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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무엘상 11 : 12 - 15
제목: 길르앗 야베스 전투의 의미
일시: 2017. 7. 28
장소: 라이프찌히한인교회
I.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사울이다. 그가 왕으로 임명되었을 때 왕이 되기에는 함량이 부족해 보였으며 초라하기 짝이 없어 아무런 권위가 없었다. 왕으로 지명된 그 순간 그는 떨리고 두려운 마음에 사람들 앞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고 짐짝 뒤에 숨어 있었다. 그는 촌닭처럼 쑥스러워하고 감히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 그러한 쑥맥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면서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아니했다. “어떤 비류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삼상 10:27). 그런 여론 속에서도 그는 그저 “잠잠”히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모든 백성에게 인정받는 왕이 될 수 있었을까?
II. 길르앗 야베스 전투는 사울의 대관식을 위한 의식이었다.
사무엘상 11장에 큰 싸움이 하나 발생한다. 암몬족속 나하스가 길르앗야베스를 위협하면서 화평하자는 야베스 사람들에게 “너희의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싸움을 끝낼 것이라고 한다. 이말 저말 필요 없이 한판 붙자는 것이다. 사울은 절망과 위기에 빠진 이 야베스 사람들의 절규를 들었을 때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노를 발하게 된다. 그때 마침 그는 밭에서 소를 몰고 오고 있었는데, 절망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백성들을 보고 그는 자신이 몰던 소를 취하여 토막을 내어 이스라엘 전역에 보내면서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강력한 사울의 리더쉽을 따르게 되고 결국 길르앗 야베스 전투에서 사울은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길르앗야베스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에 사람들이 뭐라고 외쳐대는가? 오늘 본문 1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이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이전에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비아냥 거렸던 사람들의 입이 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고 있는 것이다. 사울이 왕이 되기까지 그에게 필요한 의식과 관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길르앗 야베스 전투였다. 이 길르앗 야베스 전투는 이스라엘에게 위기와 시련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것은 사울에게 왕권을 확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영웅은 전쟁이 있을 때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이 전투는 사울로 하여금 왕이 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일종의 검증기회였고 대관의식이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을 보라. 마치 사울에게 있어 암몬족속의 침입이 왕의 자리에 오르는 대관식 사전 의식과 같이 그들의 의식들이 있었다.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도 보라. 골리앗을 넘어갔을 때 그는 일약 이스라엘의 스타요 영웅이 된 것이다. 모세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홍해이다. 홍해를 건넜을 때 모세는 능력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각인되었다.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의 강한 성 여리고가 있었기에 그의 리더쉽에 빛이 났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냥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시고 사망권세를 넘어가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셨다.
우리 앞에는 암몬족속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거나 여리고성이 떡 버티고 있거나 골리앗과 같이 넘을 수 없는 대적이 길 한가운데서 우리를 가로막고 서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쉬운 길로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쉬운 길로 찾아간다고? 누구나 그 쉬운 길을 원하기에 거기에 다 몰려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인생의 슈타우 즉 정체구간이 될 수 있다. 요령을 부리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나 같은 사람이 다 몰려 있다. 뚫어야 한다.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시험을 치른다. 시험을 치르지 않고 바로 학교에 들어가면 그게 무슨 학교인가? 졸업장을 얻기 위해서는 졸업시험과 연주를 해야 한다. 늘 볼 때마다 완벽한 모습만 보게 되지만, 알고 보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오게 되었는가?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취직시험을 치르어야 한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승진시험을 치르어야 한다. 훌륭한 팀과 한판 붙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음악가는 어떻게든 세계적인 무대에서 해보는 것이 좋다. 그 모든 일들은 사울이 왕이 되는 것과 같이 대관식을 위한 의식인 것이다. 그러한 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관식을 위해서 주시는 시간들이다.
우리 앞에 있는 목표치고 호락호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그것이 식은 죽 먹기라면 더 이상 목표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의식이 필요하다. 목표를 향해가는 길에 시련과 시험이 우리 앞에 닥친다고 해도 그것을 넘어야 할 의식으로 보라. 길르앗 야베스 전투가 사울의 대관식 의례였던 것처럼 여기라. 내 삶에 좀 힘겨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 주어지는가? 누군가 내게 문제를 던지는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라. 대관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면 암몬족속과의 길르앗 야베스전투는 축복임을 알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대적하면, 나를 이렇게 높이 평가해 주어 나를 상대해 주다니. 누가 나를 시기하면, 내가 그렇게 잘났단 말인가! 미움을 받으면 내가 그렇게 주목의 대상이던가 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을 시킬 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내가 아직 필요한가 보구나! 빼지마라.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말라. 그리고 저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동원예비군을 하다가 나중에 민방위로 빠지고, 이제는 부르지도 않는다. 귀찮지 않아서 좋기도 하지만, 이제는 쓸모없어지는가 싶다. 그러기에 시련이 있고 문제가 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의 대관식이 곧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라.
III. 길르앗 야베스 전투는 사울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다.
이전에 사람들은 사울을 무시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사람들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길르앗 야베스 전투라는 시험을 통과했을 때 사울은 왕의 권위를 얻게 된다. 사무엘도 사울을 세워놓고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자신감이 넘친다. “오라” “가자” “그리고 하자”라는 것이다. 즉 사울의 대관식을 행하자는 것이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이에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사울은 40세에 왕이 되어 약 40년간을 왕으로 통치하게 된다. 길르앗 야베스 전투 이후에 이제는 어느 누구도 왕권에 대해 도전하지 아니한다.
