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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10. 주일축복예배 설교문【영혼의 혁명】-거듭남
제목: 거듭남은 신비이다. New birth is a mystery.
본문: 요한복음3:3~5절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im,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4Nicodemus saith unto him,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can he enter the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and be born? 5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찬양: 283장(통 183장) - 나 속죄함을 받은 후,
284장(통 206장) –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287장(통 205장) – 예수 앞에 나오면,
288장(통 204장)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85장(통 209장) - 주의 말씀 받은 그날.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은총이 교회 공동체여러분과 교회 공동체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사업과 직장과 학교와 가정과 새신자들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교회는 앞으로 7시간 동안 영혼의 혁명이 일어나는 축복 속으로 여행할 것입니다. 오늘은 영혼의 혁명의 두 번째 시간으로 거듭남의 신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 공동체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임을 알았습니다.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위대하고 다른 어떤 이름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같은 무게로 느껴지는 거듭남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처럼, 또한 거듭남 교회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거듭난 교회 공동체라는 말도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만 자주 언급되지 않는 어려운 말이 되었고 거듭남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성경의 중요한 말씀 가운데,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는 이전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특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성도들의 말씀은 대부분 질병과 깊이 연관되어 있거나, 초자연적인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고 치명적인 병을 고치고 폭풍을 잠잠하게 하고 물이 포도주가 되는 어떤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기적의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선생이며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니고데모 와의 늦은 밤 대화는 아주 색다른 내용의 말씀입니다. 보통 일어난 사건처럼 스펙터클spectacle한 장면들이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깊고 심오하며 어려운 내용들이 진지하게 오고갔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니고데모 와 대화의 주제는 진리에 관한 것. That about truth.이었습니다. 이 진리는 거듭남의 진리, 구원의 진리입니다.
아마 사도 니고데모는 많은 갈등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민이 있었기에 그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 고민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흡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문제일 것입니다. 사도 니고데모처럼 열심히 종교행위를 하고 율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십일조생활도 잘하고 교회의 리더Leader에 속할 정도로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뜩 자신을 보면서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구원받는 것이 확실할까? 마치 이런 사도 니고데모의 갈등처럼 사도 니고데모 구원신드롬syndrome으로 고민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아직도 그런 문제보다는 당장 눈앞의 문제들의 해결에 매달리다가 구원이나 복음의 진리에 대해 멀게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이든지 구원의 믿음만은 확고하게 세워져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여러분이 구원의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버리고 취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확실하게 인정해야 될 중심적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장하지 못하고 흔들려서는 곤란합니다.
예수님과 사도 니고데모의 대화의 초점이 왜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대부분의 예수 믿는 교회 공동체들이 저지르는 실수나 오해의 요소들을 예수님께서 지적하면서 해답을 찾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도 니고데모는 우리 교회 공동체들의 모습이며 앞으로 예수 믿는 교회 공동체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배경이나 인물 탐구보다는 예수님이 의도하시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과연 진정한 구원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거듭난다. I resuscitate.는 말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분이 있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거듭난다. I resuscitate.는 말씀은 다시 태어난다 말씀입니다. 영어로 본 어게인bom again입니다. 기독교 용어로 구원이나 중생과 같은 표현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이 거듭남의 신비Mystery of new birth라고 했는데, 왜 거듭남이 신비한 일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거듭난다는 것은 독특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원의 진리를 믿는다는 것은 더욱 드문 일입니다. 교회를 나오는 교회 공동체 모두가 구원의 복음을 아는 것이 바람직하고 축복된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 공동체들이 많습니다. 교회 공동체마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다르고 다양할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적 신앙의 틀이 강하고 요구사항이 독특하여 구원의 복음이나 거듭남의 진리에 대해서는 집중력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 니고데모와의 만남의 주제인 거듭남의 문제는 현재 예수님을 믿는 교회 공동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며 많은 사람들이 겪는 갈등이고 고민하기에 중요합니다. 사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The same came to Jesus by night, and said unto him, Rabbi, we know that thou art a teacher come from God: for no man can do these miracles that thou doest, except God be with him.2절
사도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표적이었습니다. 사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도 니고데모의 고민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도 니고데모가 진짜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좋은 말로 주님의 기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니고데모는 표적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대화의 본질이 아닌 것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말을 끊으시면서 대화의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끌고 가셨습니다. 3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예수님은 표적을 말하는 사도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심오한 진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사람들은 표적을 원합니다.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면 튼 일이 일어난 것이고,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가장 큰 사건의 표적은, 즉 앞서 일어났던 물이 포도주로 변한 갈릴리 가난 혼인잔치의 표적보다,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것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표적보다 중요한 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표적이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2:23~25절을 보십시오.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23Now when he was in Jerusalem at the passover, in the feast day, many believed in his name, when they saw the miracles which he did. 24But Jesus did not commit himself unto them, because he knew all men, 25And needed not that any should testify of man: for he knew what was in man.
