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무(4)
잠13;12
상실한 꿈
오늘 말씀은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바라는 소원이 지체되어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이러한 사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개인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질병이나 사업의 문제, 직장의 문제나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은 상합니다.
두 번째
공동체를 향하여 가졌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특히 가정공동체를 향하여 가졌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부모나 형제들에 대한 기대가 꺽일 때 큰 실망을 경험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을 향한 소원이 깨어질 때입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간구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책임을 하나님께 다 떠넘깁니다.
그리고 스스로 실망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 가지 차원에서 어떤 기대와 소망을 갖는 데
이것이 깨어질 때에 우리의 마음도 같이 깨어집니다.
이것이 무너질 때에 우리 마음도 같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깊은 상처와 회복할 수 없는 아픔을 남기기도 합니다.
둘째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그 소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닐 때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디자인하시고 계획을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종종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꿈을 꾸고 소원을 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 소원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보다 늦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이루실 것인데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포기합니다.
이때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낙심할 때가 많지요.
세 번째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종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고 계시고 그 뜻대로 이루시길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인내도 합니다.
그런데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대로 고집스럽게 살아갈 뿐입니다.
이 때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속이 상합니다.
상처를 입습니다.
셋째; 꿈의 치유
1) 좌절된 꿈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좌절된 꿈으로 인해 아파하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좌절된 꿈속에서 평생을 고기잡이만 하던 젊은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셔서 새 꿈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꿈을 잃고 좌절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 새로운 꿈을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의 꿈과 소원을 좌절시키는
모든 죄와 질병과 눈물과 심판과 사망과 고통을 모두 십자가에 매어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선포하십니다. “
다 이루었다.
좌절된 꿈으로 인해 아파하고 고통하는 너의 문제를 다 해결했다.”라고 말입니다.
2) 꿈을 리모델링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모든 당신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꿈을 주십니다. “
나의 증인이 되라.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 일은 우리의 꿈과 소원을 새롭게 하십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
성경은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는 꿈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소망과 비전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꿈을 새롭게 하시고 예수로 살게 합니다.
성령님 안에서 주시는 궁극적인 우리의 꿈은 “우리가 예수의 삶을 삶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축복과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새롭게 세워져야할 꿈입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그분만을 의지하고, 그분 안에서 생의 소원을 새롭게 리모델링하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나갈 때 꿈은 사건이 되고,
소원은 삶의 내용이 되고, 비전은 우리의 삶을 더욱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 때 비로서 우리의 삶이 생명나무처럼 될 것입니다.
넷째; 회복된 소원은 생명나무이다.
오늘 성경은 계속 이렇게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소원이란 단어의 영어는 desire입니다.
이 단어는 de 와 sire의 합성어인데 “~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즉 우리가 무엇을 소원하고 바랄 때 그것이 우리의 아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원하면 재물이 아비가 되고,
우리가 음란에 빠지면 그것이 나를 주관하는 아비가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의 꿈이었던 하나님 나라가 마음의 아비이길 축복합니다.
그때 생명나무로 이 땅 가운데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한 분 한 분을 통해서 많은 생명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히게 될 것이며
여러분을 통해서 차세대인 후배들과 자녀들이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신앙의 열매를 따먹게 될 것입니다.
그 양분으로 그들이 자라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생명나무의 주인공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