군 요원 가운데 가장 알아주는 부대가 해병대인 것 같다.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받고 강한 병사로 정평이 나 있는지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유별난 전우애를 가지고 있다. 다른 군인들은 제대하면 그쪽 방향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해병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해병전우회를 만들어 결속을 다진다. 가끔 교포신문에 보면 해병전우회 모임있다는 소식도 듣는다. 공수부대니 몇 사단 전우회니 이런 것은 없다. 차에도 해병대 표시를 하고 다닌다. 그리고 서로 존대말을 쓰다가 해병대출신임을 알면 몇기세요라고 위아래 구분이 시작되고 그때부터 반말이 나오고 갑자기 전우애를 발휘한다. 해병대에 관해 뭐가 나오는가 인터넷을 보니 심지어 해병가족들도 나온다. 차두리 동생 차세찌가 1103기출신이라고. 왜 그들이 강한 병사로 인정받고 결속이 있는가? 혹독한 훈련 때문이다. 시련이 권위를 주는 것이다. 요즘은 해병대를 가는 것은 지원해서 가야 한다고 한다. 고생을 자초하겠다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다. 나를 쓰러뜨릴 것 같은 위기가 오히려 나를 세워주게 된다. 길르앗야베스전투는 사울을 넘어뜨리는 전투가 아니라 사울을 세우는 전투요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기회의 순간이었다. 위기의 피해자가 되지 말고 위기의 수혜자가 되라. 위기를 나의 챤스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시련은 변장된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시험들이 있다. 입학시험과 졸업시험 등을 치른다. 극장이나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본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평가이고 시험이다. 힘들고 고통스런 일들이다. 하지만 시험의 동의어는 기회이다. 원서를 내고 신청서를 보내면 Einladung이 와야 한다. 아인라둥은 초대이다. 와서 시험을 치르라는 초대인 것이다. 시험을 치라는 시험도 힘든 일이지만 시험이 없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시험치러오라는 것이 없을 때 “아예 기회를 주지 않아요”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배우자 될 사람들의 부모네와 상견례를 한다. 처음 만나게 될 때는 초 긴장속에 있게 된다.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자리와 만남은 이제 결혼할 챤스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서 험해 보이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기회들이 많은가?
아동심리학자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충돌을 성장에 아주 중요하고 결정적인 부분으로 보았다. 처음에는 또래와 나중에는 부모와의 싸움을 통해 아동은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며 문제해결 능력을 발달시킨다. 어떤 경우라도 충돌을 회피하려 하거나 부모가 과잉보호하는 아동은 결국 사회적 심리적 장애를 갖는다고 한다. 충돌이 치료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충돌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면충돌하는 것, 이러한 정면승부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하는 대상이 늘 약한 자요 어린자요 하수이면 배울 것이 없는 것이다. 골목대장이 되어서야 쓰겠냐? 골목대장은 골목 안에서 대장이다. 그 대장이 다른 곳에 가면 권위가 하나도 없다. 오직 골목에서 큰 소리 칠뿐이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는 것은 충돌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언어와 충돌하고 생활 및 문화와 충돌하고 사람들과 충돌하고 입시와 충돌하고 더 넓은 세계와 충돌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 충돌로 아프기도 하다.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피해서는 안된다. 부대끼면서 배우는 것이다. 지난 주 수학캠프를 청소년들이 했는데 자기들이 아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문제를 푼다. 어려운 문제를 계속 접하면서 공부를 해야지 초등학교 때 배운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만 하면 잘 풀수 있지만 거기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는 시험을 피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정면승부를 걸기 위해 온 것이다.
운동을 할 때 인원수가 홀 수가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때 어떻게 사람을 나누는가? 저는 한사람 적은 것이 좋다. 인원을 나눌 때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익숙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강한 사람들과 상대하고 싶고 약한 사람들과 같은 편에서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서 이기면 잘한 것이고 지면 상관 없고니까...
길르앗 야베스에서 암몬과의 전투는 사울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다.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워줄 아주 좋은 챤스였다. 눈을 크게 뜨고 보라. 1)누가 나에게 잘못했으면 용서할 챤스이다. 2)누가 미운 생각이 들면 그를 사랑할 챤스이다. 3)고민할 게 많이 있으면 결단력을 보여줄 수 있는 챤스이다. 4)내게 가진 것이 없으면 이제 진정한 헌신을 할 수 있는 챤스이다. 5)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는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챤스이다.
6)높은 위치에 있을때는 겸손할 수 있는 챤스이다. 7)누가 시간이 필요로 하고 도움이 필요로 할 때 그것은 위기가 아니고 챤스인 것이다.
IV. 사울이 평민에서 왕이 되기까지 그에게 필요한 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길르앗야베스 전투였다. 그것은 온 백성들이 울부짖고 절망에 빠뜨릴 일이 아니라, 왕의 대관식행사였을 뿐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위기처럼 보였으나 사울에게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세움을 받을 절호의 기회였다. 길르앗야베스의 전투는 괴롭고 고통스런 시간이 아니요 감사와 축복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지름길을 택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가장 가까운 길이 길르앗 야베스의 전투임을 알아야 한다.
여전히 삶의 현장에 있는 우리의 많은 지체들은 변장된 축복이 있음을 알고 있어도 지금 당장 초조하고 힘든 순간일 수 있다. 시험이 나를 누르고,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고 아파도, 유학 나와서 언어의 어려움과 먹는 것과 경제와 삶의 여러 계획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도 대관식을 기대하라. 위기가 아니요 기회로 삼기를 재 다짐하며 이 한주간도 주 안에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