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라...처음에 교수님이 동성 아트홀에서 상영하는 단편영화를 보라고 했을 때 의아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보다도 비디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는 게 고작인 나에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직접보라고 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런 핑계로라도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은 무척 좋았다. 전 시간에 교수님께서 몇 몇 단편영화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단편 영화라는 것은 그리 멀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 단편영화라는 것은‘올드보이’나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재생시간만 짧았다이거지 결코 그런 작품들보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교수님 수업시간에 몇몇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느꼈다.
그래서일까? 동성로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웠다.
인테넷으로 모든 작품을 뒤져본 결과 본선3의 작품들이 왠지 제목 면에서 라던지 작품 줄거리를 봐도 더 재미있을 것 같이 느껴져서 본선3 작품들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다섯작품들 모두 나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내가 아는 흰 난쟁이>, <어느 네팔 소녀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 <빛과 동전>, <천공>, <당신은 피터팬과 키를 재어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작품이 순서대로 상영되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 인터넷을 뒤져서 작품의 대충적 줄거리를 알고나서 시청하니깐 하나도 알지 못 하는 무지상태에서 작품을 보는 것 보다도 이해가 더 빨리 되는 듯 했다.
다섯 작품 모두 뛰어났지만 나는 그 중에서 <당신은 피터팬과 키를 재어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물론 맨 마지막에 상영되었고, 다른 작품과는 달리 로딩시간이 길어서 영화 속 함축적 의미와 영화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이 더욱 확실하고 명확히 드러나는 듯 했다. 그 작품을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이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작품을 보면서 이 영화에 주인공은 어느새 나에게 작은거인이 되어서 내 곁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신철호 감독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로 만들었다고 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역시 스토리 전개상에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준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 신철호 감독의 영화 ‘당신은 피터팬과 키를 재어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한다.
처음 피터팬하면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자신만의 세상인 네버랜드에 갖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이전 단계의 자아에 머물러 있는 만화 속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어릴때는 자유로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피터팬이 난 사실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내가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세상에 갖혀있는 피터팬이 불쌍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만화영화 피터팬처럼 용감하게 하늘을 날면서 어른 후크를 물리치는 피터팬이 아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의 피터팬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영화 초반부에는 어린 두 형제의 우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형 성민은 12살때의 외모그대로 그리고 신체도 더 이상 크지않는 희귀병을 얻게된다. 그의 동생 태민은 이런 형을 부끄럽게 여긴다. 버스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형이 골목에서 중학생들에게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모른척 지나치기 까지 한다. 동생은 이런 형을 아주 부끄럽게 여기며 점점 형에대한 증오심 아닌 증오심을 불태워만 간다.
결정적으로 동생의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1986년도 동전 중 일부를 형이 사용함으로써, 형에게 신경질을 내면서 형에대한 반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 일이 있은 후 형은 입원하게 되고, 동생은 이런 형을 별로 가엾게 여기지도 않는다. 형이 없는 침대 방에서 흩어져있는 자신의 동전을 줍다가 형의 침대 밑에서 1980년짜리...그러니깐 형이 태어난 연도가 적힌 동전을 줍게된다. 동생은 들판에 바람을 쐬러 밖에 나왔다가 어느 여중생의 남동생이 동네 아이들의 물건을 훔쳐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관심으로써 동생을 어루만져주는 한 남매를 보게된다.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 만 같던 그 소년은 누나의 따귀에 그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형을 떠올리게 된다. 항상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형의 장애를 부끄럽게 여기며 감추려고 했던 태민의 모습과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는 동생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여학생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동생은 여기서 무엇인가를 크게 느낀 뒤 형의 출생연도가 적힌 1980년도 동전을 손에 꼬옥 쥐고 형의 병실로 뛰어가지1만 형은 더 악화되어 수술실로 들어간 뒤다. 그리고 나서 그 형이 죽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형과 동생이 키를 재어보면서 “몇 ㎝나 컸어?”라고 묻는 대목에서 그들의 대결 양상이 끝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영화에서 보여줬던 형제의 어릴 적 모습과는 달리 앞에서의 형제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라서 왠지 모를 씁쓸함과 감동이 함께 밀려오는 듯 했다.
이처럼 이 영화속에서 형과 동생은 어릴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갈등적인 양상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 다른 남매들의 우애있는 모습을 지켜보고서는 태민도 이제는 성민에게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비록 형 성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늦게나마 자신의 곁에는 ‘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 동생 태민이가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형보다 신체도 크기 때문에 형보다 모든 것이 뛰어나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태민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 하는 경우가 아주 많은 것 같다. 늘 함께 있어서 소중한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가끔씩 자신이 지쳐있거나 힘들 때만 그들을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서두에서 내가 언급하였던 것 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영화를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형 성민의 침대 밑에 있었던 1980년도 100짜리 동전의 의미는 무엇 이었을까?’ 라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그것은 아마도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얼렁뚱땅 잊혀져만 가는 성민의 자아정체성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침대 구석 어둠에서 빛을 받지 못하고 있던 성민이의 자아정체성을 동생이 태민이가 찾아준 것 같아서 나는 무척이나 흐뭇했다.
마지막 부분에 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가 궁금해서 감독에게 물어보았더니 감독의 의도로는 죽은 것으로 처리했다는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
이 작품이 주려고 했던 교훈은 아마도 ‘늘 함께 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촉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보았다.
늘 함께 있어서 귀찮은 것 같지만 그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무색무취의 공기처럼 말이다.
비록 단편이었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영화를 본 후 많은 시간이 흐린 지금도 나는 너무나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모든 영화를 다 보지 못하고 시간관계상 본선3 작품들만 봐서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이 5편의 영화로써 한국의 단편영화를 모두 이해한다고 설명하기는 힘들겠지만 나에게 뜻깊은 추억이 될것이라고 믿는다.
이 영화제를 통해서 평소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않았던 단편영화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것 같아서 기뻤다. 비록 자율적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이 영화들을 보긴 했지만 영화를 다 본 후 지금 나에게 남은건 오랜만에 가슴을 뜨겁게 녹여준 귀한 님을 만난것 같은(?)느낌이다.
실제 이 작품이 신철호 감독이 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소재로해서 만든 것이라면 실제 등장인물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쓸데 없는 생각(?)까지도 내심 해보았다.
비록 대구단편영화제가 5회 밖에 안되지만 앞으로 감독분들이 더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많이 만들어서 이 대구단편영화제가 번창 할 수 있기를 영화관을 나오면서 내심 바랬다.
대구단편영화제를 관람할 수 있게 계기를 마련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대구단편영화제에 힘쓰신 모든 감독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