 소리를 냈다.
동생은 그것을 물끄러미 한참 쳐다보고 있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서 확 울음을 터뜨렸디·.
“그날 밤 나는 울음에 지쳐 잠이 든 동생의 얼굴을 오레도록 지켜보고 있었지. 그 밝은 얼굴에 그려진 눈물 자국을 보았을 때 나는 무구한 수많은 어린것들이 어른들의 되지못한 짓거리 때문에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 그리고 어떤 슬픔과 노여움이 엉켜 맴돌고 있는 내 머릿속에 더욱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K관 꼭대기에 매어 달린 표식이었지. 그 표식 이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 가량 되었을까, 면은 저녁상을 물린 뒤 누이동생을 놓고, 성냥개비를 가지고 흔히 하는 장난을 하고 있었다. 몇 개비를 손쉽게 풀어 낸 동생에게 면은 이번엔 좀 어려울걸 하면서 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바른 세모꼴(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어 보라고 일렀다. 동생은 한참 애를 썼으나 좀처럼 만들어 내지를 못했다. 면은 웃으면서 먼저 개비 세 개를 들어서 방바닥에 세모꼴 하나를 만들어 놓고 다시 개비 세 개를 들어 그 구석구석에 하나씩 세워서 그 끝을 모두어 바른 세모쁠〔正三角錐〕을 만들어 보였다.
“자 봐, 이렇게 하면 바른 세모꼴 네 개가 되지. 이럴 땐 같은 평면에서 아무리 애써 봐야 안 되는 거야, 차원을 높여서 생각해야지. 차원을.”
어머나 하고 놀라운 듯이 소리를 지르는 동생 뒤에서 갑자기 ‘으음’ 하는 아버지의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와 면을 늘라게 했다. 면은 언뜻 아버지를 건너보았다.
그때의 그 눈!
면은 거기 어떤 야릇한 빛깔을 보았고 뒤이어 가슴속 깊숙이 젖어 그는 어떤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좀처럼 바깥 출입을 않고 집에만 박혀 계시던 아버지는 이튿날부터 분주히 나다니시더니 기업체의 견물을 남에게 넘겨 버리고 몇몇 친구와 얼려서 K관을 지어 놓고 그런 해괴한 일을 벌여 놓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 나는 그 영문을 몰랐지. 그렇지만 K관 꼭대기에 걸린 세모뿔표식을 보았을 때 아버지의 또 하나의 비열을 똑똑히 보았지.”
“비열?”
“비열이지. 선거에 나가 떨어지고 돈을 뿌린 탓으로 사업 형편이 기울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그 괴로움에서 헤어나오려고 무척 애를 태웠지. 발이 닳도록 두루 돌아다녔으나 전과 달라 무슨 뾰족한 일이 생기진 않았어. 그러한 무렵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야. 그러니 아버지의 괴로운 표정은 제대로 맞아들은 거지. 너무 가혹하다고는 말게. 이버지는 그런 분이니까. 누구나 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괴로운 표정을 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탓이라고 했어. 해괴한 K관을 시작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어머니의 죽은 탓이라고 했지. 천만에! 아버지는 낙선과 산재(散財)의 창피를 가리고 거기서 빠져 나가려고 한 것이야. 결국 빠져 나갔다고야 할 수 있겠지. 그런 구렁텅이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몰아넣었으니까. 그 속에서 아버지는 지난날 자신이 몹시 집착했고 얻으려다 못 얻은 세속적인 것에 복수를 가하고 있는 셈이야, 차원을 높였다는 거지. 이보다 더한 비열이 또 어디 있겠어.”
나는 그의 얘기가 믿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떻든 간에 그처럼 수많은 신도를 모으고 그 넋을 움켜잠고 있는 K관의 시작이 그처럼 유치하고 단순한 성냥개비의 장난에서 말상(發想)되었다고는 아무리 해도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음의 둑에 괸 물이 바늘구멍 같은 틈을 얻어서 거기서부터 터져 나가는 경우를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 치고도 면이 말하는 성냥개비의 장난이란 너무나 허망했기 때문이었다.
“권투시합을 생각해 보게. 자기 편에서 칠회전을 도전해 놓고 실컷 상대방을 두들겨 놓고 나서 멋대로 삼회전쯤에서 링을 내리고 만다면 어떻게 되겠나.”
나는 스스로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갑자기 권투 얘기가 튀어나와 어쩐지 지금까지의 얘기투와 어긋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열예닐곱 때 어떤 생각에선지 갑자기 권투를 배우러 다닌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서 내가 빙긋이 웃자 그는 잠깐 얘기를 멈추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른 웃음을 거두었다.
“몇 명이 얼려 돌아가면서 몸을 섞는다는 추잡한 얘기만은 믿고 싶지가 않아. 그것만은 견딜 수가 없거든.”
그의 얘기에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한번은 못 먹는 술을 잔뜩 마시고 K관을 찾아가 명가놈 나오라고 했지, 그렇게 영험이 대단한 자식이면 손 대지 말고 나를 죽여 보라고 했지. 직격탄에 맞아 조각이 난 팔다리를 모아서 되살려 보라고 했지. 닥치는 대로 책상을 부수고 돌아가면서 못을 박지 않고 떨어져 나간 책상다리나 이어 보라고 했지, 그 녀석은 자리를 떠서 몸을 피하더군. 그리고 돌아갔더니 신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몰매를 치던데. 정신이 들어 보니까 K관 뒷문 밖에 누워 있더군. 문지기 영감 탓으로 깨어났어, 죽은 개새끼처럼 내다 버렸단 말야.”
