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이 녹고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나오는 따뜻한 봄날, 한 사람이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거기 햇볕을 맞으며 정원에 돋아나는 파릇한 들풀과 나무가 보인다.
그때 어디선가 불어온 춘풍에 파릇한 풀과 나뭇가지들이 살짝 흔들리며 생명의 율동이 보인다.
그런데 이 순간 그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자신의 눈이라는 것과
자신이 그 눈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번화한 도시엔 야간조차 불야성을 이루어 잠들 줄 모른다.
밤에도 거대한 도시에선 현란한 조명 아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여름엔 매미조차 울어댄다.
공원이나 거리나 극장가 가로등 아래엔 연인들의 청춘이 움직인다. 그때 갑자기 전 세계의 전원이 나갔다.
전 세계 전기 공급이 중단되어 모든 불은 꺼지고 휴대폰은 작동 중단됐다.
전자문화에 적응되어 있던 이 세계 도시인들은 공포 속에 허둥댈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은 전기 하나에 걸려 있는 형편이요, 전기와 단절되면 생활은 절단된다.
스마트폰, 난방기, TV,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엘리베이터, 전철, 병원, 공장 가동 등 모든 것이 중지된다.
이것은 최종 단절의 조그만 예시에 불과하다. 그 최종 단절이란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 하나님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의 의미를 아시는가?
무신론을 주장하거나 자신이 불신앙자임을 자랑스럽게 뱉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눈 없이 우주를 바라보겠다는, 전기 없이 TV를 보겠다는 발상보다 지혜로운 행동일까.
만물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근거 위에서만 존재 가능하다.
긍정하든 부정하든 현재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
내 모공 속의 털 하나, 내가 먹는 쌀 한 톨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의거하지 않은 것은 없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그들의 인식과 의지조차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 부정은 존재 부정이요, 그런 하나님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이 최종적인 파멸이다.
이런 사실이 총체적으로 구현된 곳이 지옥이다.
이런 사실을 데살로니가후서1장 9절은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알든 모르든 그가 어디에 있든 그는 빛, 자연, 음식, 계절, 관계, 믿음, 사랑, 우정, 진실,
희망, 보람, 기쁨, 정의, 도덕, 윤리, 양심, 이성, 법, 질서, 행복, 예의, 건강, 조화, 화목, 아름다움,
웃음, 가정, 예술, 재능, 내일 등 하나님의 선물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직 기회가 있다.
하나님께 욕을 하는 순간까지 그렇다.
그러나 모든 기회의 문이 닫히고 하나님과 끊어지면
완전한 절단, 곧 무한한 죽음과 무한한 절망과 무한한 어둠과 무한한 고통의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다.
이 말로도 하나님과 끊어졌다는 사실의 의미는 다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당신이 구원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감사하라.
2019. 12. 1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