예수님은 사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믿는 이유에 대해서 그분의 행하시는 표적 때문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다시 요한복음6:26~27절을 보십시오. 2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6 Jesus answered them and said,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Ye seek me, not because ye saw the miracles, but because ye did eat of the loaves, and were filled. 27Habour not for the meat which perisheth, but for that meat which endureth unto everlasting life, which the Son of man shall give unto you: for him hath God the Father sealed.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표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먹는 떡을 배부르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인 영생 때문에 인자가 오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니고데모는 표적의 예수님을 말하면 예수님께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하면 좋아할 것이고 여겼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시는 기적의 사람이라고 부르면 칭찬해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표적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But he answered and said unto them, An evil and adulterous generation seeketh after a sign; and there shall no sign be given to it, but the sign of the prophet Jonas:마12:39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간 무덤 속에 계시다가 부활하신 것을 보여 주시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기적을 보여주실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징표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은 구원과 관계된 것이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한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도 니고데모처럼 표적을 최고의 사건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적을 사모하고, 나타내고,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면, 아직 그는 진정한 큰 사건을 모르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인생의 선생을 만나고 표적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서 거듭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교회 공동체들에게 일어나는 가장 위대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예수님이 강조하신 진실로 진실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I can not see God kingdom if do not resuscitate Verily, verily,는 사건의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사도 니고데모에게 말씀한 그 진실로, 진실로, Verily, verily,당신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둘째, 거듭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란이 거듭나는 것이 왜 신비한지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제 사도 니고데모는 갑작스런 예수님의 말씀에 진지한 질문을 합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can he enter the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and be born?4절 예수님께서 사도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자, 니고데모 사도는 자신이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합니다.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and be born? 진실로 거듭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이 그에게는 자신이 알고 터득했던 모든 율법보다 더 어려워 그 의미를 도대체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질문입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지 않습니까? 아직 사도 니고데모는 거듭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니고데모 사도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 진지하고 깊이 있고 밀도 있었습니다. 5~8절까지 긴 말씀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5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6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7Marvel not that I said unto thee, Ye must be born again. 8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sound thereof, but canst not tell whence it cometh, and whither it goeth: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다시 태어난다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사도 니고데모가 이해하고 있는 거듭남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니고데모는 자연적 현상, 즉 사람의 힘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율법적인 사고를 가진 유대인과 바리새인인 알고 있는 지식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유대인이 누구입니까? 율법주위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물과 성령의 힘. Energy of born of water and Spirit.으로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 교회 공동체는 거듭남에 대한 해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거듭남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born again.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해석을 자연적 현상Natural condi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어떤 원인으로 일어나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듭나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이란 인본적 해석이 아니라 영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본 프롬어게인born from again, 즉 위로부터 나다. Become from upside.또는 본 어뉴born anew, 새롭게 나다. Become newly. 그리고 어나더 버스another birth 한 번 더 태어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성경의 원리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거듭난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은 이전보다 조금 나아지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것을 조금 보충하며, 약한 것을 채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미소 한 번 더 짓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밥 사주고, 칭찬해 주는 것과 다시 태어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 봉사하고 좋은 일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훨씬 다른 차원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교회 공동체란 새롭게 된 교회 공동체입니다. 더러운 것을 약간 씻고 마음을 가다듬고 예의를 갖춘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전 사람과 다른 사람, 예수님을 믿기 전과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소개하는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거듭나는 것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새롭게 되며 다시 태어나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기준입니다.