그는 식어 버린 엽차를 쭉 마시고 얘기를 이었다.
“아버지를 붙들고 달래도 보아 봤지. 안 되더군. 동생이 여고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걱정의 얘기를 드린 일이 있지. 모두 제 길을 가게 마련이니 그런 걱정은 아예 말라는 거야. 빨리 K관에 나와 엎드리라는 거야, 바위를 대하는 거나 매한가지더군.”
면은 불끈 주먹을 쥐면서 어성을 높였다.
“K관 그저 그것을 도끼로 돌판에 놓인 메뚜기를 부수듯이 산산히 부숴 놔야 해. 난 자넬 탓하러 온 것은 아니네, 자네 기삿거리를 마련해 주려고 찾아온 거야. 난 자네 편이란 말야.”
나는 그때의 얘기를 기사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엉뚱한 얘기를 써냈댔자 원고지는 그대로 부장의 휴지통 속에 들어갈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다방을 나와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 그가 어깨를 굽히고 한편 다리를 절며 저편으로 걸어가던 뒷모습이 새삼스럽게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겨울이 되면 때때로 상한 자국이 몹시 쑤신다고 했다.
상한 다리 ― 그것은 어느 때나 나에게 지난날의 쓰라렸던 한때를 생각게 하는 것이었다.
사 년 전의 겨울. 나는 그와 함께 얼어붙은 중부전선의 최전방 호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날 밤은 달밤이었다고 생각된다. 추위가 방한복의 두툼한 솜을 뚫고 스며드는 추운 날씨였다. 그와 내가 뿜어내는 숨길이 솜줄같이 틀리며 차가운 대기 속에 사라져 갔다. 나는 그때 투덜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의 팔자. 제비를 잘못 뽑아 들었단 말야, 이 밤에 어디선 뜨뜻한 온돌에서 계집을 끼고 단꿈을 꾸는 녀석도 있겠지.”
그리고는 은근히 그의 동조를 기다렸다. 서로 얼려서 한참 두덜거리고 나면 한결 속이 후련한 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얘기에 얼러들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에게 물었다.
“자넨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나?”
“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네.”
나는 뜻밖의 대답을 듣고 좀 빈정댔다.
“그건 또 갸륵한 일 이군그래.”
“갸륵이 아니지, 저녁에 먹은 그 맛없는 생선 통조림을 두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거지.”
“통조림 땜에?”
“아버지는 통조림을 가지고 돈푼이나 모았거든. 지금도 통조림으로 돈을 모으고 있지.”
“그야 그럴 수 있는 게 아냐.”
“그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맛을 다 빨아 버린 찌꺼기 같은 생선이 문제란 말야.”
6·25가 터지기 직전, 면의 아버지는 빚에 쪼들려 채권자의 다궂는 독촉에 허덕이고 있었다. 기업체의 건물을 저당잡혔으나 그것으로 메울 수 있는 적은 구멍은 아니었다. 채권자들의 눈을 피해 부산 친지의 집으로 내려간 것이 유월 중순께였다. 뒤잇듯이 일어난 포성과 굴러든 전차의 캐터필러. 파괴와 살육. 악몽 같은 삼 개월이 지난 후 피신처에서 집으로 돌아든 면은 의젓이 군복을 입고 나타난 아버지를 보고 놀랐다. 혈색이 좋았고 마치 젊은 병정 같은 몸가짐을 했다. 병정들보다 더 바삐 돌아갔다.
1·4 후퇴에 부산으로 내려간 면이네는 남달리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군의 용달을 맡고 분주히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면의 아버지는 삽시에 한 재산을 모아 놓았다. 6·25 전의 빚은 어찌 되었는지 면은 알 길이 없었다. 저녁 늦게 얼근히 취해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반드시 사람의 운수(運數) 얘기를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면서 우스개로 어린 동생더러 내 귀만 보라고 일렀다.
“난 그러한 아버지를 볼 때마다 어쩐지 마음이 꺼림칙하더군, 그렇지만 그땐 그저 좀 언짢았을 뿐이지, 난 나대로 놀아나 있었으니까.”
면의 아버지가 빚에 몰려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을 그 무렵 면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어떤 여자와 깊은 관계에 빠져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여자는 면을 앞질렀다. 면은 그저 어릿더릿한 채로 여자에게 끌려서 그 뒤를 따르는 데 허둥지둥 바쁜 형편이었다. 어느 날 저녁 밤늦게 같이 거닐게 된 좁은 길에서 여자는 갑자기 면에게 몸을 던져 왔다. 먼빛에 보이는 그 눈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두려운 생각에서 눈길을 돌린 면은 저편 멀리 희미하게 비쳐 있는 여관의 간판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꾸 너울거리는 것을 느꼈다.
면은 그저 젊음에서 흔히 그럴 수 있는 불장난으로 생각해 버리려고 했으나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면은 걸려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나 어엿이 저지른 일이 씻겨질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었다. 종이를 씹는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여자와 함께 사연을 얘기하려던 그 날짜보다 며칠 전 면은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아우성치는 서울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삼 개월을 강원도 산골에서 헤매다가 서울로 돌아온 면은 집에서 며칠 몸을 쉰 후 어느 날 저녁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원효로, 아직도 길거리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파괴된 벽돌 무더기와 재목이 그대로 널려 있었다. 가까이 이른 면은 예기치 못한 참담한 광경을 보았다. 여자의 집이 있던 일대에는 산산이 부서진 건물 조각만이 흩어져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여자는 그 밑에 깔려서 죽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디 피난을 가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것이라고 뉘우쳐 보려고 했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살그미 면의 귓전에 홀러드는 하나의 속삭임이 있었다.
