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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회 졸업식 졸업생 262명 동창회 입회
지난 1월 9일 금요일 오전 11시 제77회 졸업식이 모교 강당에서 거행되어 졸업생 262명이 배출되었다. 이들이 용산고 동창회 신입회원으로 입회해 용산 동문 수는 40,972명이 되었다. 이날 졸업식에는 해외출장을 떠난 신재호 총동창회장을 대신해 정형선 수석부회장이 참석해 모교를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서는 후배들을 축하하였고 동창회에서는 기념품으로 예년과 같이 YONGSAN 77이 새겨진 졸업 기념 버클을 선물하여 77회 신입회원을 축하하였다.
큰그릇 3
칼럼 | 삶의 지혜 - 중년 인생
소동파의 詩(시)에 雪泥鴻爪(설니홍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기러기가 눈밭에 남기는 선명한 발자국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 자취는 눈이 녹으면 없어지고 맙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지요. 언젠가는 기억이나 역사에서 사라지는 덧없는 旅路(여로)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뜻있는 일을 하면서 성실하게 살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지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중국 故事(고사)에 江山易改(강산이개) 本性難改(본성난개)라는 문장이 있는데, 강산은 바꾸기 쉽지만 本性(본성)은 고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나이 먹을수록 본성이 물처럼 부드러워져야 하는데 송곳처럼 뾰족해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을 때 그의 친구들이 “그럼 당신은 자신을 아느냐”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소크라테스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이나 잘못을 아는 것이 본성을 고치는 첩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중년의 나이를 넘으면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기보다는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존경을 받지 못할지언정 욕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삽니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스무 살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당신의 업적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중년 이후의 얼굴은 그 사람 인생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므로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저 노인이 될 것이 아니라 ‘어르신’이 되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큰 업적이나 칭찬보다는 지탄 받거나 상처 주지 않는 인생이 더 위대한 삶이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인생이란 우리 인간으로서 딱 부러지게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수천년간 많은 聖人(성인)들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의거, 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지요.
“우리의 인생은, 어느 때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自覺(자각)이다”라고 J. 오르데카가 말했고, “인생은 불충분한 전제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技術(기술)이다”라고 S 버틀리가 말했지요.
우리는 주어진 여건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4 큰그릇
어리석은 삶, 지혜로운 삶 94:
반대가 진리다
1. 삶을 조종하려 하지 말라
사람들은 삶이 불확실할수록 더 철저히 계획하고 통제하려 든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관리해야 안심한다. 삶이 어긋날때마다 더 많은 전략과 계산으로 삶을 움켜쥐려 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실패로여긴다.
이렇게 사람들은 삶을 신뢰하기보다 조종의 대상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삶은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다. 삶을 즐길수는 있지만 조종할 수는 없다.
삶과 더불어 살고 삶과 더불어 춤출 수는 있지만 결코 삶을 통제할 수는 없다.
보통 우리는 우리가 숨쉰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의 주체를 자신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러한 생각이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가 삶을 통제하는 것은 곧 삶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조건들이 있다면 삶은 그 어떤 것도 충족시킬 수가 없다.
우리가 삶을 조건 없이 받아들일 때, 환영하려 할 때 비로소 삶이 우리에게 일어난다.
하지만 삶을 지배하는 사람은 특정한 종류의 삶을, 어떤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삶을 갈구한다. 그러면 삶은 그 사람들 곁을 무심히 지나쳐 버린다. 통제하고자 하는 관념을 빨리 깨면 깰수록 우리에게 좋다. 왜냐하면 모든 통제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보다 더 큰 존재이다. 언제나 작은 것이 지배하고 명령하려 애쓰는 법이다.
삶이강물처럼 유유히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 버린다면 그 순간 우리는 절망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논
리적인 마음이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일 것이다. ‘거봐, 삶을 조종하지 않으니까 삶을 놓치고 말잖아. 그러니 삶을 더 꽉 옥죄어야 한다고하지만 진리는 이와 정반대이다. 사람들이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은 삶을 지나치게 조종하려는 탓이다.
유유히 흐르는 저 세찬 강물이 되라.
강물은 꿈도, 상상도, 희망도 갖지 않고 흐른다.
아무리 우리가 강물을 움켜쥐려 해 보아도 강물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기마련이다.
주먹 속에 고이지 않는다. 이것이 삶이다.
넓은 창공이 곧삶이다. 결코 작은 것에 매이지 않는다.
2. 가짜 치료와 깨어 있는 의식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과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조금만 몸이나 마음이 불편해도 병명부터 붙이려 하고, 누군가가 내놓은 치료법이 있으면 깊이 따지지 않은 채 매달린다.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라도 당장 위안을 준다면 기꺼이 믿어버린다. 이렇게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분별하기보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새로운 치료법과 권위에 의존해 살아간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에게 거짓 질병들을 뒤집어씌우지 않을 수 있다. 가짜 질병들이 있는 한, 가짜 의사들도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오래된 가짜 치료법들을 없애면, 새로운 가짜 치료법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 치료법들을 없애더라도 또 새로운 것이 탄생할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치료법들이 있지만, 어느 것이 옳은지를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치료법들 모두가 저마다 병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그 치료법들이 실제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병은 인간의 마음 속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병이 인간의마음속에 존재하는 한, 가짜 치료법들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때문에 가짜 치료법들을 없애는 데는 그다지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인간 마음속의 병에 종지부를 찍는 데 더 큰 관심을 두라. 인간 마음속의 병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의식이 깨어난다면, 인간이 분별력 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 인간은 성가신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가 재를 받아 오는 것은 재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마을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재를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3.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절대적인 도덕과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 한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며, 세상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을 때불안해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변하는 현실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답을 붙잡으려 애쓴다.
