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부기의 회귀를 기다리며
임병식
최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멸종 위기에 놓였던 저어새가 안정적인 개체수를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중국·일본·대만 등이 함께한 보전 노력의 결실이라고 한다. 한 생명이 사라지지 않도록 국경을 넘어 힘을 모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반가웠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문득 오래전 우리 들녘을 누비던 뜸부기가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인 1950~60년대만 해도 남녘의 논과 들판에서는 뜸부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꿩만 한 몸집에 붉은 볏을 세운 채 벼 포기 사이를 오가던 모습은 농촌 풍경의 한 부분이었다.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우렁이를 깨물며 논의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던 친숙한 이웃이었다.
뜸부기는 모습보다 소리로 더 오래 기억되는 새다. 울 때면 “뜸, 뜸, 뜸” 하고 낮고 굵은 울음을 냈다. 고요한 들녘의 적막을 깨우던 그 소리는 어린 날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자연의 노래였다.
나에게는 잊지 못할 뜸부기와의 만남이 있다. 어느 날 풀밭 한쪽이 움직여 자세히 바라보니 어미 뜸부기가 새끼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잡아보고 싶은 마음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긴 다리로 껑충껑충 뛰며 순식간에 풀숲으로 사라졌다. 그때 마주했던 작은 생명들의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어새의 귀환 소식은 반가웠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오히려 뜸부기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저어새는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접했을 뿐이다. 그러나 뜸부기는 어린 시절 내 눈앞에 있었고, “뜸북 뜸북 뜸북 새”라는 노래 속에서도 늘 가까이 있었다.
내게 뜸부기는 단순한 한 마리의 새가 아니다. 그것은 사라져버린 고향의 풍경이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날의 시간이다.
지금 우리 들판에서는 그 울음을 듣기 어렵다. 한때 흔하던 생명이 어느새 기억 속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식지가 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면서 자연의 이웃들도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났다.
한번 사라진 생명을 되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면 희망의 문마저 닫히고 만다. 저어새의 귀환이 보여주듯, 인간의 관심과 노력은 사라져가는 생명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줄 수 있다.
나는 다시 만나고 싶다. 황새와 저어새, 뜸부기와 쇠물닭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들녘을. 새들의 울음이 들리고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하나 되는 자연의 시간을.
한 생명의 귀환은 단순히 한 종을 되살리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어쩌면 가장 빠른 때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뜸부기가 다시 우리 들판으로 돌아와 “뜸, 뜸, 뜸” 하고 그리운 울음을 들려주기를 기다린다.
그날 돌아오는 것은 뜸부기 한 마리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자연의 마음과 오래된 고향의 시간도 함께 돌아올 것이다.
(2026)
첫댓글 저어새의 국제적 보전 성공 소식에서 시작하여 과거 들녘에서 만났던 뜸부기에 대한 아쉬움·그리움이 대비를 이루며 글의 감정적 깊이를 더해줍니다.
"생명의 귀환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이라는 공동체적 메시지로 마무리하여 읽고 난 뒤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속히 저어새와 같이 뜸부기도 복원되어 5~60년대 논에서 보았던 그 많던 우렁이, 미꾸라지, 뜸부기를 볼 수 있기만을 기원해 봅니다. ^^
저어새 복원소식을 접하니 갑자기 사라진 뜸북이가 생각났습니다.
60년대 들녘에서 뜸북이 새끼를 마주친 적이 있는데 생긴것은 병아리와 같았으나
다리가 훨씬 길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잡으려고 했더니 동작이 엄청 빠르더군요.
그 생각이 60년이 넘어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청년시절까지도 논둑에서 종종 만나는 새였지요 보이지 않더라도 뜸뜸 우는 소리만 들어도 뜸부기임을 알 수 있었어요 여수 사람들은 뜸벵이라고 부르지요 멸종된 건 아니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거의 멸종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운 이름입니다
뜸부기이름이 그립습니다.
논가의 풀밭이나 벼포기 사이를 다니면서 먹이사냥을 하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볏이 유난히 붉고 사람이 보이면 비호같이 종종걸음으로 달아나곤 했지요.
동요 속에서만 듣던 뜸부기를 선생님의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를 통해 훨씬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미를 따라 껑충껑충 뛰던 생생한 묘사에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선생님의 바람대로 황새와 저어새, 뜸부기가 어울려 사는 들녘이 꼭 찾아왔으면 합니다. 늘 좋은 글 읽게 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뜸부기는 오는 소리도 특이하지만, 생김새도 특이했습니다.
크기는 꿩만 하고 볏이 선홍색이었습니다.
병아리는 틀림없이 딹의 병아리를 닮았는데 다리가 길쭉하고 매미 민첩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복원이 되어 다시 구경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