‘만일 그 여자가 죽은 것이라면 너는 하나의 시름을 던 것이 아니냐.’
면은 그러한 속삭임에 귀를 막으려고 했다. 그런 속삭임을 받아들이는 자기가 무서워졌던 것이다. 반드시 어디서 돌아와 자기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러나 1·4 후퇴 때까지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서운함과 꺼림칙한 것이 뒤범벅이 된 마음속에 물리치려고 애써도 더욱 스며드는 어떤 안도의 느낌이 있었다.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데 말이지, 그것도 몸까지 섞은 여자를 놓고 말이지. 부산으로 내려가신 아버지 덕에 거드럭거리고 다녔지. 돈이자 증명서였으니 길거리에서 붙들려 끌려가는 일도 없이 활개를 치고 다녔어.”
그러한 때 면은 아버지의 회사에 근무하는 어떤 늙은 사원의 딸과 알게 되었다. 몹시 수줍음을 타는 말없는 소녀였다. 이번엔 면이 소녀를 이끌었다. 거북해하는 소녀에게 물품을 사주고 싫다는 소녀를 끌어 내어 같이 거리를 거닐기도 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사장의 아들인 면과 자기 딸 사이가 익어 가는 것을 늙은이의 한 가닥 빛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어느 저녁. 면은 소녀와 극장 시간을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한 시간이 지나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면은 약이 올랐다. 소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문 앞에 이르자 노여움이 풍긴 목소리로 소녀를 불렀다. 얼굴을 내밀기만 하면 버럭 화를 내리라 생각했다. 곧 문이 열리면서 뛰어나올 줄 믿었으나 좀처럼 문이 열리질 않았다. 한참 있다가 방싯이 문이 열리더니 눈언저리가 부은 소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소녀는 면을 보더니 곧 저편으로 얼굴을 돌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뒤이어 얼굴울 내민 늙은이는 조금 머리를 주억하더니 꺼질 듯한 목소리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고 끌려 들어가듯이 방으로 들어선 면은 훅 코를 찌르는 향냄새를 느끼며 방 한구석 조금 높다란 곳에 놓인 흰 보자기로 싼 네모진 상자 같은 것을 보았다. 그 옆에 병정 한 사람이 단좌(端坐)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면을 올려보았다.
순간, 면은 무거운 마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마음의 충격을 느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보이는 모든 것의 윤곽이 희미해졌다.
군대에 나갔다던 소녀의 오빠가 그 작은 네모진 상자 속에 들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면은 설레는 가슴을 진정하려고 애를 태우며 향대 한 개비를 들어 불을 그어 댔다. 그 손이 떨렸다.
오래도록 거기 머물러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더욱 옆에 단좌한 병정이 자기에게 시선을 붓고 있는 것이 거북했다. 도망치듯이 소녀의 집을 뛰어나왔다.
뒤따라 나오던 소녀의 아버지가 무어라고 인사하는 얘기가 들리지 않았다.
소녀의 꺼질 것 같은 울음, 늙은이의 뺨에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 단좌한 병정이 자기를 치보던 그 눈초리.
면은 뛰듯이 걸었다. 땅이 제대로 밟히지 않았다. 허둥지둥 거닐던 면은 뒤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훔칠 늘랐다. 면은 언뜻 걸음을 멈죽 뒤돌아보았다. 소녀의 집에 유골을 전한 병사였다. 의아와 함께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병사는 반가운 듯이 다가오더니 면에게 인사를 했다.
“저를 모르시겠어요?”
“…….”
“벌써 이 년이 넘 었으니까 잊으셨겠지요.”
“……?”
“저는 원효로의…….”
병사의 얘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
가느다란 비명이 면의 입술을 새어 나왔다. 전신에 쭉 소름이 스쳤다. 병사는 원효로 여자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참 반갑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 뵐 줄은 몰랐지요.”
“…….”
“돌아가신 누님 생각이 납니다.”
면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발을 떼어 놓으며 걷기 시작했다. 반듯한 아스팔트 길이 마치 웅덩이가 많은 어둠길 같았다.
나란히 서서 걷는 병사는 감개 깊은 어조로 얘기를 이었다.
“막판에 시골로 피난 가자고 했더니 누님은 집에서 버티어 본다고 고집을 부리셨지요. 약혼날을 며칠 안 두고 6·25를 당한 누님은 몹시 괴로워하시더군요. 돌아오시는 대로 여길 꼭 찾아오실 테니 그때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자기는 집에서 기다린다고 우겨서 저는 어머니만을 모시고 광주로 갔었지요. 결국 누님은 그 마지막 포격에 돌아가신 겁니다.”
면은 무어라 건넬 말 한마디 찾을 수 없었다. 간신히 다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차를 나누고 전선으로 다시 떠난다는 옛 애인의 동생에게 얼마간의 돈을 내미는 면의 손은 싸늘했다.
면은 다시 어두운 거리를 마구 헤매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회한이 칼날이 되어 기슴을 우비고 머릿속은 흩어진 실토리같이 뒤엉겨서 도무지 무슨 판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정신 없이 걷고 있던 면은 파출소 앞에서 신문을 당했다. 모면할 수 있는 증명서는 앞 가슴 포켓 속에 들어 있었으나 그의 두 팔은 어깨에서 축 늘어지고 면의 속은 좀처럼 호주머니에 가질 않았다.
“뉘우침의 날〔刃〕이 아직 나의 마음을 찌르고 있어, 손을 대지 않고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들더군.”