옳고 그름은 오직 우리의 시선과 관점에달려 있다. 똑같은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선으로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악일 수 있다. 그러한 차이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도 어떤 순간은 옳고 어떤순간은 틀릴 수 있다. 그것은 상황에 의한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만일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 하고자한다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할 수 있는것이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 고집하면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없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 상대적인 세상에서 상대적인 행동 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결정 내릴 수가 없다.
단지 주시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하는수밖에 없다.
4. 신성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실재라고 믿는다. 돈과 성공, 지위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그 이상을 묻는 일을 시간낭비라 생각한다. 신성이나 초월에 대한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라 치부하고, 깊이를 향한 질문 대신 즉각적인 만족과 소비로 하루를 채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을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잊은 채, 닫힌 세계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모든 역사를 통틀어 신성에 대하여 가장 무지한 존재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세속적이다. 그들은 돈, 권력, 명성에만 관심을가진다.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그들의 삶은 하찮은 것들,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신을 부인한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적인 삶을 알지 못한다.
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지루해진다.
따분한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지루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삶은 모험적일 때만 춤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할 때만이 삶은 모험이 된다. 신성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우리는 막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한과정일 뿐이다. 아직도 무수한 과정들이 남아 있다. 일어나야 할 모든것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씨앗은 새싹이 되고, 새싹은 나무가 되어 봄이 오면 수천 송이의 꽃망울을 터트린다. 그리고 그 영혼은 우주 속으로 해방된다. 그때야 비로소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신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그것을 탐구할 준비를 하자. 처음에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겠지만, 곧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저 너머의 세계가 어렴풋이 느껴지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어떤 미묘한 음악이 우리의 가슴에 닿으리라. 그 음악은 우리의 존재를 일깨우고, 우리에게 새로운 색깔, 새로운 기쁨, 새로운 삶을 열어줄 것이다.
6 큰그릇
인터뷰┃권혁두·28회·
(사)한국조류보호협회 사무총장
인간과 생물이 공존하는 사회를 기대
새를 쫓아다닌 지 48년! 남영동 사무실에서 만난 권혁두 동문(28회)은 용산고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국가유산청에 등록된 유일한 국가지정자연유산관리단체인 (사)한국조류보호협회 사무총장인 권 동문은 자연과 인간, 새를 사랑하고 새를 위해서 봉사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후손에게 인간과 새들을 비롯한 동물들이 공존하는 낙원을 물려주자는 권 동문을 <큰그릇>에서 만났다.
<편집자 註>
큰그릇 7
작은 봉사부터 실천했던 고등학생 권혁두
권혁두 동문에게 용산고 다닐 때를 물으니, RCY(Red Cross Youth) 청소년 적십자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권 동문은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3년을 보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방학기간 고향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 짐을 들어드리는 작은 봉사부터 시작했던 권 동문은 대학에 들어가서 검도를 시작했고, 현재 용산고 동문 검도 동호회인 <용무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박사 윤무부 교수님과 탐사, 제자들과 탐조 체험
권 동문은 경희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조류·곤충·식물·유전학 중 조류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한국 조류학 초석을 세운 조류학자 원병오 교수와 조류 생태와 연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대표적 조류학자이자 생물학자인 새박사 윤무부 교수에게 배우며 권 동문은 꿈을 키웠다. 그는 자연보호 개념을 널리 전파한 윤 교수님을 모시고 남해 섬들 그리고 백령도·을숙도·지리산 등을 탐사했다. 권 동문의 새 사랑은 교육학 석사를 마치고 강서고등학교에서 생물 교사로 37년 근무하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권 동문은 교내에 ‘야생 조수 탐구반’을 만들어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부산 을숙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서산 천수만, DMZ(비무장 지대) 등을 다녔다. “그중 겨울 철새를 보러 강서고 학생 22명과 맹학교 시각장애인 학생 22명이 각각 1:1로 조를 이루어 서로 도와가며 경기도 파주 장단반도에 독수리 먹이를 주러 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권 동문은 교사시절 탐사를 회상했다.
(사)한국조류보호협회 권혁두 사무총장
권혁두 동문은 “(사)한국조류보호협회는 ‘다친 새를 구조하고 치료한 후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을 하는 단체’로 국가에서 지정한 유일한 국가유산관리단체”라고 밝히고, 협회 사무총장으로 “응급상황의 조류 구조 활동 및 밀렵 감시, 겨울 철새 모이·먹이 주기, 인공새집 달아주기, 버드 세이버(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 제작 배포 및 모니터링, 홍보 자료 발간 배포, 조사 연구, 조류 보호 지정, 초등학교 어린이 초청 행사, 전시회, 생태환경지도자(천연기념물생태지도자, 자연환경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등 운영 전반과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라고 맡은 바 소임을 설명했다.
소쩍새, 뻐꾸기, 두루미! 어떻게 생긴 이름일까?
