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는 뚜껑을 보면 '따꿍'이라고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한동안은 하기싫은 일이나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애매하다"라고 말하기도한다. 아이들의 유아어는 커가면서 차츰 표준어로 고쳐지고 어떤 단어들은 그 집안 안에서의 고유어가 되기도한다. 아이들의 말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러워 그 누구도 틀렸다고 무안을 주거나 나무래지 않고 오히려 유아어가 집안의 공용어로 쓰이 기도 한다. 마치 언젠가 개그 프로그램에서 '뭔 말인지 알겠지?' 물으면 '응. 뭔 말인지 알겠다' 댓구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아'하면 '어'로 '어'하면 '아'로 알아들으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많이 쓰는 한자어는 때에 따라 '어'가 '아'로 읽히기도 하고 소리는 같고 다른 의미를 쓰이 기도하니까.
내동생은 어렸을적에 '의'라는 발음이 어려웠는지 위자,위사,위료보험...이라고 말을 했다. 그러면은 '그믄'이여서 '그믄'이 한동안 동생의 별칭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녀석이 '그 문'이라 말할때는 뭔가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어 부모님이나 우리에게 따질때 나오는 급한말이다. 얼마전 '밀회'라는 드라마 에서 여주인공의 '그러믄, 그렇게 하믄' 이란 말투가 여배우 때문인지 우아하게 들리니 동생의 말이 떠올라 흐믓했다. 나 역시 '포효하다' 를 '표효하다'라고 말해 동생이 웃으며 고쳐주던 기억이 난다. 죽엇다 깨어나도 짜장면은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감칠맛이 나니까.
예전에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나의 말에 '감칠맛이 아니고 감질맛이야!'라고 단호하게 바로 지적을 해주던 기억이 난다. 평소 같으면 '어 그래?' 하고 받아들였겠지만 아마도 나름의 확신과 무안함이 있었는지 귀가후 '국어사전'을 펼쳐놓고 '감칠맛'을 찾아보았다. "감칠맛: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듯이 맛깔스러운 맛" 역시 내가 맞잖아~라고 기뻐하기도 전에 '감질맛: 감칠맛을 감질맛이라고 쓰기도 함' 이라고 씌여있었다. 여하튼 다음날 '감칠맛'이 맞다.찾아봤다 라고 했더니 '그래? 아님말고.'... ... 그때 한참 유행하던 책 제목이 '나는 왜 작은 일에 쉽게 분개하는가' 였다.
한번은 출근 길 차안에서 대화 중에 주야장천 [晝夜長川] 란 나의 말을 '주구장창!!이라고 급 정정을 해준다. 당시 대학생이였던 동생인지라 아...신 학도라 다르구나 하며...역시 사전을 찾아보니 밤낮으로 쉼 없이 줄곧 ...이라 써있다.거봐...라고 하기도 전에 주구장창은 ‘주야장천(晝夜長川)’이 변한 말이다. 라고도 써있다.
우유부단 [優柔不斷] 이란 사람이나 그 성격, 태도 따위가 어물거리며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어 매사에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성격을 말한다.
그러나 종종 '유유부단'을 그 사람의 성격이 유연하고 누구하고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내거나 좀 느긋한 사람을 말할 때 쓰이는 것을 본다. 나도 그렇게 잘못알고 좋은 뜻으로 말을했다가 실례를 한줄도 모르고 실수한 적이 있었는데 뜻을 정확하게 모르고 말한 것 같다며 제대로 가르쳐주신 분이 있었다. 덕분에 정확한 뜻을 알고 제대로 사용하며 아울러 그 분의 좋은 마음씨를 통해 겸손과 친절도 배웠다. 그후로는 친절과 겸손은 아니지만 내가 잘못알고 실수한 단어만큼은 나와 같은 실수를 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람에게 최소한 내 경우를 이야기 해줄수 있게 되었다.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대기만성 [大器晩成] 인 사람을 뒤늦게라도 성공할 사람처럼 인생을 대기하는데만 만성이 되어버린 사람이 대기만성이라 하는 것 처럼.
하루는 선배에게 '우리는 PIZZA를 '피자'라고 하는데 외국애들은 '핏자'라고 말해요.'했더니 그분이 '에이 설마, 잘 모르는거 아니야?' 라고 되물으셨다. ㅠㅠ
핏자나 피자나 의미가 다를것도 없는데 나름 진지한 대화였고 주문할때 핏자여도 피자여도 Pizza를 말하는 지를 알고있다. 벌써 이십여년 전 얘기다.ㅎㅎㅎ
'메너리즘'은 '메커니즘'을 오인할 수 있지만 어떠한 사회의 메커니즘은 고질적인 메너리즘이 되기도 한다. 보수라고 고집하며 개혁을 요구하고 비판하거나 진보라며 소신있는 개혁보다 자신의 속한 곳에신념을 보수하는 극보수 진보도... 이 모두가 애매한 잣대들이다.
나는 얼마나 정확하게 알며 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하는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으며 얼만큼 알고 있는가. 부족한 것에 단호할 만큼 충분히 알고 있는가. 모르면 배우면 되고 틀린 것은 가르치면 되지만 아는 것을 자랑하는데만 그치고 그 앎이 사람답고 덕을 이루는데 있지 않고 비판하고 말 꼬투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식이 아니다.
당대의 어떤 유명한 지식이나 유행하는 학설도 사람에게서 나온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고질적인 메너리즘은 바로 좋지않은 의도의 잣대질, 지적질,말 트집이다.. 단어가 틀리건.뜻을 모르건.단어의 철자가 빠지거나 오타가 나건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 듣는다. 물론 정확하게 알고 제대로 말하며 잘 가르쳐주어야 한다.그러나 올바르고 좋게 고쳐주는데 적당한 장소와 상황이 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진짜 지식인이며 배움을 아는 사람이다.옥에도 티는 있고 말에는 실수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감칠맛' 나게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이야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말들이 '감질맛'난다. 가장 무서운 무기인 말은 문자.기호.모든 언어...를 억압한다.주구장창 지칠줄 모르는 트집에 쉽게 노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우유부단하게 생각하자. 우리 모두는 대기만성이라 완전하여지려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넓~은 시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