달빛이 어린 그의 얼굴은 도리어 무표정했다.
“결국 나는 가해자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원효로의 여자가 나타나지 않고 어떤 안도의 느낌이 내 가슴에 깃들었을 때 나는 벌써 훌륭한 가해자가 되어 있었단 말이야. 끌려 나갈 때부터 나는 피해자가 되고 싶었어. 어떤 쓰라림을 당할 때나 괴로움을 느낄 때 나는 되레 피해자가 되어 있다는 기쁨을 느끼곤 하지.”
“그렇게까지 호되게 따질 것이야 뭔가.”
“그렇지만 이젠 나는 전같이 그럴 수는 없어.”
면은 턱으로 고지 밑의 어리가리 막사(幕舍)를 가리켰다.
“김일등병을 알지, 강원도 산속에서 부모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다는 걔 말야, 걔는 생전에 몇 번 쌀밥을 먹어 보지 못했다고 해, 내가 입맛이 써서 다른 맛있는 음식을 그리고 있을 때에도 걔는 꿀을 핥듯이 콩나물이 든 된장국을 떠마시거든. 건빵·캐러멜·통조림, 모두가 그에겐 놀라운 물건이지, 걔는 아직도 아이스크림을 못 먹어 봤다는 거야. 그런데 저녁에 먹은 통조림을 생각해 보게. 그 물이 가버린 삼삼한 맛을 보란 말야.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만들어 들이고 있는 물건이야.”
나는 말없이 그를 건너볼 뿐이었다.
무섭도록 조용한 고지에 달빛은 더욱 밝게 그 빛을 붓고 있었다.
그 밤을 새운 이튿날 새벽, 우리들은 나는 포탄과 총탄 밑에서 살육의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날이 밝자 전투가 끝났을 때 나는 호에서 멀리 떨어진 비탈길에서 다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서 미친 듯이 울부짓고 있는 면을 발견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도 그는 그 광란에서 헤어나질 않았다.
그는 자기 다리의 아픔과 무서움에서 외치는 게 아니라, 직격탄에 날아간 김일등병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를 두고 지나간 날을 더듬을 수 있는 일은 이상과 같은 것이었다.
그처럼 면은 항상 자기의 과거를 당기고 지금의 자기와 자기의 둘레를 저울질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자학(自虐)에 가까웠다. 그런 짓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아버지가 K관을 주최하고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일들을 목격했을 때 그는 자기의 가슴을 애태우며 거의 동물적인 미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도끼로 돌판에 놓인 메뚜기를 부수듯이 가루를 만들고 싶다는 그가 피난민 촌에 화재가 생기고, 공교롭게도 모면한 K관 신도들이 영험의 탓이라고 법석했을 때 절망적인 것을 느낀 나머지 거기 불을 질렀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아니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욱 그는 내 앞에서 누가 불을 지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라고까지 얘기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모든 재료를 놓고 생각할수록 나의 의혹은 더욱 깊어만 갔다.
사흘 뒤 나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문득 생각되는 것이 있어서 면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추운 날씨였다.
면은 나를 윗방으로 들이고 숯불을 피운 풍로를 갖다 주었다. 문을 여닫고 방을 드나는 데나 풍로를 옮기는 데도 가만가만 숨을 죽이듯이 퍽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는 나에게 귓속말을 하다시피 낮은 음성으로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지금 아랫방에 누워 계시는데 며칠 만에 푹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마음에 받은 충격은 대단하였던 모양이야. 통 얘기도 안 하시고 이불울 뒤쓰시곤 꼼짝도 안 하셨어. 식사도 굶으시고 잠도 못 이루시더니 오늘 동생이 끓인 만두국을 한 그릇 드시고 아까부터 푹 잠이 드셨어.”
문이 방싯이 열리면서 면의 동생이 얼굴만을 들이밀더니 나에게 웃움만인 인사를 보내고는 면더러 솜깔개를 달라고 했다. 면이 ‘왜’ 하고 속삭이듯이 물었다.
아버지 베개가 낮아서 고개가 기우셔요, 좀더 고여 드리려구요.”
면이 고개를 끄덕이며 깔개를 집어 주고는 동생과 시선을 섞으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한 품에는 오랫만에 아버지를 가까이하고 그 시중을 들게 된 남매의 기쁨이 환히 어리어 있었다.
“문지기 영감이 죽었다는군.”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화제를 꺼낸다고 이렇게 말했다.
“나도 들었어.”
면의 얘기가 무거웠다.
“그 영감이 죽다니, 그것도 이불 보따리를 꺼낸다고.”
한참 고개를 숙이고 부저로 숯불을 들추고 있던 면은 무슨 생각이 났던지 깡퉁불을 던졌다는 거지애 얘기를 물었다.
“그 애는 어떻게 되지?”
“글쎄, 앤데다가 더욱 거지고 보니 뭐 어떡허겠나, 경찰에서는 소년원 같은 데 집어 넣을 모양이더군, 녀석이 되레 잘된 건지 모르지.”
나는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나서 곧 자리를 일어섰다. 방 안이 몹시 추운 탓도 있었으나 그보다 애초 면을 찾아간 나의 석연치 못하던 의도가 스스로 뉘우쳐졌던 때문이었다.
‘잘 되었어, 좋아, 저대로가 좋은 거야.’
