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1919년 3월 1일
조선의 아침이
그렇게 밝았던 것처럼
100년이 지난
오늘
나의 조국 조선(朝鮮)!!
그 아침이
그대로 밝았다.
서슬 퍼런 칼과
불을 뿜는 총구 앞에서
우리의
순국 선열(殉國先烈)들은
한 손에는 태극기
한 손에는 맨 주먹으로
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두 손과 두 다리가
동강이 나고
총탄에
가슴이 관통이 되어도
기적같이
다시 벌떡 일어나
밀물같이 외쳤던
그 몸부림! 그 외침! 그 갈망!
대한 독립
만세! 만세! 만세!!
이렇게,
피로 얼룩진
역사적인 자료들과
전국 방방 곳곳에
헤아릴 수 없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글과 그림으로만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지금의 현실 앞에
그 피의 물결과
그 태극기의 물결들을
이 땅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벌써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의 조국을 향하여
간첩(間諜)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이적죄(利敵罪)를
그렇게 버젓이
일삼고 있는지를
그들의 가슴속에는
태극기와
애국 애족이 있는지 묻고 싶다.
더 이상
복받치는 감정과
형
용조차 불가한
경건(勁健)한 마음으로
반듯하게
태극기를 게양했다.
그리고,
군 제대후
대학 3학년으로 복학하는
쌍둥이 큰놈
살림살이를 차에 싣고
쌍둥이 아들과
작은 딸과 함께
점심을
대체할 수 있는
햄. 치. 감. 콜을
기분좋게 맛나게 먹으며
천안(天安)으로 향했다.
설날 이후
황금 연휴 이라 그런지
고속도로
상행선 하행선 모두가
끝없는
자동차 행렬로 인한
저속 운행과
크고 작은 교통 사고로
여정이
만만치가 않는다는 생각이
살짝 스칠쯤
날씨까지 완연한 탓에
봉우리를
먼저 터뜨린 벗꽃들이
어렵지 않게
언듯언듯 보이기까지 해서
봄을
보는 듯 했다.
함양. 장수. 덕유산
무주. 인삼랜드. 추부...
대전 지나
신탄진 들어서니
그야말로
차산차해(車山車海) 상황이지만
나의 애마는
9인승 승합차인 관계로
파란색이
선명하게 그어진
고속버스
전용도로 차선 안으로
동면(冬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물 속에 뛰어들 듯
롤러코스트가 아래로
냅다 내려 꽂듯
바로 돌진!
전혀 움직임이 없는
옆 차선에는
13억원 마이 바흐와
30억원 람보기니가
고철로 보이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짜릿함은
무엇으로 표현하리오!
야호!
절로 터지는
천안 삼거리 타령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 늘어졌구나!
에루와 좋다 흥……
성화가 났구나 흥....
우리는
이 기분 그대로
편안히
속도를 더 낼 수 있었고
천안 IC가
두 팔 벌려 우리를 반긴다.
조금 더
조심하고 깊숙히 들어서니
아니
이럴럴럴수가...
버스크버스크의
벗꽃엔딩의 배경이 되었다는
단국대 호수공원 옆
벗꽃나무 곡선 길따라
줄지은 유명 카페들과
넓은 테라스들이
천안 명소중의 명소임을
직감할 수 있었으며
그 모퉁이에
단국대 전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풍스럽고
맑고 깨끗한 원룸 4층!
그 곳에
물건들을 풀어 놓았다.
전경 구경도
잠시
되돌아 갈 길이 멀어
이내 기수를
사천으로 향하였는데
엥...
이게 왠일...
천안 하면
유관순 열사와 독립기념관을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독립 기념관에서
3. 1 만세 운동 재현과
각종 체험 행사들로
천안 외곽도로가
자동차들의 정체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으나
순국 선열 후예답게
차분히
한시간 지났을 쯤
겨우 천안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검정 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입은
여고생들의 모습들이
눈에 아런거리는
그 뜻 깊은날
그 현장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많은 것을
공부하게 되었고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천안 시민들과
순국 선열에
또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己亥年
驚蟄
律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