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2월 9일,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에 당선
1990년 12월 9일. 레흐 바웬사(Lech Walesa, 1943 ~)가 폴란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바웬사는 폴란드의 자유노조 지도자로 1967년 그다니스크의 레닌조선소에 취직, 노동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1983년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 4월 자유노조 합법화와 개혁을
정부로부터 약속 받는 등 폴란드의 정치지도자로 부상했다.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레닌 조선소에서 조선공으로 일하던 중, 1980년 폴란드 정부가 공장의 노동자들을
단체로 해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웬사는 이에 저항하면서 실질적 노동자 대표로 그단스크-소포트-
그디니아 지역의 노동자 총 파업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 공산주의 체제가 허용하지 않는 자율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 노조는 폴란드 연대노조(솔리다르노시치)라고 불리고 바웬사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연대노조가 워낙에 강력했던지라 정부조차 협상 대표로 바웬사를 인정했다.
하지만 주변 동유럽 국가에 혼란을 막기 위해 소련의 압력을 받은 폴란드 군부는 1981년 12월 13일에
계엄령을 선포, 당 지도부를 내쫓고 바웬사 등 노동운동가들을 체포하였다. 그 후 바웬사는 1년간의
가택연금을 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연대노조를 지원하는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공산권 간에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가택연금 직후 프랑스 파리로 자신의 자서전을 몰래 보내 〈희망의 길 Un Chemin d'Espoir> 을 발매했으며
이는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련 등의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폴란드의 사회운동가로 손꼽히던 그는 1989년 폴란드의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에 기여했고 1990년에 2대 폴란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Mr. Walesa speaking to workers at the shipyard in Gdansk, Poland,
during a strike in 1980.
1983년 노동운동 중인 바웬사
Lech Wałęsa addressing striking workers in Gdańsk, Pol., May 1, 1988.
참고로 초대 대통령은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로 공산 폴란드 시절 육군 참모총장을 거쳐 서기장을
지냈다. 1980년대 말 협상 끝에 자유노조가 인정되기 이전 자유노조를 강경하게 탄압한 사람이
아루젤스키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노조의 세력이 강해지면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처럼
소련군이 직접 나서겠다는 소련의 협박을 받고, 소련군이 폴란드를 장악하느니 폴란드인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자는 의미도 있었다.(야루젤스키 자신은 2차세계대전때 소련군에게 끌려가 시베리아의
가혹한 환경속에서 강제노동을 했고 이때문에 시력에 치명타를 입은 전적이 있다) 때문에 퇴임 후에도
심한 처벌은 받지 않았다. 결국 개혁파들의 퇴임 압력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2대 대통령으로 바웬사가
된 것. 바웬사가 2대라고 해서 야루젤스키가 수십년간 독재를 한 건 아니고, 폴란드에서 대통령직이
생긴 게 1989년이고 야루젤스키의 대통령 임기는 1989년 12월 21일~1990년 12월 22일의 366일에 불과했다.
1996년까지 폴란드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당시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당시 폴란드의
경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컸고 1995년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구 공산당
후보에게 패배했고, 퇴임 후에도 폴란드에서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다. 퇴임하면서 모든
퇴임 대통령의 권리를 포기한 덕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토크쇼 MC 등을 본다고 한다. 그래도
그 동안 폴란드 경제에 짐이 된 외채를 탕감시킨 것 자체는 높이 평가를 받기는 한다.
물론 대통령 재임 시의 정책과는 별개로 그가 폴란드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한 것은 많은 폴란드인이
인정하고 있다. 훌륭한 투사와 훌륭한 정치가는 전혀 별개의 직책이라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른 신생 독립국의 국가 원수들처럼 기껏 독재 정권을 몰아냈더니 또다른
독재자로 타락하지 않은 점은 칭찬할 만 하다.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데, 2006년경에 면도날 제조 회사인 질레트가 면도를 하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 했으나 "난 태어날 때부터 이 콧수염을 달고 태어났다"라며 거절했다. 그런데 또 몇 년 뒤에는
놀랍게도 깔끔하게 면도를 했는데, 이 때 언론에서 이유가 뭐냐고 물어 보니 "그냥 재미로"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