면의 집을 나서서 잠시 걸음을 옮기던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불을 지피는 누이동생, 잠에 떨어진 면의 아버지,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면, 나는 내 가슴을 홀러가는 가느다란 한 줄기의 애달픔을 느꼈던 것이다. 내가 면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틀 후, 무심코 찾아갔던 X서에서 나는 김주임으로부터 K관 화재에 관한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깡통불을 던진 거지애에게 캐어물었더니 그때 거기 어떤 젊은이가 있어서 거지애에게 불을 던지도록 교사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떤 청년이라지요.”
“잠바를 걸친 청년이라는데.”
“잠바요?”
“자색 잠반가 그러더군.”
자색 잠바! 가슴이 철령했다.
“분명한 얘기요?”
“아니 그 녀석이 다구 캐어물어 가니까 깡통불을 돌리고 있는데 그 옆에 서서 신나게 돌아간다고 하면서 큰 소리로 웃고 있더란 거야.”
“그런 걸 가지고야 얘기가 됩니까.”
김주임은 의심을 두기엔 퍽 희미한 얘기지만 어떻든 석연치 않다고 하면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서를 나선 나는 혼자만 남의 실수를 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자색 잠바 ― K관 화재터에서 본 면은 분명히 자색 잠바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 신나게 돌아간다 ― 큰 웃음 소리.
만일 그것이 분명히 면이었고, 그때 면이 거기 있어서 그처럼 거지애에게 부채질을 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대로 지나 보낼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항상 입 버릇처럼 뇌던 비열(卑劣)을그대로 그 자신에게 돌려 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열? 그처럼 괴로운 표정을 짓고 그토록 자학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며 가차없이 그 아버지에게 던져진 미움의 화살은 무엇이었던가?
그렇게 마음속에서 자문해 보았을 때 나는 면의 그 그늘진 얼굴이 어떤 음흉한 것으로 느껴졌다. 거기선 타기할 거짓과 지능적 범죄의 냄새가 났다.
그날 저녁 나는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한잔을 나누었다. 어쩐지 언짢은 마음에 술은 잘도 흘러들었다. 이러저러한 얘기 끝에 K관 화재 얘기가 나오고 면의 소식을 듣자 친구는 한마디로 그를 내리깎았다.
“난 그 자식이 달라는 것 없이 싫어.”
“그건 또 왜?”
“사람의 새끼가 선명해야지. 자식은 흐리터분해 가지구, 어찌 된 것인지 도재 알 수가 없단 말야.”
“응―, 그는 그런 데가 있긴 하지.”
나도 얼려서 면을 깎았다.
“한 달 가량 되었을까. 우연히 몇 놈이 얼리게 되어 바옐 들어간 게 아닌가, 자식이 처음엔 얘기에 얼러들기도 하고 빙긋이 웃기도 하더니, 옆에 앉았던 계집이 사변 때 남편을 잃었다는 얘기를 하자 자식은 갑자기 시무룩해진단 말야. 그런 곳에 나오는 계집들이란 대개가 그런 조로 자기 신세를 가리려 드는 게거든. 그런데 자식은 얘기를 곧이곧 듣고 비장조가 되는 게 아냐. 나는 그것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해서 일부러 계집한테 농담을 걸었지. 혼자 외로울 테니 궁둥일 좀 두드려 줄까구. 아 그랬더니 자식이 웃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그런 얘긴 말라는 게 아냐, 원. 그리곤 혼자 얘기도 않고 시무룩히 앉아서 흥을 깨뜨리는 게 아니겠나. 계집도 뜻밖의 반응에 되레 미안쩍어 기분을 돌린다고 아양을 떨었으나 자식은 말뚝처럼 도사리고 앉아 있는 거야.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자식이 그러려면 꺼지라고 했지. 그랬더니 자식이 얼굴 하나 까딱 않고 슬그머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게 아냐, 원. 글쎄 그런 자식이 있어, 놀 땐 놀아얄 게 아냐, 자식이 뭐 자기 혼자서 온통 세상의 고통을 도맡은 듯이 그 모양인가 말야. 그런 자식이 되레 모르는 거야. 범죄형 이지 범죄형. 지능적 범죄형이란 말야. 자식의 애비를 보게, 자식도 군대엘 나가 부상을 당했다지만 자식이 뭐 자기 발로 걸어 나간 줄 아나. 자식이 끌려가기 전날만 해두 나하구 얼려 다니면서 술을 처마시며 야단을 했는걸. 자네두 아예 그런 자식한테 속 주지 말고 얼려 다니지 말게. 자식이 뭔가 말야, 제까짓 게.”
몹시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자네 얘기도 비슷해. 걔는 흐리멍 덩하단 말야 사실.”
술에 젖은 몸이 훈훈히 달아오르고 신경의 줄이 늦추어지면서 일상적인 시름이 저 먼 곳으로 차차 멀어져 갔다.
‘면…… 거북한 친구임에 틀림 없었다. 그래 가지고야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나, 별것이 아닌걸. 그래 봤댔자.’
그렇지만 그러한 내 마음에 한오리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때 바를 빠져 나와 혼자 어깨를 굽히고 절뚝거리며 취객들 틈을 뚫곤 걸어갔을 그의 모습이 어쩐지 자꾸만 취기 어린 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혜어진 나는 혼자 거리를 걷고 있었다. 차를 타기가 역겨웠고 어쩐지 혼자 걷고 싶었던 것이다. 낮게 내리덮인 하늘에서는 금방 무엇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취기는 자꾸만 피어올랐다.
면의 생각이 났다. 자색 잠바, 다 헤어져 나간 퇴색한 자색 잠바. 그는 분명히 그때 거기 있었을까. 무엇 때문에? 항상 침울한 면이 웃었다. 그것도 크게, 어째서? 비열, 비열? 그렇지만 그가 비열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면…… 이상한 친구.
