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보는 관법(觀法)이 다양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맞는 말인가. 100% 틀린 말이다.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추정하고 예측하는 학문을 사주학 또는 명리학이라고 한다. 일종의 미래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명리학(命理學)에는 엄연히 '학(學)'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어떤 분야든 일이든간에 거기에 '학(學)'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것은 '진리(眞理)'라는 뜻이 있다. 진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시대를 초월해서 봐도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큰 범주에서 동일한 시각을 드러내야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진리에도 세월이 흐르면서 수 많은 새로운 데이타가 축적되고 탁월한 천재가 등장하여 기존에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완전히 다르게 해석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전히 '진리'는 그 시대에는 누가 봐도 동일한 시각이 드러나야 진리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의 진리가 영원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 의하여 획기적 발견이나 데이타적 증명이 등장하여 기존의 이론 체계가 변경되기 까지는 기존의 진리는 그 자체로 인정되고 통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문으로서 진리가 된다.
진리에는 일정한 법칙이나 원리가 존재하므로 그것을 배울 수 있다. 명리학도 하나의 '학(學)'이 되므로 엄연히 진리다. 거기에는 일관된 진리가 있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그것에 통용되는 원리를 익힘으로서 누구나 배우고 활용 할 수 있다.
만약에 사주를 보는 '관법이 다양하다'는 말을 인정하게 되면 명리학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는 것과 같다. 관법이 다양하므로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이 될 수 없다.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이나 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한가지 원리가 전체적으로 통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한다는 것은 진리다. 1+3=4가 되고 2+3=5가 된다. 누가 계산하고 들여다 보더라도 이 값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리에 따라서 이러한 덧셈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다.
사주를 보는 관법이 다양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마치 어떤 감기 환자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데 어떤 의사는 감기라고 하고 어떤 의사는 폐암이라고 하고, 어떤 의사는 심장병이라고 하고, 어떤 의사는 위암이라고 진단해도 된다는 것과 같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병명이 각각 다르게 나오고 치료 방법도 다르게 된다. 그 결과 그 환자는 차라리 병원에 가지 않는 것 보다도 못한 결과를 얻게 된다.
오늘날은 명리학이 뭔지도 모르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듣거나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운명을 간명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감정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 잘못된 방법과 이론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주하는 말이 사주를 보는 관법이 다양하다는 주장을 한다.
어떤 자는 한난조습으로 사주를 간명하고, 어떤 자는 신강신약으로 용신을 정하여 간명하기도 하고, 어떤 자는 조후를 중심으로 사주를 간명하고, 어떤 자는 자연물상으로 사주를 간명하기도 한다. 과연 바람직한 방법인가. 이런 방법이 맞다면 사주명리학은 더 이상 학문이 아니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운명을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고 저렇게 판단 할 수도 있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이 아니므로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아니므로 배우고 활용할 수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모든 학(學)은 진리다. 진리는 연역적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경험적 방법인 귀납법은 보조적 수단에 그쳐야 한다. 즉 모든 학문은 어떤 변치 않는 원리로 설명되고 이해 될 수 있어야 한다. 간명하는 술사(術士)에 따라서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면 그것은 학문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 진리가 아니므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혹세무민하는 사회악이다.
명리학은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를 분석하고 추정하는 하나의 학문이다. 거기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다. 그 원리를 최초로 발견하고 고안한 사람이 서자평이다. 지금으로부터 1100년쯤 전에 출현한 사람이다. 그 후 지금으로 부터 300년 쯤 전에 청나라의 관리였던 심효첨이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서자평의 사주해석 방법론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것이 오늘날 '자평진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책이다. 여기에 명리학의 진수가 담겨져 있다. 누구나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사주팔자 체계를 수립하고 일간을 기준으로 십신을 정하여 사주를 간명하는 자는 모두 자평진전의 카테고리를 유지하면서 지엽적인 문제에서 자신의 의견을 첨삭하여 사주를 간명해야 한다.
현대 명리학은 100% 자평명리학이다. 자평명리학이라면 당연히 서자평의 기본설계도와 심효첨의 상세설계도를 근간으로 사주를 간명해야 한다. 한난조습, 조후, 신강신약으로 용신을 정하는 억부법, 자연물상 등으로 사주를 간명하거나 용신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자(者)는 넓은 의미에서는 사기꾼이나 다름 없다.
사주를 보는 관법은 다양하지 않다. 사주를 간명하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뿐이다. 현대 명리학은 모두 자평명리학이다. 무엇이 자평명리학인가. 생년월일시로 사주팔자 체계를 구성하고 일간을 중심으로 십신을 정하고 월지에서 용신을 구하는 것이 자평명리학이다. 사주를 간명하는 방법도 바로 이러한 원리에 따라서 용신을 정하고 격국의 성패로 길흉성패를 판단해야 한다. 사주를 간명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 자평진전에서 제시하는 격국의 성패에 따라서 간명하는 유일한 한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
첫댓글 오랜역사만큼 여려가지. 방법. 있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님의 말씀 도 맞는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