권 동문은 “우리나라 새 이름은 울음소리에서 따온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귀띔했다. 소쩍소쩍 우는 ‘소쩍새’, 뻐꾹뻐꾹 우는 ‘뻐꾸기’, 두룹두룹 우는 ‘두루미’ 등 이름은 새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떠오르게 만든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370여 종의 새가 있었는데, 현재는 580종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 기후 변화로 인해 열대 지방에 살던 새들이 날아왔기 때문이죠.
독수리는 1998년부터 수가 늘어났지만, 떼죽음을 당한 적도 있다.”라며 권 동문은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 원인으로 “우리나라의 숲은 복원되어 돌아왔지만 그 숲에 사는 동물은 다 복원되지 못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사는 독수리에게 먹이가 부족했어요.”라고 얘기한다.
그런 사정으로 (사)한국조류보호협회가 겨울철에 새들에게 먹이를 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월동하는 독수리의 경우 3,000여 마리 정도가 우리나라를 찾는다고 한다.
겨울철에 독수리에게 경기도 파주, 강원도 철원, 충남 태안 천수만, 경남 하동 갈사만, 경남 고성 등 전국 각지에서 먹이를 준다. “흑두루미는 순천만과 천수만, 갈사만에서, 재두루미는 김포와 연천에서 먹이주기가 이뤄지는데, 생물들은 야생에 적응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먹이는 최소한으로 주며 생태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라고 권 동문은 덧붙였다.
새를 쫓아다닌 지 48년! 동문과 후배들에게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인간만을 위해 살 게 아니라, 인간과 생물이 공존하는 사회가 바람직합니다.”라고 얘기한 권혁두 동문은 “미래는 AI, 로봇과 함께 사는 사회가 될 것인데, 자연, 생물과도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동문과 재학생 후배들에게 전했다.
글 천상욱·42회·편집위원
큰그릇 9
김세봉의 고전산책 43:
인생의 세 가지 계획(三計)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각자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물론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대부분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크고 작은 계획을 지니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관중(管仲)이 지은 《관자(管子)》의 권수(權修) 편에는 “1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만 같지 못하고, 10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만 같지 못하며, 종신(終身)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끝부분의 ‘사람을 심는다’는 것은 교육을 통해 어진 인재를 육성함을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 화식전(貨殖傳)에도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대동소이한 말을 하고 있다. “1년 동안 살아가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아가려면 나무를 심어야 하며, 백 년을 살아가려면 덕(德)으로 인도해야 한다. 덕이란 인물(人物)을 이른다.”고 되어 있다. 이 또한 인재 양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孔子)는 관중보다는 약간 뒤에, 사마천보다는 훨씬 앞서 활동한 인물이다. 공자삼계도(孔子三計圖)라는 게 있는데 앞의 두 사람과 달리 공자는 일생의 계획을 앞세우고 하루의 계획을 나중에 말하고 있어 주목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입교편(立敎篇)에 들어있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생의 계획은 유년기(幼年期)에 있고, 1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인시(寅時) : 오전 3시~5시]에 있으니,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게 없게 되고, 봄에 논밭을 갈고 씨를 뿌려 경작하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을 기대할 수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하루 내내 하는 일이 없게 된다.”
어찌 반드시 이 말대로야 될까마는 이렇게 해야만 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쓸데없는 일에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깨움을 얻기에는 충분하다 하겠다.
해마다 연말이면 자주 쓰게 되는 용어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가는 해)을 보내고 새것(새해)을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는 적절한 표현이라 할 만하다.
어제와 오늘이라는 하루 사이로 신구(新舊)가 갈리니 별반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새로운 다짐이나 결심을 하는 계기로 여긴다. 거기에는 이제 경험이 된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기야 역사란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하루의 집적들이 종횡으로 엮어낸 결과물들이다. 우리는 온고지신(溫故知新), 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단어들로 포장하며 새로운 설계를 하게 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가운데 그나마 희망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게 된다. 지난 경험에 비추어 정녕 그것이 제대로 다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하여 그 대부분의 결심이 오래가지 못함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예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 하려고 하는 그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작심삼일이 걱정된다면 삼일마다 계속 계획과 결심을 하면 된다.
그 삼일, 삼일이 거듭되다 보면 끝내는 습관이 되어 마침내 그 변화된 습관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불편함을 느끼게 될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설령 대성(大成)은 못 될지라도 작은 성공은 달성하게 되어 그러한 점진적 변화 속에 예전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늘 공부하고 부지런히 힘쓰는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별로 없다. 설령 어떤 일이 우연히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은 한낱 토끼가 스스로 내 손아귀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어리석은 게으름만을 잉태할 뿐이다.
9 큰그릇
이택순(21회)의 역사 기행 6:
아무르강을 따라 우리의 얼을 찾다
크라스키노, 피의 맹서-안중근
크라스키노 전망대를 내려와 근처에 위치한 한국 농장 ‘유니베라(남양 알로에)’ 입구로 이동했다. 러시아 국경지역에서 한국의 농장을 만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또 하나 의미심장한 독립운동 기념물을 만나게 된다.
1909년 2월 안중근과 11명의 동지가 이곳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결의를 하며 손가락을 끊고 태극기 위에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썼다.
