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닥고닥 걸으멍 용담1동 둘러 봤수다.
사문공성시장
- 모니터링 : 2020. 11. 13일(금) 17:20~18:00
용담동은 원도심 목관아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차하고 있으며 병문천 서족은 용담1동 동쪽은 삼도2동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고 또 다시 한천을 중심으로 서쪽은 용담2동 동쪽은 용담1동지역이다. 과거에 용담동으로 하다가 현재는 욤담1,2,3동으로 되어 있으며 용담2.3동은 2동사무소를 같이 쓰고 있다. 영담동은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철기시대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여러 곳에서 발견이 되어 오래전부터 촌락을 형상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용담동에 용자를 쓰는 것으로 보면 분명 용과 관련한 지명이 있을 것이기에 두루두루 살펴보았는데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하여 바위로 굳었다는 용두암, 용이 살았다는 용연, 용이 살다가 하늘로 날아갔다는 비룡못 등이 있으니 뚜벅뚜벅 걸어서 이달(11월)에는 용담1동을 살펴보면서 자랑질 할 곳들을 소개한다.
서문통 거리
우선 용담1동에는 찾아가야 할 곳 조선 초 1394년에 창건했다는 제주향교, 1954년 4월에 개장한 서문공설시장, 공설시장 앞에 있는 비룡못 터, 병문천 하류에 있는 동한두기, 동한두기 서쪽 용화사 경내에 있는 서자복, 한천 하류에 있는 고시락당, 용연 바위에 새겨진 마애명과 용연, 향교 뒷뜰과 접한 곳에 포제단까지 둘러보았다. 이달에 나의 숙제는 서문공설시장과 비룡못 터, 서자복, 동한두기다. 내 나이 70이다. 1960년대 코흘리기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더듬어 가며 사연을 적어보기로 한다.
시장입구 아취형 간판
서문공설시장(서문로4길 13-2)
60여 년 동안 제주시민들 생필품을 팔고 사고하며 자리를 지켜온 서문시장에 들어섰다. 2000년 이전만 하여도 그래도 시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는데 원도심에 사람들이 떠나면서 동문시장이 확장되고 나서부터 서문시장은 뒷골목 시장신세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없는 손님 더 없게 만들어서인지 북적거릴 시장통은 한산하기만 하다. 점포 주인들은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멀쩡한 사내가 지나가도 “이거 왕 봥 갑써. 막 돔니다.” 하며 말을 건넨다. 일단 걸음을 멈췄다. 80 중반은 넘기신 어르신 그야말로 할망이 밀감바구니 앞에 놓고 사고가라는 것이다. 지나치기 미안하여 3,000원 드리고 한 봉지를 샀다. 할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3천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할머니는 천금일 것이다.
시장골목 길 사진
1954년 개장했는데 사장자리는 양씨집안 묘와 주변 밭을 사들여 건물 7동을 짓고 시작하였다. 개장할 당시에는 점포수가 180여 개로 정말 대단한 시장이었고 1965년 10월에는 서문시장 시장상인회가 조직되어 불타오르듯 활활 타 올랐다. 최고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다. 당시 장사한 사람들은 다 한몫 잡았다고 한다. 1997년 7월 제주시가 37억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현대식으로 재건축 했고 서문시장에서 서문공설시장으로 명칭도 바뀐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려는 상인들끼리 똘똘 뭉쳤다. 그러나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젊은들은 원도심을 떠나 아파트를 찾아서 외곽지로 이사를 간다.
옷가게 외
현재 점포수는 85개 일상에 필요한 물건들이라고 한들 농산물과 생선류, 제법 큰 규모의 한복코너, 포목집, 푸줏간, 일부 공산품 가게를 재외하고는 식당이 전부다. 그렇지만 상인회원들은 손을 놓을 수 없어 자구책으로 내놓은 상품이 있다. 일단 성공한 상품으로 봐야한다. 푸줏간에서 고기를 사고 식당으로 가면 식당에서는 식사랑, 반찬을 팔면서 윈윈하는 협동체계이다. 소비자는 싸서 좋고 상인들은 많이 팔아서 좋으니 입소문 들으면서 서문시장 식당가로 몰려든다. 좁은 골목에 점심이나 저녁에는 복작거린다. 그리고 한복집도 한몫을 한다. 싸다는 입소문으로 한복감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야채, 생선 등 싱싱한 먹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상인협회 회원들이 시장발전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 졸=g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현재 육류소비 특화시장으로 식당가는 장사할 맛이 날 날것이다.
식당가/한복집/포목가게 골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