골로새서3:10절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And have put on the new man, which is renewed in knowledge after the image of him that created him:
에베소서4: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And that ye put on the new man, which after God is created in righteousness and true holiness.
고린도후서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f any man be in Christ, he is a new creature: old things are passed away; behold, all things are become new.
이 말씀을 정리하면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은 새사람이 되는 것이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고, 새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믿기 전의 옷에다 또 하나의 옷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옛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4:22~24절에서 새롭게 되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2That ye put off concerning the former conversation the old man, which is corrupt according to the deceitful lusts; 23And be renewed in the spirit of your mind; 24And that ye put on the new man, which after God is created in righteousness and true holiness.
더 정확한 사도 바울의 표현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을 위해 옛 사람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도 바울 가 말한 것보다 더 분명하게 새롭게 되는 것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사도 니고데모의 의중을 알기에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Verily, verily,말씀하시는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물과 성령이라는 전혀 다른 도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신비입니다. 거듭나는 것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중생하고 구원을 받고 거듭나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된다는 것은 사람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행위라면 가장 무서운 사람이 사도 니고데모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주특기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행위의 문제에서 바리새인을 능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듭나는 것, 다시 태어나는 것, 새롭게 되는 것, 새사람이 되는 것은 행위로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Even so the tongue is a little member, and boasteth great things. Behold, how great a matter a little fire kindleth!라고 말한 디도서3:5절의 말씀은 정말 가장 완벽한 거듭남의 신비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에 있으며 씻음이라는 회개와 성령이라는 위로부터 오는 힘에 의해서 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해 놓으신 일입니다.
당신은 진실로 거듭나는 것. Resuscitate Verily.이 당신의 행위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사도 니고데모가 변명하려고 하는 그 야심찬 행위신앙이, 물과 성령이 아니라 행위와 노력이라는 것을 벗어야 하는 치명적인 율법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이 새롭게 되는 것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6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육의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영혼의 혁명은 사람의 노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함을 아는 것입니다.
셋째,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거듭남의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선택한 사람이 니고데모일까요? 그가 바리새인, 그리고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거듭날 사람, 다시 태어날 사람들은 세리나 창녀처럼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이지 사도 니고데모처럼 말씀을 잘 지키며 하나님의 택자로 믿고 사는 유대인이겠습니까?
죄를 짓고 사는 사람에게 새롭게 출발하라, 새로운 본성이 필요하다, 새 생명을 갖으라고 말하면 놀라지 않겠지만, 니고데모 사도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 것은 분명한 주님의 의도가 숨어있는 신비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대상이 누구이든, 심지어 율법수호자이며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모태 신앙이든 예수를 오래 믿었던 성도이든 교회의 지도자들이든 거듭남은 필수입니다. 사도 니고데모처럼 완벽한 사람이라 해도 새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리새인으로 선생이고 의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도덕적으로 책임감이 있고 몸의 부활도 믿고 미래의 상급과 형벌을 믿었던 종교적인 사람이라 해도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데 니고데모 사도는 이미 거듭난 교회 공동체가 사는 행동을 한 성도가 아닙니까? 니고데모 사도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실 때 무리들 속에 있었고 예수님을 늘 지켜 보았고 이적을 행하시는 모습도 보았고 가르치심이 탁월하다는 것도 알았고 그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손길을 보았고 가르치심이 탁월하다는 것도 알았고 그에게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손길을 느끼며 그리스도를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사람이 아니다. 