한참 그러한 생각에 잠겨 걷고 있던 나는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가는 길을 왼쪽으로 벗어나 언덕 있는 편을 향해 걷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이대로 올라가면 K관 화재터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생각이 나서 그랬던지, 그저 그 옆을 한번 지나가고 싶은 생각이 났던 것인지, 열시 가까운 늦은 이 시간에 허황한 화재터 아경을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혼자 다리를 쉬이고 망연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처럼 수많은 신도를 모으고 전해진 것 같은 이적(異蹟)이 행해졌던 곳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울뚝불뚝 기와 부스러기와 흙덩이가 타버린 나무 조각과 함께 널려 었는 것이 마치 격전 끝에 황폐된 전쟁터같이 황단했다. 가끔 그 위를 쏵 소리를 지르며 바람이 스쳐 갔다.
쭉 어둠 속을 훑어 가던 내 시선이 저편 좀 높다란 곳에 못박혀 버리면서 나는 전신에 쫙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거기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대번에 취기가 걷힌 나는 전 신경을 두 눈에 모으고 그 그림자를 응시했다. 그림자는 외투깃 속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러이 가까이 다가가며 으흠 하고 한번 헛기침을 했다. 그림자가 휙 이리로 몸을 돌렸다. 멀리서 비쳐 오는 희미한 전등불이 그 얼굴을 드러냈다. 면이었다.
반가움과 무서움이 꽉 내 전신을 감싸 버렸다.
“면! 면이 아닌가.”
대답이 없었다.
“어째서 여길?”
“…….”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 극히 짧은 침묵의 시간이 홀렀다. 나는 또 탓하는 어조로 입은 열었다.
“자넨!”
“왜? 내가 여기 있어서 안 된 것이 있나.”
멀쩡한 그 대답에 나는 솟구쳐오르는 마음의 반발을 느꼈다. 뜻하지 않은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범인은 현장에 되돌아온다면서.”
“범인?”
다시 한번 범인 하고 뇐 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들뜬 웃음 소리가 어두운 화재터를 비껴 갔다.
“무엇이 우스워?”
그는 뚝 웃음을 그쳤다.
“나는 그저 웃은 것뿐이야.”
“거지애를 보고 웃음으로 부채질을 했다지?”
“부채질?”
나는 꼬리를 놓지 않으려 했다.
“비열이 아닌가.”
“비열?”
그의 어성이 튀었다.
“비열이라구? 비열이라니.”
그는 갑자기 내 앞으로 왈칵 달려들었다. 나는 재빠르게 한 발자국 물러서면서 엉거주춤 방어의 자세를 취했다. 그는 내 앞에 다가서더니 꼼짝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깔며 몸을 돌리더니 화재터를 향하며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불을 그어 대는 그의 손이 추위 때문인지 떨고 있었다.
한 모금 연기를 빨아 토해 버린 그는 혼자말처럼 조용히 얘기를 시작했다.
“비열은 아니야.”
“…….”
“비열은 여기 타버리고 만 거지, 비열은 재가 되고 말았어.”
그는 무거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은 생일날 저녁 나는 정말 K관에 불을 지를 결심을 했지, 불을 지른다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 다음날 K관 근처를 헤매 다녔지.”
그날도 면은 휘발유를 넣은 이홉들이 병과 헌 잡지 한 권, 성냥 한 갑을 집어 넣고 K관을 엿보고 있었다.
건물 꼭대기에 기우는 햇살을 받아 하얀 뼁끼 탓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K관의 표지를 보자 그는 더욱 미움의 불길을 돋우었다. 면은 그 싸늘한 표지가 자기를 비웃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태워 버려야지.
둘레를 살폈다. 판잣집이 타버리고 웅덩이가 생긴 근처에서 깡통불을 피우고 있는 거지애들만이 눈에 띄었다.
K관의 안을 살펐다. 사람이 없어야 했다. 삐걱 K관 뒷문이 열리더니 쓰레기를 담아 든 문지기 할아버지가 나와 건풀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면은 좀더 해가 기울기를 기다렸다. 그는 한참 무너져 나간 벽돌담을 등지고 서서 산 너머로 떨어지려는 태양을 훔쳐보다가는 K관 건물을 올려보곤 했다.
‘불이 당길 것이다. 불길이 건물을 기어오르고 저 표지가 녹아 떨어진다. 벽돌이 튀고 기왓장이 난다. 영험이라구, 성냥 한 개비면 되지.’
면은 싸늘히 웃었다. 불바다가 된 K관이 벌써부터 그의 눈에 선했다. 모든 해괴한 짓거리는 그와 함께 타버리는 것이다. 불, 아름다운 불길.
그러한 그의 뇌리에 갑자기 지난날의 한 가지 광경이 떠올랐다. 불!
그것은 후퇴하던 동부 전선에서 적의 차폐물이 될 위험성이 있는 인기(人家)를 태워 버리던 대의 광경이었다. 면들의 손으로 당겨진 불길은 삽시간에 다섯 채의 가옥을 살라 버렸던 것이다.
그때 워― 하고 무서운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찌르던 불길을 올려보면서 느꼈던 두려움이 새삼스러이 되살아오면서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전투를 위해 그때 그 인가는 마땅히 불살라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분명히 전투는 없었다.’
면의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예기치 않은 장애였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고 마음의 갈피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한참 있다 얼굴에서 손을 떼었을 때 그는 저편 웅덩이에서 불을 피우고 있던 거지애 하나가 불을 담은 깡통을 휘두르면서 이리로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다.