이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2001년, 이 단지동맹 결의를 기념하기 위해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비를 세웠다. 당초 얀치헤(연추)에 있던 것이 홍수로 유실될 위험성이 있어 이곳 크라스키노로 옮겨오게 되었다.
안중근과 구한말 독립지사들은 어떤 경로로 고려인(조선말기 함경도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 집단 거주지인 연해주 얀치헤(연추)에 집결하게 되었을까?
1863년부터 시작된 조선인의 연해주 집단이주는 지신허(크라스키노에서 북쪽으로 10여 km)라는 곳에서 최초로 정착하게 된다. 최초 정착지는 지신허이지만 대부분의 조선족 이주자들은 지신허보다 국경에 가까운 크라스키노 주변지역에 모여들었다.
크라스키노에서 4km 북쪽에 위치한 곳에 집단부락이 형성되고, 이곳을 얀치헤(연추,추카노보(Цуканово, Tsukanovo)라 부르게 된다. 이곳에는 1900년대 들어 이주인구가 2천여 명으로 증가되어, 마치 조선의 작은 시가지를 옮겨온 듯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우국지사들은 국내에서의 항일운동이 한계에 부닥쳤다. 이들은 국외로 망명하여 일본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피난처를 모색하여야 했다. 그 대안은 한반도와 근접한 곳으로 우리 동포가 다수 거주하는 곳이어야 했다.
압록강 건너 만주 땅(간도)과 두만강 건너 연해주가 대안이었다. 국력이 쇠진한 청나라의 만주지역보다는, 열강 러시아제국이 통치하는 연해주 지역이 더욱 안전하였다.
청나라 만주 훈춘 국경에서 20여 km 근접한 러시아 땅 얀치헤(연추)는 1860년대부터 조선인이 집단 이주하여 동포들의 지원을 얻기 쉬웠다. 유사시에는 국내로 침투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 자연스럽게 망명지사가 모여들었다.
역사서적에서는 크라스키노를 연추라 표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정확하게는 크라스키노 지역 내 고려인 부락이 얀치혜(연추)였다. 러시아지역을 표기할 때 혼동이 많다. 러시아어의 신구 지역 명칭과 중국식 한자표기, 중국어 표기, 한글식 표기 등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예, 우수리스크(신 명칭) 니콜스크-우스리스크(구 명칭), 소왕령(한자식 표기))
큰그릇 11
조선인 최초의 연해주 망명자는 누구였을까?
그 선구자는 간도지역 조선인 보호를 위해 파견되었던 관리 이범윤(1856~1940)이었다. 1900년 초에 만주 간도지역에 이주농민이 6만여 명에 이르자 이들에 대한 보호 활동이 필요했다. 1896년 고종의 총애를 받는 대신 민영환은 러시아황제 대관식에 특사로 참석 후 시베리아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귀환했다. 귀환하며 연해주와 만주 간도 조선인 실상을 파악하게 된다.
그의 건의로 1902년 조선에서는 간도관리사라는 직책으로(현재로 보면 총영사?) 이범윤을 파견했다. 이범윤은 간도농민과 포수들로 ‘사포대’라는 준 무장집단을 조직해 열정적으로 간도교민 보호활동을 지원했다.
이범윤은 1904년 러일전쟁 시에는 러시아를 도와 일본군을 공격하는 전투에 가담했다. 러일전쟁이 종료하면서 입지가 좁아지며 청나라가 해산과 철수를 요구한다. 이들 중 일부가 이범윤을 따라 1906년 훈춘 루트를 거쳐, 연해주 조선인 국경 부락 얀치헤(연추)로 이동한다. 조선인 무장세력이 최초로 연해주로 이동한 것이다.
연추에는 1869년도에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토착 고려인으로 경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최재형(1860-1920)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최재형의 후원으로 이범윤은 부대를 정비하고 무기를 보강하게 된다.
1907년에는 해주 출신 무골 대장부 안중근(1879~ 1910)이 원산-청진-회령-용정-훈춘 루트를 거쳐 얀치헤(연추)에 망명해 온다. 이때 안중근의 나이 29세였다.
안중근의 러시아 망명 과정을 잠시 뒤돌아 보게 된다.
안중근은 황해도 토착 양반 가문의 장남으로 농지 수천 석을 소유한 대지주였다. 그에게는 가장과 가문이라는 봉건적 의무가 걸려있었다. 동시에 조선이 왜적에게 침탈 당하는 과정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애국 사이에서 번민이 많았다. 그는 1905년 중국 산동반도를 거쳐 상하이를 답사하며 국제정세를 체득하고, 해외 탈출 결단의 시기와 장소를 고민하고 있었다. 1907년 해외 항일운동의 길로 투신하는 결단을 내려 가족과 가문을 뒤로한 채 혈혈단신 망명한 것이다. 수천 석의 재산가 장손이 정의로운 길에 나선 것이다.
스러져가는 나라에 이런 의인들이 있었다.
1908년 4월에 이범윤, 안중근, 이위종(헤이그 특사)
두만강가, 크라스키노 중심지 전경
12 큰그릇
단지동맹 기념연석, 12인의 동지를 상징한다. 뒤편 검은 돌은 크라스키노 단지동맹비.(왼쪽)
단지동맹 기념비, 오른쪽은 훈춘으로 향하는 도로(오른쪽)
망명파와 토착 이주민 실력자 최재형이 모여 독립투쟁을 목표로 하는 ‘동의회’를 결성한다. 역사상 국외에서 결성된 무장독립투쟁 단체로서는 실질적으로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가 이곳 얀치헤(연추)를 조선혁명의 요람으로 만든다.