이분은 특별한 하나님의 사자Angel of God다는 통찰력을 가지고 밤에 예수님께 찾아왔던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예수님을 다르면 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 되고, 예수님에게 이끌려 살면 되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같이 가면 되고,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살면 예수님 잘 믿는 것이지 꼭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니고데모 사도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뛰어나고 선하고 예수님을 신뢰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정도의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평가하신 사도 니고데모는 누구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Marvel not that I said unto thee, Ye must be born again. 사도 니고데모도 자신이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에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도 니고데모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영혼의 세계로 초대했습니다. 8절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If I have told you earthly things, and ye believe not, how shall ye believe, if I tell you of heavenly things?12절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sound thereof, but canst not tell whence it cometh, and whither it goeth: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예수님은 사도 니고데 가 성령으로 난 사람과 하늘의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능력을 보고 말씀을 듣는 것에 기뻐하고, 더 가까이서 예수님을 느끼며 좀 더 차원 높은 믿음을 소유하기 원했는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도와주시는 분, 치료하시는 분, 빵을 먹이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으로 믿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출발이었습니다. 사도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간 이유는 현재보다 조금 나아지고, 한두 가지 하던 것을 서너 가지 더 하고, 예수님을 멀리서 따르던 것을 가까이서 쫓겠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도덕적 윤리적 차원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도덕적, 윤리적 차원의 좋은 사람을 만드는 종교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적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왜 성령으로 난 교회 공동체가 되고, 하늘의 일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 답이 15절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거듭난 사람에게만 약속된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특권을 갖고 영원히 사는 성도입니다. 성령으로 난 교회 공동체와 하늘의 일을 맡은 성도, 거듭난 성도는 영생을 선물로 받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유대인이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태어난 성도, 새롭게 된 성도만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점점 바리새인처럼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훌륭하고 유능하고 도덕적이고 니고데모적 교육을 받은 유대적 성향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사도 니고데모의 영혼세계에 대한 구조는 엉망이었고, 예수님께 찾아와 신앙의 도움을 얻고 인생의 진로와 삶의 충고를 원하는 정도였지, 하나님의 나라는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생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만일 그가 가장 위대한 선물이자 약속인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영생을 알았다며, 예수님께서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 모태에 들어갔다 나옵니까? How if get old can it be better? Do you come out for came to mother's wombs two times?라는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3Which things also we speak, not in the words which man's wisdom teacheth, but which the Holy Ghost teacheth; comparing spiritual things with spiritual. 14But the natural man receiveth not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unto him: neither can he know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고전2:13~14절
사도 니고데모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을 사람적으로 이해하려하고 풀어보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영적세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생은 영의 일이기에 육체로 풀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방법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듭나면 들어갑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 성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공동체의 정체는 이렇게 바꿉니다. 고린도후서6:14~18절입니다.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14Be ye not unequally yoked together with unbelievers: for what fellowship hath righteousness with unrighteousness? and what communion hath light with darkness? 15And what concord hath Christ with Belial? or what part hath he that believeth with an infidel? 16And what agreement hath the temple of God with idols? for ye are the temple of the living God; as God hath said, I will dwell in them, and walk in them; and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17Wherefore come out from among them, and be ye separate, saith the Lord, and touch not the unclean thing; and I will receive you. 18And will be a Father unto you, and ye shall be my sons and daughters, saith the Lord Almighty.
