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서방 언론(외신) 특파원들의 최전선 취재를 본격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2일 "외국 언론사 소속 종군 기자들의 최전선 취재를 거의 완전히 금지했다는 스위스 언론 매체 '러 탕'(Le Temps)의 보도가 사실로 확인됐다"며 소식통을 인용해 "비공식적으로 취재 금지 조치가 내려졌으며, 이는 우크라이나 언론에게도 적용된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최전선으로 가고 싶어하는 모든 언론인을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작전이 벌써 11주(반격 시점은 대체로 6월 4일/편집자)를 넘겼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비관적인 외신 보도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엊그제만 해도,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의 실망스러운 반격 속도가 지난 몇 주간 국제적으로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며 "내부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한 불만과 비판이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부상병 치료/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우크라이나 동원령 과정에서 부패 진원지로 지목된 군사위원회가 사법 당국의 압수 수색을 받고 있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더욱이 러시아군의 진격에 맞서기 위해 우크라이나 장정들이 앞다퉈 자원입대하던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징집 소환장에 남성들은 군사위원회(군 입대및 징집 사 무소, 병무청 격)에 뇌물을 주고 '화이트 티켓'(징집 면제 문서) 구하기에 '올인'했으며, 이는 곧바로 군 병무 인사들의 비리로 이어졌다. 급기야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조적인 부패에 빠진 각 지역 군사위원회 책임자를 해임하고, 군사위원회 사무실 수색을 명령해야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들에게 계속 취재의 편의를 제공하고, 언론자유를 무한정 누리도록 놔둘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국가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익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종군기자들의 최전선 취재를 제한했다. 사진은 러시아 TV채널-1의 현장 취재 모습/영상 캡처
갑작스런 취재 제한에 당황한 것은 역시 외신 특파원들이다. '러 탕'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외신 특파원들의 최전선 취재를 적극 지원했고, 이에 특파원들도 기사로 부응해 왔다. 우크라이나군에게 유리한 전황은 적극적으로 기사화됐고, 불리한 소식은 빠지거나 축소됐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기대하고 적극 지원했던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이 시간이 갈수록 졸전을 거듭하자, 주요 외신들이 앞다퉈 비관적인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최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불만도 기사에 등장했다.
지난 10일에는 '할아버지'라는 '콜 사인'을 가진 우크라이나군 저격수가 한 유튜브 방송에서 '모든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는 우크라이나 정치군사 수뇌부의 전망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이제는 많은 병사가 종전을 환영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취재 제한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우크라이나군 제 82여단의 자포로제 최전선 투입에 관한 외신 보도로 보인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안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전날(21일) 미국 포브스와 독일 일간지 빌트가 제 82여단 이동에 대한 기사를 쓴 뒤 러시아 측의 공습이 5차례나 이뤄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제 82여단이 남쪽으로 이동한 곳을 지목한 언론들의 헤드라인 비용은 하루 5번의 공습"이라며 "그러한 정보의 유포는 최대 8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포브스지는 "제82여단의 역할은 원래 러시아군의 첫번째 방어선이 무너지면, 다음 방어선으로 내달리기 위해 투입될 예비전력이었으나, 예상보다 빨리 남부 전선으로 향했다"고 지적했다. '반격 성과를 빨리 보여달라'는 서방 측의 성화에 못이겨 예비 전력마저 첫번째 방어선 돌파 시도에 미리 투입됐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언론의 취재 제한 지역을 빨간색과 노란색, 녹색 구역 등 3단계로 나눴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해 아예 접근 자체를 제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군 부대 이동과 방어 진지, 러시아 미사일의 출현 및 방공작전, 피해 상황 등에 대한 촬영 금지는 지난해 3월 계엄령과 함께 일찌감치 도입됐다. 이를 어겼다가 최근 형사 처벌을 받은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는 가수 출신 인기 블로거 인나 보로노바다. 그녀는 지난 5월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맞서는 키예프(키이우)시(市)의 방공망 작동 영상을 실시간으로 올렸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여성 인플루언스 인나가 방공망 영상 포스팅을 사과하며 올린 SNS 글. 최전선 복무 병사들에게 자신의 몸매를 보여준다고 했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그 효과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러시아군이 연일 우크라이나 전 지역을 향해 무차별 공습을 단행하고 있지만, 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영상은 제한적이다. 러시아 의회가 최근 무분별한 전쟁 피해 사진및 영상의 게재 금지에 관한 법안을 내놓은 이유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의회는 17일 우크라이나 법안을 참조해 우크라이나 미사일·드론의 러시아 공격과 그 피해 상황 등에 촬영한 사진및 영상 게재를 금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위반자는 최대 5만 루블의 벌금형을, 반복될 경우 최대 3년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러시아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기관과 언론 기관만 관련 사진·영상을 공개할 수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안드레이 클리샤스 의원은 기자들에게 "폭격 위치나 피해 상황, 군사장비, 방공 시스템, 드론 및 기타 특수 무기의 사용과 비행 경로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모스크바 도심 빌딩을 때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영상 캡처
러시아 의회의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크림대교와 크림반도내 주요 목표물에 대한 우크라이나측의 미사일·드론 공격 이후 시작됐다. 최근 일련의 모스크바 드론 피해 상황도 고려됐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은 구체적으로 군사적 성과를 내기보다는 러시아인들에게 '전쟁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심리적 공포 효과를 극대화한다"며 "법안이 도입되면 러시아 주요 지역에 대한 드론 공격의 PR 효과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텔레그램과 서방 언론이 존재하는 한, 러시아가 모든 것을 차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것은 외신 취재를 제한한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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