이어서 유인석, 이상설, 홍범도, 이동휘, 이동녕 등 독립운동사의 거인들이 합세하며, 1919년에는 일본 육사출신 기병장교 김경천도 하얼빈을 거쳐 연해주에 입국하는 것이다.
동의회는 1908년 6월에 안중근을 대장으로 유격부대를 편성하여 국내침공작전을 전개한다. 그 루트가 하산-두만강-경흥 루트였다. 현지 지형에 익숙한 안중근 부대는 경흥군 홍의동에 주둔하던 일본군 소부대를 기습하여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신아산 영산까지 진출하며 함경도 국경 지역 일본군을 유린하고 크라스키노 얀치헤로 복귀하였다.
2회에 걸친 국내 침공작전을 전개했지만,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고 내부 갈등에 이른다. 동시에 국경 소요를 우려하는 러시아 정부의 무장투쟁 불용 방침으로 유격 투쟁은 소강상태에 빠져든다.
유격 부대를 운용하는 무장 독립운동의 근본적 한계가 노출되는 양상이었다.
새로운 투쟁방향을 모색하던 동의회 인사들은 무장투쟁의 방향을 비밀결사(테러)로 전환한다. 안중근을 중심으로 12인의 지사가 의기투합했다. 일본인 침략원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와 이완용 등 친일파 제거에 집중하기로 한다.
최재형의 연추 집에 모여 왼쪽 4번째 손가락(약지) 마지막 마디를 끊어, 피의 서약을 맺고 항일무장 투쟁을 계속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이 단지동맹이 계기가 되어 8개월 뒤에 안중근의 이등박문 격살이라는 하얼빈 의거가 이루어진 것이다. 러시아에서 기획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미치는 아무르(흑룡강) 하얼빈지역에서 완성된 거사였다.
안중근의 투쟁과 관련해서는 금번 답사의 종착역을 하얼빈으로 정했기 때문에 더 많은 자료와 생생한 현장을 탐색해 볼 것이다.
우리는 단지동맹비의 감격을 뒤로하며, 크라스키노 두만강가 혁명의 요람을 떠나 포시에트 항구 유적지로 향한다.
큰그릇 13
개교 80주년 기념 기억 속의 사진 한 장
사진: 용산70년사에서
1946년 9월 9일 개교 당시 교문
추억 속에 있는 빛바랜 사진을 소개한다.
올해 용산고 개교 80주년을 맞는다. 80년 전인 1946년 9월 9일 개교와 함께 교복을 입고 위 교문을 들어섰던 3회 동문 기억 속에 또렷이 저 교문이 남아있다.
자랑스러운 용산중학생(당시 5년제)이 되어 저 교문을 들어서기 위해 개교 1달 전인 8월에 입학시험을 치렀던 3회 동문의 기억을 따라가보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교에 오니 교실에는 책상도 걸상도 없이 쓰레기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대다수 교실은 미군이 사용해 수험생들은 빈 교실과 강당에서 시험을 치르기 전에 청소부터 하고, 백묵으로 바닥에 줄을 긋고 마치 과거시험 보듯이 엎드려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 말기 당시 경성중학(현 서울고·당시 서울고는 경희궁터에 자리하고 있었다.)에 공습에 대비 옮겨 놓았던 학교 비품을 찾아와 타 학교보다 1년 정도 늦은 1946년 9월 9일 개교를 했다.
교문을 자세히 보면 일제강점기 사용했던 ‘용산공립중학교’라는 교명이 그대로 붙어있다. 광복 후 경성중학이 서울중학으로 육구중학이 경동중학으로 바뀐 것과는 달리 용산은 1946년 8월 9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용산중학을 용문(龍文)중학으로 고쳐 개교하려던 계획’을 바꿔 교명이 용산중학으로 유지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글 박만흠·29회·편집위원장
14 큰그릇
모임탐방: 19회 당구동호회 ‘사구회’
300회 소중한 만남을 계속 이어갈터
요즘 유행인 AI에게 70세 이상 동문이 당구를 치면 좋은 점을 물었더니 “70세 이상 동문에게 당구는 ‘몸을 지키며, 머리를 살리고, 사람을 잇는 최고의 동문스포츠’여서 단순한 경기라기보다 동문 사이에 건강과 우정을 동시에 지켜주는 소중한 만남의 장이 됩니다”라고 답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곰곰이 생각하니 당구는 몸에 무리가 없는 평생 운동이고, 뇌 건강과 치매 예방 및 스스로 채점도 해야 하는 신사적 문화가 있어 동문 사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젊은 시절의 승부욕과 한 큐의 성공이 주는 성취감과 자신감은 몰입감을 회복시켜주는 장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회 당구동호회 ‘사구회’(회장 박두하, 총무 정광필)가 지난 1월 6일 300회 정기모임을 맞았다. 처음 ‘사구회’로 공식모임을 시작한 2012년부터 계산하면 햇수로 15년 시간이 흘렀다. 현재 모임은 매월 첫째 화요일, 셋째 일요일, 넷째 월요일에 정기모임을 갖고 있으며 회원은 41명이다.
