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고성입니다.”
속초에서 고성으로 넘어오는 고갯길에 붙은 문구이다. 금강산은 고성군의 역사와 문화가 응집된 상징공간이자 언젠가는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장소이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시행된 금강산 관광 프로그램 육로관광의 중요 길목이었고 동해북부선 철도를 통해 제진역부터 금강산청년역까지 연결하여 기차여행도 할 수 있었다. 70~80년대 명태 활황에 의한 지역경기 활성화 이후 금강산 관광은 고성군의 새로운 성장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남북관계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 최근에는 가장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은 고성군의 도시마케팅에서 가장 효과적인 상징구호이기도 하다. 가지 못해 더욱 그리운 금강산이 갖고 있는 역사문화적 의미와 미래평화의 상상공간이기 때문이다.
건봉사 전경. 건봉사는 조선시대 4대 사찰의 하나일 정도로 위상이 높은 곳이었다. 유생들에게도 이름이 높은 곳이었는데 금강산 가는 길의 경유지로서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 제1봉 신선봉에서 금강산전망대까지
고성군은 금강산 문화의 마지막 자산을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사찰 두 곳이 있다. 신라 혜공왕 때 창건된 사찰 ‘화암사’는 금강산 자락의 남쪽 줄기에 닿고 있다. 금강산 1봉으로 불리는 신선봉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기에 예부터 ‘금강산 화암사’로 표기된다.
거진읍에 있는 건봉사 역시 금강산 자락의 절이다. 조선사찰 31본산 가운데 제27본산이었던 건봉사는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둔 조선시대 4대 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6.25 전쟁 때 불이문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게 되었고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건봉사의 문화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이다. 초대중적 공양문화인 만일염불회를 최초로 조직한 염불 도량, 사명대사와 만해 한용운으로 대표되는 호국의 성지, 마지막으로 금강산 가는 길의 경유지였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금강산은 사대부들이 생애 꼭 한번 방문해야 할 장소였다. 인격도야, 심신수양에 적합한 풍류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건봉사는 영남과 영북의 유생들이 금강산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들러서 숙식을 해결하는 곳 중 하나였다. 아침에 건봉사, 점심에 조제암(건봉사 말사), 저녁에 유점사로 들어갔다가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금강산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꿈이었기 때문에 건봉사가 차지하는 위상은 높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금강산 자락의 최남단이자 금강산 여행길의 경유지였던 두 사찰은 금강산으로 가는 ‘길’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평화유산이다.
고성군에는 남북 대치의 현실에서 금강산 이름을 사용하는 또 다른 시설이 있다. 동해안 최북단 군사시설 관측소인 717OP가 바로 금강산 전망대이다. 1982년 만든 금강산 전망대는 한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지만 1994년 이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고 군사시설로만 사용되었다. 해안가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와 달리 내륙의 고지에 위치, 다양한 북쪽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대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로 하였고 2018년 이후 한시적으로 개방되었다. 하지만 2023년 4월부터는 나빠진 안보상황에 때문에 금강산 전망대는 제외된 채 축소돼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