오늘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중요한 시간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며 믿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혼의 문제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찾았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거듭나야 한다. Verily I must resuscitate.는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 하늘의 일,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 공동체가 진정으로 거듭난 교회 공동체에게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됩니까? 사도 니고데모가 어떻게 영생을 얻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하늘나라에 들어갑니까? 노력하고 더 나은 삶을 살며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착한 일을 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인자가 반드시 내려와 광야에서 뱀이 들렸듯이 들리어야 하는 것입니다14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An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입니다. 거듭남의 신비는 임의로 부는 바람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sound thereof, but canst not tell whence it cometh, and whither it goeth: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처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왜 거듭남이 신비한 일인가는,
첫째, 거듭난다는 것은 독특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거듭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어떻게 영원히 살고, 어떻게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 교회 공동체를 다시 지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거듭나게 하시려고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새사람을 만드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재창조를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시는 일을 믿고 하나님의 손에 당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요3:16절
이 일이 당신의 영혼에 일어나는 혁명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 공동체는 거듭남이 신비한 일인가는, 거듭난다는 것은 독특한 사건이기 때문이고, 거듭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때문으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으로 변화되어 예수가 나의 주와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침기도: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 교회 공동체는 거듭남이 신비한 일인가는, 거듭난다는 것은 독특한 사건이기 때문이고, 거듭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때문으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으로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과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전파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성찬식 순서 집례자 한만설 목사
성 찬 식 ----------- (229(통 281)) -------------- 다 함 께
성찬 초대 --------------------------------------- 집 례 자
성경 말씀 ------- 고린도전서11:23~29 -------- 집 례 자
기 도 ---------------------------------------- 심은주 사모
분병(떡을 나눔) --------------------------------- 맡 은 이
분잔(잔을 나눔) --------------------------------- 맡 은 이
감사기도 ---------------------------------------- 집 례 자
감사와 결단의 찬송 ---------------------------- 다 같 이
축 도 ------------------------======--------- 집 례 자
*성경말씀고린도전서11:23~29절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마태복음26:26~30절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성찬 초대 주님의 피로 사심을 입은 교회 공동체 여러분,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그분의 피로 재림하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케 하는 예식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의 죄를 위해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죄를 버리고 사는 교회 공동체로서 주님의 떡과 잔에 감격스럽게 참여합시다.
* 기도 오 주님,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주님을 찬송합니다. 저희 교회 공동체 자신의 의로는 감히 주님의 만찬을 대할 수 없지만, 주님의 은혜로 이 만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 공동체의 죄악을 사하시어 심령을 깨끗케 하시옵소서. 저희 교회 공동체에게 새로운 심령을 허락하심으로 살아 계신 주님의 임재를 알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분병(떡을 나눔)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습니다. 이 시간 떡을 나눌 때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을 기념하면서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떼어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하신 말씀에 의해서 이 떡을 나눕니다. 이 떡을 나눌 때에 주님의 속죄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고 영생 얻은 교회 공동체로 굳세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분잔(잔을 나눔) 주 예수님께서 식후에 잔을 가지사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하셨습니다. 이 시간 잔을 받을 때에 구원의 언약을 깊이 기억하시면서 구원받은 기쁨을 감사드리는 교회 공동체들이 되십시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우리교회 공동체를 위해 흘리신 피의 언약의 잔을 받으려 합니다. 우리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사 피 흘리신 그 사랑을 본받아 우리교회 공동체도 서로 용서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집례자는 성찬위원들에게 잔을 나눠주고 난 후, 성찬상 뒤에 서서 회중이 볼 수 있도록 잔을 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절)허셨으니, 이 잔은 영생의 참된 음료입니다. 혹은 우리교회 공동체가 지금 받아든 이 잔은 우리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잔입니다. 다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마십시다.
* 감사기도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교회 공동체에게 구속의 은혜를 베푸사 이 성찬에 참여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교회 공동체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주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며 순종하여 주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와 결단의 찬송 집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찬송을 다같이 부른다.
제자들이 주의 만찬을 마친 후에 찬송을 부르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다같이 일어서서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를 부르시겠습니다.
1. 사랑하는 주님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은혜 생각하며 즐거운 찬송부르네
내주예수 본을 받아 모든사람 내몸같이 환난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앞에 온갖충성 다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섬기네
우리주님 거룩한손 제자들의 발을씻어 남섬기는 종의도를 몸소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예수 같은주로 섬기나니 한피받아 한몸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으로 하나되어 우리주님 크신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 찬송을 부르는 동안 성찬위원은 성찬상보를 덮고 제자리에 앉는다.
* 축 도 집례자는 목사가 축도한 후 폐회한다. 축도는 히브리서13:20~21절을 할 수 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에 너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교회 공동체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히브리서13:20~21절 20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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