처음 모임이 결성된 것은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동기 송원식 동문이 소유한 건물에 세를 들었던 당구장이 경영난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계약이 해지되어 당구장만 덩그러니 남았다. 송 동문이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당구 좋아하는 친구들 원 없이 와서 당구를 치라고 소문을 내어 당구를 즐기다가 동호회를 만든 것이 ‘사구회’ 모임의 시작이라고 정광필 총무가 얘기한다.
모이면 즐거움이 있는 19회 동문 특유의 응집력으로 당구 모임이 꾸준히 이어져 지난 1월 6일 300회 모임이 되었고, 3년 전 현재 역삼동 노블당구장에 터를 잡고 우정을 나누며 즐기고 있다.
2025년 모임에는 김정환 동문이 30회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아 개근상을 받았고, 그 뒤를 박세중, 정광필 동문이 이었다. 19회 최고수는 500점 당구 실력을 자랑하는 백원규 동문이다. 당연히 당구모임이 끝나면 인근 식당에서 참석 회원이 정겨운 저녁과 흥겨운 소주잔을 나누고 헤어진다.
당구 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두하 회장은 서울시 대표로 2025년 4월 25일 목표에서 개최된 2025 전국생활체육대축전 당구대회에 참가해 준우승하며 용산 19회 당구 실력을 전국에 뽐내기도 하였다.
AI가 얘기하는 ‘동문 사이 건강과 우정을 동시에 지켜주는 소중한 만남의 장’인 19회 사구회 모임이 500회를 넘어 1000회 이상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글 박만흠·29회·편집위원장
큰그릇 15
명사대국17 -
백: 오승훈(2학년·10급) vs 흑: 유지호(2학년·10급)
재학생 바둑반의 미래
이번 달 명사 대국은 작년 11월 21일 모교 특활 바둑반 마지막 수업일에 진행된 오승훈君(10급·사진 왼쪽)과 유지호君(10급) 대국을 소개한다. 모교 바둑반 수업은 1년 총 10번(한달 1회) 이뤄진다. 이 정도 수업으로는 바둑 실력 늘기가 어려운 어렵다. 바둑반에 대한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돌을 가려 유지호 君 흑번으로 대국이 시작되었다.
흑 3~9는 선악을 떠나서 유니크한 수법. 백 10, 12도 흥미로운 행마이다. 흑 17 백 18은 흑백 서로 실수. 79자리가 대세점이었다. 백 22는 무거운 수로 30자리로 두는 것이 좋았다. 백 28, 30은 악수. 그러나 흑 35가 무거운 행마로 백 38까지는 백이 조금 편한 흐름이 되었다. 백 46은 58자리가 정수. 흑 49로는 반대쪽 54자리로 이어서 두었어야 했다. 흑 59는 135자리로 두텁게 지켰어야 했다. 백 70이 실수로 71자리로 두어 패를 진행하였으면 백이 확실한 승기를 잡을수 있었다. 다시 71까지 미세한 형세가 되었다. 흑 87, 88 교환은 불필요한 교환. 백 98, 100 교환도 악수이다. 백 110이 무리수로 그냥 115자리로 두었으면 미세하지만 백이 조금 유리했다. 그러나 흑 119가 기회를 살리지 못한 패착이 되었다. 이수로는 120자리로 한 점을 잡았으면 흑의 승리가 유력했다. 실전에 백 120~126 두텁게 마무리를 하면서 승부가 결정되었다. 백 20집 승.
백 24 → 131 자리. 흑 39 → 82 자리. 흑 45, 63 → 133 자리. 백 60, 66 → 135 자리. 백 72 → 136 자리. 흑 83 → 136 왼쪽 옆자리. 흑 85 → 140 자리. 흑 91 → 92 오른쪽 옆자리. 흑 93 → 94 오른쪽 옆자리. 흑 95 → 16 왼쪽 옆자리. 백 98 → 101 왼쪽 옆자리. 백 102 → 109 자리. 흑 106 → 51 오른쪽 옆자리. 백 112 → 3 왼쪽 옆자리
해설 허 진 프로 6단 , 글 정리 김원석(32회), 기보 작성 허경일(27회)
*206년도 YES24배 고교동문전 바둑대회가 1월 18일 예선을 치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용산고는 시드 배정으로 예선을 안치르고 32강부터 출전합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네이버 밴드 용산고등학교 기우회 찾아오시면 깨끗한 기보 있습니다
16 큰그릇
형제결연, 장학기금 협찬 동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학력증진비로 장학금 지원 지속
2025년도 1월~12월
형제결연 참여 동문(동문회
“새해에도, 동문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모교의 더욱 큰 발전을 기원합니다”
재단법인 용산동문장학회 임원 일동
총동창회 연회비 보내주시면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정성스럽게 보내주시는 총동창회 연회비는 아래와 같이 동문 여러분을 위해 사용됩니다.
동기회비와 별도로 총동창회 연회비가 필요합니다
1. 동문 친목강화를 위한 행사에 사용됩니다.
등산대회, 바둑대회, 테니스대회, 골프대회, 농구대회 지원
정기총회, 이사회 등 개최 및 지원
2. 동문 연결 및 정보 교환에 사용됩니다.
