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차 폴크스바겐 비틀의 탄생
포르쉐 하면 모두들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포르쉐를 떠올릴 것이다. 폴크스바겐 비틀을 설계한 포르쉐 박사는 '꿈의 스포츠 카'라 불리는 포르쉐를 직접 디자인한 사람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임러 벤츠 사에서 일하면서 품격 높은 메르세데스 벤츠를 설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포르쉐 박사가 다임러 벤츠 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설계 사무실을 차렸을 무렵, 한 야심 만만한 사나이가 독일을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들겠다며 큰소리 치고 있었다. 바로 공포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독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동차 전용 고속 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고속 도로 건설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장장 1,600km에 이르는 최초의 아우토반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또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인기를 모으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이 아우토반 위를 달릴, 전 국민의 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히틀러의 마음에 꼭 맞는 차를 만들 사람은 자동차 설계의 대가 포르쉐 박사밖에 없었다. 1933년 8월, 드디어 전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악마, 히틀러는 자동차설계의 천재, 포르쉐 박사를 만나러 갔다. "포르쉐 박사, 우리 독일 민족을 위한 소형 국민차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내가 좁아서는 안됩니다. 또 차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추운 겨울에도 엔진은 얼지 않아야 합니다.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기름 1리터로 12km는 문제 없이 달릴 수 있어야 하지요. 그래야 모든 국민이 부담없이 살 수 있을 테니까요." 포르쉐는 히틀러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 오백 마르크는 될 겁니다. 그보다 더 싼 자동차를 만들기는 힘듭니다." "포르쉐 박사, 그건 당신이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만들기만 하시오, 차값은 내가 정합니다." 그 말은 들은 포르쉐는 가슴이 뛰었다. 평범한 국민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값싼 소형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포르쉐의 오랜 꿈이 아니었던가! 그로부터 3년 후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던 바로 그 해, 포르쉐의 국민차가 체상에 태어났다. 여태껏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딱정벌레 모양의 괴상한 차를 본 히틀러는 머리를 갸우뚱했으나, 70일 간의 성능 시험에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자 매우 흡족해했다. 얼마 후, 딱정벌레 차를 만들 공장이 세워졌다. 딱정벌레를 닮은 조그만 차를 처음 본 국민들은 모두 만족해했다. KDF 라는 히틀러가 붙인 이름 대신 국민들은 이 차를 폴크스바겐 비틀이라고 불렀다. 폴크스바겐은 '국민의 차'라른 뜻이고, 비틀은 '딱정벌레'라는 뜻이다. 최초의 딱정벌레 차는 히틀러가 말했던 1천 마르크보다 100마르크가 더 싼 900마르크 였다. 100km를 달리는 데 기름은 겨우 7리터밖에 들지 않았으며, 다섯 사람이 탈 수 있는 조그만 세단이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게 이 딱정벌레 차를 갖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냥 주는 것은 아니고, 폴크스바겐 우표를 발행해서 그 우표를 900마르크 어치를 사 모은 사람에게 폴크스바겐 한 대를 준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 값으로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 그건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폴크스바겐 우표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에 걸었던 사람들의 꿈은, 1939년 히틀러가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면서 산산히 조각나 버렸다. 국민들에게 우표를 팔아 긁어모은 돈은 모조리 전쟁 준비에 들어갔고, 폴크스바겐 공장은 군수 공장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패전국이 되었고, 독재자 히틀러는 애인 에바와 함께 자살했다. 프랑스 군은 히틀러의 지시대로 폴크스바겐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유로 포르쉐 박사를 체포했다. 포르쉐는 프랑스 사람들이 내뱉는 욕설과 돌팔매질을 받으며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독일을 살린 딱정벌레 차
한편, 패전국이 된 독일은 영국, 프랑스, 미국, 구소련등 연합국에게 전쟁 배상금을 물어 주어야 했다. 하지만 나라 안의 돈은 모조리 전쟁 준비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배상금으로 줄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 끝에 독일 정부는 폴크스바겐 공장과 딱정벌레 차를 내놓았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공장은 거의 파괴되어 있었고, 괴상하게 생긴 딱정벌레차는 연합국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독일 정부가 마지막 카드로 내놓았던 폴크스바겐은 딱지를 맞고 되돌아왔다. 폴크스바겐은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 빛을 보지 못하고 고아 신세가 되어 버렸지만, 독일 국민들은 폴크스바겐을 되살려 세계로 내보내는 길만이 그들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독일 국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폴크스바겐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5년이 되자,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딱정벌레 차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되었다. 히틀러는 독일을 망쳐 놓았으나 그가 만들어 낸 폴크스바겐은 독일을 잿더미에서 구했으니, 생각해 보면 독재자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게 병도 주고 약도 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