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방송계 데뷔 40년을 맞은 아나운서 김동건(金東鍵ㆍ65)씨. 방송국 녹화가 있거나 외국이나 지방에 가 있지 않는 한 그는 주로 남산 타워호텔 커피숍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가 앉는 자리도 입구 오른쪽에 정해져 있다. 타워호텔 커피숍 겸 식당의 비빔밥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김씨는 “비빔밥을 그동안 1000그릇 이상 팔아줬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가 이곳에서 비빔밥을 먹지 않는다면 그가 가는 곳은 약수동 이북만두집(처가집)이다. ‘아나운서 김동건’을 안다는 사람 치고 약수동 만두집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은 그의 손에 이끌려 약수동 만두집을 다녀갔다. 지난 5월 15일 12시 타워호텔 커피숍에서 김씨와 만난 기자 일행은 그의 차를 타고 약수동으로 이동했다. 상호 ‘처가집’ 보다는 약수동 골목집으로 더 알려진 만두집은 장충체육관을 오른편에 두고 동호로를 달리다 고가도로 밑으로 들어가 동호로가 다산로와 교차하기 직전, 복지관길로 들어서야 한다. 복지관길을 100여m 들어가 다시 좁은 골목길인 복지관3길로 빠져 한참을 올라가야 복지관3길 16-1 ‘찜닭, 막국수, 만두’라는 작은 간판이 나온다. 안내를 받지 않고 혼자 찾아가기가 힘들어 보였다. 1970년대의 서민 가정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쓰고 있다. 손님을 받는 방은 두 개. 단체손님이 오면 대청마루와 연결된 안방을 내주기도 한다. 김씨가 이곳과 인연을 맺은 지는 30년이 된다. “알고 지내던 고위직 공무원이 퇴직 후 밥을 사겠다고 해서 이 집을 알게 되었죠. 만두맛이 이북만두맛의 전형입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지만 여기 와 본 사람들의 99%는 맛이 있다고 말합니다. 48년 전 이북에서 피란 내려온 할머니가 만두를 빚어 팔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들 내외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점심과 저녁을 이곳에서 먹을 때도 있지요. 제가 오면 늘 식탁 두 개짜리의 작은 방에서 식사를 하는데, 이 방에 올 때마다 대구 피란 시절 살았던 방이 생각납니다.”
1970년대 가정집, 식당으로 개조 메뉴는 만두국(4000원), 찜닭 반마리(7000원), 막국수(4000원) 3가지뿐. 김씨는 찜닭 반마리와 만두국을 주문했다. 잠시 후 찜닭이 나왔다. 살코기를 찢어 양념장에 찍어 먹어 보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던 바로 그 찜닭 맛. 참으로 오랜 맛에 맛보는 진짜 찜닭 맛이었다. 찜닭을 먹고 있는데, 이모(김씨는 여주인을 ‘이모’라 부른다)가 김씨가 왔다며 특별 서비스로 살짝 데친 부추를 내놓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부추를 한입 먹어보았다. 순간 부추가 이렇게 부드럽고 맛이 있을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별미 중의 별미였다. 순식간에 세 사람은 부추 접시를 비웠다. 잠시 후 만두국이 나왔다. 큼지막한 만두가 네 개 들어 있었다. 김씨는 “찜닭보다는 만두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만두를 건져 먹어보았다. 두 개를 먹어보니 확실히 여느집 만두와는 달랐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진짜 평양만두 맛”이라고 거들었다. 김씨는 만두맛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북 만두는 고기를 적당히 넣어야 제맛이 납니다. 이 집 만두는 옛날에 먹던 바로 그 만두 맛이에요. 국물이 맑고 감칠맛이 있는 게 이 집 만두국입니다. 내가 ‘만두 국물 뭘로 해’라고 물으면 주인은 언제나 ‘그냥 맛있게 드시기만 하세요’라고 답합니다. 옛날에 이북만두라고 하면 꿩고기만두를 말했죠. 꿩고기만두를 만들 때는 뼈까지 갈아서 만두 속을 만들었습니다.” 처가집은 종업원이 따로 없다.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의 이병운(62)씨 자매가 음식을 만들고 나른다. 김씨는 30년 넘게 이 집을 다니지만 여전히 이병운씨를 언니, 동생을 이모라고 부른다. 김씨는 “맛도 맛이지만 이 집 주인의 인간적인 마음씨, 사람냄새에 반해 내 집처럼 좋아한다”고 말했다. “몇해 전 어떤 방송프로그램에서 나보고 단골집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제가 이 집을 생각했죠. 그래서 ‘언니’에게 부탁했죠. ‘텔레비전에 나가면 손님도 훨씬 많이 오게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TV에 나가는 것은 싫다는 겁니다. 손님이 많이 오면 음식을 많이 만들어야 하고, 음식을 많이 만들다보면 아무래도 음식맛이 없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또 손님이 너무 많아 오랜 단골들이 왔다가 돌아가게 되면 그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겁니다. 그냥 현재대로 영업을 하게 해달라고 사양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집이 어디 있습니까? 주인이 너무 좋고 푸근해요.” 김씨는 겨울이 되면 이 식당에서 만두 20~30개를 사가곤 한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틈나는대로 집에서 끓여 먹는다. ‘이모’가 서비스로 막국수를 먹어보라고 가져왔다. 하지만 만두와 찜닭을 먹느라 맛볼 수가 없었다. 식사를 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기자는 문득 ‘내가 지금 식사를 하는 곳이 어디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시골 고향집에서 밥을 먹는 그런 기분이었다. 기자가 이런 느낌을 말하자 김씨는 “그래, 여기는 식당이 아니라 집이야”라고 맞장구를 친다. 처가집은 뜨내기 손님은 올래야 올 수가 없다. 워낙 식당이 골목 깊숙이 있어 단골이 아니면 찾아오기가 힘들다. 처가집의 최대 약점은 찾기 힘든 데다 주차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찾아오기 힘든 만큼 옛맛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처가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