월간 ‘큰그릇’ 발간으로 동문소식 전달 및 동문상호 연결
‘큰그릇’ e-book 및 스마트폰 앱으로 서비스 제공
총동창회 홈페이지(http://www.yongsango.net) 유지 관리
3. 모교 지원 및 발전 사업 추진
장학재단 사업(장학금 지급, 우수학생 해외연수) 외 교사 격려
학생 특별활동 등 각종 행사 지원
4. 총동창회 사무국 운영
동문들에게 행정 서비스. 인건비, 통신비 등
용산고등학교동창회 발전과 모교 후원을 위해 사용되는
총동창회 연회비 납부에 동문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후원을 기대합니다.
연회비 납부
국민은행 055237-04-005315
용산고등학교 동칭회(성명, 횟수 기재 바랍니다.)
행사소식
3회 동창회 송년모임
3회 동창회 송년모임이 지난 12월 23일 화요일 오후 1시 종로3가 국일관 이대감집에서 8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어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이날 참석 회원은 2025년 아무 일 없이 잘 마무리하고 2026년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며 이윤호 총무이사 건배 제의로 ‘모두를 위하여’를 힘차게 외쳤다.
회장 박돈서 010-2821-4110
총무이사 이윤호 010-8266-4257
10회 동창회 신년회 및 정기총회
10회 동창회 신년회 및 정기총회가 1월 14일 수요일 오전 11시 시청 앞 프레지던트호텔 31층 모짤트홀에서 4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2025년 결산보고 및 2026년 사업계획 승인에 이어 3분 스피치 시간으로 건강을 챙기는 3가지 방법, 즐겁게 웃음을 나누며 생활하자 등의 덕담과 오찬에 이어 2026년에도 정겨운 모임을 이어가자고 다짐하고 교가 제창을 끝으로 정기총회를 마쳤다.
회장 최영일 010-2369-4467
17회 정기총회 및 송년회
17회 동창회 정기총회 및 송년회가 지난 12월 17일 오후 6시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131명 동문 및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날 모임에서 차기 회장으로 김윤일 동문과 감사로 함형선 동문을 선출하였고, 강찬구 동기의 ‘신개념 건강기법’ 강연에 이어 만찬을 함께하고 초청가수 신나 공연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회장 강찬구 010-2059-7141
총무이사 조승현 010-7686-3878
19회 정기총회 겸 송년회
19회 정기총회 겸 송년회가 12월 19일 오후 6시 충무로 쌈사랑에서 70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번 총회에서 2년간 동창회를 이끈 전임회장 전한국 동기에게 공로패, 이인환(산악회) 이상철(뚜벅이모임) 동기에게 봉사상, 장기 투병을 극복한 정창희, 하영석 동기에게 오뚜기상을 수여하고 만찬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회장 김익기 010-3958-4547
총무이사 정광필 010-2662-5764
21회 동창회 정기총회
21회 동창회 정기총회가 지난 12월 22일 월요일 오후 5시 양재동 엘타워에서 100여 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2025년 결산보고에 이어 차기 회장으로 정재호, 총무에 윤재근 동문을 선임했다. 신임 정 회장은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참석 회원은 “위아용! 산, 산, 산!” 건배로 화답했다.
회장 송재욱 010-9046-1769
총무이사 장종구 010-5732-6802
22회 동창회 정기총회
22회 동창회 2025년 정기총회가 지난 12월 22일 월요일 오후 5시 30분 역삼동 파크루안에서 9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정기총회는 2025년 결산보고 및 승인에 이어 만찬을 함께하며 동문 친목을 나누었다. 이정로 회장은 건배사를 통해 “2026년 새해 모두 건승과 즐거운 일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했다.
회장 이정로 010-8731-0705
총무이사 최세영 010-5266-5078
23회 송년회 및 정기총회
23회 동창회 송년회 및 정기총회가 12월 26일 오후 6시 영등포 프로렌스 연회장에서 90명 동문 및 가족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날 송년회에서는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슬기로운 동창생활’ 동영상 상영에 이어 현 집행부 연임을 의결하고, 만찬과 함께 초청가수 이선주 등 3인조 재즈 앙상블 연주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사진7
회장 정규석 010-8794-6149
총무이사 박주양 010-8074-4409
쌍용회 송년모임
용산·마포 동문 친목모임인 쌍용회 2025년 송년모임이 지난 11월 25일 오후 6시 30분 남영동 덕순루 식당에서 19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송년회에서 참석 회원은 2025년 쌍용회 한해 행사를 돌아보고 2026년 더 즐거운 쌍용회 모임을 위해 다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건배사 “위아 용! 산, 산, 산”을 힘차게 외쳤다. 사진8
회장 김상훈(31회) 010-8846-7018
총무 임종택(38회) 010-5395-0849
의룡회 2025년 송년모임
경기도 북부지역 친목모임인 의룡회 송년모임이 지난 12월 26일 의정부 아사랑에서 14명 동문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모임에서 박창현 회장은 “반가운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2026년 병오년 새해에도 즐거운 일 많이 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참석 회원은 만찬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사진9
회장 박창현(28회) 010-4204-1353
총무 주대희(29회) 010-8502-0855
용설악회 2025년 송년회
속초·고성·양양·인제 동문 친목 모임 용설악회 2025년 송년회가 지난 12월 23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속초시 번영로 청대골에서 9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어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이날 송년회에서 김홍진 회장은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반가운 만남을 매달 이어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모두 함께 힘차게 건배를 외쳤다. 사진10
회장 김홍진(26회) 010-8794-8168
총무 김 신(40회) 010-9135-9145
용우회 2025년 송년회
하키부 출신 동문 친목모임인 용우회 송년회가 지난 12월 20일 토요일 오후 6시 30분 문정동 더퍼스트클래스파티에서 60여 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송년회에서는 2025년 모교 하키부와 중학교 하키부 성적 보고를 듣고 만찬을 함께하며 선후배 동문이 하키를 통해 맺은 우정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사진11
회장 이흥표(36회) 010-6352-5801
총무 이동진(51회) 010-8833-3994
용산산악회 송년 산행 및 송년회
용산산악회 송년 산행이 지난 12월 20일 오전 10시 동대입구역을 출발 남산을 거쳐 모교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어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이날 산행 후 총회에서 이상수(36회) 신임 회장을 선출하고 지난 1년간 산악회 활동에 애쓴 동문에게 선물 증정 시간 및 선후배 우정을 나누는 만찬을 함께하며 새해에도 즐거운 산행을 다짐하였다. 사진12
회장 유영욱(32회) 010-9948-6367
총무 이상수(36회) 010-9262-4128
행사/서평 We Are 龍 山, 山, 山
용신회 2025년 추수 감사 예배
2025년 11월 17일 본교 대강당에서 기독인 동문 170여 명이 참석하여 추수감사 예배를 진행했다.