거지애는 면이 있는 곳으로부터 이십여 보 앞에 서더니 더욱 세차게 깡통을 휘둘렀다. 면은 한참 그것을 보고 있었다. 거지애가 잠깐 팔을 쉬었을 때 그는 깡통을 잡아 맨 쇠줄의 한켠 걸이가 늦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면은 거지애가 다시 돌리기 시작한 깡통 너머로 K관 벽 밑에 모두어진 도라무깡에서 경유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면은 숨을 죽였다. 이글거리는 숯불이 담긴 깡통의 걸이가 떨어져 저편으로 던져지게 된다면 바로 그 경유에 떨어지게 된다는 생각이 그의 골을 뒤흔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면은 거지애와 자기를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둘러라, 자꾸 둘러야지.’
면은 거지애와 함께 자기도 깡통을 휘두르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소리를 질렀다.
“신나는군!”
거지애는 면에게 고개를 돌리고 방긋이 웃었다. 면도 웃음을 보냈다. 다만 입술만 움직여진 면의 입에서 울음인지 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느끼는 것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면은 턱을 들고 웃음 소리를 틀어 냈다. 그 자기의 웃음 소리에 끌려 면은 정말 웃기 시작했다. 둑에서 터져 나오는 냇물처럼 웃음 소리는 뒤이어뒤이어 자꾸 쏟아져 나왔다. 눈물마저 배어 나왔다. 그 눈물 어린 면의 눈에 벌겋게 단 깡통이 걸이에서 떨어져 나가 저편으로 동댕이쳐지는 것이 보였다.
미친 듯이 웃고 난 면이 웃음을 거두었을 때 경유에 인화된 불길은 K관 벽을 소리를 지르며 핥아 올라가고 있었다.
“물론 비열일는지는 모르지, 결국 불은 내가 지른 셈이니까. 그러나 어떻든 K관은 타버렸어야 했던 거지.”
낫게 내려앉아 버린 하늘에서 흰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일선 호 속에서 항상 김일등병 생각을 했었지. 전쟁이 끝나 둘 다 살아나게 된다면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있으려고 했어. 그런데 그는 죽었어. 어째서 하필 그가 죽어야 했는지, 그는 끝내 아이스크림도 먹어 보지 못하고 죽었어. 그것두 바로 내 눈앞에서 산산이 흩어져 죽었단 말야.”
“…….”
“그 마지막 새벽의 전투만 무사히 넘겼으면 되었을 텐데. 그때 나는 능선 웅덩이에 숨을 죽이고 엎드렸다가 저편 웅덩이에 몸을 누이고 있는 그를 발견했지. 무사한 것이 반가웠기에 손을 흔들며 웃음을 보냈어. 그도 웃음을 보내 오더군, 그때의 그의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참 천진하고 예쁜 웃음이었지. 그런데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나한테로 뛰어오는 거야. 그것을 말릴 사이도 없었어. 내 눈앞에서, 바로 내 눈앞에서 직격탄을 맞고 날아난 거야. 정신이 뒤집힌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서다가 그만 비탄에 다리를 맞았던 거지.”
잠시 그는 얘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물론 사람이란 끝장에 가서 모두 죽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 남는다는 것 ― 그것은 오래도록 내 머리를 어지럽혔지. 결국 거기엔 별다른 뜻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내가 그를 보고 웃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 가책도 느껴 보았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그는 일어나서 뛰어왔고 포탄은 마침 거기서 터졌고, 내가 일어섰을 때 거기 총탄은 스쳐 간 것이지. 그가 죽은 것은 불행이었고, 내가 살아 남은 것은 요행 이었다는 것뿐이지.”
나는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살아 납은 것에 특별한 뜻이 있다면 그것은 죽은 사람의 것을 앗았다는 점이겠지. 무엇이고 간에 도둑질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가 못 먹고 간 아이스크림이나 그가 못 하고 간 가지가지의 얘기를. 그때부터 나는 자기의 삶에 남달리 특별한 뜻을 붙이는 사람을 보면 견디기 어려운 노여움을 느끼곤 했지. 아버지에 대해서도 그랬어. 아버지는 어떠한 고비에도 용케 어려운 경우를 넘기곤 했지, 물론 요행이었지. 그런데 아버지는 거기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해방 때부터 그러했다고 생각돼.”
오랜 동안 어떤 영문이 있었던지 그 행방을 감추었던 면의 아버지는 해방이 되자 일주일이 못 돼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다시 B청에 복직하게 되고, 얼마 안 가서는 더 좋은 자리에 앉게 되어 커다란 일인가옥에 든 집안살림은 나날이 나아져 갔다. 가끔 미인(美人) 상사가 집엘 드나들게 되면서부터 아버지는 교회엘 다니게 되었고, 면과 누이동생도 일요일이면 아버지를 따라가곤 했다.
이 년 후 모종의 기업체를 얻어 가지고 B청을 그만둔 아버지의 생활은 경우가 들기 시작한 면의 눈에 퍽으나 어지러워 보였다.
아버지는 집을 비우기 시작했고 거기 따라 어머니의 표정은 어두워만 갔다. 때때로 집에 들른 아버지 방에서 거친 음성이 튀어나왔고, 거기 뒤이어 어머니의 울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일이 있었다.
하찮은 여인에게 딴 살림을 차려 주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러한 아버지를 두고 면은 차차 비판의 눈을 길러 갔다.
어느 날 아버지 사무실을 찾아갔던 면은 어떤 손님과 아버지 사이에 벌어진 말다툼을 엿들었다.