6시 동천홍에서 이상부(27회·장로) 동문 후원으로 애찬을 하고, 7시 남양규 목사(29회) 사회로 옥중경 장로(23회) 대표기도, 동문합창단 특송에 이어 임형석 목사(21회)의 ‘지금 우리가 할 일은?’(빌 4:10~13) 설교를 통해 추수 감사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이어진 김현조 회장목사(23회) 인사말, 홍인덕 목사(증경회장. 22회) 축도로 추수감사 예배를 마쳤다.
특히 이날 고교기독교연합 이상현 목사(서울고)외 3명 회원이 참석해 고교기독교연합 설립 취지 설명과 축사를 했으며, 경복고 신우회에서는 축하 화환을 보내주었다. 특별히 내년 부활절 예배는 용신회 설립 10주년 및 용27 신우회 설립 20주년 연합예배로 개최되며, 김형석 교수(106세)가 주 강사로 초대되었고, 경복고 신우회 특송도 예정되어 있다.
회장 김현조(23회) 010-3390-3627
총무 윤주선(27회) 010-6892-4000
용유회 송년 모임
유도부 동문 친목 모임 용유회에서 지난해 12월 27일 토요일 오후 1시 사당역 근처 맛이 담긴 항아리 김치찌개에서 17회부터 32회까지 20명이 참석해 흥겨운 송년 모임을 진행했다. 이날 오후 1시에 시작한 모임이 저녁까지 이어졌고, 특별히 초대받은 21회 정재호 전임 총회장이 용유회 발전 기금으로 100만 원을 기부했고, 전임 회장 김석도(19회) 동문이 만두 포장을 선물해 즐거움을 더했다.
회장 박종수(21회) 010-8001-1785
총무 강흥원(23회) 010-4237-9874
용천산악회 송년산행
금천구 거주 동문 모임 용천산악회에서 송년 산행을 지난 12월 14일 일요일 모락산 산행으로 진행했다. 오전 9시 30분 인덕원역에 모인 회원은 모락산(385m)까지 3시간여를 선후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정담과 함께 송년 산행을 했다. 이날 산행은 전날 내린 눈으로 역대급 설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였고, 산행 후 평촌 안양농수산물시장에서 대방어회와 문어, 새우 등 푸짐한 상차림으로 흥겨운 시간을 만들었다.
회장 박노형(25회) 010-4481-8778
총무 이영수(30회) 010-9056-2363
29회 동창회장배 당구대회
2025년 29회 동창회에서 후원하는 동창회장배 3구 케롬 당구대회가 지난 12월 21일 오후 1시 종각역 인근 MT당구장에서 용당29회(회장 이청희, 총무 조완호) 주관으로 개최되어 즐거운 하루를 만들었다. 이날 당구대회 결과 이종호 동문이 우승을 이상복, 박형근 동문이 공동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대회 후 인근 식당에서 만찬과 함께 대회에서 아쉬웠던 순간을 기억하며 내년 대회를 기약하였다.
회장 조남윤 010-5660-0068
총무이사 천인성 010-8888-5432
‘슬로건’ 출간
김덕용(21회) 동문
대한민국 광고·홍보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덕용(21회·전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교수) 동문이 신간 ‘슬로건’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응축하는 ‘슬로건’의 힘을 심도 있게 다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저자는 슬로건을 ‘언어의 마법 전략’으로 정의하며, 단순히 멋진 문구가 아니라 브랜드와 메시지 전략이 결합된 핵심 자산임을 강조했다.
책에는 ‘침대는 과학입니다’와 같은 전설적인 상업 카피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보통 사람들의 시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 등 시대를 관통한 정치 슬로건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사례 분석이 담겨 있다.
김 동문은 “약점과 위기를 뒤집어 핵심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슬로건의 본질”이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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