“그래 자네가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 나보고 도둑놈이라구. 그래 자넨 뭔가. 계집에 미쳐서 공금을 횡령한 것은 도둑질이 아니고 뭔가. 왜놈들 것이니 괜찮다는 얘기가 나와? 그런 걸 덮어 준 건 그래 누구란 말야. 그래 지금에 와서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면은 자기의 팔다리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면은 어머니에게 그 얘기의 사연을 따져 물었다. 어머니는 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이제 와서 그런 걸 알아서 무엇 하니.”
아버지에게 품었던 외경(畏敬)의 감정이 면의 가슴에서 스러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뼈가 있어서 일인과 싸웠다고만 믿었던 아버지는 실은 하찮은 계집 탓으로 공금횡령의 죄를 지었던 거야, 그런데 해방 탓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아버지는 되레 색다른 사람으로 별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던 거지. 그때의 그 의기양양하던 아버지 생각을 하면 이상한 생각이 들곤 했지. 교회엘 다닌 것도 딴 게 아니었어. 미인과 좀더 살뜰히 가까워지려고 한 거지. 그 증거론 아버지는 B청을 그만두자 교회에서 딱 발을 끊어 버렸거든. 자넨 기억하고 있겠지만 내가 학교에서 왁작 떠들어대는 어느 축에도 끼지 않고 팔을 걷고 보고만 있던 것도, 그러한 아버지를 보고 맥이 풀려서 이러킁저러쿵하는 게 도무지 뜻이 없어 보였던 탓이지.”
“그렇게까지 빡빡 추려 놓을 것이야 없지 않나.”
“있지. 남이면 몸라도 내 아버지니까.”
“…….”
“기회란 무엇인가. 고비를 남길 때 마다 언덕을 굴러내리는 눈덩어리 모양 밑으로 갈수록 남의 것을 앗아서 부풀어오르기만 하다니, 살아 남았다는 한 가지로 벌써 죽은 사람의 것을 앗아 가지고 있는데, 그것부터 돌려 줘야지. 그 죽음 때문에 터져 나간 가까운 사람의 가슴에 그가 잠들던 지봉 밑에, 그가 거닐던 언덕길에, 우러러보던 푸른 하늘 밑에 살고 있는 분명한 지금, 바로 여기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이 땅 위에서 말야. 그렇지 않고는 어디다 떠맡길 수가 없지, 그렇지 않고는 부끄러움이 가실 수는 없지. 떡 먹듯이 가벼이 신(神)을 부르고 쓰레기처럼 자기의 죄(罪)를 던져 버리지 말아야지. 어떠한 몸부림을 쳐도, 자기가 저지른 일이 씻겨질 수는 없어. 피해자가 용서치 않는 한 누구도 가해자를 용서할 수는 없지.”
바람에 휘날리는 흰 눈이 먼빛을 받아 반들거렸다.
“불은 분명히 내가 지른 거니까 자네는 내가 자수하기를 바랄는지 몰라. 그렇지만 그건 아무런 뜻도 없어. 그런다고 모든 것이 예전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K관은 타버렸고 문지기 영감은 되살아오질 않아. 자수란 다만 쫓기는 괴로움을 단축하려는 것뿐이지. 일을 저질렀거든 죽을 때까지 괴로움을 받아 나가야 하는 거겠지.”
갑자기 그의 얘기하는 가락이 처졌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우리들 어렸을 때의 아버지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오셨을 때 동생과 나는 다시 아버지를 찾은 기뽐에 떨었어, 그리고 날이 가면 마음의 상처도 아물려니 믿었지. 그런데 아버지는 영 넋을 잃은 사람이 되고 말았어. 거기다 문지기 영감이 죽고 결국 ― 나는 두 사람을 죽이고 만 것이야. 누구에게도 못지않이 홀륭한 가해자가 되고 만 것이지.”
나는 다만 말뚝처럼 날리는 눈송이를 뒤집어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수색(搜索)엘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적을 속여서 자기네들끼리 싸우게 한 일이 있었지. 그들은 서로 마구 쏘아 대더군. 그때 우리들은 바보 같은 새끼들이라고 웃었지.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웃을 수가 없어. 내 자신이 지금 캄캄한 밤에 서로 쏘아 대는 속에 들어 그 곁다리를 들고 있는 것 같아. 아니 나 혼자 마구 쏘아 대고 있었던 것만 같아. 어떻든 견딜 수가 없어.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 혼자 내던져진 것 같애.”
먼빛에 보이는 그의 뺨에 눈송이가 녹아서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저편으로 얼굴을 돌리고 한참 있더니 쩔뚝이는 다리를 끌고 언덕 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가 어둠 속 저편 휘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취기는 말끔히 걷히어 있었다. 언뜻 그의 뒤를 따르려던 나는 어떤 두려운 생각이 갑자기 나를 꽉 움켜잡는 것을 느꼈다.
나의 뇌리에 내가 망각(忘却)의 날로 끊어 버렸던 지난날에 저지른 가지가지의 일이 바싹 잇대어 오면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직업적 의식은 형사처럼 그 뒤를 따르고 쓰러진 친구의 터져나간 가슴에 또다시 칼질을 하려던 회한이 나의 가슴을 눌렀다.
방금 그가 던지고 간 얘기처럼 캄캄한 그믐밤에 서로 마구 쏘아대는 그 한구석에 나도 훌륭히 자리잡고 있었다는 느낌이 나의 골을 난타(亂打)했던 것 이다.
(『불꽃』, 을유문화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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